섬마을 소년들
황용희 지음 / 멘토프레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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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는 서서히 노을이 깃들고 있었다. 서편 하늘을 수놓은 형형색색의 낙조는 오직 자연만이 연출할 수 있는 장엄한 예술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슬프도록 아름답고 황홀한 석양빛은 너무나도 깊이 내 가슴 속에 새겨져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선연히 떠오르고 있다.”

 

사람들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일까요. 자신이 태어난 뿌리이자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의 대상. 혹은 지난 추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보물창고. 고향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책은 18년 동안, 섬마을 흑산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던 저자가 고향에 바치는 아름다운 헌사입니다. 그 순수했지만 배고팠던 시절.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조금씩 성장했던 섬마을 아이들과 바로 그 아이들을 위해 고된 노동을 감내해온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뜻밖의 행복이라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일까요. 무심코 꺼내든 이 책으로 저는 무한한 기쁨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떤 명문장가가 쓴 글이라 해도 이처럼 벅찬 뭉클함을 줄 수 있을까요. 끝내 저를 울게 만든, 하지만 조금도 원망스럽지 않은 소중한 책입니다.

 

저에게 많은 울림을 준 부분은 바로 어머니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거센 자연과 싸우고, 가난과 싸우며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어머니. 그들의 눈물겨운 사랑이 없었다면 섬마을 아이들은 결코 바르게 자라지 못했을 것입니다.

 

“노동은 사람들을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지만 머리 위로는 무수한 별빛이 쏟아지고 반딧불이는 유령처럼 우리 곁을 날아다녔다. 우직 앞만 보고 일하는 어머니와 누나들은 별빛이나 반딧불을 불 겨를이 없었겠지만 나는 잠시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수억조, 항하사처럼 흐르는 별떼들과 소곤대기도 하고 반딧불이를 잡아 호박꽃 속에 넣어 형광을 만들기도 했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물질로 바닷속 미역을 베어내다 저녁에야 집에 온 다음 밤이 깊도록 쪼그리고 앉아 미역을 널어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이보다 더한 노동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날이 밝으면 어김없이 바다로 나가야 했고 여느 때와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여름철 바다 노동의 대부분을 감당하는 우리 동네 여자들은 희망의 아침 대신 고통의 새벽을 맞고 있었다.”

 

정직하고 숭고한 노동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이어나갔던 어머니. 그이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음은 물론입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함께 평생을 고된 노동으로 보내신 우리 어머님들. 어찌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머나먼 섬 흑산도, 거기에서도 동지나해 쪽으로 30여 킬로미터를 더 가야 닿을 수 있는 섬 태도(苔島). 저자는 어린 시절을 1960년대의 보편적 현상이었던 가난의 질곡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맑고 평화로우며 경관이 수려한 고향을 둔 탓에 결핍상태가 영혼까지는 침범하지 못하고 겨우 엿이나 빵을 탐하는데 그치고 말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다표범’못지 않은 수영실력으로 자맥질하며,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보낸 유년시절을 눈물겹게 그리워합니다.

 

“옛날 외딴 섬마을이나 깊은 두메산골 아이들은 문화 혜택을 못 받아 여러모로 뒤떨어진 면이 있었겠지만 하늘과 바람과 구름, 쪽빛 바다, 가없는 수평선, 힘차게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 망망대해 떠가는 돛단배를 보며 밝고 맑게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환경이든 완벽한 조건이란 있을 수 없고 공부를 우선시하는 도회지 부모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잠시 잠깐도 아까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말합니다. 최초로 사물을 인식하기 시작한 유소년기에는 주입식 교육이나 혼자 하는 독서보다 들판과 언덕을 내달리며 산토끼도 쫓고 물고기도 잡아보는 거친 야성이 사람의 마음을 순박하게 하고 지구라는 이 땅덩어리에서 인간뿐 아니라 들짐승, 날짐승, 물고기 등 모든 생명체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큰 교육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백 번 지당한 말입니다.

 

문득 제 유년시절을 떠올립니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었지만, 어린 시절 할머니가 계시는 수원 밤밭(율전동)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개구리도 잡고, 서리해온 콩을 구워먹다 얼굴을 새까맣게 만들기도 했고, 메뚜기, 방아깨비, 사마귀 잡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시간들. 그 비싼 장난감 대신 자연의 모든 것들이 마냥 신나는 장난감이자 놀이터였던 그 시절. 어떻게 그 시절을 잊을 수 있을까요.

 

그 시절의 기억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은 물론입니다. 가능한 한 살상을 하지 않고,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도 무심히 다루지 않는 마음. 제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입니다. 바로 이러한 성정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만들어 준 것이지요.

 

책은 마냥 순수했던 그 시절의 아름다운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애환과 기구한 운명. 그리고 저자 자신의 가족사는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평생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지내온 저자의 아픔과 어머니가 감당해야 했던 그 숱한 고통과 인내의 세월들. 소식도 없이 집을 나갔다 오랜 세월 뒤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서러운 포옹조차 할 수 없었던 저자의 마음.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책은 저자의 서럽고도 가슴 아팠던 유년시절이 함께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 어떤 아름다운 기교나 화려한 수식어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글은 말 그대로 “솔직한” 글입니다. 아무런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을 담아낸 저자의 글은 때문에 아름답고 또 서럽습니다. 저자의 쉽지 않았을 용기로 인해 독자들은 아련한 추억과 함께 진한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는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담겨 있는 섬마을로. 서러움, 배고픔, 무시와 천대가 남아있는, 하지만 벗들과의 즐거운 추억, 가족들의 뜨거운 사랑이 함께 있기도 한 그 고향으로.

 

저자의 소망이 끝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오랫동안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로 저를 위로해 준 저자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나는 언젠가 섬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곳에 회귀하여 밤바다에 낚싯대 드리우고 물고기 잡으며 커다란 만월도 잔 속에 담아봐야지요. 낮엔 연애소설을 읽거나 무위도식하며 밥을 축내다가 뒷산에 올라 고사리 뜯어먹으면 그만일 터. 그래서 나는 진실로 섬에 가려 합니다. 이 보잘것없는 글을 쓰면서 몇 번이고 다짐했던 것이 ‘귀거래’ 그 한 가지 약속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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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천줄읽기) - 지만지고전천줄 191 지만지 천줄읽기 191
브램 스토커 지음, 김종갑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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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사랑하는 여자들은 이미 내 것이 되었다. 그 여자들로 인해서 너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나의 소유물이 될 것이다. 나의 명령에 복종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노예가 될 것이다.”

 

1897년 세상에 등장한 《드라큘라》는 이제 시대를 넘어선 불멸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드라큘라는 수많은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이고, 또 다양한 속편과 리메이크가 이뤄졌습니다. 백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흡혈귀와 드라큘라는 공포와 매혹의 대상입니다.

 

이처럼 드라큘라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성적인 매력과 함께 드라큘라가 가지고 있는 영원불멸성 때문일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는 인간의 오랜 꿈이기도 하지요.

 

또한 드라큘라는 과학과 상식, 논리와 합리성이 중시되는 지금, 과거에 대한 막연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존재.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신비의 존재.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 하지만 또한 동시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드라큘라는 인간 심연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공포를 자극합니다. 때문에 스릴을 느끼고 두려워하면서도 동경하는 것이지요.

 

아울러 드라큘라는 소수자와 핍박받는 자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다수에 의해 만들어진 ‘정상’이라는 범주에 들지 못한 이들을, 다수는 ‘이단’혹은 ‘마녀’라는 이름으로 배제하고 학살했습니다. 그 피로 얼룩진 역사는 수많은 이들을 ‘이름 없는 소수’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이들 혹은 적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로 각인시킨 다음 학살과 파괴를 정당화 시켜왔습니다. 그들을 우리와 다른 존재로 규정한 다음 학살을 정당화한 것이지요. 때문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와 다른 타자를 ‘두려워하는’ 습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볼까요. 드라큘라,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 등 고전 공포물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불릴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죽여 마땅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공포물의 전통은 현대에 들어와 좀비나 외계인 혹은 외계인에게 감염된 인간으로 확장됩니다.

 

비교적 최근 소개되었던 《디스트릭트 9》이런 영화가 있습니다. 기억나시나요. 외계인들을 집단으로 수용해 놓은 게토 구역 ‘디스트릭트 9’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외계인에게 감염되어 점차 외계인의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그러자 인간들은 그를 죽여 그의 유전자를 통해 가공한 외계인의 힘을 얻으려 하죠. 주인공 하나 따윈 죽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말이죠.

 

아울러 주인공을 ‘악마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 죽여야 할 그 어떤 ‘비정상적’상태인 것이죠. 좀비 영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가족 내 형제 내 친구라 하더라도 좀비에게 물렸다면, 당장 바로 쏴 죽여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내가 죽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선 주저하거나 정에 이끌려 죽임을 포기하는 이들이 오히려 ‘당연한 죽음’을 당합니다.

 

모든 공포물은 이처럼 인간 본래의 그 어떤 것을 지키려는 심리가 반영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어떤 정상 상태가 ‘정상이 아님’으로 변화되는 순간 적과 아군, 공포와 살육이 나뉘어 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큘라는 배제되고 격리된 또 다른 우리들의 모습에 다름 아닙니다.

 

《드라큘라》는 전통과 근대 과학의 대결, 종교와 과학의 대결, 억압된 성과 분출된 성의 대결, 남성과 여성의 대결 등 다양한 범주로 해석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단순한 고딕 소설이라고 하기엔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때문에 최근 단순한 흥미 위주의 흡혈귀 물들이 조금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뭐 그것도 시대에 맞추어야 하겠지만요.

 

앞으로도 드라큘라 백작의 후예들이 오랫동안 밤의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결국 그들은 드라큘라 백작의 후예들입니다. 그들이 지배하는 밤의 세계, 그 공포와 치명적인 매력은 여전히 사람들을 강하게 유혹할 것입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지만지에서 펴낸 것으로 친절한 해설과 함께 원문을 6분의 1로 발취해 번역한 작품입니다. 초판 300부 한정판이라고 하네요. 조만간 원작을 제대로 한 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나는 모든 게 걱정되고 두렵기만 했으며, 심지어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마저도 무서웠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길을 가야 한다. 우리의 판돈은 죽음 아니면 삶, 아니 그보다 훨씬 중요한 무엇이다. 겁을 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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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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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말투, 언제나 입에 물려있는 담배, 인정머리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듯한 얼굴 그리고 위스키 한잔이 어울리는 남자. 하드보일드 문체의 대가라 불리는 레이먼드 챈들러가 탄생시킨 사립 탐정 필립 말로입니다. 어떤 이는 그에게서 세상의 탐정 반이 태어났다고 표현했습니다.

 

《빅 슬립》은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첫 시리즈입니다. 이른 바 전설의 시작이죠. 비열한 거리, 삭막한 도시 캘리포니아를 무대로 거칠게 살아가는 탐정 필립 말로는 이후 모든 추리작가들의 로망이자 추리 마니아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최근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의 고전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당분간 이 분야에 대한 편식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 필립 말로의 활약을 읽지 않고는 하드보일드 작품을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빅 슬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는 나의 영웅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챈들러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 중 하나인데요. 챈들러의 리얼리티에 감탄한 그는 자신의 작품 《양을 둘러싼 모험》을 쓸 때 의도적으로 챈들러의 문체를 빌려왔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문체를 모방하기는 쉽지만, ‘시점’을 모방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적 존재라고 불리는 챈들러.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틀을 깨고 일반 문학에서도 인정을 받는 위대한 작가 챈들러. 그가 창조해낸 필립 말로는 중절모를 깊이 눌러쓰고, 트렌치코트의 깃을 높이 세운 채 한 손에 권총을 든 남자. 바로 미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느와르의 이미지이자, 하드보일드 탐정의 이미지라 할 수 있습니다.

 

살아 숨쉬는 듯한 묘사 그리고 주관적 해설과 감성이 느껴지는 특유의 문체로 챈들러는 미국 대중문화의 독보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필립 말로의 까칠함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고, 인생에 대해 무심한 듯한 그의 행동 역시 비열하고 차가운 도시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그녀는 날카롭게 말했다.

“그리고 난 당신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라고 그쪽 태도가 미치도록 좋은 건 아니오. 내가 그쪽을 보자고 청한 것도 아니고. 그쪽이 나를 불렀지. 그쪽이 나한테 공주처럼 굴든, 점심으로 스카치 위스키 한 병을 다 마시든 내가 상관할 바도 아니오. 나한테 다리를 자랑해도 상관없어요. 끝내주는 다리이기는 하니 알게 되어 즐겁군요. 그쪽이 내 태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상관없소. 내 태도는 아주 나쁘니까. 나도 내 태도 때문에 마음 아파하면서 긴긴 겨울밤을 보낸다오. 그렇지만 나를 속속들이 캐보려고 당신 시간을 헛되이 쓰지는 마시오.”

 

정말 기막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문장들이 넘쳐납니다. 이를테면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지 못했지만, 무언가 기다려야 한다는 느낌이 왔다. 또 시간이 느릿느릿 행진하는 군대처럼 흘러갔다”라든지, “죽은 사람은 상처받은 마음보다도 무겁다”라든지, “말로입니다. 나를 기억하죠? 한 백 년 전쯤 만나지 않았습니까, 아니 어제였나요?”“세상은 흠뻑 젖은 공허 그 자체였다”“내가 고드름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마오. 나는 장님도 아니고 감각이 마비된 것도 아니오. 내게도 다른 남자처럼 더운 피가 흐르지. 하지만 당신은 너무 쉬워. 빌어먹게도 너무 쉽단 말이야.”등등처럼 말이죠. 일일이 밑줄을 그어두어야만 할 것 같은 문장들이 넘쳤습니다. 왜 하루키가 그렇게 열광했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습니다.

 

잊지 못할 사연을 가득 담고 있는 것만 같은 고독한 남자.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따뜻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합니다. 때론 그것이 더럽고 혐오스러운 일일 지라도 말이죠. 살인과 폭력은 물론입니다.

 

글쓰기의 모범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은 분명 치명적 매력이 가득합니다. 처음엔 약간 어색하고 산만해 보일 수 있는 그의 문장도 점점 빠져나올 수 없는 늪처럼 당신을 유혹할 것입니다.

 

필립 말로의 활약은 총 6편입니다. 이 모든 작품들과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비정한 도시 속에 한 줄기 담배 연기를 뿜으며 걸어가는 고독한 남자의 이야기. 스산한 가을, 그와 함께 고독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일단 죽으면 어디에 묻혀 있는지가 중요할까? 더러운 구정물 웅덩이든, 높은 언덕 꼭대기의 대리석 탑이든 그게 중요한 문제일까? 당신이 죽어 깊은 잠에 들게 되었을 때, 그러한 일에는 신경쓰지 않게 된다. 기름과 물은 당신에게 있어 바람이나 공기와 같다. 죽어버린 방식이나 쓰러진 곳의 비천함에는 신경쓰지 않고 당신은 깊은 잠에 들게 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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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109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구세희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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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살인자》에 이어 두 번째 접하는 디 공의 활약담입니다. 이번엔 수도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 한위안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명쾌히 해결합니다. 게다가 이번엔 국가의 안위가 걸린 매우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황금 살인자》의 서평에서 말했듯, 저자는 당나라 시대 실존 인물이었던 명판관 디런지에를 주인공으로 다양한 모험담을 펴냈습니다. 실제 남아있는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의 생활상, 중국인들의 의식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작은 마을 한위안에는 커다란 호수가 하나 있습니다. 이곳은 예부터 무시무시한 괴물이 산다는 전설이 있고, 이곳에서 빠져죽은 이들은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 반면 이 곳은 꽃배라 하여 아름다운 기녀들과 달밤에 술자리를 즐기는 것으로도 이름이 높습니다.

 

이곳에 부임한 디 공은 마을 유지들과 꽃배를 타고 즐거운 밤을 보냅니다. 그때 아름다운 무희 펜토화가 디 공 앞에서 황홀한 춤을 선보이고, 의문에 말을 전합니다. 마을에 엄청난 음모가 벌어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이후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꼬리를 무는 실종사건. 디 공은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엄청난 음모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고 전율하게 됩니다. 과연 그는 이 엄청난 음모를 막을 수 있을까요.

 

이번 편에는 디 공의 충실한 심복 마중과 차오타이를 이어 새로운 심복이 등장합니다. 온갖 사기와 속임수의 달인 타오간입니다. 무예에 뛰어나지는 않지만, 온갖 술수에 능한 그는 디 공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줍니다.

 

이른 바 ‘디 공 시리즈’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소 촌스럽기도 하고, 허무맹랑한 면도 있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속도와 주변 인물들의 다양함 그리고 문제에 접근하는 디 공의 방법 등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울러 고대 중국의 예법과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 것은 이러한 세밀한 점들을 생생하게 묘사한 저자의 뛰어남입니다. 그의 노력에 의해 디 공은 시공을 초월해 여전히 매력적인 판관, 탐정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국내에 소개된 디 공 시리즈 중 절반을 읽었습니다. 《쇠종 살인자》《쇠못 살인자》가 남았습니다. 유쾌하게 사건을 풀어내는 디 공의 활약. 나머지 두 편도 기대됩니다.

 

“아니야, 아직 이 사건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 아직은. 기녀의 원한은 너무나 강해서 류의 자결로는 만족하지 못했을 거야. 때로 어떤 원한은 너무나 강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해서 스스로 생명을 얻고 원한을 품은 자가 죽은 뒤에도 이승에 남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원한이 죽은 자의 시신에 깃들어 사악한 목적에 이용하기도 한다지 않은가.”

다른 네 명의 당황한 표정을 본 디 공이 다급히 덧붙였다.

“원한이 아무리 강해도 이 역시 스스로 악행을 저지른 자만 해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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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에서 건져올린 인생
윌리엄 플러머 지음, 신혜경 옮김 / 열림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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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어느 책에선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아 챙겨두었던 책일 것입니다. 꽤 오랫동안 모셔두기만 했는데요. 아버지에 대한 책을 읽고 다시 돌아보니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자는 저와 같은 직업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물론 직책은 저보다 훨씬 높은 편집장이지만요. 매월 마감에 쫓겨 전쟁을 치렀다는 점에서 저도 모르게 강한 동료 의식(!)을 느꼈습니다.

 

저자의 삶은 평탄치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와의 이혼, 아들과의 갈등 그리고 자신의 혼신을 다해 펴낸 책의 참담한 실패. 이 모든 실패 속에서 그는 서서히 무너져갔고, 빠져나올 수 있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가 찾은 것이 바로 오래된 아버지의 낚시일기였습니다. 플라이 낚시의 대가였던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에도 강물에 서 있었습니다. 무뚝뚝했지만, 언제나 아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품고 있던 아버지. 그는 낚시에 자신의 삶을 담았습니다.

 

그 전까지 낚시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없었던 저자는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며 점차 낚시에 빠지게 됩니다. 아버지가 섰던 그 강가에 몸을 담그며, 그는 다시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낚시 역시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플라이 낚시는 말이죠. 오랜 경험과 숙달된 기술이 필요한 고난이도의 ‘예술’입니다. 저자는 서툰 몸짓으로 아버지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점점 아버지의 삶과 사랑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른 봄의 어느 아침, 나는 이름 모를 바위에 앉아 아버지를 추억하고 있다. 아버지의 깊이를 깨닫기까지 왜 그리도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까? 나의 긴 머리, 베트남 전쟁, 아버지의 불같은 성질, 나의 불같은 성질, 겹겹이 쌓인 어머니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나는 왜 아버지가 살아계신 동안 내내 우리들의 차이점만을 보려 했을까. 나는 어떻게 아버지가 영원히 내 곁에 머물 거라고 생각했을까……?”

저자는 기억이란 참으로 묘하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난 횟수가 아니라 그 사건의 비중이라고 말합니다. “기억은 특정한 이미지에 집중해 나머지 것들은 무시해버린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그 나머지 것들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강물에서 낚시를 하며 자연의 위대함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아울러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버지는 강물을 읽고, 자연을 읽은 사람이었습니다.

 

“강물을 읽는다. 다소 해묵은 이론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이 말이 아주 맘에 든다. 강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완벽한 텍스트이며 풀어내야 할 암호 체계다. 강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좋은 책과도 같으며, 하나의 강은 또 다른 강에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낼 열쇠를 품고 있다.”

 

그리스의 옛 속담에 “자연은 우리들이 적당히 먼 곳에 있을 때에만 온전히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지극히 옳은 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는 어느 새 자연과, 강과, 새와 나무들과 하나가 되어 살아오셨던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아버지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아들과 함께 예전 아버지와 함께 했던 강가에 나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의 낚시를 도와줍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그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정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죠. 하지만 조급한 자신은 결국 아들에게 낚시 시범을 보입니다. 그리고 걱정과 달리 아들은 저자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스스로 잡은 어린 송어를 다시 강으로 돌려보내는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하지만 제가 결국 움찔하며 눈물을 보였던 것은 맨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그 옛날 아버지가 잡았다 놓아준 것이 분명한 크고 오래된 브라운 송어를 잡은 저자. 그는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어머니가 들려준 아버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낚시 클럽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가끔씩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 또 옛 친구 녀석을 잡았지 뭐요.”

 

저자는 결국 그 송어를 다시 강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옛 친구가 또 한 번의 겨울을 무사히 나기를 바라는 소망을 실어 보낸다.

 

그리고 한마디 인사도 잊지 않는다.

“그럼, 내년 봄에 다시 만나자꾸나.”

 

진심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글이 갖는 놀랍고도 강렬한 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이미 저자는 2001년 아버지의 곁으로 떠났지만, 그의 아들이 다시 그 강가에서 낚싯대를 던지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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