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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천줄읽기) - 지만지고전천줄 191 ㅣ 지만지 천줄읽기 191
브램 스토커 지음, 김종갑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너희들이 사랑하는 여자들은 이미 내 것이 되었다. 그 여자들로 인해서 너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나의 소유물이 될 것이다. 나의 명령에 복종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노예가 될 것이다.”
1897년 세상에 등장한 《드라큘라》는 이제 시대를 넘어선 불멸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드라큘라는 수많은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이고, 또 다양한 속편과 리메이크가 이뤄졌습니다. 백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흡혈귀와 드라큘라는 공포와 매혹의 대상입니다.
이처럼 드라큘라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성적인 매력과 함께 드라큘라가 가지고 있는 영원불멸성 때문일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는 인간의 오랜 꿈이기도 하지요.
또한 드라큘라는 과학과 상식, 논리와 합리성이 중시되는 지금, 과거에 대한 막연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존재.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신비의 존재.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 하지만 또한 동시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드라큘라는 인간 심연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공포를 자극합니다. 때문에 스릴을 느끼고 두려워하면서도 동경하는 것이지요.
아울러 드라큘라는 소수자와 핍박받는 자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다수에 의해 만들어진 ‘정상’이라는 범주에 들지 못한 이들을, 다수는 ‘이단’혹은 ‘마녀’라는 이름으로 배제하고 학살했습니다. 그 피로 얼룩진 역사는 수많은 이들을 ‘이름 없는 소수’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이들 혹은 적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로 각인시킨 다음 학살과 파괴를 정당화 시켜왔습니다. 그들을 우리와 다른 존재로 규정한 다음 학살을 정당화한 것이지요. 때문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와 다른 타자를 ‘두려워하는’ 습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볼까요. 드라큘라,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 등 고전 공포물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불릴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죽여 마땅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공포물의 전통은 현대에 들어와 좀비나 외계인 혹은 외계인에게 감염된 인간으로 확장됩니다.
비교적 최근 소개되었던 《디스트릭트 9》이런 영화가 있습니다. 기억나시나요. 외계인들을 집단으로 수용해 놓은 게토 구역 ‘디스트릭트 9’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외계인에게 감염되어 점차 외계인의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그러자 인간들은 그를 죽여 그의 유전자를 통해 가공한 외계인의 힘을 얻으려 하죠. 주인공 하나 따윈 죽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말이죠.
아울러 주인공을 ‘악마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 죽여야 할 그 어떤 ‘비정상적’상태인 것이죠. 좀비 영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가족 내 형제 내 친구라 하더라도 좀비에게 물렸다면, 당장 바로 쏴 죽여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내가 죽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선 주저하거나 정에 이끌려 죽임을 포기하는 이들이 오히려 ‘당연한 죽음’을 당합니다.
모든 공포물은 이처럼 인간 본래의 그 어떤 것을 지키려는 심리가 반영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어떤 정상 상태가 ‘정상이 아님’으로 변화되는 순간 적과 아군, 공포와 살육이 나뉘어 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큘라는 배제되고 격리된 또 다른 우리들의 모습에 다름 아닙니다.
《드라큘라》는 전통과 근대 과학의 대결, 종교와 과학의 대결, 억압된 성과 분출된 성의 대결, 남성과 여성의 대결 등 다양한 범주로 해석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단순한 고딕 소설이라고 하기엔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때문에 최근 단순한 흥미 위주의 흡혈귀 물들이 조금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뭐 그것도 시대에 맞추어야 하겠지만요.
앞으로도 드라큘라 백작의 후예들이 오랫동안 밤의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결국 그들은 드라큘라 백작의 후예들입니다. 그들이 지배하는 밤의 세계, 그 공포와 치명적인 매력은 여전히 사람들을 강하게 유혹할 것입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지만지에서 펴낸 것으로 친절한 해설과 함께 원문을 6분의 1로 발취해 번역한 작품입니다. 초판 300부 한정판이라고 하네요. 조만간 원작을 제대로 한 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나는 모든 게 걱정되고 두렵기만 했으며, 심지어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마저도 무서웠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길을 가야 한다. 우리의 판돈은 죽음 아니면 삶, 아니 그보다 훨씬 중요한 무엇이다. 겁을 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