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를 말하다
노엄 촘스키 & 조지프 스티글리츠 외 지음, 바네사 베어드 & 데이비드 랜섬 엮음, 김시경 / 위너스북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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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열 마리가 거대한 당근을 깎아 만든 배를 타고 바다에서 길을 잃었다고 가정해보자. 배의 원료인 당근이 유일한 식량으로 남게 되자, 모든 토끼들이 그것을 계속 갉아먹고 있다. 배는 빠른 속도로 물속에 가라앉는 중이다. 그러나 아무도 배를 갉아먹는 일을 먼저 중단할 마음이 없다. 그렇게 한다면 가장 먼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토끼가 배를 갉아먹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한, 그들 중 몇몇이 그 일을 멈춘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단 한 마리의 토끼라도 계속해서 배를 갉아먹는다면 배는 결국 가라앉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글쓴이 중 하나인 기후변화 관련 활동가 대니 치버스가, 지금의 세계 기후위기 상황을 빗대어 표현한 대목이다. 하지만 그의 적절한 비유가 오직 기후변화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상 자본주의 시스템, 시장경제 체계 전체에 바칠 수 있는 찬사가 아닐까.

 

 

경제민주화라는 화두가 느닷없이 이번 대선을 통해 화려하게 등장한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을 뿐이지, 1987년 개정된 현행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제안해서 ‘김종인 조항’이라 불린다고도 하는데, 그것은 아무리 봐도 ‘오버’다.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는 야당보다 한 발 앞서 경제민주화를 강조했다. 아울러 분배를 통한 복지까지 먼저 접수했다. 경제민주화와 분배, 복지는 모두 진보 진영이 주로 ‘아는 척’하는 이슈다. 진보라 하기에도 매우 민망하지만, 야당인 민주당은 새누리당에게 빼앗길 것은 다 빼앗기고, 새누리당의 것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국민들이 그렇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음에도 패배한 것은 지극한 이유가 있다.

 

 

새누리당 그리고 박근혜와 경제민주화. 얼핏 봐도 어울리지 않고 자세히 보면 더 어색한 조합이다. 줄푸세를 그야말로 줄기차게 주장해온 이들 아닌가. 그동안 신나게 MB를 신봉하다, 이제는 죽이기로 자연스레 갈아타는 분위기지만, MB나 박근혜나 큰 틀에서 바라보는 경제는 비슷하다. 개발, 수출, 규제완화, 파이 키우기 정도? 더 많이 알고 있는지는 미지수. 하지만 일단 신뢰를 주무기로 장착하고 원칙을 보조무기로 활용해 집권에 성공했으니, 경제민주화를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물론 예상대로 당선 이후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지만 말이다.

 

 

책은 노암 촘스키를 비롯해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세계적인 학자들과 작가, 사상가, 활동가들의 글을 모았다. 저마다 미세하게 관심, 활동 분야가 다르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현 자본주의의 문제점, 시장경제의 한계 그리고 극심한 양극화 현상에 대한 우려와 전망, 해법을 담았다. 세계적 차원의 조세 정의 확립, 환경 변화에 대한 전 지구적 대응, 신자유주의의 내적 붕괴 등 현재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과 현황 등을 살펴본다.

 

 

경제민주화란 단어. 헌법에도 존재하는 말이지만, 여전히 무식한 우리에겐 어색하고 애매해 보인다. 왜 대담하게도 ‘나’가 아닌‘우리’가 무식하다고 했을까? 그동안 우리는 경제민주화란 말 자체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했을 정도로 천박한 경제시스템에 적응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양극화 문제나 이로 인한 극심한 사회 분열, 없는 자의 대물림과 가진 자의 세습이 당연시되는 지금 분위기에서 경제민주화는 여전히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 “세계지도에 유토피아라는 나라가 없다면, 세계지도를 들여다볼 가치가 없”지 않은가.

 

 

당근으로 만든 배에 탄 채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 우리. 언론이나 법의 정의 등 방향을 가리켜야 할 나침반은 이미 맛이 가버린 지 오래. 게다가 오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앞길을 인도해줄 어른다운 어른도 찾기 어렵다. 그 와중에 실컷 혼자 모은 재물을 얼싸안은 채(먹을 수도 없다. 돈을 먹을 수 있을까?) 신나게 당근을 갉아먹고 있는 무뇌아들이 곳곳에 포진 중이다. 뭐, 진퇴양난이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시작조차 버거워하거나 귀찮아하거나, 누군가 하겠지 하는 무임승차 정신으로 외면한다면? 답은 없다. 계속 그렇게 살다 가는 수밖에.

 

 

책은 해법까지 친절히 소개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적절한 영감을 주는 글들은 적지 않지만, 우리에게 정확한 매뉴얼을 제공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무엇이 문제이고, 왜 지금 이 세상이 이렇게 엿같이 굴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우린 다시 여기에서 시작하면 된다.

 

 

이제 그만 징징대고, 다시 눈을 부라리시길. 부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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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당신에게
강인규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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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지식인은 절대 혼자의 힘으로 지식인이 될 수 없다. 많은 이들의 희생과 도움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 공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때문에 지식인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 쉽게 말해서 저 혼자 잘나서 지식인이 아니라는 말씀.

 

현명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그 조직은, 그 국가는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사람이라도 더 현명해진다면, 그 사회는 딱 그만큼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지식인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우리 모두가 변하는 만큼 세상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솔직히 꼬집는다. 그리고 그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말하고 있다.

 

권력, 공동체, 교육, 문화, 민주주의, 의식 등 우리 사회에 망가진 부분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저자의 예리함이 돋보인다. 어느새 권력의 모습을 닮아, 약자에게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 한없이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이야기할 때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속된 말로 쪽 팔리다. 하지만 그게 우리의 현 모습이다.

 

책은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인간의 기본 심성과 품위를 무너뜨리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모습을 꼬집고 있다. 대형마트 직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이를 당연시하는 ‘왕’인 손님. 감정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친절을 강요하는 대기업의 뻔뻔함. 지방대라는 해괴한 단어를 들먹이며 젊은 인재들에게 잔인한 낙인을 찍는 학벌주의, 국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정부와 권력자들. 비단 이것 뿐일까? 우리가 어느 새 ‘원래 그런 거야’라며 무심코 외면해온 모든 것들이 사실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암 덩어리였음을 저자는 조용히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라는 말이 거짓이라 단정한다. 그리고 ‘한두 사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말 역시 권력이 국민들을 손쉽게 통제하기 위해 구사하는 주술이라 꼬집는다. 잘 속고 잘 잊는 국민이 있는 한 정부는 무책임해지고 사회를 몰락과 타락으로 인도한다.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연하게도 우리 개개인의 힘을 믿고, 이를 당당히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가 말하는 공감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타자의 아픔, 불편함, 차별에 눈감지 않고 서로가 배려하고 보듬을 때 사회는 비로소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거창한 일이 아니다. 당장 음식 배달원들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그들의 노동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대형마트, 백화점 등 감정노동자들에 대해 무시와 착취가 아닌 고마움과 연대의 정신을 가지면 된다. 저자는 여기에, 착취당하는 아이돌, 아이돌 연습생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한다.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막연히 어린 소녀들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는 남성들이 재수없다고는 느꼈지만, 어린 소년, 소녀들이 겪어야 할 노동 착취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울러 우리가 정치에 대해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요구한다. ‘될 놈’을 찍는 것이 아닌, 내 소신과 철학으로 후보를 선택하자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사표’ 운운하지 말고, 소신껏 그리고 사회를 생각해서 투표에 임하자는 주장.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49%는 모두 사표일테니 말이다.

 

그가 망가진 사회를 고쳐나갈 수 있는 키로 제시한 것은 역시나 너무 당연한 것들이다. 공감, 배려, 연대가 그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너무나 비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뛰어난 학식에도 감탄했지만, 더욱 놀란 것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었다.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의 소위 지식인, 지도층이라는 것들을 보면 약자에 대해 귀 기울일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같이 권력과 돈에만 눈이 멀어있어 보였다. 한마디로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처럼 보인다는 소리다.

 

지금도 곧 현재권력이 될 이와 그의 측근들에게 불다방처럼 달라붙는 것들을 보면 구역질조차 아깝다. 자신의 소신과 신념은 간데없고 오직 영달을 위해서만 동물처럼 움직이는 이들. 이들을 지성과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는 종으로 대우해줄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저자는 건방진 일부 개념 무상의 윤똑똑이들처럼 짐짓 거만하게 훈계하려 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항상 약자들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약자들이 억압받고 삶의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이를 바꾸기 위한 사회적 노력에 대해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시선 속에서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공감하는 능력이 있기에 그의 글은 충실하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떠드는 이들이 짐짓 우리를 속여가며 세상을 저 편한 쪽으로 바꿔온 것이 지난 시간들이었다.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속고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생각한 만큼 움직이면 딱 그만큼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강자보다는 약자와 함께 공감하며 연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변화하지 않으면 곧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누가 봐도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정상은 아니다. 혼자만 생존할 수는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언제쯤 깨우칠 수 있을까?

 

일독을 권하는, 아주 괜찮은 책이다. 저자의 다음 이야기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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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삐라로 묻어라 - 한국전쟁기 미국의 심리전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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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30대 이상이라면 어렴풋하게 '삐라'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삐라는 학교 선생님이나 파출소에 신고해야 하는 '위험한' 그 무엇이었다. 저자 이임하는 6․25전쟁 시기 미군이 살포한 무수히 많은 삐라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미국적 가치'를 규명하려 노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은 FBI가 천 년을 조사해도 끝내지 못할 만큼 많은 양의 삐라를 뿌렸다. 그리고 6․25전쟁 때는 다달이 1억 장이 넘는 삐라를 한반도에 뿌렸다. 매일 500만 장 가까운 종이가 하늘에서 내려와 쌓였다. 미국은 왜 그렇게 많은 삐라를 뿌렸을까? 무릎까지 찰 만큼 많은 삐라를 뿌린 까닭이 무엇일까?

 

저자의 이런 의문은 책을 펴낼 그 순간까지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느낌만은 또렷했다. 어마어마한 삐라의 생산과 살포는 대량생산과 소비를 넘어 과잉생산과 소비를 닮았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6․25전쟁이 시작될 즈음 대량생산을 넘어 과잉생산의 단계로 들어섰다고 한다. 6․25전쟁 때의 심리전 삐라는 자본주의가 과잉생산 과잉소비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늘에서 펄펄 쏟아져 내렸다. 심리전은 이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냉전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냉전은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재생산하는 촉매 가운데 하나가 아니던가. 그렇게 6․25전쟁 때 삐라는 과잉생산 과잉소비, 심리전, 냉전을 하나로 묶는 열쇳말이었다.

 

저자는 6․25전쟁 당시 수행된 미국의 심리전을 연구하던 중 삐라가 가장 많이 사용된 수단이었음을 알았다. 그런데 삐라에 담긴 내용들은 저자가 어렸을 때 배웠던 반공교육의 그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자유, 평등 등 교과서를 통해 알았던 가치들이 이미 미국의 심리전에서 이야기되었던 것들이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배웠던 가치관들이 결국 그 사람의 세계관을 형성함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쟁 당시 미국이 뿌려댄 삐라의 내용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윤리관, 가치 등이 과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삐라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서 소중한 가치라 불리는 다양한 것들이 왜 그동안 선언적 수준에서만 그쳐왔는지도 삐라를 통해 확인하고자 했다.

 

미국이 6·25전쟁 당시 삐라를 통해 심리전을 펼친 배경에 대해 저자는 "이미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심리전의 위력을 확인했다. 독일 나치가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선전, 선동은 전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이러한 나치의 선전술을 이어받았다. 다만 나치가 선전을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에 비해, 미국은 적을 대상으로 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미국 내에서도 왜곡과 조작, 거짓으로 진실을 가린다는 부정적 의미를 가진 선전에 대해 비판적이었음에도, 미 정부와 군은 이를 심리전으로 이름만 바꿔 유지했다. 그리고 6․25전쟁 이전에 중요한 정보기관들이 구축되었고, 심리전에 필요한 예산도 충분히 확보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미국이 심리전에 주력한 것은 근대전, 즉 총력전의 완성이 심리전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총력전이라 하면 전 국민을 동원하는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심리전은 동원의 차원을 넘어 전후사회의 재편까지 고려한다. 전쟁 이후 사람들의 가치관, 세계관까지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경우 전쟁 당시 미국의 심리전 내용들이 사회구조 재편에 그대로 반영됐다. 특히 교육 부분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북의 군인들과 민간인, 중국군을 대상으로 생산된 삐라가 어느새 한국의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의 교육 내용으로 자리 잡았다. 심리전은 단순히 전쟁의 승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사고를 바꾸어 버리는 무서운 도구였던 것이다.

 

저자는 대부분 사람들이 신자유주의가 1980년대 서서히 그림자를 내비치다가 1990년대 본격적으로 얼굴을 드러냈다고 하지만 냉전은 이미 신자유주의적 특징을 잉태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과잉된 생산과 소비는 한 나라의 경계를 넘어 온 지구를 헤집으며 자연을 훼손하고, 노동력을 갈취하고, 하나만으로도 수십, 수백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산더미처럼 쌓고 있다.

 

6․25전쟁 때 삐라의 생산과 소비는 이런 모습을 닮아 있다. 읽지도 않을, 지천에 널려 있는, 불쏘시개로 쓰일 삐라를 무한 생산해 뿌리지 않았는가. 이러한 과잉생산 과잉소비의 신자유주의적 문화는 고스란히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삐라는 한반도에 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미국적 가치를 담은 수많은 󰡐삐라󰡑들이 뿌려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을 상징하고, 때론 포장하는 수많은 기제들이 지금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6․25전쟁을 통해 전달된 미국의 이미지를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는 절대선으로 강렬히 인식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살아있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의 이익이 곧 우리의 이익이라는 착각에 빠진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미국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자국의 이익을 포기한 채 타자를 위해 희생한 적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선과 일본을 처리한 방식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은 일본의 전범세력을 몇몇의 군국주의자로 한정시키고, 천황은 평화주의자로 둔갑시켜 면죄부를 주었다.

 

이것이 향후 미국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천황이 전범으로 처벌받았다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일 간 역사분쟁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전쟁 피해국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라 불리는 이들이 신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흥분하지 않고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더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금은 삐라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기제들을 통해 미국적 가치가 전해지고 있다며, 이를 냉철히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아직 우리는 전쟁 중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전쟁의 주체는 남과 북의 인민군과 국군이 아니다. 분단 체제의 유지를 통해 이익을 얻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전쟁을 끝내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얻어내는 미국일지도 모르겠다. 어지럽다. 저자의 마지막 말에 희망을 걸어본다.

 

"삐라들이 담아낸 공산주의 비판의 흔적은 그대로 살아 전쟁 뒤 한국 사회에 그 흔적을 남겼다. 한국 사회가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방식이나 내용은 삐라의 그것과 완전히 닮아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이 단지 공산주의의 비판만으로 얻어지는 현실 또한 그렇다. 삐라는 전쟁 이후 사람들의 의식 속에 살아남아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다. 이를 깨뜨리기 위한 노력이 여전히 필요하다. 앞으로도 6․25전쟁는 계속 호명되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에 대해 다양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친 전쟁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경험에 대한 강요된 억압'을 깨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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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먼저다 - 좌파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 하는가?
장 뤽 멜랑숑 지음, 강주헌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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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5년은 그야말로 ‘불통’으로 점철된 시간들이었다. 대통령이, 또한 정부가 하는 행동에 대해 국민들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국민의 동의나 최소한의 논의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납득 수준이 아니라 환호한 극소수도 있었음은 기억해야 하겠지만.

 

그런데 이런 전 정권의 잘못을 반성삼아 국민대통합을 열겠다는 새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수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 당선인은 유례없는 ‘방콕정치’를 선보이며, 총리 인준 등 첫 인사부터 참혹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불통’이 아닌 ‘밀봉’의 5년이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는 그래서 생기고 있다.

 

이번 대선의 핵심 키워드는 여야를 막론하고 단연 ‘복지’였다. 특히 박근혜 후보는 야당 못지않은 강력한 복지 공약을 내세웠고, 상당 부분 그것이 유효했다. 실현가능성은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박 후보의 당선에 큰 역할을 한 50대의 경우도 이념이나 보수성을 중요시 한 것만큼 양극화와 복지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 역시 30대 못지않게 사는 게 불안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제 국민들은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묻지마 성장’을 거부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경제 10위권이라는데, 여전히 살기 팍팍한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 그 현실을 바탕으로 지극히 당연한 자각과 분노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분명 말하건대, 현재진행형이다.

 

그 덕분에, 그러니까 국민의 자각 때문에, 과거에 비해 지역주의, 지연, 학연, 혈연 등으로 오염되었던 정치판이 그나마 조금씩 정화되고 있다고 느끼는 건, 나 혼자 만일까? 아울러 이번 대선을 통해 또 하나 절실히 와 닿은 점은, 국민들이, 유권자들이, 이 땅의 주인들이 정치권력을 쥐고자 하는 이들의 비전과 정책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지지하거나, 혹은 반대하는 후보의 정책적 차별성은 무엇이며, 어느 후보의 공약을 지지하는 것이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은 어찌 되었든 5년마다 한 명씩 바뀐다. 박정희 같은 돌연변이는 이제 탄생 불가하다. 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5년 단위로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대선 후보 및 정치인들의 공약을 꼼꼼히 살피는 것, 그리고 결정한 후보를 적극 지지하는 것이다.

 

책은 2011년 프랑스 대선 당시 돌풍을 일으켰던 좌파전선 연대후보 장 뤽 멜랑숑의 공약집이다. 이를 B급 경제학자 우석훈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했고, 프랑스와 우리의 다른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소개하고 있다.

 

선거운동 당시 지금은 대통령이 된 올랑드의 파리 유세가 8만 명을 끌어 모은 데 반해, 멜랑숑의 연설을 듣기 위해 바스티유 광장에 모인 인파는 무려 12만 명에 달했다고 하니, 가히 그의 인기와 함께 좌파전선의 공약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정치적 공약은 말 그대로 공(空)약이 되기 일쑤였다. 현 대통령인 이명박 역시 자신의 공약을 당선 후 호떡 뒤집듯 엎어버렸다. 그리곤 당차게 말씀하시었다. “선거 때 당선되기 위해서 무슨 말을 못해!”라고. 우린 참 솔직담백한 대통령을 선출했다.

 

하지만 MB와 같은 경우라도 자신의 공약에 100% 무심할 수는 없다. 아무리 철면피이고 개념이 달나라에 가신 분이라도, 그건 아주 위험한 정치적 도박이다. 바로 그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공약에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그리고 당선된 이후 그 공약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는지 매섭게 감시해야 한다. 그게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멜랑숑의 공약집은 오래된 프랑스의 경기침체를 극복하지 못한 주류 정치권에 대항해 ‘인간이 먼저’인 사회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놀라우리만치 우리의 희망과 비전, 바로 그것과 유사하다.

 

주 35시간 노동 기준으로 월 최저임금 240만 원 보장, 공공분야 80만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건강 지출 비용의 100% 상환, 5년 간 연 20만 임대주택 건설, 기업의 금융 소득 세금 부과 등. 모두 부의 공정한 분배, 사회적 불안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구체적인 정책들이다.

 

‘인간이 먼저’라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를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올 만큼 지금 이 세계는 신자유주의에 포위된 상황이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몰락하고 있다고 기쁨에 차 외치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 그 아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변종 신자유주의의 출현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좌파전선이 내세운 정책은 우리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매우 파격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취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인간의 삶이 온전해질 수 있도록, 무지막지한 상품화와 성장의 논리 대신 인간을 먼저 생각하자는 것이다. 멜랑숑이 신자유주의 20년의 폐해라고 지적한 ‘생태적 재앙, 불평등·불안정·빈곤의 폭발, 반복되는 민주주의의 침해, 연대와 협력에 근거한 인간관계의 추락’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힘. 그것은 바로 대통령이, 정부가, 기업이 아닌 ‘국민’이 스스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뿐이다.

 

멜랑숑은 결론에 이르러 “전제 군주에게 최고의 방어벽은 국민의 무기력함”이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외친다. 시장의 횡포에서 벗어나려면 국민이 움직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이런 변화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에서 시작된다고.

 

자, 이제 51%의 국민적 지지를 얻은 새 정부가 들어선다. 양극화의 심화와 경기침체의 어두운 터널을 뚫고 가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국민들은 어떠한 자세로 새 정부를 바라봐야 하는가. 이제 그 시작이 곧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개인적으로, 적어도 프랑스 국민들의 열정과 관심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멜랑숑의 공약집은 프랑스 전역에서 3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만약 우리 정치판에서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정의당은커녕 민주통합당의 공약집이라도 이 정도로 관심을 받을 수 있다면, 분명 지금과는 다른 희망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민주통합당이 좌파전선과 같은 공약집을 낼 능력이 있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지금 모습으로만 보면 민주통합당은 차라리 해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추하다.

 

정치인의 공약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권리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민주주의는 공짜로 얻을 수도 없지만, 공짜로 유지·발전되지도 않는다. 위대한 MB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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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지 않는 국민이 거짓 없는 대통령을 만든다 - 대선 토론으로 좋은 대통령을 고르는 30가지 방법
하버드 케네디스쿨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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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8대 대선이 정말 재미없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피 튀기는 정책 공방도 없었고, 국민들의 열기 또한 과거에 비해 높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높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뜨거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여러 가지 원인 중 TV를 통한 대선후보들의 토론을 들 수 있겠다. 이정희 후보의 날선 공격이 큰 화제를 모았지만, 나머지 두 후보의 밋밋한 토론은 경로당 토론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이 후보에 대한 시청자와 박 당선인 측 지지자들의 인신공격은 거의 살인적이었다.

 

물론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날선 공격을 퍼부은 것은 사실이다. 때론 거북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고, 너무한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 후보가 사회자의 질문에 벗어나는 답이나 비판을 제기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 후보의 발언 중 사실과 어긋나거나 왜곡된 것은 없었다. 그는 적어도 진실을 말했으며, 그것은 올바른 행동이었다.

 

이 책을 읽은 것은 대선 두 달 전이다. 읽으며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로 책이 너무 늦게 나왔다는 점 때문이었다. 더 일찍 이 책이 나오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접했다면, 어쩌면 대선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그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다르게 예상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결과가 나오게 된 이상, 그 아쉬움은 몇 배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책은 미국의 대선 TV토론과 우리의 과거 두 번의 TV토론을 소개하며, 차이와 공통점을 설명한다. 그리고 TV토론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며, 유권자인 시청자들은 TV토론을 어떻게 보고 후보를 평가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소개한다. 부제인 ‘대선 토론으로 좋은 대통령을 고르는 30가지 방법’이 딱 어울리는 책이다.

 

윈스턴 처칠은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지게 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에 말에 따르자면 우리 국민들의 수준은 지난 5년 동안 무척 부끄럽게 추락했다. 때문에 이번 대선을 통해 우리 수준을 몇 단계는 끌어올리자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답은 이미 보시는 대로.

 

책은 TV토론을 비롯한 후보들의 발언을 통해 후보가 어떠한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떠한 정책을 통해 국가를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를 꼼꼼하게 살필 것을 주문한다. 추상적인 공약이나 ‘무조건 내가 되면 다 하겠다’는 식의 묻지마 발언을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의 구체성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문제이다. 아무리 꼼꼼하게 정책 구상을 해도 막상 정권이 출범하면 관료 집단과 충돌하게 되어 있다. 이를 균형 있게 절충하면서도, 자신의 비전과 철학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대통령에게 필요한 중요한 자질이다.

 

하지만 과거 우리의 대선 토론을 보면, 후보들이 과연 무슨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어떤 사안을 물어도 답변은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그 문제를 풀겠습니다!”이다. 무슨 수를 쓴다는 것은 곧 아무런 준비가 없음을 말하는 것과 같다.

 

이번 후보 토론을 보며 우려스러웠던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박 당선인은 문재인 후보가 다양한 현안에 대한 질문을 하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써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한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질문을 하자,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입니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분명 각 현안에 대한 정책이 있을 텐데, 단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투의 답변만 늘어놓았다.

 

이는 상당히 우려스러운 모습이다. 정책은 우선 순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는지, 왜 그렇게 정했는지, 각각의 현안에 어느 정도의 재원과 인력을 투입할 것인지 분명히 정해져야 한다. 국가의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정부의 역량도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올바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출범된다면,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명박 정부와 그 전임인 노무현 정부 때 여실히 드러난 사실이다. 미처 준비가 부족했던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토건주의로 정책이 확고하게 섰던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다. 속전속결이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나?

 

먹고 살기에도 바쁜 국민들이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세세히 모두 알 수는 없다. 때문에 전문가와 언론, 학자들이 이를 세밀히 분석하고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는 의무이다. 하지만 언론은 정책적 측면에서 대선 후보들을 부각시키지 않았다. 이념적 공방과 네거티브 선거전만 열심히 보도했다. 근거 없는 루머들이 판치게 방조했고, 오히려 재생산한 측면까지 있다. 그들이 책임을 포기한 모습은 서글펐다.

 

이제 5년 후라는 시간이 생겼다. 그 사이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으로써 얼마나 많은 성과를 보여줄 것인지, 비판적 시각에서 살펴봐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그가 후보 시절 행던 공약이나 발언 등을 성실히 수행하는지, 혹시 딴 말을 하지는 않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박정희는 왕이었을지 몰라도, 박 당선인은 왕이 아님을 스스로 자각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국민을 대신해 국가를 올바르게 운영하라고 만들어준 5년 기한 대리인일 뿐이다.

 

대리인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한다면 주인인 국민이 꾸짖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길을 가라고 훈계하고 격려해야 한다. 이명박과 같은 말 안 듣는 대리인이라 해도 그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그 일을 제대로 했는지 뒤돌아봐야 하고, 또 앞으로 그 일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할 것인지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은 5년 후에도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번 대선토론을 포함해 개정판이 나와도 좋을 듯하다. 거짓 없는 대통령을 만드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변함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나 속지 말아야 하겠다. 우리 다시는 속지 말자~!

 

“변화의 힘은 정부도, 정당도, 언론도, 학교도 아닌 바로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유권자가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한 사람 한 사람 제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변화는 찾아온다. 그리고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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