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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당신에게
강인규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11월
평점 :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지식인은 절대 혼자의 힘으로 지식인이 될 수 없다. 많은 이들의 희생과 도움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 공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때문에 지식인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 쉽게 말해서 저 혼자 잘나서 지식인이 아니라는 말씀.
현명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그 조직은, 그 국가는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사람이라도 더 현명해진다면, 그 사회는 딱 그만큼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지식인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우리 모두가 변하는 만큼 세상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솔직히 꼬집는다. 그리고 그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말하고 있다.
권력, 공동체, 교육, 문화, 민주주의, 의식 등 우리 사회에 망가진 부분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저자의 예리함이 돋보인다. 어느새 권력의 모습을 닮아, 약자에게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 한없이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이야기할 때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속된 말로 쪽 팔리다. 하지만 그게 우리의 현 모습이다.
책은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인간의 기본 심성과 품위를 무너뜨리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모습을 꼬집고 있다. 대형마트 직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이를 당연시하는 ‘왕’인 손님. 감정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친절을 강요하는 대기업의 뻔뻔함. 지방대라는 해괴한 단어를 들먹이며 젊은 인재들에게 잔인한 낙인을 찍는 학벌주의, 국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정부와 권력자들. 비단 이것 뿐일까? 우리가 어느 새 ‘원래 그런 거야’라며 무심코 외면해온 모든 것들이 사실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암 덩어리였음을 저자는 조용히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라는 말이 거짓이라 단정한다. 그리고 ‘한두 사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말 역시 권력이 국민들을 손쉽게 통제하기 위해 구사하는 주술이라 꼬집는다. 잘 속고 잘 잊는 국민이 있는 한 정부는 무책임해지고 사회를 몰락과 타락으로 인도한다.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연하게도 우리 개개인의 힘을 믿고, 이를 당당히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가 말하는 공감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타자의 아픔, 불편함, 차별에 눈감지 않고 서로가 배려하고 보듬을 때 사회는 비로소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거창한 일이 아니다. 당장 음식 배달원들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그들의 노동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대형마트, 백화점 등 감정노동자들에 대해 무시와 착취가 아닌 고마움과 연대의 정신을 가지면 된다. 저자는 여기에, 착취당하는 아이돌, 아이돌 연습생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한다.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막연히 어린 소녀들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는 남성들이 재수없다고는 느꼈지만, 어린 소년, 소녀들이 겪어야 할 노동 착취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울러 우리가 정치에 대해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요구한다. ‘될 놈’을 찍는 것이 아닌, 내 소신과 철학으로 후보를 선택하자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사표’ 운운하지 말고, 소신껏 그리고 사회를 생각해서 투표에 임하자는 주장.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49%는 모두 사표일테니 말이다.
그가 망가진 사회를 고쳐나갈 수 있는 키로 제시한 것은 역시나 너무 당연한 것들이다. 공감, 배려, 연대가 그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너무나 비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뛰어난 학식에도 감탄했지만, 더욱 놀란 것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었다.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의 소위 지식인, 지도층이라는 것들을 보면 약자에 대해 귀 기울일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같이 권력과 돈에만 눈이 멀어있어 보였다. 한마디로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처럼 보인다는 소리다.
지금도 곧 현재권력이 될 이와 그의 측근들에게 불다방처럼 달라붙는 것들을 보면 구역질조차 아깝다. 자신의 소신과 신념은 간데없고 오직 영달을 위해서만 동물처럼 움직이는 이들. 이들을 지성과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는 종으로 대우해줄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저자는 건방진 일부 개념 무상의 윤똑똑이들처럼 짐짓 거만하게 훈계하려 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항상 약자들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약자들이 억압받고 삶의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이를 바꾸기 위한 사회적 노력에 대해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시선 속에서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공감하는 능력이 있기에 그의 글은 충실하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떠드는 이들이 짐짓 우리를 속여가며 세상을 저 편한 쪽으로 바꿔온 것이 지난 시간들이었다.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속고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생각한 만큼 움직이면 딱 그만큼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강자보다는 약자와 함께 공감하며 연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변화하지 않으면 곧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누가 봐도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정상은 아니다. 혼자만 생존할 수는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언제쯤 깨우칠 수 있을까?
일독을 권하는, 아주 괜찮은 책이다. 저자의 다음 이야기들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