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않는 국민이 거짓 없는 대통령을 만든다 - 대선 토론으로 좋은 대통령을 고르는 30가지 방법
하버드 케네디스쿨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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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8대 대선이 정말 재미없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피 튀기는 정책 공방도 없었고, 국민들의 열기 또한 과거에 비해 높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높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뜨거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여러 가지 원인 중 TV를 통한 대선후보들의 토론을 들 수 있겠다. 이정희 후보의 날선 공격이 큰 화제를 모았지만, 나머지 두 후보의 밋밋한 토론은 경로당 토론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이 후보에 대한 시청자와 박 당선인 측 지지자들의 인신공격은 거의 살인적이었다.

 

물론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날선 공격을 퍼부은 것은 사실이다. 때론 거북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고, 너무한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 후보가 사회자의 질문에 벗어나는 답이나 비판을 제기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 후보의 발언 중 사실과 어긋나거나 왜곡된 것은 없었다. 그는 적어도 진실을 말했으며, 그것은 올바른 행동이었다.

 

이 책을 읽은 것은 대선 두 달 전이다. 읽으며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로 책이 너무 늦게 나왔다는 점 때문이었다. 더 일찍 이 책이 나오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접했다면, 어쩌면 대선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그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다르게 예상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결과가 나오게 된 이상, 그 아쉬움은 몇 배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책은 미국의 대선 TV토론과 우리의 과거 두 번의 TV토론을 소개하며, 차이와 공통점을 설명한다. 그리고 TV토론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며, 유권자인 시청자들은 TV토론을 어떻게 보고 후보를 평가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소개한다. 부제인 ‘대선 토론으로 좋은 대통령을 고르는 30가지 방법’이 딱 어울리는 책이다.

 

윈스턴 처칠은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지게 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에 말에 따르자면 우리 국민들의 수준은 지난 5년 동안 무척 부끄럽게 추락했다. 때문에 이번 대선을 통해 우리 수준을 몇 단계는 끌어올리자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답은 이미 보시는 대로.

 

책은 TV토론을 비롯한 후보들의 발언을 통해 후보가 어떠한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떠한 정책을 통해 국가를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를 꼼꼼하게 살필 것을 주문한다. 추상적인 공약이나 ‘무조건 내가 되면 다 하겠다’는 식의 묻지마 발언을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의 구체성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문제이다. 아무리 꼼꼼하게 정책 구상을 해도 막상 정권이 출범하면 관료 집단과 충돌하게 되어 있다. 이를 균형 있게 절충하면서도, 자신의 비전과 철학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대통령에게 필요한 중요한 자질이다.

 

하지만 과거 우리의 대선 토론을 보면, 후보들이 과연 무슨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어떤 사안을 물어도 답변은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그 문제를 풀겠습니다!”이다. 무슨 수를 쓴다는 것은 곧 아무런 준비가 없음을 말하는 것과 같다.

 

이번 후보 토론을 보며 우려스러웠던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박 당선인은 문재인 후보가 다양한 현안에 대한 질문을 하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써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한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질문을 하자,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입니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분명 각 현안에 대한 정책이 있을 텐데, 단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투의 답변만 늘어놓았다.

 

이는 상당히 우려스러운 모습이다. 정책은 우선 순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는지, 왜 그렇게 정했는지, 각각의 현안에 어느 정도의 재원과 인력을 투입할 것인지 분명히 정해져야 한다. 국가의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정부의 역량도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올바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출범된다면,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명박 정부와 그 전임인 노무현 정부 때 여실히 드러난 사실이다. 미처 준비가 부족했던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토건주의로 정책이 확고하게 섰던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다. 속전속결이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나?

 

먹고 살기에도 바쁜 국민들이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세세히 모두 알 수는 없다. 때문에 전문가와 언론, 학자들이 이를 세밀히 분석하고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는 의무이다. 하지만 언론은 정책적 측면에서 대선 후보들을 부각시키지 않았다. 이념적 공방과 네거티브 선거전만 열심히 보도했다. 근거 없는 루머들이 판치게 방조했고, 오히려 재생산한 측면까지 있다. 그들이 책임을 포기한 모습은 서글펐다.

 

이제 5년 후라는 시간이 생겼다. 그 사이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으로써 얼마나 많은 성과를 보여줄 것인지, 비판적 시각에서 살펴봐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그가 후보 시절 행던 공약이나 발언 등을 성실히 수행하는지, 혹시 딴 말을 하지는 않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박정희는 왕이었을지 몰라도, 박 당선인은 왕이 아님을 스스로 자각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국민을 대신해 국가를 올바르게 운영하라고 만들어준 5년 기한 대리인일 뿐이다.

 

대리인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한다면 주인인 국민이 꾸짖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길을 가라고 훈계하고 격려해야 한다. 이명박과 같은 말 안 듣는 대리인이라 해도 그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그 일을 제대로 했는지 뒤돌아봐야 하고, 또 앞으로 그 일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할 것인지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은 5년 후에도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번 대선토론을 포함해 개정판이 나와도 좋을 듯하다. 거짓 없는 대통령을 만드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변함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나 속지 말아야 하겠다. 우리 다시는 속지 말자~!

 

“변화의 힘은 정부도, 정당도, 언론도, 학교도 아닌 바로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유권자가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한 사람 한 사람 제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변화는 찾아온다. 그리고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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