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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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나 지방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씩, 아니 제법 자주, 보기 싫은 장면을 목격해야만 한다. ‘로드 킬이다. 덩치가 작은 짐승부터 제법 큰 것들까지 길 위에 만신창이가 되어 죽어있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인간인 것이, 내가 자동차라는 괴물을 타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문득 끔찍하게 느껴진다.

 

원체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심성이 있는 것인지, 나는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물론 사람도 사람 나름이다). 그렇다고 동물들이 나를 무조건 좋아하는 지는 확신할 수 없다. 가끔 선의로 다가가도 무서운 이빨을 왕왕 드러내며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녀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운하거나 화가 나지는 않는다. 그 녀석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들에게 당해야만 했던 것들에 비하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셈이니 말이다. 나는 장난으로, 혹은 재미로 동물을 학대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빼앗는 인간들을 볼 때면 무섭도록 놀라운 살의를 갖게 된다.

 

자본주의나 시장경제 그리고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인간이 만들어놓고 실험 혹은 현재도 유지하고 있는 사상이나 이념 속에는 안타깝게도 자연이나 동물, 생태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녹색당이나 생태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세계질서나 국제사회의 방향을 흔들고 있지는 않다. 자본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공산주의, 사회주의조차 자연의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다.

 

전 세계가 만약 미국처럼 에너지를 사용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살아간다면 지구가 6~8개 정도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때도 난 막연하지만 무서운 살의를 느꼈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무슨 자격으로 그따위 막돼먹은 짓거리를 하는 것일까? 조금 편하겠다고? 조금 빨리 가거나 조금 시원하게 살겠다고?

 

하지만 결국 그것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인간이란 이름으로 이 지구상에 현재 살고 있는 한,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던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고 살고 있으니.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 생전의 마지막 출판 작품이다. 그 전에 세상에 내놓은 강을 건너 숲속으로가 독자와 비평가들에게 냉대를 받자, 절치부심하여 1년여 만에 내놓은 작품이었다.

 

이제 세계문학사상 불후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이 작품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불굴의 의지로 역경 속을 헤쳐 나가는 위대한 인간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듯하다. 언제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나는 이런 고전을 이제야 제대로 읽고 말았다.

 

올 초에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었다. 이 작품에도 역시 인간과 자연의 치열하고도 위대한 대결이 펼쳐진다. 하지만 노인과 바다는 유사하면서도 사실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애소설…》이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에 따른 자연의 복수 또는 처절한 저항이 주된 모티브라면 노인과 바다는 말 그대로 산티아고 노인과 거대한 청새치와의 생을 건 사투의 이야기다.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줄거리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단순한 줄거리의 작품이 이토록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일까. 이는 무엇보다 헤밍웨이 특유의 문체와 인생관이 작품에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 단문 위주의 하드보일드적인 어법은 감정의 과잉이 없기에 더욱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위대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과 인간의 공존, 또한 인간이 가져야 할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산티아고는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 죽여야 할, 혹은 자신을 위해 죽어야 할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소중한 벗이자 형제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청새치를 잡는 것이기에 그는 혼신의 힘을 다했고, 또한 오만한 승리감에 빠지지도 않았다. 승리와 패배 모두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자연은 산티아고에게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공존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는 인간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자연과 모든 생명체들에게 한없이 겸손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노인과 바다가 위대한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자연과의 사투에서 끝내 승리한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줬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없이 미약한 인간이 위대한 자연 앞에 무릎 꿇지 않으면서도, 또한 자연을 존중하고 한없이 겸손한 존재 그 자체의 인간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과 함께 하기에,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하기에, 비로소 인간일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눈물겹게 고마운 사실을, 이젠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지속가능한 발전 따위에 거짓 선전은 그만하고 말이다.

 

위대한 작품을 행복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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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사용 설명서 - 공화국 시민, 헌법으로 무장하라
조유진 지음 / 이학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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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자신의 주권 문서이자 국가 생활에서의 최고 강령인 헌법으로 무장해야만 한다.”

 

가만히 있어보자. 이승만 이후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혹은 정부 중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교육을 거의 강요 하다시피 한(!) 정부와 대통령은 누구일까? 너무 쉽다. 우리는 지난 MB정권 하에서 그야말로 무지하게 공부해야만 했다.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광우병 파동으로 시작된 국민 스터디는 이후 FTA(물론 이건 노무현 정부가 시작이다)와 함께, 4대강사업, 강정마을로 이어지며 환경영향평가를 공부하게 만들었고, 멀쩡한 공기업을 외국에 저렴한 가격에 파시려 할 때는, 또 다국적 기업의 무시무시함을 배워야만 했다. 당최 맥커리가 뭐하는 회사인지 우리가 어찌 알았겠나?

 

, 생각해보니 출범 전부터 BBK 공부를 하게 만드신 분이니, 처음부터 국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배움에 대한 강한 의지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MB에게 감사해야 할 것은 국민 스스로 우리가 어떠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 권리는 아무리 무식한 공권력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몸소 배웠다는 점이 아닐까.

 

물론 MB 정권은 탈헌법, 비헌법, 반헌법적인 행태를 무지막지하게 자행했다. 그리고 기득권을 비롯한 법조계, 언론계, 방송계 등은 그러한 정부의 막 나가는 길에 살포시 기름칠을 뿌려대곤 했다. 더 잘 나가시라고!

 

오해하거나 안심하지 말라. 그러한 모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앞에 서있다. 국정원의 기네스북에나 등장할 퍼포먼스 역시 결코 헌법이 허락한 적 없다. 헌법은커녕 사소한 규칙과 상식마저도 무시하고 어긴 것이니, 더욱 창피하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헌법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국가의 최고 규범이라 말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은 너무도 바쁘고 귀찮고 또한 어렵기 때문에 헌법을 접할 기회를 손쉽게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실제 헌법이 작동하게 되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행정부, 국회, 법원, 지자체를 위시한 수많은 국가기관은 물론 정치인, 법률가들이 모두 헌법에 기속하게 된다. 정당, 기업체, 종교단체, 사회단체도 물론 예외일 수 없다.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도대체 해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쳐가는 이 세상에 엄청난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저자는 헌법의 가치가 재조명되어야 하는 이유를 책을 통해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정치적 카리스마가 사라지고 강렬한 저항의 대상마저 불명확해진 지금 국민이 공적 의사 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질서 모색과 양극화의 종식을 위해서다.

 

우리가 처한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분노하되, 그 분노가 감정의 소비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견인하는 생산적인 에너지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공화국 시민이 헌법으로 무장해야만 하는 것이다.

 

책은 헌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해제, 헌법 조문에 대한 해설, 그리고 부록으로 저자가 제안한 헌법 개정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로서는 헌법의 정치성과 규범성을 최대한 견지하며, 법학에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 주권자로서의 갖춰야 할 최소한의 헌법적 교양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그는 헌법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잘못된 견해들을 지적하며, 이를 바로 잡으려 노력했다. 즉 헌법은 장식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는 MB정부를 거치며 더욱 확산되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을 들어서게 만든 국정원 사건으로 정점에 이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헌법상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제를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 민주공화국은 군주제의 포기를 의미할 뿐이라는 소극적 견해 등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는 루소의 순수민주주의혹은 절대적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보고, 이를 토대로 헌법의 민주주의 정치 질서를 해석하고, 국민주권의 실현을 모색한다. 또한 책을 통해 헌법의 모든 조문을 제헌헌법과 연관해 설명하고, 실례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는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헌법교양서로는 최초의 시도라고 한다.

 

대의민주제가 마치 민주주의의 전부인양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지식인들조차 그러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때문에 MB가 아무리 국가 전체를 혼란으로 빠뜨려도, “아니, 우리가 선거로 뽑은 대통령인데, 별 수 있나?”따위의 비관주의가 팽배할 수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정원 개입이라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부정을 저질렀음에도, “그래도 이미 선거는 끝난 것 아닌가라는 해괴한 논리가 판친다. 이건 미쳤다고 봐야지.

 

저자에 의하면 대의제는 원래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시민혁명을 거치며 부르주아 계급과 민중의 타협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대의민주주의라는 것. 따라서 궁극적인 지향점은 대의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타당하다.

 

아울러 민주공화국은 단순히 왕이 없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주권이 끊임없이 실현되는 시공간을 의미한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 헌법은 때문에 일체의 지배 복종 관계가 사라진 세상을 지향한다. 우리 헌법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기본권을 누리며, 누구 또는 무엇으로부터도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배당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마음껏 결정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존재이다. 우씨,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다 난다.

 

결국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내고 지켜야 할 우리들의 권리이자 더욱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할 우리의 미래이다. 때문에 지난 정권 5년이 쓰리고 쓰린 것이다. 헌법을 마치 헌신짝처럼 내다버린 정부와 이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국민들이 있는 국가가 과연 온전히 생존이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음 정권이라는 지금,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헌법은 나라의 근본법이다. 살아 움직이는 법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진정 살아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대통령도, 대법원장도, 헌법재판소장도, 이건희도 아니다. 바로 우리들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깝치지 말고, 국민 앞에 무릎 꿇어라. 썩어빠진 벼슬아치들아.

 

, 참고로 국정원을 비롯한 몇몇 재활용이 불가한 아주 소수(!)의 쓰레기 공무원들에게 헌법의 이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너희들도 배웠지? 1장 제71항이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하찮은 권력에 대한 봉사자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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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신화편 세트 - 전3권 신과 함께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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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 이승편》을 인상 깊게 읽은 바 있다. 이승편은 집을 지키는 신들과, 집을 강제로 철거해 버리려는 인간들과의 대결이 흥미롭게 펼쳐졌다. 당시 용산참사의 슬픔과 분노 속에서 책을 읽어 내려간 기억이 있다.

 

 

이번 작품은 저승편, 이승편에 이은 《신과 함께》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저승편과 이승편에 등장한 신들의 과거 모습을 보여주는 ‘프리퀄’ 성격의 작품이다. 《신과 함께》작품 전체가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야기이니, 당연히 신화편은 이들 신이 어떻게 신이 되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주호민 작가의 작품은 이승편과 이번 신화편만 읽었을 뿐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느낀 것은 그의 작품에 담긴 것이 결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전 우리네 신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도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과 그리 다르지 않은 갈등과 반목과 또한 사랑이 담겨있다.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사랑, 질투와 욕망이 만들어 낸 비극, 타인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만들어낼 수 있는 조그만 기적까지. 이 모든 것들은 바로 이 땅에서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작가는 기존의 이야기를 각색해 현실과 직접 맞닿게 만들기도 한다. 대별소별전에 보듯 원래 대별왕이 혼자의 힘으로 떨어뜨리는 해를, 온 백성들이 힘을 모아 함께 떨어뜨리는 것으로 내용을 바꾸었다. 한 명의 영웅보다는 우리 모두의 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 사실, 그렇다. 역사의 면면을 보면 보잘 것 없는 민중의 힘으로 수레바퀴를 무던히도 굴려오지 않았나.

 

 

무엇보다 작품이 전해주는 미덕은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심성을 전해주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열광하는, 또한 전 세계 곳곳에 있는 신화들을 모아 만든 책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신화는, 내 기억엔 그리 많지 않았다.

 

 

때문에 《신과 함께》는 본디 우리에게 제일 친숙했고, 지금도 함께 있는(!) 우리 신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우리 역시 눈물겹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이야기들이 있음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간혹 잘못된 방법으로 신앙을 접하거나 혹은 타인에게 강요하려는 이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선한 측면보다는 잘못된 측면을 더욱 부각시켜, 결과적으로 자신이 믿는 종교를 왜곡된 모습으로 보여주는 우를 범한다.

 

 

최근 ‘나꼼수’ 김용민 PD가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는데, 나 역시 그의 의견에 공감하는 편이다. 현재 한국 종교는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를 마치 부동산 매물처럼 내놓고 심지어 경매에까지 붙인다. 목사라는 이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수준의 욕설과 공격을 퍼붓고, 마치 원리주의 테러리스트처럼 타 종교의 성전에 가서 ‘테러’를 저지른다.

 

 

비단 기독교만 탓할 수도 없다. 여타 종교들도 종교를 위장한 기업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부패와 알력 다툼 등 정치권에서 보여주는 작태들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난 종교단체에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기업적 형태를 가지고 있는 종교들에겐 더욱 많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들 중 특정종교는 제사를 부정한다. 조상들에게 예를 갖추어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라 말한다.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도 없다. 우상이라니? 당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를 있게 해준 조상들을 기억하고 일가친척들이 모여 우애를 다지는 것을 우상숭배 행위라 치부해 버린다면, 그야말로 그들이 믿는 신은 치졸하기 그지없는 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일신은 그래서 위험하고 허구이다.

 

 

주호민의 작품에 나오는 신들은 하나 같이 우리네 이웃처럼 친숙한 신들이다. 하다못해 악한 신마저도 그렇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나타나는 서양의 신들은 그야말로 전지전능하고 매우 폭력적(!)인 힘을 과시하곤 한다. 어떤 신이 더 마음에 드는지는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난 종교 전쟁으로 수많은 인간들을 죽음으로 내몬 서양의 신들, 종교보다는 순박하고 친숙하고 이웃 같은 우리네 신들이 더 마음에 든다.

 

 

이러쿵저러쿵 감히 종교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서양이든 동양이든, 우리의 신화이든 모두 존중하고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점은 말하고 싶다. 그리고 거기에 주호민 작품의 미덕과 중요성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또 다른 재미있는 작품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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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서는 당신에게 힘을 주는 말 - 흔들리는 청춘에게 보내는 80가지 희망 이야기
김현영 지음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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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이야기한 것 같다. 나는 솔직히 힐링에 관련된 책이나 콘텐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막연히 ‘모두 잘 될 거야’ 혹은 ‘힘을 내, 너도 열심히 하면 나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와 같은 말들은, 정작 죽을 만큼 힘든 이들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 의도는 좋았다 하더라도, 초기 힐링 도서들이 크게 인기를 얻자, 너도 나도 힐링 힐링거리며, 수준에 미달하는, 혹은 정말 막연하게 늘어놓거나 훈계하는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골적으로 ‘나는 어떻게 하든 책만 많이 팔면 됩니다!’를 티내며 나온 책들도 적지 않다.

 

돈이 아무리 좋아도, 유행에 따라 영혼이 없는 책들을 쏟아내는 출판사들을 보면 한심하면서도, 또는 얼마나 요즘 출판계가 힘들면 저럴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누누이 말하지만 상황이 어렵다고, 정말 죽겠다고, 반칙이나 사기를 쳐도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묵묵히 양서를 내는 양심적인 출판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종편 따위에 투자나 후원을 하지 않고도 말이다.

 

최근 방송 중 아빠와 아이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서로의 마음을 열고 이해하는 프로가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그러자, 금새 프로 이름을 흉내 낸 책들이 쏟아진다. 곧 군대에 대한 책들도 쏟아지겠지. 종이 아깝다. 솔직히.

 

이러 저러한 이유로 이 책 역시 처음 잡았을 때는 그리 호감이 가지 않았다. 또 빤한 훈계나 위로를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달랐다. 기존의 영화나 음악, 명언, 일화 그리고 저자가 직접 만난 이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라디오 방송작가인 저자는 틈틈이 기억에 남는 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 글들을 꼭꼭 챙겨두었다. 자신 스스로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어 준 글들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하고픈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책은 건방지지도, 어설프지도 않다. 다만 솔직하고 편안하고 조금은 진지하다. 가령 “난 23살이 되면 뭔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어”라는 친구의 말에 “네가 23살까지 되어야 할 것은 너 자신이야”라고 말해주는 친구처럼. 책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또한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일러준다.

 

덧붙여 이 책의 큰 특징이자 장점은 수자원 개발 전문 NGO인 ‘팀앤팀’이 아프리카 현장에서 일하면서 담은 아이들의 사진들을 함께 실었다는 점이다.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의 사진은 글과 잘 어울린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아이들의 미소를 따라 하게 만든다.

 

시인 문태준이 책의 추천사에서도 말했듯, 좋은 말과 글은 타인에게 다가가 아름다운 모자, 따스한 빛, 소중한 혈액이 된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 타인의 마음을 멍들게 하는 무참한 말보다, 서로에게 나무가 되고 구름이 되고 음악이 되는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분명 한결 나아진 세상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성질 급한 나처럼 한꺼번에 무식하게 읽어나가기 보다는 하루에 한 두 이야기씩 찬찬히 곱씹으며, 또는 편안한 마음으로 조금씩 읽어나가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이러한 슬로우 리딩에 어울리는 책마저 밑줄 팍팍 쳐가며 읽는 내가 참 한심할 따름.

 

아, 책을 읽으며 느낀 또 하나. 가끔은 그냥 맘 편히 속는 셈치고, 남들 하라는 대로 해봐도 나쁘지 않다는 것. 어차피 잘 속고 잘 우는 녀석이니, 다시 빳빳하게 가시를 세울 필요 없이,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도 맘 편하다는 것.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 속에서 좋은 점만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원하거든

굶주린 사람들과 너의 음식을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릿결을 지니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 아이가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태를 원한다면

결코 너 자신이 홀로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고 걸어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치유 받아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그 누구도 버려두어선 안 된다.

기억하라. 만약 네가 도울 손길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나머지 한 손은 남을 돕는 손이다.

 

- 오드리 햅번(배우, 1929~1993)이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들려준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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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 소설.영화.방송 삼단합체 크리에이터 이재익의 거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이야기
이재익 지음 / 시공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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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제법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았나 싶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줄거리들이 불쑥 머리에서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내 맘대로 지어낸 이야기들을 시리즈 별로 연속 방송한(!) 적도 많았다. 예전 식으로 한다면 만담가나 이야기꾼이라고 할까. 지금 기억나는 것들을 떠올려 보면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었는데, 제법 아이들이 재미있어 했던 뿌듯한 기억이 난다.

 

나는 아쉽게도 형제가 없다. 고로 독자라는 말씀. 그래서 결국은 책이나 죽어라 읽는 독자가 되었는지는…. 그만하자.

 

아무튼 때문에 난 주로 프라모델을 많이 만들어 가지고 혼자 놀았다. 사실 조립식 프라모델은 조립해서 예쁘게 에나멜을 발라 색칠하고 폼 나게 전시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난 기껏 힘들게 조립해 놓고, 그것들을 적군과 ‘착한 편’으로 나누어 전쟁을 치렀다. 마당 가운데 있는 작은 연못(물론 물이 채워져 있지 않은)에 들어가 그 주위에 있던 나무들 사이에 장난감을 배치해 두고 한바탕 전투를 치르곤 한 것이다.

 

혼자 “쉬우우웅~!!” “쾅~!” “푸악~~!” “으악~!!!” 하고 떠들어대며 놀아댔으니, 부모님의 마음이 어땠을까. “여보, 아무래도 저 녀석 데리고 병원을 한 번….” “아니, 일단은 그냥 내버려 둬보고 정 이상하다 싶으면 그때…”

 

그러니 기껏 만든 장난감들이 온전할 리가 만무. 부서지면 또 다른 놈을 사고, 적당히 수선(!)을 해서 놀다가 영영 복구불가가 되면 안타깝지만 전사자 처리를 해야 했다.

 

그 버릇은 30대 중반에 이른 지금도 남아있다. 아직도 베란다 구석에 있는 박스에는 건담시리즈와 각종 전투기, 탱크가 쌓여있다. 그리고 BB건 역시 꽤 있다. 이건 뭐 당최 모하자는 건지. 게다가 결혼한 지 5년 만에 낳은 첫 아이마저 소녀이니(!), 과연 이 녀석이 아빠의 ‘위대한 유산’을 상속받으려 할런지….

 

다시 아무튼, 주로 어린 시절을 혼자 놀며 보냈던 나는(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나 친구 많다) 이것저것 상상하고, 그것들을 글로 옮기는 버릇이 생겼다. 더구나 아버지는 가끔씩 나를 동네 책방에 던져두고, 책방 아저씨와 수다(!)를 한참 떠시곤 했으니, 책 읽는 버릇도 덤으로 생겼다(하지만 아버지는 2~3시간 수다를 떨어놓고도 결국 책을 한 권도 안사거나, 기껏 한 권 정도 구입해 나에게 주시곤 했다. 짠돌이!). 당연히 상상의 밑천이 늘어날 수밖에.

 

또 나는 만화책도 꽤 많이 모아두고 읽었다. 보물섬으로 시작해 아이큐 점프는 꼬박 모았고, 드래곤 볼로 터져버린 일본만화 열풍에 북두신권, 닥터 슬럼프, 란마 1/2, 슬램덩크까지 주옥같은 작품들을 섭렵하게 되었다. 아마 내 또래 남자들은 대부분 그러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러다보니 슬슬 욕심이 생겼다. 그림 그리는 것은 애초에 신께서 내게 재능을 주지 않으셨지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재주는 살짝 주신 게 아닐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하이텔, 나우누리가 지배하던 PC통신 시절에 급기야 말도 안 되는 소설들을 써대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동창이 소매치기를 잡다가 칼에 찔려 숨지는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는 휴먼스토리(!)-그런데 그걸 하필이면 공포, 미스터리 동호회 게시판에 올렸다. 그런데 의외로 살짝 호평을 받기도(!)-부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부모의 복수를 꿈꾸는 검객의 이야기를 그린 황당무계 무협소설까지 도전했다. 결국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당시에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어 미칠 지경이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지.

 

그런데 대학 진학 시 삶의 전환이랄까, 나름 뜻을 세워 글쓰기와는 전혀 무관한 학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결국 그것이 지금까지 내 삶을 규정해버리고 말았다. 거국적이게도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심지어 마음까지 바쳐 통일 운동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은 것!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었나 보다. 복학 후 생뚱맞게 괜히 국문학과 전공과목을 신청해 소설쓰기 공부를 다시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예전에 한 번 언급한 바와 같이 기말 시험 대신 제출한 단편 소설이 무려 A하고도 뿔따구를 받아버린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자, 이게 결론을 짓자. 어릴 적부터 무언가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속된 말로 구라 창작에 재미를 가졌던 나는, 머리가 굵어져 정한 인생의 목표와 애초의 꿈을 나도 모르게 접목시켜(!) 기자라는 직업을 택하게 되었다. 기사 쓰기와 소설 쓰기는 엄연히 다르지만(물론 이 두 가지를 과감히 합체시켜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신문이나 잡지에 써대는 인간들이 요즘 많기는 하다. 특히나 메이저라는 것들이 더 심하다. 양심도 없으셔.) 어쨌든 계속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저자 이재익은 소설, 영화, 방송을 넘나들며 그야말로 뛰어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사는 부러운 양반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성공 비결은 간단하다. 배우고 익히고 또 반복하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샘솟는 천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딱 잘라 말한다. 크리에이터에게 중요한 것은 감이 아닌 반복과 근성이라고.

 

철없던 어린 시절처럼 더 이상 내가 글쓰기에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그러고 있으면 좀 곤란하지. 하지만 글쓰기에 흥미를 가진 이후, 내 삶은 달라졌다. 책은 절대 안 볼 것처럼 생긴 놈이, 이제 어디를 가면 “어머, 책 좀 좋아하게 생기셨어요. 호호” 따위의 말을 듣기도 한다. 당최 책 좋아하게 생긴 얼굴의 자격조건이 뭔지는 모르겠다만.

 

그리고 나는 직업에 내 자질이 아닌 내 취향과 기호를 접목시켰고, 지금까지 그걸로 먹고 살았다. 우스운 일이다.

 

분명,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작가, 크리에이터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꾸준한 연습과 반복,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근성이 없으면 결코 빛날 수 없다. 시대의 역작 한 작품 써 갈기고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끈기와 근성이 있다면 비록 큰 성공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조금 더 오래 가지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조금 유치하고 조금 부족하면 어떤가. 내가 그 행동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것 아닌가.

 

이른 바 잘 나가는 크리에이터 이재익의 책을 읽고 느낀 것은 그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계속 즐기면서 오래 하고 싶다면 결국, 재능을 믿지 말고 끈기와 근성의 힘을 믿으라는 것.

 

최근 들어 아니, 5년 전부터 기가 막힌 소설 하나를 그냥 구상만(!) 하고 있다. 21세기 홍길동전과 비스무리한 것인데, 썩은 정치인, 미친 언론인, 사이비 종교인, 개념상실 범죄인 등 오늘날 우리 사회에 악취를 풍기는 인간들을 하나 둘 제거하는, 크리에이터가 아닌 한국판 터미네이터를 등장시키는 소설이다. 그리하야 많은 형제 있는(!) 독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비록 책을 통해서나마 뻥 뚫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라고 생각해 본다. 만약 정신 상태가 살짝 오묘한 출판사 사장님을 만나 이 이야기가 출판된다면 한 권 예약 구매 부탁드린다. 친필 사인 당근이다.

 

못 먹을 감을 믿지 말고, 근성을 믿어보자. 그래서 짜증나는 이 세상에서 그나마 좀 유쾌하고 즐겁게 살아보자. 아, 몰상식과 불의에 대항해 분노할 때에도 근성은 필요하다! 요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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