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 소설.영화.방송 삼단합체 크리에이터 이재익의 거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이야기
이재익 지음 / 시공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어릴 적에는 제법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았나 싶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줄거리들이 불쑥 머리에서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내 맘대로 지어낸 이야기들을 시리즈 별로 연속 방송한(!) 적도 많았다. 예전 식으로 한다면 만담가나 이야기꾼이라고 할까. 지금 기억나는 것들을 떠올려 보면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었는데, 제법 아이들이 재미있어 했던 뿌듯한 기억이 난다.

 

나는 아쉽게도 형제가 없다. 고로 독자라는 말씀. 그래서 결국은 책이나 죽어라 읽는 독자가 되었는지는…. 그만하자.

 

아무튼 때문에 난 주로 프라모델을 많이 만들어 가지고 혼자 놀았다. 사실 조립식 프라모델은 조립해서 예쁘게 에나멜을 발라 색칠하고 폼 나게 전시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난 기껏 힘들게 조립해 놓고, 그것들을 적군과 ‘착한 편’으로 나누어 전쟁을 치렀다. 마당 가운데 있는 작은 연못(물론 물이 채워져 있지 않은)에 들어가 그 주위에 있던 나무들 사이에 장난감을 배치해 두고 한바탕 전투를 치르곤 한 것이다.

 

혼자 “쉬우우웅~!!” “쾅~!” “푸악~~!” “으악~!!!” 하고 떠들어대며 놀아댔으니, 부모님의 마음이 어땠을까. “여보, 아무래도 저 녀석 데리고 병원을 한 번….” “아니, 일단은 그냥 내버려 둬보고 정 이상하다 싶으면 그때…”

 

그러니 기껏 만든 장난감들이 온전할 리가 만무. 부서지면 또 다른 놈을 사고, 적당히 수선(!)을 해서 놀다가 영영 복구불가가 되면 안타깝지만 전사자 처리를 해야 했다.

 

그 버릇은 30대 중반에 이른 지금도 남아있다. 아직도 베란다 구석에 있는 박스에는 건담시리즈와 각종 전투기, 탱크가 쌓여있다. 그리고 BB건 역시 꽤 있다. 이건 뭐 당최 모하자는 건지. 게다가 결혼한 지 5년 만에 낳은 첫 아이마저 소녀이니(!), 과연 이 녀석이 아빠의 ‘위대한 유산’을 상속받으려 할런지….

 

다시 아무튼, 주로 어린 시절을 혼자 놀며 보냈던 나는(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나 친구 많다) 이것저것 상상하고, 그것들을 글로 옮기는 버릇이 생겼다. 더구나 아버지는 가끔씩 나를 동네 책방에 던져두고, 책방 아저씨와 수다(!)를 한참 떠시곤 했으니, 책 읽는 버릇도 덤으로 생겼다(하지만 아버지는 2~3시간 수다를 떨어놓고도 결국 책을 한 권도 안사거나, 기껏 한 권 정도 구입해 나에게 주시곤 했다. 짠돌이!). 당연히 상상의 밑천이 늘어날 수밖에.

 

또 나는 만화책도 꽤 많이 모아두고 읽었다. 보물섬으로 시작해 아이큐 점프는 꼬박 모았고, 드래곤 볼로 터져버린 일본만화 열풍에 북두신권, 닥터 슬럼프, 란마 1/2, 슬램덩크까지 주옥같은 작품들을 섭렵하게 되었다. 아마 내 또래 남자들은 대부분 그러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러다보니 슬슬 욕심이 생겼다. 그림 그리는 것은 애초에 신께서 내게 재능을 주지 않으셨지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재주는 살짝 주신 게 아닐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하이텔, 나우누리가 지배하던 PC통신 시절에 급기야 말도 안 되는 소설들을 써대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동창이 소매치기를 잡다가 칼에 찔려 숨지는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는 휴먼스토리(!)-그런데 그걸 하필이면 공포, 미스터리 동호회 게시판에 올렸다. 그런데 의외로 살짝 호평을 받기도(!)-부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부모의 복수를 꿈꾸는 검객의 이야기를 그린 황당무계 무협소설까지 도전했다. 결국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당시에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어 미칠 지경이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지.

 

그런데 대학 진학 시 삶의 전환이랄까, 나름 뜻을 세워 글쓰기와는 전혀 무관한 학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결국 그것이 지금까지 내 삶을 규정해버리고 말았다. 거국적이게도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심지어 마음까지 바쳐 통일 운동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은 것!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었나 보다. 복학 후 생뚱맞게 괜히 국문학과 전공과목을 신청해 소설쓰기 공부를 다시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예전에 한 번 언급한 바와 같이 기말 시험 대신 제출한 단편 소설이 무려 A하고도 뿔따구를 받아버린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자, 이게 결론을 짓자. 어릴 적부터 무언가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속된 말로 구라 창작에 재미를 가졌던 나는, 머리가 굵어져 정한 인생의 목표와 애초의 꿈을 나도 모르게 접목시켜(!) 기자라는 직업을 택하게 되었다. 기사 쓰기와 소설 쓰기는 엄연히 다르지만(물론 이 두 가지를 과감히 합체시켜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신문이나 잡지에 써대는 인간들이 요즘 많기는 하다. 특히나 메이저라는 것들이 더 심하다. 양심도 없으셔.) 어쨌든 계속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저자 이재익은 소설, 영화, 방송을 넘나들며 그야말로 뛰어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사는 부러운 양반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성공 비결은 간단하다. 배우고 익히고 또 반복하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샘솟는 천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딱 잘라 말한다. 크리에이터에게 중요한 것은 감이 아닌 반복과 근성이라고.

 

철없던 어린 시절처럼 더 이상 내가 글쓰기에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그러고 있으면 좀 곤란하지. 하지만 글쓰기에 흥미를 가진 이후, 내 삶은 달라졌다. 책은 절대 안 볼 것처럼 생긴 놈이, 이제 어디를 가면 “어머, 책 좀 좋아하게 생기셨어요. 호호” 따위의 말을 듣기도 한다. 당최 책 좋아하게 생긴 얼굴의 자격조건이 뭔지는 모르겠다만.

 

그리고 나는 직업에 내 자질이 아닌 내 취향과 기호를 접목시켰고, 지금까지 그걸로 먹고 살았다. 우스운 일이다.

 

분명,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작가, 크리에이터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꾸준한 연습과 반복,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근성이 없으면 결코 빛날 수 없다. 시대의 역작 한 작품 써 갈기고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끈기와 근성이 있다면 비록 큰 성공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조금 더 오래 가지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조금 유치하고 조금 부족하면 어떤가. 내가 그 행동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것 아닌가.

 

이른 바 잘 나가는 크리에이터 이재익의 책을 읽고 느낀 것은 그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계속 즐기면서 오래 하고 싶다면 결국, 재능을 믿지 말고 끈기와 근성의 힘을 믿으라는 것.

 

최근 들어 아니, 5년 전부터 기가 막힌 소설 하나를 그냥 구상만(!) 하고 있다. 21세기 홍길동전과 비스무리한 것인데, 썩은 정치인, 미친 언론인, 사이비 종교인, 개념상실 범죄인 등 오늘날 우리 사회에 악취를 풍기는 인간들을 하나 둘 제거하는, 크리에이터가 아닌 한국판 터미네이터를 등장시키는 소설이다. 그리하야 많은 형제 있는(!) 독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비록 책을 통해서나마 뻥 뚫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라고 생각해 본다. 만약 정신 상태가 살짝 오묘한 출판사 사장님을 만나 이 이야기가 출판된다면 한 권 예약 구매 부탁드린다. 친필 사인 당근이다.

 

못 먹을 감을 믿지 말고, 근성을 믿어보자. 그래서 짜증나는 이 세상에서 그나마 좀 유쾌하고 즐겁게 살아보자. 아, 몰상식과 불의에 대항해 분노할 때에도 근성은 필요하다! 요거 중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