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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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민주주의에 대한 기억 몇 가지. 내가 태어나기 3년 전 현 대통령의 모친이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지 2년 후 현 대통령의 부친이 부하의 총탄에 의해 절명했다. 그리고 이듬 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난 어렸고, 순수했다.

 

나의 유년시절은 전두환 대통령의 시대였다. 아주 어렸으니 뚜렷이 기억에 남는 것은 사실 많지 않다. 하지만 마치 공기와도 같은, 시대의 일정한 느낌, 분위기는 어렴풋 기억난다. 물론 노태우의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역시.

 

그리고 19876. 11번째 생일을 맞았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길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의 함성. 당시 창신동에 살고 있었던 나에게, 당시의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또한 강렬하다. 대로변에서 골목길로 조금 들어와야 닿을 수 있었던 우리 집은, 60~70년대 지어진 개량한옥이었는데, 전경에게 쫓겨 골목으로 쏟아져 들어온 시위대들은 담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와 다른 집들로 뛰어넘어갔다.

 

아이고, 학생들 위험해! 내려와!”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난 그때 , 기왓장 다 부서지겠군. 아버지가 아시면 난리 나겠다. 설마, 나보고 지붕 위에 올라가 같이 보수 공사를 진행하자고 하시는 건 아니겠지?’ 따위의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워낙 순수해요. 제가.

 

이제 곧 마흔이라는 나이에 접어들 나조차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치열히 싸워온 선배들의 기억을 100% 알고 있다고, 느껴왔다고, 감히 자신하지 못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이들. 그리고 숨져간 이들. 때문에 내가 그들을 호명하는 것은 여전히 나에겐 부끄럽고, 죄스러운 행위일 수밖에 없다.

 

10년 단위로 나름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는 느낌이다. 97년엔 IMF의 파고에 휩쓸려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어야만 했고, 2007년엔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다. 그리고 다가오는 2017년에는 다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

 

어쩜, 우린 여전히 1987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국민의 투표를 통한 대통령 직선제라는 성취를 이뤄냈지만, 그 후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자면 녹록치 않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과 현 정권 내에서는 민주주의의 퇴보가 선명하다.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눈을 감았고, 남북관계는 파탄이 났으며, 국민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졌다. 신자유주의라는 형태도 알 수 없는 것에 의해 양극화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가 한낱 정권 연장을 위한 레토릭으로 전락했고, 국민을 쥐어짜는 정부의 모습에 어처구니만 맥없이 찾게 된다.

 

책이 나왔을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의 충격적인 서거로 인해 전 국민이 할 말을, 갈 길을 잃었을 때다. 그리고 용산참사, 미국산 쇠고기 파동 등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명박산성 앞에서, 치가 떨리는 뻔뻔함 앞에서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이 나라를 온 몸으로 느껴야 했다.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는 논리가 살천스레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바로 그 민주주의를 다시 찾기 위해 사람들은 광장으로 나섰다.

 

19876월은 이 땅의 민주주의의 진실한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소환되어야 할 기억이다. 단지 역사 속 하나의 사건이 아닌, 여전히 현재의 모든 이들을 위한 살아 숨 쉬는 역사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행사장 귀빈석에 앉은 분들 가슴에 달린 카네이션 같은 것으로 만드는일이 될까봐 작업 착수를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은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보여준다. 만화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살리면서,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과 유머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오늘의 퇴보에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책임도 물론 적지 않다. 하지만 당연히 실질적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온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후 2년 만에 자화자찬에, 왜곡과 책임 떠넘기기로 점철된 회고록을 펴냈다. 또한 머릿속에 유신이 살아 숨 쉬는 현 대통령은 독재 체제를 지켜내려 했던 이를 대법관 후보로, 군사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를 총리 후보로, 지역갈등 조장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한 이를 비서실장으로 두었고, 두려 한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얻어낸 민주주의가 지금처럼 누더기가 되고 있다. 난 과연 거기에 어떠한 역할을 했던가. 애써 외면하고, 입을 다물고, 눈을 감으며 그렇게 비겁하게 내 한 몸의 안위를 챙기지는 않았던가. 감히 먼저 간 이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해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부끄러움이 치욕스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조심스레, 그리고 확고히 믿는다.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끊는다는 것을,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음. 국민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이를 무시하고 우습게 생각했던 모든 권력들이 끝내 스러져 갔음을. 난 오늘도 믿는다. 때문에 비관은 없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란 것, 모두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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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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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생각해 본다. 나의 사춘기는 언제였지?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 격동의 시간을 보냈었지? 나는 그때 과연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원했으며, 어떻게 사랑했었지? 그리고 그 사랑의 기억은 지금의 나를 어떻게 만들어 놓았지? . 시작부터 비장미가 넘친다.

 

정확히 서기 몇 년 몇 월 몇 일 부터 몇 년 몇 월 몇 일 까지를, 공식적인 나의 사춘기로 규정할 수 있을지, 당연히! 모르겠다.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때는 꽤나 비장하고 가슴 아프고, 매 시간이 불꽃과 같았을 텐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웃지요’, 뿐이니. 내가 영 재미없게 사춘기를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다.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폭풍의 언덕에서 맞았고, 끝내주는 사랑도 했으며, 끝내주는 우정도 나누었다. 자랑이 아니다. 누구나 사춘기를 지나며 그런 값진 경험을 하지 않는가. 이것이라면, 이 사람이라면 당장 내일 지구가 사라진다 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은 느낌. , 그것이 무려 사춘기가 아니냔 말이다!

 

메마르게 말해 기성세대’, 그냥 성의 없게 부를 때 어른들’, 솔직하게 표현하면 꼰대들’. 그래 우리들 말이다(, 나도 꼰대인가? 처절히 부정하고 싶다). 우리들은(결국 나까지 포함이구나) 우리들의 올챙이 시절을 잊고 아이들의 행동을 마냥 우습게 보거나 일부러 철없게 보려는 아주 몹쓸 습관이 있다. 물론 유사 이래 모든 꼰대들이 그러했겠지만, 그럼에도 역시 그다지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아이들의 우정, 아이들의 사랑은 같은 나이 때 우리들의 사랑, 우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 애절함과 소중함에서 말이다. 아이들은 사랑을 나누며 성장하고 우정을 느끼며 성숙한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사랑과 우정 그리고 또 다른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얻어가고 잃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사춘기, 유년시절은 그 아름답고도 슬픈 여정의 초입인 셈, 아닌가요?

 

우습게도 난 <천국주식회사>를 읽으며, 나의 사춘기를 떠올렸다. 참 한심하고도 귀엽고도 깜찍하게, 또한 때론 섹시하면서도 저돌적이고 터프하게 한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그때 나를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 많은 시간들, 그 순간, 순간들. 돌이켜보면 한없이 소중하고 애틋하다. 때론 나에게 상처를 주고, 모욕감을 감히 던져주었던, 때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던 이들. 그들이 있었기에,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난 그 시절을 무사히 아름답게 지나올 수 있었다.

 

그 아름다운 기억들을, SF 로맨틱 코미디인 이 책을 통해 다시 느꼈을까. 글쎄, 외형적으로는 뚜렷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원래 나란 인간이 사회과학 서적을 읽다 울어버리고,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 줄을 쳐가며 각주를 다는 녀석이니, 해석은 애매하다. 하지만 무언가 있을 것이다. 무언가 나의 그 과거의 뭐랄까 설명할 수 없는 살짝 멜랑꼴리하면서도 달콤무쌍한 것을 자극한 것이 있을게다. , 그니까 고게 뭐냐고~.

 

결국, 사랑이 아닌가 싶다. 자신이 창조한 지구 관리사업의 회의를 느껴, 태업을 넘어 파업을 지나 폐업을 준비하는 하느님에게, 기적부서에서 근무하는 두 명의 천사(임원도 아닌 일개 사원이!)가 감히 항의한다. 본인이 힘들게 만든 지구를 그렇게 무책임하게 한 순간에 날려버려도 되는 건 갑쇼! ? 그러자, 하느님 가라사대, “그래? 불만이야? 좋아, 그렇담 저기 저 쌓여 있는 지구인들의 수많은 기도 중 랜덤으로 너희 맘대로 하나만 골라봐. 그리고 그 기도를 한 달 안에 현실로 만들어봐. 그럼 지구의 폭발을 다시 한 번 고려해 볼 테니.”

 

하느님은 지구를 멸망시킨 뒤, 아시아풍의 고급 퓨전레스토랑을 개업할 생각이시다. 기본 메뉴, 인테리어 준비에 가슴이 마냥 설레고, 지구를 살려보겠다고 나선 천사에게 오히려 동업 제의까지 하신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걸세, 자네는!”

 

하느님과 일대 승부를 벌어야 하는 일개(!) 기적부 사원 천사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지구인의 소원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 소원은 바로 서로 호감은 100% 있지만, 쉽사리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로라와 샘을 이어주는 것! 공식적인 테이트까지 성사되는 것으로 하느님과 두 천사는 타협에 이른다. 그런데 하느님이 좀 야하시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두 사람이 <커플이 됐다>고 봐야 하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은 어깨를 으쓱했다. “성관계를 가졌을 때?”

크레이그는 사레가 들려 캑캑거렸다. “그건 별로 공정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가 말했다.

그럼 한 달 안에 진행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이건 어떤가요? 그 인간들이 데이트를 하게 되면 이 기도에 대한 답이 되었다고 여기는 걸로요.”

하느님은 그의 제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성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분이 말했다.

크레이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키스를 하는 시점은 어떠신가요?”

하느님을 턱을 매만졌다. “어떤 종류의 키스를 말하는 건가? 혀까지 들어가는 걸 의미하나?”

 

간신히 하느님과 타협을 통해 그냥(!) 키스를 하는 것으로 낙찰을 본 두 천사는 한 달 안에 두 남녀를 이어주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겪게 된다. 하지만 당최 이 목석같은 두 양반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그 굴뚝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호, 과연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느님의 신장개업 레스토랑은 그 화려한 막을 올릴 것인가!

 

결국 가장 소중한 기적은 사랑이라는, 어찌 보면 다소 진부한 메시지를 간직하고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우리는 진부한 것을 진부하다 하지 않고, 소중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치명적 오류를 매일매일 저지르며 살고 있지 않나. 당연히 사랑은 너무나 소중한 기적, 기적의 끝판왕이다!

 

두 천사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이어지지 못하는 두 남녀의 해프닝을 지켜보며, 지금보다 거칠고 서툴렀지만, 그렇기에 더 순수했던 나의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깊이 따지지 않고, 끝을 계산하지 않고, 피드백 따위 우리집 복실이에게나 던져주었던 무모한 사랑(이쯤에서 젝키 노래가 BGM으로 깔려야!). 나는 진실로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매우 많다고,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 사랑이 밥 먹여 주냐는 유치찬란한 말들을 내뱉으며, 정작 그 말의 유치찬란함마저도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들. 아니다. 어쩜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이란 불가항력에 어쩔 수 없이 거짓 증언을 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 사랑이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이 황당무계하고 빌어먹게 공포스러운, 당최 상식과 정의가 천연기념물이 된 세상에서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누군가를, 끊임없이 사랑하기에 이렇게 생존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때문에 청춘들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 다시 사랑할 지어다. 지금의 사랑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할 지어다. 때론 미워 죽을 것만 같은 이에게도 기회를 한 번 쯤은 줄지어다. 당신의 사랑 1센티미터가, 당신의 사랑 1그램이 때론 기적을 만들어낼 수도 있음을, 기억할 지어다. 우리 모두에게 지금 필요한 건 오직 사랑일 지어니.

 

즐겁게, 유쾌하게 읽었다. 내 청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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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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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친구 녀석이 영화 <원초적 본능>의 무삭제판(우리나라에서나 통용될 단어다) LD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나는 지속적으로 그 녀석과 접촉하며 협상을 벌였다. 당연히 우리 집엔 LD 플레이어가 없었기에 비디오 테이프로 복사를 해야만 했다. 녀석은 끈질긴 나의 설득에 결국,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무언가를 대신 주겠다는 협상조건에 동의하고 무려 <원초적 본능>! 복사해 주기로 했다. 으아, 무려 샤론 스톤이라니!

 

그런데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영화를 복사하기 위해서는 집에 있는 비디오 플레이어를 들고 친히 녀석의 집에 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플레이어의 부피가 크진 않았지만, 아무튼 귀찮은 일임엔 분명했다. 하지만 감히 귀찮다니! 샤론 스톤의 뜨거운 몸짓과 뇌쇄적인 눈빛을 무려 무삭제로! 볼 수 있는데, 감히 귀찮다니! 그야말로 이건 입에 꺼내기도 두려운 건방진 생각이었다. 당연히 나는 맹렬히 녀석의 집으로 비디오 플레이어를 들고 달려갔다. 그리곤 드디어 복사! 이거 불법복제 아니냐고? 날 구속하라! 그러나 나의 샤론을 향한 이 뜨거운 열정만은 구속하지 못하리니!

 

그렇게 나는 미션을 완수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백만 대군이 내 눈앞에 버티고 있어도 막지 못하리라. 나의 발걸음을! 그런데! 백만 대군이 아닌 웬 낯선 이가 그만 나의 당당한 보폭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군()이 아닌 경()이었다. 달랑 한 명이!

 

뭐야? 당신이 뭔데 감히 샤론 누님과의 데이트를 초장부터 방해하는 거냐! 외치려던 나의 뇌에서 그만, ‘, 정체성을 자각해, 넌 지금 중딩이야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렇다. 나는 중딩이었던 것이다. 언감생심 샤론 누님을 합법적으로 만날 수 없는 서글픈 계급이었던 것이다.

 

, 이 비디오 플레이어 누구 꺼야? 너 이거 들고 어디가고 있었어?” 어디서 초장부터 선량한 시민이 될 선량한 학생에게 반말이냐, 그러는 당신은 신분증이나 먼저 봅시다. 관등성명을 대야 하는 것 아니냐, 누가 미란다 법칙을 요구했냐. 하긴 난 범법자가 아니니 미란다 쥬스라도.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분명 나의 소유임이 분명한 비디오 플레이어이건만, 마치 장물을 획득하여 급속히 처분하러 가는 모양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뭐냐, 이 이해하기 싫은 시츄는. 난 샤론 누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비굴한 표정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만 했다.

 

, 제가 친구 집에서 가요프로그램을 복사해서 다시 집으로 가져가는 길이에요. 듀스 아세요? 아님 서태지와 아이들은 설마 아시죠? 춤을 좀 배워볼까 하구요. . 그런데, 아저씨 더운데 고생이 많으시네요. 조금만 더 가면 집인데, 같이 가셔서 시원한 냉수라도 한 잔 하실래요?”

 

뭐가 그리 말이 많고, 구구절절한 게냐. 내가 생각해도 더럽게 많은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 거듭 말하지만 난 중딩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런 말들이 경찰을 더 의심케 한다는 것을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내 립서비스를 다 듣고 난 경찰은 너 잠깐 똑바로 서봐, 손 위로 올리고그러더니, 갑자기 내 양 발목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하는 시츄! , 이 양반은 내가 발목에 칼을 숨겨두었나 확인한 것이었다.

 

아니, 이렇게 선량하게 생긴 중학생이 발목에 칼을 숨기고 다닌다면, 이게 나라인가! 이게 과연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질법한 일이냔 말이다. 당신은 당신이 살아가는 이 아름다운 나라의 선량한 중학생을 끝내 믿지 못한 것인가!

 

끝까지 반말을 투척한 경찰은 내 가냘픈 발목을 확인한 뒤(이럼 그냥 가야 하는 것 아니냐, 양심적으로?) 앞장을 서란다. 어디로? 우리 집으로! , 정말 투철한 직업관을 갖고 계신 양반을 재수도 좋게 만났다. 이 동네 원래 이리 유능한 경찰들이 많았냐. 미처 몰랐네. 할 수 없이 난 경찰을 대동하고, 아니 경찰의 무려 호위를 받으며 집으로 왔다. 다행히 부모님이 없으셨기에 망정이지, 오 이게 뭔 아름다운 모습인가.

 

집에 돌아온 나는 정확히 원 위치에 비디오 플레이어를 안착시켰고, 공약대로 더럽게 차가운 냉수 한 잔을 건넸다. 물론 미소를 머금은 채! 살짝 무안해졌던 것일까. 경찰은 물 한 잔을 냅다 원샷하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매정한 양반, 인사라도 하고 가시지. 암튼 얼렁 승진하시길 바라오. 그대의 그 열정이면 김태촌은 못 때려잡겠소?! 아주 든든하오, 이 나라의 치안이!

 

. 재미없는 이야기, 길게 했다. 이게 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경찰과의 첫 개인적인 만남이었다. 그 후로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경찰을 만나왔지만(오해마시라, 난 그때나 지금이나 한없이 선량하시다. 다만 어린 나이에 호기심이 전체 국민 평균적으로 있었을 뿐. 난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 유독 당시의 기억이 오래 남아있다. <원초적 본능>은 그래서 봤냐구? , 다시 떠오른다. 그날의 감동과 격정이! 지금도 난 그녀보다 섹시하게 담배를 태우는 여배우를 본 적이 없다는 정도로 나의 이 뜨거운 마음을 대신한다.

 

, 이제부터 서평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여럿 읽었다. 마니아 수준은 아니기에 전 작품을 읽은 건 아니다. 하지만 작가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평가는 존재한다. 그는 인간의 이야기가 담긴, 세상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쓴다. 그게 그의 매력이자 강점이다.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의 모습을 추리와 스릴러에 접목시키는 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신참자>는 언뜻 그저 그런 살인사건 하나를 해결해 나가는 형사의 이야기다. 엽기적인 연쇄살인마도 없고, 기발한 트릭도 없다. 하지만 각종 미스터리 순위의 1위를 차지하고, TV드라마와 영화로까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난 그 무언가가 바로 주인공 형사 가가 교이치로에게 있다고 본다. 그는 단지 살인사건만을 보는 게 아니라,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경찰, 형사에 대한 정의는 나를 중학교 시절 그 경찰을 떠오르게 했다.

 

형사는 수사만 하는 게 아닙니다. 사건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 입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또한 피해잡니다. 그 피해자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전 말이죠. 이 일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게 있어요. 사람을 죽이는 몹쓸 짓을 한 이상 범인을 잡는 건 당연하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철저히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걸 밝혀내지 못하면 또 어디선가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때 만약, 그 경찰이 비디오 플레이어를 들고 환희에 차 달려가는 중학생을 수상히 여겨, 가는 길을 막고 진상을 파헤치려 했다면, 조금 더 온건하게 접근할 수는 없었을까. 마치 때릴 것만 같은 강압적 자세가 아닌, 동네 아저씨마냥 친근하게 물어볼 수는 없었을까. ‘어딜 그렇게 신나게 가고 있니? 마치 예쁜 아가씨와 데이트라도 하러 가는 얼굴이구나? 얼굴이 빨개졌네?’

 

하지만 그는 어린 중학생의 몸수색을 아무런 사전 고지 없이 무단으로 길거리 한 복판에서 했다. 유죄로 증명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기초 상식을 무시하고, 나를 절도범 취급하며, 무려 칼을 찾아내려고까지 했다. 그리고 나의 결백이 밝혀진 뒤에도 일언반구 사과의 말도 없이 사라졌다. 서운한 사람. 때문에 지금까지도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것이다! ‘, 야동 없어요!’

 

주인공인 형사 가가는 한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던 40대 이혼 여성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며, 사건의 배경이 되는 거리 일대의 상점가를 돌며 탐문수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강압적이거나 신경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어느 새 상인들의 개인적 고민과 비밀을 이해하며, 무려 다독여주고 해결해 주기도 한다. 그것이 살인사건의 해결과는 그리 큰 관련이 없는데도 말이다.

 

아울러, 그는 끝내 비극의 원인이 된 가족 간의 사랑을 이해한다. 정의로우면서도 인정의 끈을 놓지 않는 경찰. 아마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살아오며 수많은 경찰들을 길거리에서 목격하고, 또 해야 하는 우리들에겐 반드시 필요한 모습이 아닐까. 아쉽게도 현실에서 찾기는 극히 어렵지만 말이다.

 

밀양의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할머니들을 무참히 진압(!)한 뒤, 해맑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여경들, 용산참사, 세월호 참사 앞에 무너진 가족들을 다시 한 번 차가운 거리로 내몰고 짓밟은 경찰들 그리고 지금도 길거리를 점령한 채 오가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선사하는 경찰들. 그 무리들.

 

물론 그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국가의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폭력인 그들은 국가의 명령에 순응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그것이 아무리 옳지 않은 일이라도 말이다. 그게 그들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그들을 권력의 개’ ‘민중을 짓밟는 제2의 용역으로 부르는 이유 역시 곰곰이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그들이 진정 받들어야 할 대상은 국가가 아닌 국가의 주인, 국민이라는 사실은 자각한 채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경찰의 참다운 모습이 아닐까.

 

히가시노 게이고를 사회파 작가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렇게 정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섹시하고 선정적인 연쇄살인마, 잔혹한 사이코 킬러 등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는 동시에 잘못된 사회가 만들어낸 잘못된 관계와 그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그리고 무엇이 진정한 정의인지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묻는다. 그 질문은 당혹스럽지만, 또한 고맙기도 하다.

 

무조건 경찰이 미워 보이는 사회는 분명 잘못된 거다.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증오가 쌓이면 결국 공권력은 그 을 잃게 된다. 자명하다. 때문에 경찰을 쳐다보는 우리들의 눈은 슬프다. 그들의 박봉과 과로를 알기에 더욱 슬프다. 국가 권력은 경찰을 개처럼 다룰 수 없다. 그러면 안 된다. 경찰도 국민이다. 그들이 지금보다 정당하고 정의로운 업무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도리다.

 

가가와 같은 형사가 우리에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은 오늘도 야근과 잠복을 반복하며, 우리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가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위로와 용기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정의는 어찌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경찰이 이유 없이 두렵지 않고, 다가가 먼저 수고한다는 말을 건네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것이 아마도 가장 이상적인 정의 사회가 아닐까.

 

따뜻한 미스터리 작품이었다. , 오늘은 생각난 김에 샤론 누나와 데이트 한 번?! 물론 이젠 합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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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 노무현정권과 개혁진보진영에 대한 성찰
김기원 지음 / 창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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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정치를 잘 모른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단순히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서 지혜가 자동 옵션으로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다. 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게으르고 나태하기에, 지혜를 쌓아가는 것에 여전히 초보적이다.

 

나의 첫 투표는 아쉽게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계산대로만 하면 97년 대선이 첫 투표여야 하지만, 난 투표하지 않았다. 재수 후 대학에 갓 들어간 덜 떨어진 새내기였고, 한창 음악에 빠져 있던 때라 정치 따윈 우리집 복실이에게 일임한 상황이었다. 아주 멍청한 녀석이었다. , 좋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IMF의 파고 속에 당시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어수선했고, 결핍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지만 난 눈과 귀를 닫고 살았다. 쥐의 뿔도 모르면서 짐짓 뭣 좀 아는 것처럼, 헛소리만 늘어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역시나 덜 떨어진 녀석이었다. 매우 한심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군대엘 들어갔다. 아주 추웠던 199812월이었다. 전방이 아닌 논산훈련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더럽게 추웠다. 논바닥을 핥으며 지나가는 동네 강아지의 자유마저 부러웠다. 의외로 성욕은 조절이 가능했는데, 식욕은 내 생애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불타올랐다. 짬밥이 안 되었던 시절에는 관물대 앞에 떨어진 설날 특식 떡까지 주워 먹었던 참혹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땐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기에 고통스러워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느 정도 짬밥이 찼던 20006, 일하기 싫어 꾀병을 부렸다. 그리고 외진이라는 재수를 얻어 육군 창동병원으로 갔다. 여기에서 궁금한 건 지금도 창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데, 당최 당시 병원의 위치가 기억나질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 그 사이 이전을 했을 게다.

 

진료 시간을 기다리며, 빈둥거리다 대기실에 있는 TV에 눈길이 갔다. 먼진 몰라도 상당히 스펙터클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것도 예능프로가 아닌 뉴스에서 말이다. 당연했다. 분단 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것이다. 당시 병원의 분위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흥분과 당혹감이 포르말린 냄새와 적절히 섞인, 그리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분위기. 나 역시 조금은 당혹스러워하며, 나의 진료 차례를 기다렸다.

 

아무리 공부를 안 했어도, 명색이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부하는 학과에 다니던 녀석이 바로 나였다. 때문에 여타 매우 중요한 학과에 다니다 왔을 전우, 혹은 대학 따위 각자의 집 복실이에게 던져주고 멋들어지게 살다 왔을 전우, 혹은 여타 각자의 파란만장한 사연으로 대학보다 더 큰 세상과 싸우다 들어왔을 전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날의 충격과 흥분이 더했다고 기억된다.

 

물론 거창하게 이제 드디어 분단체제에 금이 가는가!’ ‘우리의 뒤틀린 역사가 이제야 바로 잡히는가’ ‘이번 정상회담이 향후 동북아 정세와 나아가 북미 관계, 북일 관계, 한미·한일·한중 관계 등 대외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따위를 고민할 수는 없었다. 그럴 깜냥이 안 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세월호의 비극을 겪을 때 느꼈던 감정을 그때 이미 느낄 수는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떤 식으로든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정치를 여전히 모르겠다. 추악한 권력집단 간의 이전투구라고 생각 들다가도,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합의 도출 과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온갖 고상한 명분을 들이밀어도, 결국은 자원 분배에 대한 투쟁이라는 단순한 결론도 가능하겠다. 하지만 이제 곧 마흔이라는, 조금은 묵직한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에서, 정치는 그렇게 단순명료한 것이 아님을 느낀다. 적어도 내가 생각해왔던 것보다 많이 복잡하고 또한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여전히 정치는 매우 단순하다. 정치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작업이다.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쉴 곳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정치의 본 역할일 것이다. 그 어떤 고상하고 심오한 사상과 철학을 갖다 붙여도 결국은 그것으로 귀결된다. 정치는 결국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그리고 지금의 박근혜 정부 모두 같은 실수를 했고, 또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정치의 역할, 임무를 소홀히 했거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정의감에 불타 뒤틀린 대한민국 시스템을 바꾸려 노력했다. 서툴렀지만 진정성은 분명했다고 지금도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정치 본연의 역할에 100% 충실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렇게 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물론 지지층에 대한 잘 보이기 전략은 충실히 이행했다. 그것마저 결과는 영 부실했지만 말이다. 결국 자신들에게 한 표를 행사한 이들의 삶을 바꾸는데 노무현, 이명박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는 진정성만 앞세우다가 디테일에서 무너졌다. 취임 전부터 오만가지 전선을 쳐두고, 별로 세지도 않았던 권력을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했다. 또한 자신들을 지지해준 서민이나 일반 국민들을 위한 정책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며, 국가 전체적인 개혁과제들을 이뤄내려 했다. 힘든 일이었고, 결국 실패했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특별히 평가할 것도, 평가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렇담 현 정부는 어떨까. 역시 이렇다하게 평가할 것이 없다. 매우 지저분하게 권력을 차지했음에도(그것도 간신히)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은 오히려 나태했다. 지금도 그렇다.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국민들에게 그래서 어쩌라고!’ 자세다. 역시 정치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앞서 그리 위대하지 않은 나의 젊은 시절을 언급한 것은, IMF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나의 정치적 각성을 일깨운 첫 경험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IMF는 비정상적인 경제개발노선을 무식하게 고수해온 결과였고, 6·15공동선언은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뒤틀린 분단체제를 깨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이는 모두 정치적 선택의 결과였다. 그리고 국민이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의 삶을 뒤바꿔놓았다.

 

책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을 분석한다. 그리고 다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한 조건과 노력을 제시한다. 2012년 대선을 얼마 앞두고 출간된 것은, 당연히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승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누구든 비판은 불편하다. 특히 실패한 이후 듣는 비판은 쓰리다. 하지만 그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실패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후사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진보세력들을 보면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두 차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점을 그리 못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는 “1인당 소득 면에선 선진국 수준에 올라섰으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이 폭발 지경인 한국사회는 진보·개혁·평화를 통해 이런 모순을 떨쳐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진단한다.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을 옥죄고 있는 것들이다. 먹고 살기 위해 죽어라 일하느라 고단하고, 그럼에도 살기 팍팍하여 억울하며, 정의롭게 정당하게 살려 노력해도 언제 추락할지 몰라 불안하다. 바로 이런 것들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을 덜기 위해 사람들은 투표를 하고, 특정 정당에게 권력을 위임한다. 하지만 진보든 보수든 아직까지 이런 고통들을 덜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는 집단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비극이다.

 

쓰디쓴 비판을 달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정당한 방법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차지하려는 세력이 끝내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 판단으로는 진보·개혁·평화세력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

 

이제 그들은 그럴 자격을 능력으로 보완하고, 진정성으로 완성해야 한다. 자신들만이 인정하는 진정성이 아닌,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받을 수 있는 진정성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또 한 번 속는 심정으로, 그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그들을 지지할 것이다. 세상은 단 한 번의 투표로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단 한 번의 투표는 많은 것을 가능케 하기도 한다.

 

정의는 끝내 승리한다는 벅찬 감동과 함께, 반드시 삶의 긍정적 변화를 함께 이끌어내야 함은, 모든 정치세력들의 임무이다. 정치는 반드시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 땅의 여전히 남아있는 슬기로운 진보세력들의 건투를 빈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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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현상을 말한다 - 개정판 - 2012 진보가 집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김용민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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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먼저 강렬한 추억이 돋음을 느낀다. 어제 저녁 살짝 취한 상태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나는 꼼수다팟캐스트를 다시 듣는 추억 여행을 했다. ‘야당 얼굴마담 초청 관훈토론회였는데, 다시 들어도 참 각하의 꼼꼼함, 세심함에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이정희 대표의 목소리를 들을 때는 심히 아팠지만 말이다.

 

지금 각하는 매우 안녕하시다. 당연하다. 정치인 박근혜가 대권을 쥐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어떤 이 있었는지는, 현 정권이 물러난 뒤에나 드러나겠지만, 암튼 각하는 재임기간 이룩하신 그 수많은 형용할 수조차 없는 찬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녕하시다. 매우 건강하시다. 참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좀 시끄럽다. 취임 후 첫 번째 활약이었던 자원외교를 가지고, 보수 언론조차 맹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왜 이러는 걸까? 왜 갑자기 각하를 못 살게 구는 걸까. 둘 사이에 드디어 계약이 만료된 것일까? 아님, 바닥을 기고 있는 현 정권의 지지율 상승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각하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일까. 각하는 오늘도 외롭고 억울하다.

 

하지만 각하는 또한 행복하시다. 역대 최악의 정권이라는 축복을 100%! 확실히! 받을 수 있었는데, 그만 그 자리를 진작 넘겼다. 현 정권의 그야말로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철벽 불통 마인드, 그리고 각하를 초월하는 대통령의 슈퍼 샤이어인과 같은 유체이탈 화법과 행동은 그만 각하를 또 다시 2인자의 자리로 내려앉게 만들었다. 자존심은 상하시겠지만, 능력이 안 되면 할 수 없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 아닌가.

 

나는 꼼수다이후 현재까지 수많은 팟캐스트가 탄생했다. 어떤 것들은 그야말로 실용주의 노선을 꿋꿋하게 걸어갔고, 또 어떤 것들은 나꼼수의 뒤를 이어 우리 정치와 역사 등을 매우 디테일하게 전달하고 또한 씹는다. 분야도 다양화되었다. 우리를 둘러싼 거의 모든 분야가 팟캐스트를 통해 오늘도 전달되고 있다. 혹자는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난 그리 나쁘지 않은 현상으로 판단하고 있다. 누구든 떠들 수 있어야 하니까.

 

우리 야권이 설마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였을 리는 절대 없지만, 어찌되었든 저자의 말대로 2012년은 진보가 집권하지 못했다. 저자의 의도 역시 정말 진보가 집권해선 안 된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종의 경각심을 주려는 선하디 선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암튼 진보는 패배했고, 보수는 지저분하게 승리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우리는 뺑이를 열심히 치고 있다. 말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아 구구절절 나열하진 않겠다. ! 내 담배값, ! 어르신 연금, ! 연말정산, ! 트라우마 트라우마!

 

무엇보다 우리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같은 선택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지만, 너무 아프다. 그 결과가. 그 상처가. 세월호의 비극 앞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주먹질을 당해 나뒹구는 것만 봐도 숨이 턱 막히는데, 생때같은 아이들을 산 채로 물속에 묻어야 했던 부모들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이런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꼴이 또 다시 돌아왔으니, 2012년 진보의 패배는 더더욱 아프고 쓰릴 수밖에.

 

결국 우리는 다시 한 번 잘못된 선택으로 5년을 버티고 있다. 물론 야권의 책임이 더 크다. 패배자는 말이 없어야 하는데, 요즘 패배자는 참 말이 많다. 그것도 헛소리가 많으니 더 가관이다. 누구의 말처럼 여당 코스프레가 유치하고, 지들끼리 또 볶고 난리다. 아울러 다른 야당이 어처구니없이 해산결정을 받았는데, 사뿐히 모른 척했다. 맞다. 새정치민주연합 얘기하는 거다.

 

MB정권에게 구관이 명관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도록 만든 데에는 야당의 책임이 거의 90%에 육박한다고 생각한다. 억울하다고 떠들어도 소용없다. 뚜렷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온갖 중요한 프레임은 다 빼앗긴 채, 지겨운 정권 심판론만 주문처럼 외다 패배한 주제에, 반성은커녕 이상야릇한 지도부 조합을 생성하여 또 한 번 거대 삽질을 반복하다,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다. 그럼에도 기득권에 안주하는 모습이란. 누가, 이런 정당을 야당이라고 보겠는가. 장난해?

 

그래, 다 애정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고깝게 듣지 말고, 아니 고까운 얘기 좀 더 많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살 길이 보일 것 아닌가. 현 정부와 여당의 지지도가 바닥을 기더라도, 왜 당최 야당의 지지도가 오르지 않는지, 지겹도록 말했으면 좀 알아듣고 공부 좀 해야 한다. 아무런 변화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지지해준 유권자들을 물로 보는, 호갱으로 보는 여당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야당답게 좀 굴자.

 

생각해보면 책이 나온 지 4~5년 정도 지난 것인데, 어쩐지 선사시대인 것 같은 막막함이 전해진다. 왜 그럴까. 그때와 같은 열정을 잃어서일까. 나꼼수 멤버와 같은 인물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멤버들은 여전히 맹활약 중이고, 그들을 능가하는 멋진 이들도 여럿 있다. 그건 이유가 아닌 듯. 그럼 뭐지? 왜 다 의미 없다가 되어버린 걸까.

 

그럴 만도 하기 때문이다! 억울한 것도 지겹고, 슬픈 것도 지치고, 지는 것도 지겹도록 지겹기 때문이다. 당최 희망 따윈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활이 칙칙해졌기 때문이라고!

 

역사상 쉽사리 나올 수 없는 대통령을 두 번이나 내리 선출한 우리는 지금 근신 중이다. 잘못을 했으니까. 하지만 잘못한 척만 죽어라 하고 있는 다해도, 아무도 집에 가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럼 진짜 반성할 때까지 무기 근신이다. 이미 여당은 차기 대선을 위해 뺑이 중이다. 총선을 위해 뛰고 있고, 이번에야말로 혹세무민의 진수를, 구라빨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줄 기세다. 설마 트리플로 또 지겠냐고? 지금 상황에선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넉넉히.

 

상대방이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면 그건 나의 진정성이 부족하거나, 내 스킬이 딸리거나, 내가 딴 생각하면서 떠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방이 살짝 딴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기초지식이 살짝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히 주제에 진정한 국가의 인 국민에게 훈계조로 떠들면 안 된다. 더 욕먹고 서둘러 후진한 다음 내려야 한다.

 

요새 맘에 드는 어떤 친구의 책 제목처럼 일단 우린 버티고 또 버티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부조리와 온갖 불의를 꼼꼼히 세심하게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냥 넘어가는 것은 없다. 말도 안 된다. 대통령은 자신을 티브이 대선토론에서 짓뭉갠 후보의 정당을 꼭 2년 후 같은 날 해산시켜버렸다. 이런 꼼꼼함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이제 올해가 지나면 다시 선거 바람이 불어온다. 우리는 또 다시 고민하다가, 실수할 수도 있고, 또 정신을 차리고, 그나마 나은 인간들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감으로 찍는다 해도, 어느 정도 분위기 파악은 해야 한다. 별안간 어떤 카드를 들이밀고 우리를 당황케 할지 모르는 이들과 대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승부는 냉정하다. 짤 없다는 소리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가 지나가는 와중에 책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3년차에 접어들었다. 달라진 건? 더 뻔뻔해지고, 무식해지고, 대담무쌍해졌다는 것. 국가를, 정부를 동네 동아리나 이익집단 혹은 옛 중국 황실로 탈바꿈시켰다는 것. 대단한 변화다. 그리고 말로만 떠들던 남북 관계는 역시 말로만 진행하고 있다. 아름답다.

 

다시 정권 교체가 일어나야 함은 지당하다. 하지만 정치는 정의의 대결이 아니다. 조직의 대결, 프레임의 대결, 표의 대결, 민심의 대결, 그리고 기가 막힌 운빨의 대결이다. 그 승부를 위해 이제 우린 다시 떠들 준비를 해야 한다. 지는 게 지겨워서라도, 눈물이 지겨워서라도, 이제 정신 바짝 차리고, 긴장 타야 한다. 그게 맞다.

 

나꼼수 멤버들의 여전한 활약에 박수를 보내며. ! 조국 교수님 잘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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