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국 현상을 말한다 - 개정판 - 2012 진보가 집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김용민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먼저 강렬한 추억이 돋음을 느낀다. 어제 저녁 살짝 취한 상태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나는 꼼수다’ 팟캐스트를 다시 듣는 추억 여행을 했다. ‘야당 얼굴마담 초청 관훈토론회’였는데, 다시 들어도 참 각하의 꼼꼼함, 세심함에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이정희 대표의 목소리를 들을 때는 심히 아팠지만 말이다.
지금 각하는 매우 안녕하시다. 당연하다. 정치인 박근혜가 대권을 쥐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어떤 ‘딜’이 있었는지는, 현 정권이 물러난 뒤에나 드러나겠지만, 암튼 각하는 재임기간 이룩하신 그 수많은 형용할 수조차 없는 찬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녕하시다. 매우 건강하시다. 참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 좀 시끄럽다. 취임 후 첫 번째 활약이었던 ‘자원외교’를 가지고, 보수 언론조차 맹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왜 이러는 걸까? 왜 갑자기 각하를 못 살게 구는 걸까. 둘 사이에 드디어 계약이 만료된 것일까? 아님, 바닥을 기고 있는 현 정권의 지지율 상승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각하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일까. 각하는 오늘도 외롭고 억울하다.
하지만 각하는 또한 행복하시다. 역대 최악의 정권이라는 축복을 100%! 확실히! 받을 수 있었는데, 그만 그 자리를 진작 넘겼다. 현 정권의 그야말로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철벽 불통 마인드, 그리고 각하를 초월하는 대통령의 슈퍼 샤이어인과 같은 유체이탈 화법과 행동은 그만 각하를 또 다시 2인자의 자리로 내려앉게 만들었다. 자존심은 상하시겠지만, 능력이 안 되면 할 수 없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 아닌가.
‘나는 꼼수다’ 이후 현재까지 수많은 팟캐스트가 탄생했다. 어떤 것들은 그야말로 실용주의 노선을 꿋꿋하게 걸어갔고, 또 어떤 것들은 ‘나꼼수’의 뒤를 이어 우리 정치와 역사 등을 매우 디테일하게 전달하고 또한 씹는다. 분야도 다양화되었다. 우리를 둘러싼 거의 모든 분야가 팟캐스트를 통해 오늘도 전달되고 있다. 혹자는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난 그리 나쁘지 않은 현상으로 판단하고 있다. 누구든 떠들 수 있어야 하니까.
우리 야권이 설마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였을 리는 절대 없지만, 어찌되었든 저자의 말대로 2012년은 진보가 집권하지 못했다. 저자의 의도 역시 정말 진보가 집권해선 안 된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종의 경각심을 주려는 선하디 선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암튼 진보는 패배했고, 보수는 지저분하게 승리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우리는 뺑이를 열심히 치고 있다. 말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아 구구절절 나열하진 않겠다. 아! 내 담배값, 아! 어르신 연금, 아! 연말정산, 아! 트라우마 트라우마…!
무엇보다 우리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같은 선택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지만, 너무 아프다. 그 결과가. 그 상처가. 세월호의 비극 앞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주먹질을 당해 나뒹구는 것만 봐도 숨이 턱 막히는데, 생때같은 아이들을 산 채로 물속에 묻어야 했던 부모들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이런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꼴이 또 다시 돌아왔으니, 2012년 진보의 패배는 더더욱 아프고 쓰릴 수밖에.
결국 우리는 다시 한 번 잘못된 선택으로 5년을 버티고 있다. 물론 야권의 책임이 더 크다. 패배자는 말이 없어야 하는데, 요즘 패배자는 참 말이 많다. 그것도 헛소리가 많으니 더 가관이다. 누구의 말처럼 여당 코스프레가 유치하고, 지들끼리 또 볶고 난리다. 아울러 다른 야당이 어처구니없이 해산결정을 받았는데, 사뿐히 모른 척했다. 맞다. 새정치민주연합 얘기하는 거다.
MB정권에게 “구관이 명관”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도록 만든 데에는 야당의 책임이 거의 90%에 육박한다고 생각한다. 억울하다고 떠들어도 소용없다. 뚜렷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온갖 중요한 프레임은 다 빼앗긴 채, 지겨운 정권 심판론만 주문처럼 외다 패배한 주제에, 반성은커녕 이상야릇한 지도부 조합을 생성하여 또 한 번 거대 삽질을 반복하다,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다. 그럼에도 기득권에 안주하는 모습이란. 누가, 이런 정당을 야당이라고 보겠는가. 장난해?
그래, 다 애정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고깝게 듣지 말고, 아니 고까운 얘기 좀 더 많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살 길이 보일 것 아닌가. 현 정부와 여당의 지지도가 바닥을 기더라도, 왜 당최 야당의 지지도가 오르지 않는지, 지겹도록 말했으면 좀 알아듣고 공부 좀 해야 한다. 아무런 변화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지지해준 유권자들을 물로 보는, 호갱으로 보는 여당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야당답게 좀 굴자.
생각해보면 책이 나온 지 4~5년 정도 지난 것인데, 어쩐지 선사시대인 것 같은 막막함이 전해진다. 왜 그럴까. 그때와 같은 열정을 잃어서일까. 나꼼수 멤버와 같은 인물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멤버들은 여전히 맹활약 중이고, 그들을 능가하는 멋진 이들도 여럿 있다. 그건 이유가 아닌 듯. 그럼 뭐지? 왜 다 ‘의미 없다’가 되어버린 걸까.
그럴 만도 하기 때문이다! 억울한 것도 지겹고, 슬픈 것도 지치고, 지는 것도 지겹도록 지겹기 때문이다. 당최 희망 따윈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활이 칙칙해졌기 때문이라고!
역사상 쉽사리 나올 수 없는 대통령을 두 번이나 내리 선출한 우리는 지금 근신 중이다. 잘못을 했으니까. 하지만 잘못한 척만 죽어라 하고 있는 다해도, 아무도 집에 가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럼 진짜 반성할 때까지 무기 근신이다. 이미 여당은 차기 대선을 위해 뺑이 중이다. 총선을 위해 뛰고 있고, 이번에야말로 혹세무민의 진수를, 구라빨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줄 기세다. 설마 트리플로 또 지겠냐고? 지금 상황에선 그러고도 남음이 있다. 넉넉히.
상대방이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면 그건 나의 진정성이 부족하거나, 내 스킬이 딸리거나, 내가 딴 생각하면서 떠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방이 살짝 딴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기초지식이 살짝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히 ‘을’ 주제에 진정한 국가의 ‘갑’인 국민에게 훈계조로 떠들면 안 된다. 더 욕먹고 서둘러 후진한 다음 내려야 한다.
요새 맘에 드는 어떤 친구의 책 제목처럼 일단 우린 버티고 또 버티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부조리와 온갖 불의를 꼼꼼히 세심하게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냥 넘어가는 것은 없다. 말도 안 된다. 대통령은 자신을 티브이 대선토론에서 짓뭉갠 후보의 정당을 꼭 2년 후 같은 날 해산시켜버렸다. 이런 꼼꼼함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이제 올해가 지나면 다시 선거 바람이 불어온다. 우리는 또 다시 고민하다가, 실수할 수도 있고, 또 정신을 차리고, 그나마 나은 인간들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감으로 찍는다 해도, 어느 정도 분위기 파악은 해야 한다. 별안간 어떤 카드를 들이밀고 우리를 당황케 할지 모르는 이들과 대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승부는 냉정하다. 짤 없다는 소리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가 지나가는 와중에 책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3년차에 접어들었다. 달라진 건? 더 뻔뻔해지고, 무식해지고, 대담무쌍해졌다는 것. 국가를, 정부를 동네 동아리나 이익집단 혹은 옛 중국 황실로 탈바꿈시켰다는 것. 대단한 변화다. 그리고 말로만 떠들던 남북 관계는 역시 말로만 진행하고 있다. 아름답다.
다시 정권 교체가 일어나야 함은 지당하다. 하지만 정치는 정의의 대결이 아니다. 조직의 대결, 프레임의 대결, 표의 대결, 민심의 대결, 그리고 기가 막힌 운빨의 대결이다. 그 승부를 위해 이제 우린 다시 떠들 준비를 해야 한다. 지는 게 지겨워서라도, 눈물이 지겨워서라도, 이제 정신 바짝 차리고, 긴장 타야 한다. 그게 맞다.
나꼼수 멤버들의 여전한 활약에 박수를 보내며…. 아! 조국 교수님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