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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 노무현정권과 개혁진보진영에 대한 성찰
김기원 지음 / 창비 / 2012년 7월
평점 :
여전히 정치를 잘 모른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단순히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서 지혜가 자동 옵션으로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다. 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게으르고 나태하기에, 지혜를 쌓아가는 것에 여전히 초보적이다.
나의 첫 투표는 아쉽게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계산대로만 하면 97년 대선이 첫 투표여야 하지만, 난 투표하지 않았다. 재수 후 대학에 갓 들어간 덜 떨어진 새내기였고, 한창 음악에 빠져 있던 때라 정치 따윈 우리집 복실이에게 일임한 상황이었다. 아주 멍청한 녀석이었다. 뭐, 좋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IMF의 파고 속에 당시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어수선했고, 결핍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지만 난 눈과 귀를 닫고 살았다. 쥐의 뿔도 모르면서 짐짓 뭣 좀 아는 것처럼, 헛소리만 늘어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역시나 덜 떨어진 녀석이었다. 매우 한심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군대엘 들어갔다. 아주 추웠던 1998년 12월이었다. 전방이 아닌 논산훈련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더럽게 추웠다. 논바닥을 핥으며 지나가는 동네 강아지의 자유마저 부러웠다. 의외로 성욕은 조절이 가능했는데, 식욕은 내 생애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불타올랐다. 짬밥이 안 되었던 시절에는 관물대 앞에 떨어진 설날 특식 떡까지 주워 먹었던 참혹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땐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기에 고통스러워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느 정도 짬밥이 찼던 2000년 6월, 일하기 싫어 꾀병을 부렸다. 그리고 외진이라는 재수를 얻어 육군 창동병원으로 갔다. 여기에서 궁금한 건 지금도 창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데, 당최 당시 병원의 위치가 기억나질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 그 사이 이전을 했을 게다.
진료 시간을 기다리며, 빈둥거리다 대기실에 있는 TV에 눈길이 갔다. 먼진 몰라도 상당히 스펙터클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것도 예능프로가 아닌 뉴스에서 말이다. 당연했다. 분단 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것이다. 당시 병원의 분위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흥분과 당혹감이 포르말린 냄새와 적절히 섞인, 그리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분위기. 나 역시 조금은 당혹스러워하며, 나의 진료 차례를 기다렸다.
아무리 공부를 안 했어도, 명색이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부하는 학과에 다니던 녀석이 바로 나였다. 때문에 여타 매우 중요한 학과에 다니다 왔을 전우, 혹은 대학 따위 각자의 집 복실이에게 던져주고 멋들어지게 살다 왔을 전우, 혹은 여타 각자의 파란만장한 사연으로 대학보다 더 큰 세상과 싸우다 들어왔을 전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날의 충격과 흥분이 더했다고 기억된다.
물론 거창하게 ‘이제 드디어 분단체제에 금이 가는가!’ ‘우리의 뒤틀린 역사가 이제야 바로 잡히는가’ ‘이번 정상회담이 향후 동북아 정세와 나아가 북미 관계, 북일 관계, 한미·한일·한중 관계 등 대외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따위를 고민할 수는 없었다. 그럴 깜냥이 안 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세월호의 비극을 겪을 때 느꼈던 감정을 그때 이미 느낄 수는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떤 식으로든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정치를 여전히 모르겠다. 추악한 권력집단 간의 이전투구라고 생각 들다가도,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합의 도출 과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온갖 고상한 명분을 들이밀어도, 결국은 자원 분배에 대한 투쟁이라는 단순한 결론도 가능하겠다. 하지만 이제 곧 마흔이라는, 조금은 묵직한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에서, 정치는 그렇게 단순명료한 것이 아님을 느낀다. 적어도 내가 생각해왔던 것보다 많이 복잡하고 또한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여전히 정치는 매우 단순하다. 정치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작업이다.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쉴 곳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정치의 본 역할일 것이다. 그 어떤 고상하고 심오한 사상과 철학을 갖다 붙여도 결국은 그것으로 귀결된다. 정치는 결국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그리고 지금의 박근혜 정부 모두 같은 실수를 했고, 또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정치의 역할, 임무를 소홀히 했거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정의감에 불타 뒤틀린 대한민국 시스템을 바꾸려 노력했다. 서툴렀지만 진정성은 분명했다고 지금도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정치 본연의 역할에 100% 충실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렇게 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물론 지지층에 대한 ‘잘 보이기 전략’은 충실히 이행했다. 그것마저 결과는 영 부실했지만 말이다. 결국 자신들에게 한 표를 행사한 이들의 삶을 바꾸는데 노무현, 이명박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는 진정성만 앞세우다가 디테일에서 무너졌다. 취임 전부터 오만가지 전선을 쳐두고, 별로 세지도 않았던 권력을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했다. 또한 자신들을 지지해준 서민이나 일반 국민들을 위한 정책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며, 국가 전체적인 개혁과제들을 이뤄내려 했다. 힘든 일이었고, 결국 실패했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특별히 평가할 것도, 평가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렇담 현 정부는 어떨까. 역시 이렇다하게 평가할 것이 없다. 매우 지저분하게 권력을 차지했음에도(그것도 간신히)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은 오히려 나태했다. 지금도 그렇다.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국민들에게 ‘그래서 어쩌라고!’ 자세다. 역시 정치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앞서 그리 위대하지 않은 나의 젊은 시절을 언급한 것은, IMF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나의 정치적 각성을 일깨운 첫 경험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IMF는 비정상적인 경제개발노선을 무식하게 고수해온 결과였고, 6·15공동선언은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뒤틀린 분단체제를 깨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이는 모두 정치적 선택의 결과였다. 그리고 국민이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의 삶을 뒤바꿔놓았다.
책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을 분석한다. 그리고 다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한 조건과 노력을 제시한다. 2012년 대선을 얼마 앞두고 출간된 것은, 당연히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승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누구든 비판은 불편하다. 특히 실패한 이후 듣는 비판은 쓰리다. 하지만 그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실패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후사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진보세력들을 보면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두 차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점을 그리 못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는 “1인당 소득 면에선 선진국 수준에 올라섰으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이 폭발 지경인 한국사회는 진보·개혁·평화를 통해 이런 모순을 떨쳐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진단한다.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을 옥죄고 있는 것들이다. 먹고 살기 위해 죽어라 일하느라 고단하고, 그럼에도 살기 팍팍하여 억울하며, 정의롭게 정당하게 살려 노력해도 언제 추락할지 몰라 불안하다. 바로 이런 것들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을 덜기 위해 사람들은 투표를 하고, 특정 정당에게 권력을 위임한다. 하지만 진보든 보수든 아직까지 이런 고통들을 덜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는 집단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비극이다.
쓰디쓴 비판을 달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정당한 방법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차지하려는 세력이 끝내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 판단으로는 진보·개혁·평화세력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
이제 그들은 그럴 자격을 능력으로 보완하고, 진정성으로 완성해야 한다. 자신들만이 인정하는 진정성이 아닌,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받을 수 있는 진정성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또 한 번 속는 심정으로, 그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그들을 지지할 것이다. 세상은 단 한 번의 투표로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단 한 번의 투표는 많은 것을 가능케 하기도 한다.
정의는 끝내 승리한다는 벅찬 감동과 함께, 반드시 삶의 긍정적 변화를 함께 이끌어내야 함은, 모든 정치세력들의 임무이다. 정치는 반드시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 땅의 여전히 남아있는 슬기로운 진보세력들의 건투를 빈다.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