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간 2008년 5월 2일~ 5월 3일 / 독서번호 941




가네시로 가즈키 지음 /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펴냄 (2002년)




내 운명은 누군가에게 매몰차게 도끼를 내려찍은 일이 있을까?

- 35p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있어도, 안 만나면 그 사람은 죽어버려.”

그도 얼굴을 내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람은 다 죽잖아. 그러니까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는 거야. 가령 추억 속에 살아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버려.”

- 54p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는 없었다. 중요하고 소중한 일은 약하디 약한 얼음조각 같은 것이고, 말이란 망치 같은 것이다. 잘 보이려고 자꾸 망치질을 하다 보면, 얼음조각은 여기저기 금이 가면서 끝내는 부서져버린다. 정말 중요한 일은, 말해서는 안 된다. 몸이란 그릇에 얌전히 잠재워 두어야 한다. 그렇다, 마지막 불길에 불살라질 때까지. 그때 비로소 얼음조각은 가장 아름다눈 모습을 보이며 몸과 더불어 천천히 녹아흐른다.

- 58p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난 지금 행복해.”

그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 내 기억은 그녀만으로 가득하니까. 나를 게란처럼 반으로 탁 깨면, 그녀하고의 추억만 흘러나올 거야.”

- 68p




내게 누군가를 죽일 힘은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분명하게 생각한다.

언젠가,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고. 그리고 그 사람을 살아 있게 하기 위해서, 그 손을 절대 놓지 않으리라고. 그렇다, 설사 사자가 덮친다 해도.

결국은 소중한 사람의 손을 찾아 그 손을 꼭 잡고 있기 위해서, 오직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싱겁게 흘러가는 시간을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요?

- 73p




택시를 잡아타기 직전, 그녀가 느닷없이 내 귀에다 조그만 소리로 뭐라뭐라 속삭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는 그 말을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다. 분명히 들었는데, 기억의 어느 구석에도 남아 있지 않다. 내 귀에 남아 있는 것은, 그때 근처에서 울린 자동차의 비명 같은 급브레이크 소리뿐이다. 어쩌면 내 기억의 실수로 그녀의 비명과 브레이크 소리를 혼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를 되찾고 싶다. 설사 그것이 비명이었더라도. - 105p




내일 죽는다면, 뭘 할 건데?

그러지, 반원을 그린 섬광의 궤적을 떠올려 축 늘어진 환의 절반과 바꿔치우자. 남은 절반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어떻게든 빛나게 할 수밖에 없다. 압도적인 빛을 발하는 환이 완성될 때, 나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언젠가 이 세상으로 돌아오리라. 그리하여,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에 침을 뱉고, 후회할 틈도 없이 죽여버리리라.

당장이라도 축 늘어진 환이 닫히려 한다.

그러나, 영원의 환이 완성될 때까지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한다.

- 143p




“날 잊지 말아요.”

도리고에 씨는 보랏빛 꽃들의 속삭임에 입을 맞추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귀에도 가련한 꽃들의 속삭임이 들렸다.

날 잊지 말아요……날 잊지 말아요……날 잊지 말아요…….

아, 이 얼마나 완곡한 방법인가. 그리고 이 얼마나 고리타분한 사랑의 형태인가. 하지만, 이렇듯 곱고 따스하다.

- 2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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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간 2008년 5월 2일~ 5월 2일 / 독서번호 940

김진명 지음 / 대교베텔스만 펴냄 (2007년)

핵무기라 하더라도 국가의 정상적인 작용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그 가치 판단은 획일적일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처럼 수백만의 아사자를 발생시키면서 김정일의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개발된 핵무기라면 달리 고려할 가치가 없다.

나는 우리 사회 일각에서 핵무기가 통일 후엔 우리 민족의 재산이 될 거라고 주장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학정의 결과로 태어난 핵무기라면, 그것은 무조건 폐기되어야 하며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이 부끄러운 역사의 산물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7p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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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간 2008년 5월 1일~ 5월 2일 / 독서번호 93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펴냄 (2006년)


사람은 때로 튼실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이다.

- 393p

아무리 사소한 몸짓이라도 그것이 이 세상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한 어떤 의미를 가진다. 의미는 욕망을 끌어안고 있다. 파탄을 일으키기도 하고,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는 욕망.

- 4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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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틀키드 2008-05-02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아픈 추리소설. 헌신적 사랑....때론 튼실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다른 이들을 구원할 수 있다.....
 



 

독서기간 2008년 4월 27일~ 4월 30일 / 독서번호 938




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펴냄 (2006년)




박원순: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길거리로 몰려나가야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서로가 다른 역할들을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사회 전체가 한 목소리만 내고, 한쪽으로만 몰려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잖아요. 저마다 조금씩은 다른 생각, 크게 보면 같은 방향이라도, 조금씩은 다른 생각, 크게 보면 같은 방향이라도, 조금씩은 다른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이 전체적으로 건강하고, 더 큰 일을 이룰 수도 있겠죠. 물론 힘을 모을 때 같이 모은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 55p




조정래: 결국 반공주의자들의 절대 다수가 친미주의자들이죠. 물론 친미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성적으로 판단되어야만 하는 것인데, 그 이성적 판단의 과정이 없어요. 미국이 북한을 핵무기 때문에 선제공격하겠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민족적 입장에서 볼 때 절대 옳지 않잖아요. 왜냐하면 6.25 단 3년 동안 남북한 전부 군인 포함해서 민간인까지 300만 명이 넘게 죽었습니다. 월남 전쟁이 8년인데, 170만 정도 죽었습니다. 6.25가 얼마나 무서운 전쟁인지 입증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6.25에 비해서 남북한 병력이 10배로 늘어났고, 화력은 100배로 증가되었습니다. 미국이 만약 선제공격을 하면 북한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면 또 남한이 가만히 있겠어요? 보유 화력을 다 사용할 겁니다. 그러면 7000만 우리 민족이 얼마나 죽겠습니까? 그것이 부시 발언의 위험성이에요. 왜 그런 걸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미국이 세니까 무조건 우리가 승리할 거라고만 생각합니까? 이런 바보 멍텅구리 같은 생각이 어디 있어요? 천치도 그런 생각 안합니다. 친미주의자들의 미국맹신주의는 민족의 참화 같은 것을 보지도 못하는 몰지각에서 비롯한 것이라고요.

- 87p




지승호: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러 들어가실 때 “감옥에 들어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표현하셨는데요. 선생님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인가요?

조정래: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문학이 기여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고, 참된 문학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역사를 개혁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분단된 모순의 역사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는 작가가 그 정도의 의지력과 작가의식을 가져야만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쓰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왔기 때문에 제게 문학은 인간의 존엄을 가장 높고 크게 세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 103p




지승호: 그동안의 피해의식 탓인지 성에 대한 주체의식을 여성들 스스로 많이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수동적이고. 다른 문제에 대해서 깬 것 같은 분들도 성에 대해서는 성을 자기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같이 즐기는 게 아니라 남자한테 주는 이런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광수: 그렇죠. 그래서『즐거운 사라』가 걸린 거거든요.『즐거운 사라』를 통해 제가 그걸 깨부순 거거든요. 어느 젊은 평론가는 우리나라 현대소설 사상 여자가 성을 주도한 소설은『즐거운 사라』가 최초라고 평을 해줬어요. 근데 그 말이 맞는 게, 그전까지의 여주인공들을 보면,『별들의 고향』의 경아라든가『감자』의 복녀도 (자신의 성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려다가 나중에는 자살하거나 파멸하거나 이런 걸로 끝나고 말죠, 마치 보봐리 부인이 자살하는 식으로. 그건 서양도 마찬가지였는데, 여성의 능동성에 대해서는 표현이 없었어요. 저도 비판한 게 있는데, 예를 들어서 박완서 선생의『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같은 게 페미니즘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인데, 거기에 나오는 성 묘사를 보면 여자는 성감이 전혀 없는 걸로 나와요. 남자가 하자니까 할 수 없이 응하고, 남자가 좋아하니까 자기도 억지로 비명소리 질러주고, ‘해줬다’ 이런 식으로 나오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런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길게 비평을 했었죠. 여자들도 특히 여학생들 리포트 받아보면 굉장히 성감이 발달해 있거든요. 에로틱 판타지도 많이 즐기고.

- 134~135p




지승호: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얘기의 핵심이 야한 정신 같은데,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야한 정신이라는 어떤 것입니까?

마광수: 전체보다는 개인, 봉건윤리가 아니라 자유주의 윤리, 그리고 특히 ‘야하다’를 들 야野 자를 써서 자연의 본성에 솔직한 사람, 이런 뜻으로 쓰죠.

- 139p




지승호: 요절하면 험한 꼴 덜 보고 가는 것 같습니다. (웃음)

마광수: 나이 먹고 이른바 원로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국 걱정을 하는 걸 보고 아주 웃겼다고요. 전부 어용이었는데, 어용학자들, 어용문필가 이런 사람들이 얼렁뚱땅 원로 대접을 받고, 친일파가 승진한 거나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청산이라는 게 없어요. 정치인들도 그런 것 같아요. (이해득실에 따라 얼렁뚱당)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이니까.

- 150p




문정현: 미군기지 확장도 그렇고, 새만금도 그렇고, 핵 폐기장도 그렇고, 이런 국책이라고 이르는 모든 사업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국민을 무시하고, 공갈 협박과 거짓 회유 같은 걸로 성취하려고 하는데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애초부터 까놓고서 “이게 필요하다”고 했을 때, 핵 폐기장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최대공약수를 내서 필요한 부분만 하면 되는 것인데, 지금 여기는 285만 평이 공동화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해요. 왜 그러냐하면 주한미군이 벌써 2만5000명으로 감축되는 것은 확실한 것 아닙니까? 장치 이것보다 더 감축되어서 1000여 명만 남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워싱턴 정가에서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 얘기는 순환 배치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대규모 지상군이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 167p




문정현: 넓게 보면 성서의 정신, 공회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데요. 성서는 가난하고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는, 소리를 내도 소리가 나지 않는 그게 성서의 시작부터 끝까지입니다. 공회라는 것은 이 사회의 고통은 바로 교회의 고통이요, 기쁨 또한 교회의 기쁨이다, 그러니까 사회속의 교회인 겁니다. 거기에서 약자의 편에 들고, 불의에 항거하고 있는 그것을 원형이 되도록 살아준 분이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의 수난사를 자세히 보면 바로 순교의 길입니다. 죽음을 택하는 길인 거죠. 그래서 그 원형을 좇아 사는 이것은 누가 판단을 못해요. 그래서 교회와 나의 관계는 뭐냐, 저는 주교님으로부터 하지 못하도록 경고를 받거나, 벌을 받거나 한 일이 없어요. 오히려 장려는 있었죠. 돌아가시기 직전에 전임 주교님이 제 손을 꽉 잡고 “문 신부님. 잘 살고 있는 거야.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줘” 했는데, 이게 유언이에요. 그 체계 내에서 그렇게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옷을 벗길 수는 없는 거죠. - 182p




지승호: 특별한 계획이나 끝으로 해주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문정현: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이렇게 사는 것으로 끝이에요. 제가 무엇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뭔데. 그러나 이렇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내 이상, 종교적으로 가면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고 죽는 거죠. 거기까지 이른다고 하는 것은 욕심일 거고, 내 소관이 아니에요. 그 길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행진하다가 어떤 한계에 부딪히면 가는 거죠. 욕심도 없어, 그냥 살다가 가는 거예요. - 183p




지승호: 외국에서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나 저명한 일본전문가인 찰머스 존스 버클리대 교수가 미국 경제의 취약성을 맹비판했다는 말씀도 하셨지요. 스티글리츠 교수가 한국에 대해 스웨덴 형을 참고해야 한다고 충고한 사실도 지적하셨는데요. 장하준 교수도 스웨덴의 사회적 대타협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했거든요. 우리가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정태인: 역사 자체가 미국에 대해서 상당히 의존적인 게 있어요. 우리 경제학자의 거의 90퍼센트가 미국에서 공부했을 겁니다. 그런데 미국 경제를 공부한 것이 아니고, 대부분은 이 사람들이 가서 미국 교수들 밑에서 한국 사례를 가지고 박사 학위를 따왔기 때문에 사실 미국 경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잘 몰라요. 오히려 재벌은 기업 간 경쟁이 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해서 조금 꺼리는 게 있거든요. 그러데 재벌들은 왜 찬성하느냐 하면 미국 기업들이 들어와서 규제를 다 없앨 거거든요. 한미 FTA 자체가 규제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고, 아까 얘기한 기업의 정부제소권은 규제를 무력화하는 역할을 할 겁니다. 그런 면에서 재벌들은 찬성하는 거죠. 그리고 종이 신문들은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누가『뉴욕타임스』를 보겠습니까?(웃음) 거기다가 방송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까지 열기기 때문에 한미 FTA를 찬성하는 거구요. 삼각동맹의 이해관계를 언론이 마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것처럼 포장해주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거죠. 현재로서는 세계적으로 그런 것들이 주류인 셈이죠. - 206~207p




지승호: 이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당부드릴 말씀이 있으신가요?

정태인: 뭔가 역사적인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좀 버렸으면 싶어요.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해서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미 FTA 같은 외부 쇼크, 이런 생각을 안했으면 좋겠어요. 개혁이라는 것도 때가 있고, 사람이 있고 하는 건데, 생각하는 것만큼 못가면 할 수 없거든요. 그 다음에 또 다른 사람이 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 얘기도 하죠. 스스로도 말씀하셨듯이 구시대의 막차면 막차답게 해야 하는데, 지금은 잘못 가고 있습니다. 이회창 후보를 공격했을 때의 그 기조, 이회창 후보가 내세운 잘못된 기조로 가고 있거든요. 그건 잘못된 거죠. 그러면 그 전에 이회창 후보를 공격했을 때 내세운 논리가 잘못된 거라는 얘기거든요. 아니면 그때는 맞았는데, 불과 2~3년 만에 바뀌었다고 하면 한치 앞도 못 봤다는 얘기고요. 하지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잘못 짚은 거고, 초조해서 자신감을 잃고, 관리들이 하는 얘기들만 듣고 ‘어쩔 수 없이 이게 대세인가보다’ 생각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어떻게 치장을 해도 원래 대통령이 처음 생각했던 게 옳은 거고, 실제 경제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그게 역사의 흐름입니다. 그런데 그걸 지금 자꾸 뒤집어서 생각하고 계신데, 그러기에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너무 막중합니다.

- 240~241p




지승호: 삼성공화국, 이건희 시대를 거부하기 힘들다는 말씀인 것 같군요. 그런데 삼성의 행복이 대한민국 전체의 행복이 아닌 케이스도 조금씩 발생하는 것 같거든요.

이상호: 삼성이라는 기업조직과 이건희 일가라는 인적집단을 구분해서 봐야 하는데, 동일시하려는 의도가 있죠. 이건희 회장 측에서는 끊임없이 ‘이건희=삼성, 삼성=국익, 국익=국민의 행복’이라는 등식을 심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각 등식 사이에는 엄청난 과장과 논리 단절이 있죠. 국익과 국민의 행복이 꼭 일치하지는 않거든요. 현대 정치학 개념에서 국익은 가장 복잡한 개념 가운데 하나입니다. 왕의 이익이 국익인 나라도 있고, 소수 독재자의 이익이 국익인 나라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국익의 개념이 변천되어온 역사가 있잖아요. 그런데도 계속 마법과 주문을 거는 거죠. ‘이건희=국익, 국익=나의 행복.’ 그래서 우리가 황우석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집단에 의한 또 다른 집단에 대한 살육이 있었던 거 아닙니까? 언론이라는 건 무원칙하거나 특정인의 이익에 의해 매겨진 등식이 부등하다고 하는 것을 밝혀주는 거거든요. 그렇잖아요. 그 등식이 부둥하다고 하는 것을 일깨워주고 끊임없이 일반 시민사회의 이해와 일치하는 등식을 매겨주는 것이 언론아 할 일이거든요. 우리는 “짐이 곧 국가”라고 하는 등식에 저항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등식에 부등호를 매겨온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역사를 수행하는 것이 언론인데, 지금은 신성불가침의 등식이 된 거죠. 그들과 나는 같지 않고, 그들의 이익과 내 이익이 같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영원히 자본 시대, 이건희 왕조의 일방적인 신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260~261p




지승호: 이인용 앵커 나름대로 언론인으로서 좋은 이미지로 남는 꿈을 버린 셈 아닙니까? 손석희 아나운서 같이 정치권의 러브콜을 극구 사양하는 분은 거의 소수인 것 같은데, 많은 방송인들이 기업이나 정치권으로 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상호: 거지근성 때문에 그렇죠.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집은 빵 만드는 집이고, 술 만드는 집이고 그러면, 자기네 가게가 아무리 보잘 것 없다고 해도 끝까지 남아서 자기가 술 만들다가 죽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사람이 계속 만들어서 2대, 3대가 하다보면 남는 거거든요. 삼성이 왜 삼성이라고 하냐 하면 똑똑하고 잘나가는 스타들을 다 데려갔어요. 그러니까 삼성공화국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건 건강한 게 아니거든요.

훌륭한 사람이 MBC에도 남아 있어야죠. 대한민국에 좋은 게 여러 가지가 있어야죠. 시민사회에도 좋은 사람이 끝까지 남아서 시민운동 하다가 죽어야죠. 언론에도 언론에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가 죽어야 휙 하고 바람이 불어도 언론이 모래성처럼 쓰러지지 않는 거죠. 삼성은 대중사회와 시장이 합쳐져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자기들이 강자가 되기 위해 다른 부분의 인재를 다 끌어들이고 있다고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다른 부분이 취약해져요. 다른 부분이 삼성의 눈치를 보고, 삼성의 인력권 안에 접어들게 되는 거죠. 그러면 가로수들이 태양 쪽으로 기울어지듯이 전체 사회가 삼성 쪽으로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삼성의 해바라기가 되는 거예요. 거기서 끌어들이니까. 그러니까 삼성공화국이라고 하는 거죠. 기자가 삼성에서 끌어들여도 가면 안 되죠. 시청자에 대한 배신입니다. MBC에서 수위를 하더라도 자기가 기자로서 자기 임무를 완성해야죠. 그래야 다음 기자가 와도 더 좋은 기자가 될 것 아닙니까?

지금 같으면 삼성 대변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MBC에 들어올 거 아닙니까? 옛날에 육군사관학교에 정치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갔던 것처럼. MBC에서 자꾸 정치하고, 삼성으로 가고 하니까 그런 사람만 들어올 거 아닙니까? 끝까지 언론 현장에서 남아서 국민들의 이해와 시민적 복리를 위해 일할 사람이 안 남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아무 얘기 안하잖아요. 이인용 선배 갔을 때 단 한 사람이라도 문제제기를 한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그게 대한민국 언론의 2005년의 현주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형편없는 언론계라고 한 겁니다. 제가 그거 썼다가 어떻게 됐어요? 그 글을 이인용 선배 때문에 쓴 거예요. 그거 한 줄 쓸려고. 그런데 그거 쓰고 엄청나게 불려 다니면서 혼났습니다.

- 271~273p




지승호: 여러 가지 화나고 분노하는 일이 많았을 텐데, 누군가가 대한민국의 딱 한 가지 문제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을 준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이상호: 전 교회 개혁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예수 가지고 사기 치는 사람들을 다 쫓아냈으면 좋겠어요. 저한테 권한이 생긴다면 예수 이름 팔아 먹는 나쁜 사람들 혼내주고 싶어요. 부시도 예수 이름 팔아서 대량 학살 하고 있고, 우리 사회를 봐도 정말 이해 안 가는 게 많잖아요.

예수가 죽은 이유가 뭡니까? 예수가 수구기득권과 타협 한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마지막까지도 가장 비타협적으로,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로 임했잖아요. 그리고 자기한테 주어진 사명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잖아요. “아버지여, 저로부터 이 잔을 거두어 주소서”라고 마지막까지 버티기도 했었지만, 가면서 “아버지 뜻대로 이루어졌나이다”하고 갔잖아요.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물론 수많은 훌륭한 성직자들이 있지만, 대한민국 교회조직을 보면 ‘만약에 예수가 오면 어떻게 하려고 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저러나 싶기도 하고요. 예수가 오면 맨 먼저 저기들부터 내칠 텐데, 아마 예수가 영영 오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그러는 거겠죠.

- 280~281p




최승호: 제가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얘기했던 것은,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진영 논리로 인해 진보 언론은 보수 쪽에서 하는 것의 진정성을 인정해주지 않고요. 진보 쪽의 색깔만으로 보려는 게 있습니다. 보수 언론은 진보 언론이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사태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고 왜곡하고 있죠. 그런 언론 내부 진영 싸움으로 말미암아 팩트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팩트라도 제대로 전달한 다음에 주장을 전달하면 독자나 시청자들이 팩트만 가려서 보고나서 주장에 대해서는 ‘저건 쟤들의 주장이구나’하면 되는데, 그것을 팩트에다가 적용시켜서 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여론이 늘 분열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언론에 상당히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304p




최승호: 어떻게 보면 우리 언론들은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사안을 종합적으로 보고 정확하게 전달하기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사안을 돋보이도록 하여 자기네 보도가 다른 언론보다 ‘튀도록’ 하기 위해 때로는 사실을 왜곡․조작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 310p




최승호: 글쎄요.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이거는 정말 문제다, 이거는 정말 이렇게 가면 안 되는데…’하는 진정성이랄까, 그런 부분들이 점점 언론인들 사이에서 사라지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국민이 제대로 판단하도록 보도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여요. PD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하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에요. ‘왜 내가 굳이 그런 걸 보도해서 분란을 일으키고, 스스로를 힘들게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거죠. 언론인 개개인이 팩트와 기자적 양심에 따라 보도하기보다는 점점 데스크나 언론사 전체가 요구하는 방향에 함몰되는 것 같아요. 결국 조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도만 남게 되고, 시청자나 독자가 아니라 조직 내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즉 조직의 입맛에 맞는 보도 거리만 찾으려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는 듯싶어 걱정됩니다. - 312~313p




언론사 노조는 처음부터 월급 많이 올리려고 만든 노조가 아니고, 보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만든 노조란 말이죠. 그런데 지금의 방송사 노조는 노조라는 형태는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 구성원들의 이익을 지키는 쪽으로 활동이 이동해 있는 상황이거든요. 신문사 노조는 노조가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네들의 생존권조차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있어요. 결국 언론인들이 자기 발언을 하는 그런 공간을 스스로 확보하려면 혼자서는 안 된고 연대를 해야 하는데, 다른 언론인들과 언론사에 있는 내부 동료들과 어깨를 같이 걸고, 이런 언론 자유의 영역, 편집권 독립의 영역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점점 더 어려워질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 언론인들이 자사의 이익에 종속되어서 종속된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에 머물다 보니까 멀리 못보고, 스스로 자기 목에다 개 줄을 걸어 가지고 손잡이를 사주들 손에 쥐어주는 형국이 되고 있지 않느냐’하는 생각을 합니다.

- 324p




최승호: 언론인들이 개별 진영의 하나의 하수인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그만큼 회사인들이 양산되고, 그 속에서 어떤 연대나 언론인들 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그런 현상이 자꾸 반복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옛날엔 리영희 선생이나 송건호 선생, 김중배 선생 같은 지사적인 언론인이 있어서, 그 분들이 “이건 옳지 않아”하고 얘기하면 그게 진실인 것으로 사람들 가슴에 와서 꽂혔는데, 지금은 그런 존재감을 지닌 언론이 없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 같은데요. -333p




지승호: 인터뷰의 매력은 뭔가요?

지승호: 도올 선생이 그랬나요? ‘대화는 편견의 확인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발전할 수 있다’고. 그게 대화의 힘인 것 같아요. 유시민 의원은 “생각은 힘이 세다”고 말했는데, 저는 “대화는 힘이 세다”고 바꾸고 싶습니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칼럼은 일정 부분 네거티브할 수밖에 없지만 인터뷰는 포지티브할 수 있거든요. 그 사람에게 멋진 말, 메력적인, 희망적인 부분을 듣고 말하니까요. 그게 맘에 들더라고요.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이 있어, 이런 사람과 함께 고민하고, 이 사람이 못하는 부분은 우리가 채워가자, 이렇게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방식이거든요. 저는 이게 좋아요. 제 인터뷰의 방식도 그렇게 갔으면 좋겠고요. - 3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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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간 2008년 4월 23일~ 4월 24일 / 독서번호 934




플라톤 지음 / 이 환 편역 / 돋을새김 펴냄 (2006년)




그렇다면 트라시마코스, 결론은 자명해졌소. 어떤 기술이나 어떤 통치도 그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 즉 기술은 기술의 대상, 통치는 통치의 대상에 이익을 주는 것이오. 그러니까 통치자로서의 강자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기보다는 통치 받고 있는 약자의 이익을 도모한다고 봐야 하오. 그러므로 참된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언제나 대상의 이익(국민의 이익)을 돌보기 마련이오.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도 돈이건 명예건 보수가 주어져야 하며 그 지위를 거부할 경우엔 형벌이라도 주어져야 하는 거요.

- 45p




그러면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하세. 정의란 각자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고 이는 국가나 개인에 있어서도 동일하다는 것이지. 제화공은 구두 만드는 일에, 목수는 집 짓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의네. 하지만 정의란 외면적인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인 것과 관련돼 있네. 다시 말해 자신의 내면을 잘 조절하고 지배와 복종, 협력을 마치 조화로운 음정을 통해 아름다운 선율을 이끌어내듯이 변주해내는 일이지. 그러한 것이 절제고 그 절제의 결과물이 인격이라는 것이지. 그런 연후에 비로소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돈을 벌수도 있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네. 그때의 그 마음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주는 행위가 옳고 아름다운 행위이며, 그 행위를 담당하는 지식이 곧 지혜인 셈이네. - 144p




그러니까 우리가 세운 국가에서는 한 개인의 불행이 국가 전체의 불행이 돼야 하네. 행복이나 기쁨, 쾌락, 고통, 슬픔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네. 개인의 이익이나 손실이 국가 전체에 파급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되기 때문이지. - 157p




결국 우리는 최대의 난관에 부딪혔네. 글라우콘! 이상국가란 말일세. 철학자들이 국가를 통치하지 않는 한, 혹은 통치자들이 철학을 공부해 국가를 다스리지 않는 한 실현되기 어려운 것일세. 우리가 지금까지 얘기해온 이러저러한 것들이 햇빛을 볼 수 없다는 말이네. 이런 말은 참으로 입 밖에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네.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하지 않는 한 어떤 방법으로도 이 세상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없으니 말이야. - 161~162p




이와 마찬가지로 선은 인식되는 것들에 대한 지식의 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그 사물의 존재와 본질의 창조자이기도 하네. 즉 선은 존재라기보다 그 위엄과 지위에 있어 존재를 초월해있는 어떤 것이네. - 191p




내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면 교육에 관한 이러한 생각도 음미해봐야 할 걸세. 즉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이란, 장님의 눈에 빛을 넣어주는 식의 주입식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네. 우리가 탐구한 바에 의하면, 우리의 영혼 속에는 이미 학습에 필요한 능력이나 기관이 갖춰져 있네. 그래서 밝은 곳을 보기 위해서는 몸 전체의 기능을 전향시켜야 하듯 영혼으로 하여금 밝은 부분을 볼 수 있도록 관조하면서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네. 그것이 최고의 존재인 선을 찾아 터득하는 첩경이라고 우리는 말해왔네. - 203p




그렇지. 그게 핵심이네. 보통의 다른 지배자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줄 수 있어야 하네. 그래야만 부유한 자가 국가를 지배할 수 있고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있네. 부유한 자란 재물이 많은 자가 아니라 덕과 지혜가 풍부한 자를 의미하지.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국가를 지배하게 되면 그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돼 있어 국가의 기강은 무너지고 정치는 실종될 걸세. 그렇게 되면 그들 자신은 물론 나라도 망하겠지. - 206p




교육을 강제해 노예적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 억지로 시켜서는 안 되네. 어릴 때의 학습은 오락처럼 이루어져야 하며, 그래야만 타고난 소질을 파악해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으니까 말이네. - 217p




한데 이야말로 ‘건너다보면 절터’네. 말하나마나 결과가 뻔하다는 예기지. 재물에 눈이 어두워 황금을 밝히다보면 정치 체제는 무너지게 돼 있네. 부와 덕은 저울의 양 끝과 같아서 한 쪽이 올라가면 한 쪽은 내려가게 돼 있는 법.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 하다보면 부패가 쌓이고 이전투구가 그칠 날이 없게 되지. 금전만능주의가 득세하면서 부자가 대접받는 반면 덕이 있는 사람들은 멸시당하네. 이렇게 되면 누가 더 돈이 많고 적으냐에 따라 정치적 발언권이 정해지지. 결국엔 법이 어떻게 바뀌겠는가? 재산이 정해진 기준에 미달하면 시민권의 자격은 물론 관직에도 나아갈 수 없네. 결국 명예 체제는 붕괴하고 과두 체제가 등장하게 되는 걸세. - 229~230p




그런데 민주 체제에서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일이 있네. 이 체제가 발전하다보면 사람들은 세 부류의 계급으로 나뉘네. 우선 가장 힘이 강해 멋대로 날뛰는 계급이 있네. 이들은 파벌을 지어 최대의 자유를 누리면서 정권을 장악하고 있지. 다음으론 부자들의 계급이 있는데, 이들은 돈벌이에 관삼이 많아 항상 재물을 모으지. 그렇긴 하지만 수벌(지배자)들에게 착취당하는 자들이네. 자신이 모은 꿀을 뺏기는 자들이지. 마지막으로 민중으로 분류되는 계급의 사람들이 있는데, 재산도 별로 없어 손수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네. 이들은 돈도 권력도 없지만 힘을 합치면 무서운 세력이 되지. - 237p




현명한 인간이라면 자신의 고귀한 목적을 위해 평생을 바칠 걸세. 학문을 귀히 여겨 심신을 바로 닦고 야만성을 길들여 사악한 즐거움에 빠지지 않도록 절제하지. 재물을 취할 때도 분에 넘치지 않도록 주의하고 세상의 그릇된 찬사에도 휩쓸리지 않을 걸세. 그는 늘 자신의 세계를 관조하며 살 걸세. 무질서나 태만이 침입하지 않도록 경계하며 혼란을 방비하겠지.

- 258p




최소한의 국가가 완성되면서 계층이 형성된다. 플라톤은 그 세 계급을 통치자 계급, 보조자 계급, 생산자 계급으로 나눈다. 정의란 이 세 계층 사이의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으로 말하면, 맡은 바 자신의 일에 충실한 것이 정의다. 목수는 열심히 집을 잘 짓고, 수호자는 나라를 잘 지키며, 통치자는 성심을 다해 나라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증진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플라톤은 이 정의의 문제를 개인의 영혼에도 그대로 대입시켜 세 가지 요소로 구분해 설명한다. 인간의 행동은 세 가지 원천, 즉 지식, 기백, 욕구에서 흘러나온다. 지식에서 영혼의 빛을 인식하는 이성이나 지혜가 나오고 기백에서 열정과 용기 등이 나온다. 또 욕구에서는 삶의 의지에 해당하는 여러 욕망들, 즉 성적 충동이나 식욕, 물욕 따위가 나온다. 영혼의 이러한 성질은 만인에게 공통된 것이지만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욕심쟁이가 되고 어떤 이들은 용기의 화신이 되며 어떤 이들은 철학자가 된다.

- 292p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통해 그가 했던 말을 음미하는 것으로 자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견했음에도, 그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설혹 실현 불가능한 아름다운 세계라 할지라도, 그가 그린 그림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의 가치에 우리는 주목해야 하리라. - 2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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