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간 2008년 5월 2일~ 5월 3일 / 독서번호 941




가네시로 가즈키 지음 /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펴냄 (2002년)




내 운명은 누군가에게 매몰차게 도끼를 내려찍은 일이 있을까?

- 35p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있어도, 안 만나면 그 사람은 죽어버려.”

그도 얼굴을 내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람은 다 죽잖아. 그러니까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는 거야. 가령 추억 속에 살아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버려.”

- 54p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는 없었다. 중요하고 소중한 일은 약하디 약한 얼음조각 같은 것이고, 말이란 망치 같은 것이다. 잘 보이려고 자꾸 망치질을 하다 보면, 얼음조각은 여기저기 금이 가면서 끝내는 부서져버린다. 정말 중요한 일은, 말해서는 안 된다. 몸이란 그릇에 얌전히 잠재워 두어야 한다. 그렇다, 마지막 불길에 불살라질 때까지. 그때 비로소 얼음조각은 가장 아름다눈 모습을 보이며 몸과 더불어 천천히 녹아흐른다.

- 58p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난 지금 행복해.”

그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 내 기억은 그녀만으로 가득하니까. 나를 게란처럼 반으로 탁 깨면, 그녀하고의 추억만 흘러나올 거야.”

- 68p




내게 누군가를 죽일 힘은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분명하게 생각한다.

언젠가,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고. 그리고 그 사람을 살아 있게 하기 위해서, 그 손을 절대 놓지 않으리라고. 그렇다, 설사 사자가 덮친다 해도.

결국은 소중한 사람의 손을 찾아 그 손을 꼭 잡고 있기 위해서, 오직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싱겁게 흘러가는 시간을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요?

- 73p




택시를 잡아타기 직전, 그녀가 느닷없이 내 귀에다 조그만 소리로 뭐라뭐라 속삭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는 그 말을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다. 분명히 들었는데, 기억의 어느 구석에도 남아 있지 않다. 내 귀에 남아 있는 것은, 그때 근처에서 울린 자동차의 비명 같은 급브레이크 소리뿐이다. 어쩌면 내 기억의 실수로 그녀의 비명과 브레이크 소리를 혼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를 되찾고 싶다. 설사 그것이 비명이었더라도. - 105p




내일 죽는다면, 뭘 할 건데?

그러지, 반원을 그린 섬광의 궤적을 떠올려 축 늘어진 환의 절반과 바꿔치우자. 남은 절반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어떻게든 빛나게 할 수밖에 없다. 압도적인 빛을 발하는 환이 완성될 때, 나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언젠가 이 세상으로 돌아오리라. 그리하여,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에 침을 뱉고, 후회할 틈도 없이 죽여버리리라.

당장이라도 축 늘어진 환이 닫히려 한다.

그러나, 영원의 환이 완성될 때까지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한다.

- 143p




“날 잊지 말아요.”

도리고에 씨는 보랏빛 꽃들의 속삭임에 입을 맞추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귀에도 가련한 꽃들의 속삭임이 들렸다.

날 잊지 말아요……날 잊지 말아요……날 잊지 말아요…….

아, 이 얼마나 완곡한 방법인가. 그리고 이 얼마나 고리타분한 사랑의 형태인가. 하지만, 이렇듯 곱고 따스하다.

- 2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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