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죠의 기묘한 모험 1~12 세트 - 전12권 죠죠의 기묘한 모험
아라키 히로히코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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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결국 나이가 든다는 것은 추억을 그만큼 더 많이 되새김질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내가 왕년에로 시작하는 네버엔딩 자랑질은 물론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옛 것들을 조우할 때마다 짐짓 벅차오르기까지 한다. 어르신들이 들으시면 어린 녀석이 까분다고 하시겠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남자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야전(!)보다는 주로 혼자 놀기에 더 편안함을 느꼈거나, 심지어 즐겼던 이들은 대번에 기억할 것이다. 바로 오백 원짜리 해적판 일본 만화 말이다. <드래곤 볼> <공작왕> <란마1/2> <북두신권> <닥터 슬럼프>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주옥같은 작품들이 떠오른다.

 

정작 보고 싶은 만화는 맨 끝에 10여 장 정도 담고, 책의 대부분을 다른 만화로 채우는 심히 상도에 어긋나는 행태를 저질러도, 우리는 거의(!) 군말 없이 오백 원을 지불하곤 했다. 궁금하니까! 그렇게 소년은 자라났던 것이었다!

 

이쯤에서 디펜스 들어가야겠다. 물론! 우리 만화도 재미있는 게 많다! 전설 같은 작가들,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저 하늘의 별만큼 많았다. 일본에 비해 꽤 많은 격차를 두고 싹튼 국내 만화계였음에도, 뛰어난 작가들이, 작품들이 참 많았다. , 여기까지!

 

왜색문화, 그들의 잘못된 세계관, 역사관, 폭력성 심지어 변태적인 여성관(!)에 오염될 수 있다는 어른들의, 진실성이 아주 조금 담긴 우려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그런데 어른들은 그걸 어떻게 먼저 알았을까). 어려서 일본 만화를 즐겨본 녀석들이 커서는 야동에 빠지게 된다는, 어디 근본도 없는 헛소리도 공허하게 들린 바 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물론 ‘So What!’이다. 어쩌라고요. 취존합시다, 우리 좀.

 

변함없이 또 이야기가 이탈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이 어마무시한 작품을 온전히 다 읽지도 않고서, 하긴 아직도 완결된 것은 아니니 할 말은 있다만, 전체 작품 중 기껏 1~2부에 해당하는 1~12권까지 읽은 주제에 감히 작품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개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맘이다. 그 전에 도주하겠지만, 배 째시라.

 

이 작품은 그야말로 전설 속에 회자되던 걸작이다. 해적판으로만 떠돌았고, 일본 만화계는 물론, 국내 만화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1986년부터 지금까지 연재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전설이 아닌가! 단행본으로만 이미 100권이 넘었고, 지금까지 누적 판매 수만 7,000만 부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와 맞먹는다.

 

일본 만화를 보며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소재의 다양함과 끈기였다. 삶의 모든 부분을 아우르는 듯 무수한 소재가 넘치고, 또한 10년을 훌쩍 넘기며 연재되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 작가의 내공도 내공이지만,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터운 팬 층이 형성되어 있으면, 어느 작가가 신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온갖 오명과 억압 속에 공개 화형식이란 웃지 못 할 촌극까지 벌이며 만화를 무슨 바이러스 취급하던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를 생각해보면, 우리 만화계를 지켜온 작가들에게 실로 존경심이 들게 마련이다. 그들은 실로 선구자가 아니었던가.

 

이 작품이 단순한 힘겨루기 격투만화에서 심리전, 트릭 등 두뇌 싸움을 도입해 소년 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나, 스탠드(초능력으로 형상화한 캐릭터) 대결, 능력배틀물(서로 다른 등장인물들이 자신만의 초능력으로 대결) 등 현재 무수히 많은 작품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더불어, 말도 안 되는 근육질을 자랑하는 등장인물들(!). 유치찬란하지만 그만큼 의미심장하고(!) 비장하고 열라 멋쥔(!) 대사들. ‘쿠오오오~!!!!’ ‘두둥~~!!’ ‘쏴아아~~~!’ 등 악기소리를 의성어로 시각화한다거나, 인물의 심리를 나타내는 효과음을 의성어로 도입해 장면의 긴장감을 더 높이는 등, 작가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이른 바 새로운 붐을 일으켰다. 지금은 많은 작가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이 작가가 이른 바 원조였다는 사실. 이래저래 대단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예전 <북두신권>(원제는 북두의 권이다)을 보며, 그야말로 진한 감동에 허우적대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전히 내 생애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는 이유다. ‘죠죠역시 북두신권 등장인물들에 버금가는 근육질을 자랑한다. 그렇다면 감동 역시 같을까? 글쎄, 그건 끝까지 봐야 할 것 같다. 12권 정도로는 평가가 역시 쉽지 않다. 물론 작품의 재미는 만만치 않다. 도저히 1986년부터 시작된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 전설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다.

 

예전 학창시절에는 이른 바 만화방을 참 자주 다녔다. 질풍노도의 시절, 없는 돈에 그나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 중 하나였다. 아울러 만화방 누나 혹은 아줌마에 반해 열심히 출근 도장을 찍었던 기억도 아련하다.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이다.

 

지난 해 아내와의 기나긴 협상 끝에 <원피스> 구입에 대한 재가(!)를 받아냈다. 만화를 구입한다는 것은, 유부남으로서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과감히 지른(!) 이후는 아마도, 여전히 내 마음 어디엔가 살아있는 추억을 간직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아껴가며 보고 있는데, 솔직히 시간도 생각보다 부족하다. 젠장.

 

누구나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두말할 필요 없다. 위대하고 눈물겨운 일이다. 자식들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니들이 술 맛을 알아?’라고 주절거리며, 주접을 떤다. 아주 가끔, 아주 가끔은, 괜찮으니까 아버지들이여, 어머니들이여, 만화책을 붙잡고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키득거려보자. 범죄 아니다.

 

이미 <원피스>를 질렀기에, <죠죠>는 구입이 아닌 여타 방법으로 볼 수밖에 없겠다. 20대에 시작해 50대가 넘는 지금까지 한 작품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도 뭐 하나 그렇게 생애에 걸쳐 이뤄내고 있는 것이 과연 있는지, 생각해본다. 힘들겠지만, 그래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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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제2주의 경영 - 이익과 효율은 두 번째다!
마키오 에이지 지음, 이우희 옮김, 유영만 감수 / 토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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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 <미생>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장면 그리고 대사(!)가 있다. 과거 오상식 과장의 상사였던, 지금은 회사를 나와 자영업을 하고 있는 선배가 오 과장에게 던진 한 마디.

 

회사가 전쟁터라고 했지? 떠밀릴 때까지 버텨라. 밖은 지옥이다.”

 

평생 장사라고는 인터넷 중고품 직거래 판매도 해본 경험이 없지만, 이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얼마나 많은 가장들이 이 시간에도 지옥으로 내몰리고 있을까? 혹시 전국에 있는 치킨집이 몇 개 인줄 아는가? 커피전문점은? 고기 집은? 그리고 한 해 폐업하는 가게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는가?

 

이것저것 해보다가 안 되면 장사나 하지 뭐이 말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것인지, 이미 많은 이들이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렇다. 장사는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보라.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생계를 꾸려가는 데 이보다 더 척박한 환경이 있을까. 대기업들의 추악한 탐욕으로 골목 상권마저 이미 빼앗긴지 오래인 지금, 동네 치킨집, 피자집, 커피전문점은 하루에도 몇 개씩 생겼다가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안전망이 턱없이 부실한 이 땅에서 우리 아빠들은, 엄마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치킨을 튀기고 피자를 굽는다.

 

책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책은 경영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말리는, 그리고 대부분 실패를 점친 무모한 사업을 성공으로 뒤바꾼 이의 이야기다. 상식파괴, 역발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기적과도 같은 성공 이야기. 장사를 통해 성공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 부러워할 만한, 그런 신화이다.

 

많지 않은 인구 중 1/3은 노인층이고, 게다가 위치도 바닷가 시골마을. 이 곳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대규모 마트를 세웠다. 그리고 23만 점에 달하는 상품을 구비하고 관청과의 줄다리기 끝에 24시간 영업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영업방식을 만들어냈다. 상권 인구가 적어도 30만 명 이상은 되어야 수지를 맞출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이 무색하게, 겨우 27천여 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마을에 세워진 AZ마트. 하지만 첫 해 마트는 누적고객 650만 명, 매출 1천억 원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가장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 과연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 무엇이 사람들을 이 황당한 마트로 이끌었는가. 게다가 책의 저자이자 AZ마트의 CEO는 대형마트는커녕 작은 소매점 하나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던 자동차 엔지니어였다. 그는 어떻게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일까.

 

앞서 말한 대로, 책은 경영서이다. 성공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책에 주목한 이유다. 저자는 자기본위에서 타인본위로, 손익 판단보다는 선악 판단을 먼저하고, 이익보다는 고객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성공의 열쇠였다. 오직 나만 성공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고, 소비자가 먼저 만족하고, 또한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행복하면 판매자 역시 행복하게 된다는 장사의 정도(正道)’. 이 단순함을 지킨 것이 바로 성공의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AZ’라는 이름은 고객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갖추어 놓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이는 단순한 홍보 전략이 아니었다. 마트는 지역 주민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들을 우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이라면 회전율에 관계없이 진열하는 풀 라인 업을 고수했다. 상품 가격 역시 매일 최저가, 납품은 지역 업체를 최우선적으로 선정했다.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전단지 한 장 돌리지 않고도, 650만 명이라는 고객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규모의 힘이다. 누구나 11,650제곱미터, 상품 수 23만 점, 24시간 영업을 현실로 옮길 수는 없다. 저자 마키오 에이지는 비록 많은 노력을 거둔 결과이겠지만, 시작부터 이러한 규모의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작디작은 규모의 소매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누구나 250가지 종류의 간장을 구비해 놓을 수는 없다.

 

글머리에 정글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자영업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어려움을 말했다. 이들은 대부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 아무리 상식파괴가 중요하고 역발상이 필요해도, 게임의 룰 자체가 불공정하다면 성공은커녕 생존도 요원하다. 더구나 소규모의 자영업이라면 거대한 대기업에 맞서 싸울 수 없다. 오히려 철저한 을이 되어 온갖 갑질을 감당해야 한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계속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상식 파괴로 성공신화를 창조한 일본의 어느 마트 사장에 대한 존경심과 부러움으로 끝내선 안 된다. 어쩜 이 땅에도 그에 못지않은 수많은 이들이 더 많은 땀을 흘리고 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상식파괴와 역발상이 통할 수 있는 공정하고 깨끗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불의와 편법과 온갖 불공정이 판치는 사회에서 순수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적도 정의로워야 가능하다.

 

어느 대기업의 총수는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사회를 긍정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1명이 온전히 자기 노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이다. 그리고 누구나 노력한 만큼 최소한의 자기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국가의 역할이다. 그리고 대기업들에 필요한 자세이기도 하다.

 

죽도록 힘들다는 말이 일반명사가 되어버린 시대에서, 누구나 AZ마트와 같은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당신도 노력하면, 당신도 끊임없이 발상의 전환을 하고 창조적인 경영 철학을 갖는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따위의 이야기는 더 이상 대중에게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소한 공정한 룰을 세워, 그 룰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되는 그런 환경을 먼저 만들자는 것이 백배는 더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전혀 의도치 않았겠지만, 이 책을 소개하며 은근히 개인의 실패를 온전히 모두 개인에게 돌리는 뉘앙스를 풍기는 거대 언론들의 이야기들에 짜증을 느껴, 이렇게 두서없이 주절거렸다.

 

물론 그런 불공정한(!) 서평 없이 공정한 마음으로 읽어도 충분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진정한 장사, 상도를 생각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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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하루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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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삶이, 어느 생이 온전히 심상할 수 있을까. 애초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파격 위의 파격만을 찾고, 심지어 삿된 비정상 안에서까지 특별함을 갈구하는 무참한 시대에, 언뜻 평범해 보이는 것들은 외면받기 십상이다.

 

나의 어리석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속 빈 강정마냥, 헛헛한 녀석이 객기와 치기로 짐짓 유별남과 특별함을 추켜세웠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닌데, 평범함을 무시하고 홀대하였다.

 

그나마 덜 어리게 된 지금, 예전 어렸던 때를 생각해보면, 참 어려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끄럽지만 그것 역시 내 삶이었고, 시간이었으니 무어라 변명하기도 어렵다. 암매한 녀석이다.

 

‘If you want the present to be different from the past, study the past’

 

스피노자는 이렇게 지난 시간을, 역사를 먼저 알아야 다름이 가능하다고, 오늘이 어제와 같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 해 전의 이야기들이 이미 촌스러운 유물로 전락해버리는 지금, 과연 옛 것, 어제의 이야기, 먼저 이 땅에 살다 간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고 또 두렵다.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 앞에서도 비슷한 감상이 들었다. 영화를 둘러싼 많은 논쟁과 지나친 과장들은 차치하고라도, 내게 다른 그 무엇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이전 영화 <써니>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그 이후 영화 <쎄시봉>등도 얼추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시대공감이다. <국제시장>을 보는 도중, 옆 좌석의 노인이 그야말로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저 노인의 눈물을 끌어낼 수 있는, 그의 인생을 공감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지금껏 참 많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어쩔 수 없이 들었다.

 

때문이다. 어설프게 한 살 씩 나이를 먹으면서 새삼 박완서라는 작가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뛰어난 작가이자 동시에 시대를 훌륭히 담아낸 풍속화가이기도 했던 박완서. 그의 작품은 여전히 소소하지만 묵직하게, 그리고 목울대를 간질거리다 결국 울컥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작가의 또 하나의 미덕은, 흔해 빠졌지만 그럼에도 가장 힘들기도 한 근면함을 평생 보여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이뤘을 뿐 아니라, 그가 떠난 지금도, 그의 존재와 부재만으로도 많은 작가들의 등을 떠밀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마지막 소설집이 된 이 책이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생전에 마지막으로 묶어낸 소설집 이후 작고하기 전까지 발표한 세 작품과,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동료, 후배 셋이 각자 추천한 세 작품이 담겨있다. 어쩜 박완서라는 삶과 이름에 걸맞은 마무리가 아닌가.

 

도대체가 어마어마한 세상이다. 이유와 근본을 묻지 않는 규모에 압도되고 이치와 자연스러움을 벗어난 엽기가 주목받는다. 사람들은 점점 더 화를 참기 어려워하고, 순간의 아찔함을 참지 못해 영영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어쩜 그렇기에 작가 박완서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인간으로서의 자기 증명이라 정의한 작가의 지극히 당연한,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이야기가 새삼 특별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보면 성공하는데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문학을 읽어야 하는 까닭은 인간이 되어가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라던 작가. 일생 동안 인간의 나약함과 부질없음, 그리고 끈질긴 삶의 순환과 번쩍거리는 아름다움을 작품에 담아왔던 작가 박완서.

 

허투룬, 허무한 특별함을 탐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의 작품들은 아주 오랫동안 따뜻한 위로로 남을 것이다. 몸과 마음의 몸살로 쩔쩔매는 지금, 귀한 보약 한 첩을 얻어먹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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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끝이 시작이다
문재인 지음 / 바다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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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꽤나 커다란 일들을 겪은 지난 몇 주였다. 그 상황 속에서 쉽사리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두 해가 지난 옛 독서의 기억을 끄집어내 서평을 쓰는 것은 더더욱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결국 긴박했던 며칠이 지나고 다시 책을 집어 들긴 했지만 여전히 온전한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끝내는 이것도 지나가겠지만, 역시 순간순간은 참 쉽지 않다.

 

그동안 100% 지켰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읽은 순서대로 서평을 써왔다. 하여 이번 차례를 보니, 얄망궂다. 이 책이다. 지난 대선에서 정말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문재인 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반성문이자 새로운 도전을 알리는 제2의 출사표다. 그는 대선 패배 이후 1년 만에 이 책을 펴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뒤 지금까지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비판과 지지를 늘 함께 받았으며, 결국은 제1야당의 대표직을 맡게 되었다. 그에게 아낌없이 한 표를 던졌던 49%의 시민들이 여전히 한 결 같이 그를 지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는 여전히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생각해 본다. 그가 패배한 후, 그리고 상대가 승리한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어떠한 변화를 겪어왔을까. 어떤 상처를 받았고, 어떤 위안을 얻었을까. 아쉽게도 그리고 가슴 아프게도 예전보다 더 많은 이들이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해 416일 이후로 간신히 붙잡고 있었던 이성과 상식의 끈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 땅의 모든 시민들은 목울대를 사정없이 때려대는 아픔에 몸 둘 바를 찾지 못했다. 차가운 바다 아래 잠든 아이들의 이 허무하고 애절한 죽음들 앞에 어떤 이유로든 무거운 부채감을 느껴야만 했다. 온전한 사회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온 국민을 처절한 슬픔 속에 빠지게 만든, 누구하나 할 것 없이 죄스러워, 하늘도, 바다도 온전히 바라볼 수 없었던 비참함, 그 이유를, 그 책임을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책의 저자이자,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그리고 어쩌면 다시 한 번 유력한 대선후보가 될지 모르는 정치인 문재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는 서문을 통해, ‘패배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패장에게 남은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패배를 거울삼아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혔다. 책을 펴낸 동기이다. 그리고 아픈 마음을 털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전히 우리 현실정치에 대한 참여자들의 이렇다 할 기록이 부족한 현실에서, 가장 최근, 대선이라는 국내 최대의 정치 이벤트의 실제 참여자의 기록은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배한 자의 증언이 어쩌면 미래의 승리를 염원하는 가장 큰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문재인의 제2의 도전을 알리는 비장한 출사표이기도 하였다. 이제 현 정부의 임기가 3년 남짓 남은 시점에서 그는 제1야당의 대표가 되어 정부와 여당을 견제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때문이다. 그에게 여전히 물어야 하는 이유가. 그는 다시 시작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부정으로 얼룩진 다소 억울한 패배였지만, 자신은 당당히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할 터이니, 그를 믿고 지지해주었던 많은 이들도 함께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책을 펴낸 지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과연 제대로 된 시작이 있기는 하였을까.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책임을 온전히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부의 무능이나 독선은 차치하자. 어쩌면 시민들에게 더욱 아픈 것은 정부의 무능과 독선 앞에 단 한 번도 속 시원하게 나서지 못한 야당이 아닐까. 어느새 같은 패거리의 논리, 권력이 주는 안정감에 빠져, 삶의 현장에서 들리는 많은 외침들이 들리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정동영, 천정배 등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은 정치인들이 당을 떠나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고 있다. 여전히 내부에선 이른 바 계파 갈등의 뿌리가 남아있다. 많은 시민들이 야당으로서의 새정치민주연합의 투지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의지는 부족한데, 변명은 늘 끊이지 않는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만들어낸 그 열정과 감동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정상에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이 서 있다.

 

책은 정치인 문재인, 인간 문재인을 잘 보여준다. 그는 여전히 진흙탕 바닥인 현실정치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는 자신이 현실정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기억해선 안 될 것이다. 그는 전체 유권자 절반의 지지를 얻었다. 이는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을 준 것을 의미한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훌륭한 선비나 혹은 그리운 누군가의 절친한 벗으로 끝날 수 없다. 유능한 정치인, 시민들의 이야기를,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안철수의 길이 여전히 미완성이라고 믿고 싶듯, 문재인의 길도 여전히 진행형이라 생각한다. 그는 여전히 적지 않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다. 그리고 지난 이명박 정부와 현 정부에서 여실히 보여주듯, 그는 깨끗함을 가지고 있는 정말 몇 되지 않은 정치인이다.

 

절망이 어김없는 시대, 포기가 새삼스럽지 않은 시대. 오히려 그렇기에 희망을 만들고 삶의 진보를 꿈꿀 수밖에 없는 시대. 아직 문재인은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고, 그리고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비루하게라도 그렇게 믿고 싶다. 지금의 야당이 진정한 야당의 모습으로 새로이 태어날 수 있도록, 그리고 시대의 고통을 온 몸으로 맞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여전히 꿈 꿀 수 있음을 알려 줄 수 있도록, 그가 늘 깨어있기를 정말 간절하게 바라본다.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이들만이 끝내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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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 - 손석춘 묻고 경제학자 유종일이 답하다 이슈북 6
유종일.손석춘 지음 / 알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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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보수언론들이 김대중·노무현 등 중도보수정권들을 마구잡이로 비판할 때, 즐겨 사용했던 문구가 역대 최악의 정권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그들이 생각하는 역대 최악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사실 그리 큰 관심은 없다. 그러던지 말든지) 지난 MB정권과 현 정권을 보고 있자면, 과연 최악의 끝은 어디 인가요! 묻지 않을 수 없다.

 

현 대통령의 콘크리트지지율이라던 40%대가 무너진 지 오래, 지금은 20%대를 넘나든다. 비단 신기루와 같은 지지율이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무능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국정 운영과 국민을 호갱으로 인식하고 전방위적으로 착취하는 모습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도대체 왜 이처럼 철저히 무능한 이익집단에게 또 다시 5년을 맡긴 것일까.

 

전임 정권을 무색케 하는, 있는 자들의 횡포와 갑질에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무력감에 치를 떤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떠들며 정권을 차지한 집단이, 오히려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교사의 주먹질에 나가떨어진 것은 비단 한 아이만이 아니다. 복지공약을 믿고 투표하고 지지한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이다. 이처럼 불의가 오히려 당당한 세상, 억울한 이가 닥치고 있어야 하는 세상. 흡사 지옥과 다름이 없다.

 

현재 그야말로 파탄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201212월이 또 다시 사무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현 대통령을 비롯한 대선후보들은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사회를 약속했다. 경제민주화는 억울한 이가 없는 정의로운 사회이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세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대적 과제다. 하지만 과연 그때 그들은 진정성이 담긴 공약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다른 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경제민주화가 이뤄졌을까? 자신할 수 있을까?

 

유종일 교수는 경제민주화는 우리 헌법에 명시된 그대로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라 말한다. 1191항을 말하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이다. 여기서 기업이 왜 들어간 것인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을 텐데, 당시 야당이 삽입했다고 하니, ‘언제 야당이 진보였습니까?’라는 유 교수의 비판에 할 말이 없다.

 

경제민주화는 문자 그대로 바라보면 답이 나온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주인 노릇을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경제도 민주주의 하자는 것이다. 돈이 아닌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우리는 지금껏 너무도 조심스럽게, 또 소극적으로 이야기해왔다. 무슨 큰 죄라도 되는 양 말이다.

 

경제민주화는 공정한 경쟁, 참여경제, 분배정의를 이루는 것이라 유종일·손석춘은 이야기한다. 자본이 아닌 사람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 일하는 이들이 거기에 합당한 발언권을 갖는 것, 배제되고 억울하게 낙오되는 이 없이 모두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경제민주화다. 이런 것들이 꿈같은 이야기로 들리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오랫동안 건강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 직간접적으로 경제민주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유종일 교수는, 두 정권 시기 경제민주화가 실패한 원인을 냉철히 분석한다.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소통의 부재와 이른 바 문고리 권력의 영향이다.

 

대통령의 주변에서 권력을 쥐고 대중과의 소통을 차단하는 이들. 그들은 대통령이 민심을 똑바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이다. 아울러 듣기 싫은 소리,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경청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하고 짜증내는 지도자 역시 불행이다. 비단 이명박, 박근혜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말을 좀처럼 듣기 힘들어했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결국 주위에는 아첨과 복종만이 남게 되고, 대통령은 민심과 벽을 쌓게 된다.

 

이른바 진보진영이라 불리는 이들 중,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에 어쩔 수 없이 휩쓸려 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유 교수의 진단은 전혀 다르다. 1997년 외환위기의 파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IMF의 압력도 있었지만, 문고리 권력이나 모피아 등에 휩싸여 불필요한 조치까지 포함해 더 세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한다. 당시 사태는 외환보유고가 부족해 발생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외환위기가 아니었나. 그런데 외환보유고가 부족한 것과 대량정리해고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토록 수많은 이들을 생계의 벼랑 끝으로 내몰 정도로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었나? 아니면 IMF가 하라는 대로, 그들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한 것이었나.

 

이런 대량정리해고 조치는 결국 환율이 뛰고, 자산 가치가 폭락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을 헐값에 먹겠다는 미국의 의도에 장단을 맞춰주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실재 그런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룬 것이다.

 

또한 유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역시 취임하자마자 삼성의 프레임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경제개혁을 추진할 수 없었다고 비판한다. 그 후 정권들의 행태를 보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너무도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날려 버린 것이다.

 

물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성과도 분명 적지 않다. 당연하다. 두 대통령은 분명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느꼈을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나 복지 분야에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남북정상회담의 두 차례 성사는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분명 매우 의미 있는 성과였다. 이후 대통령들과의 비교 자체가 어려울 정도이다. 경제 역시 이후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 알겠지만, 그다지 나쁜 성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사명엔 제대로 부합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유 교수는 경제민주화가 어느 한 순간 뚝딱 특별입법 하나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최소 2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장기적인 과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형식적 민주화를 쟁취한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물론 그보다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에서부터 경제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모아진다면, 분명 경제민주화는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

 

이제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201212월의 패배 이후, 많은 이들이 또 다시 무력감과 패배감 그리고 분출되지 못한 분노에 싸여있다. 정당한 분노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단지 분노에서 멈출 수는 없다. 이것을 긍정의 동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당장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모든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분석, 거부가 필요하다. 이는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작은 실천으로 가능할 것이다.

 

내년 총선부터, 아니 당장 다가오는 4월 보궐 선거부터 경제민주화 그리고 복지문제는 다시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또 다시 많은 정치인, 모사꾼들이 경제민주화와 복지 사회를 떠들어낼 것이다.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제대로 된 사람,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경제민주화와 복지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본이 될 것이다.

 

역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항상 가난한 이들은 가난했고, 힘없는 이들은 천대받았다. 돈이 주인이 되는 세상에서 인권과 평등과 공정과 정의는 파렴치한들의 장난질로 추락한다. 우린 매일 매일 그런 무시무시한 장난질을 보고 있다. 피눈물이 나는 장난질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 그런 장난질을 치는 인간들이 득세하지 않도록, 힘겹지만 정신을 차릴 때이다. 마음을 모을 때이다.

 

경제민주화는 결국 이 땅의 민주주의가 성숙되고 발전하는 딱 그만큼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제발 억울하게 죽어가는 이들이 더는 없도록, 억울하게 천대받고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이들이 더는 없도록 우리 모두 주위를 둘러보고, 살뜰히 챙겨야 하겠다. 그리고 정부는 가난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에게 더 이상 이 제도만 알았어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개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국민이 갑이고 주인이다. 당신들이 아니고. 건방진 소리는 더 이상 하지 말라. 당신들이 찾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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