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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끝이 시작이다
문재인 지음 / 바다출판사 / 2013년 12월
평점 :
개인적으로 꽤나 커다란 일들을 겪은 지난 몇 주였다. 그 상황 속에서 쉽사리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두 해가 지난 옛 독서의 기억을 끄집어내 서평을 쓰는 것은 더더욱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결국 긴박했던 며칠이 지나고 다시 책을 집어 들긴 했지만 여전히 온전한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끝내는 이것도 지나가겠지만, 역시 순간순간은 참 쉽지 않다.
그동안 100% 지켰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읽은 순서대로 서평을 써왔다. 하여 이번 차례를 보니…, 얄망궂다. 이 책이다. 지난 대선에서 정말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문재인 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반성문이자 새로운 도전을 알리는 제2의 출사표다. 그는 대선 패배 이후 1년 만에 이 책을 펴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뒤 지금까지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비판과 지지를 늘 함께 받았으며, 결국은 제1야당의 대표직을 맡게 되었다. 그에게 아낌없이 한 표를 던졌던 49%의 시민들이 여전히 한 결 같이 그를 지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는 여전히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생각해 본다. 그가 패배한 후, 그리고 상대가 승리한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어떠한 변화를 겪어왔을까. 어떤 상처를 받았고, 어떤 위안을 얻었을까. 아쉽게도 그리고 가슴 아프게도 예전보다 더 많은 이들이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해 4월 16일 이후로 간신히 붙잡고 있었던 이성과 상식의 끈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 땅의 모든 시민들은 목울대를 사정없이 때려대는 아픔에 몸 둘 바를 찾지 못했다. 차가운 바다 아래 잠든 아이들의 이 허무하고 애절한 죽음들 앞에 어떤 이유로든 무거운 부채감을 느껴야만 했다. 온전한 사회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온 국민을 처절한 슬픔 속에 빠지게 만든, 누구하나 할 것 없이 죄스러워, 하늘도, 바다도 온전히 바라볼 수 없었던 비참함, 그 이유를, 그 책임을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책의 저자이자,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그리고 어쩌면 다시 한 번 유력한 대선후보가 될지 모르는 정치인 문재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그는 서문을 통해, ‘패배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패장에게 남은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패배를 거울삼아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혔다. 책을 펴낸 동기이다. 그리고 아픈 마음을 털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전히 우리 현실정치에 대한 참여자들의 이렇다 할 기록이 부족한 현실에서, 가장 최근, 대선이라는 국내 최대의 정치 이벤트의 실제 참여자의 기록은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배한 자의 증언이 어쩌면 미래의 승리를 염원하는 가장 큰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문재인의 제2의 도전을 알리는 비장한 출사표이기도 하였다. 이제 현 정부의 임기가 3년 남짓 남은 시점에서 그는 제1야당의 대표가 되어 정부와 여당을 견제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때문이다. 그에게 여전히 물어야 하는 이유가. 그는 다시 시작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부정으로 얼룩진 다소 억울한 패배였지만, 자신은 당당히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할 터이니, 그를 믿고 지지해주었던 많은 이들도 함께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책을 펴낸 지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과연 제대로 된 시작이 있기는 하였을까.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책임을 온전히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부의 무능이나 독선은 차치하자. 어쩌면 시민들에게 더욱 아픈 것은 정부의 무능과 독선 앞에 단 한 번도 속 시원하게 나서지 못한 야당이 아닐까. 어느새 같은 패거리의 논리, 권력이 주는 안정감에 빠져, 삶의 현장에서 들리는 많은 외침들이 들리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정동영, 천정배 등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은 정치인들이 당을 떠나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고 있다. 여전히 내부에선 이른 바 계파 갈등의 뿌리가 남아있다. 많은 시민들이 야당으로서의 새정치민주연합의 투지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의지는 부족한데, 변명은 늘 끊이지 않는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만들어낸 그 열정과 감동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정상에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이 서 있다.
책은 정치인 문재인, 인간 문재인을 잘 보여준다. 그는 여전히 진흙탕 바닥인 현실정치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는 자신이 현실정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기억해선 안 될 것이다. 그는 전체 유권자 절반의 지지를 얻었다. 이는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을 준 것을 의미한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훌륭한 선비나 혹은 그리운 누군가의 절친한 벗으로 끝날 수 없다. 유능한 정치인, 시민들의 이야기를,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안철수의 길이 여전히 미완성이라고 믿고 싶듯, 문재인의 길도 여전히 진행형이라 생각한다. 그는 여전히 적지 않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다. 그리고 지난 이명박 정부와 현 정부에서 여실히 보여주듯, 그는 깨끗함을 가지고 있는 정말 몇 되지 않은 정치인이다.
절망이 어김없는 시대, 포기가 새삼스럽지 않은 시대. 오히려 그렇기에 희망을 만들고 삶의 진보를 꿈꿀 수밖에 없는 시대. 아직 문재인은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고, 그리고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비루하게라도 그렇게 믿고 싶다. 지금의 야당이 진정한 야당의 모습으로 새로이 태어날 수 있도록, 그리고 시대의 고통을 온 몸으로 맞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여전히 꿈 꿀 수 있음을 알려 줄 수 있도록, 그가 늘 깨어있기를 정말 간절하게 바라본다.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이들만이 끝내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