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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 - 손석춘 묻고 경제학자 유종일이 답하다 ㅣ 이슈북 6
유종일.손석춘 지음 / 알마 / 2012년 11월
평점 :
소위 보수언론들이 김대중·노무현 등 중도보수정권들을 마구잡이로 비판할 때, 즐겨 사용했던 문구가 ‘역대 최악의 정권’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그들이 생각하는 역대 최악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사실 그리 큰 관심은 없다. 그러던지 말든지) 지난 MB정권과 현 정권을 보고 있자면, 과연 ‘최악의 끝’은 어디 인가요! 묻지 않을 수 없다.
현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던 40%대가 무너진 지 오래, 지금은 20%대를 넘나든다. 비단 신기루와 같은 지지율이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무능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국정 운영과 국민을 호갱으로 인식하고 전방위적으로 착취하는 모습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도대체 왜 이처럼 철저히 무능한 이익집단에게 또 다시 5년을 맡긴 것일까.
전임 정권을 무색케 하는, 있는 자들의 횡포와 갑질에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무력감에 치를 떤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떠들며 정권을 차지한 집단이, 오히려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교사의 주먹질에 나가떨어진 것은 비단 한 아이만이 아니다. 복지공약을 믿고 투표하고 지지한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이다. 이처럼 불의가 오히려 당당한 세상, 억울한 이가 닥치고 있어야 하는 세상. 흡사 지옥과 다름이 없다.
현재 그야말로 파탄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2012년 12월이 또 다시 사무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현 대통령을 비롯한 대선후보들은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사회를 약속했다. 경제민주화는 억울한 이가 없는 정의로운 사회이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세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대적 과제다. 하지만 과연 그때 그들은 진정성이 담긴 공약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다른 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경제민주화가 이뤄졌을까? 자신할 수 있을까?
유종일 교수는 경제민주화는 우리 헌법에 명시된 그대로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라 말한다. 119조 1항을 말하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이다. 여기서 ‘기업’이 왜 들어간 것인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을 텐데, 당시 야당이 삽입했다고 하니, ‘언제 야당이 진보였습니까?’라는 유 교수의 비판에 할 말이 없다.
경제민주화는 문자 그대로 바라보면 답이 나온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주인 노릇을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경제도 민주주의 하자는 것이다. 돈이 아닌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우리는 지금껏 너무도 조심스럽게, 또 소극적으로 이야기해왔다. 무슨 큰 죄라도 되는 양 말이다.
경제민주화는 공정한 경쟁, 참여경제, 분배정의를 이루는 것이라 유종일·손석춘은 이야기한다. 자본이 아닌 사람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 일하는 이들이 거기에 합당한 발언권을 갖는 것, 배제되고 억울하게 낙오되는 이 없이 모두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경제민주화다. 이런 것들이 꿈같은 이야기로 들리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오랫동안 건강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 직간접적으로 경제민주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유종일 교수는, 두 정권 시기 경제민주화가 실패한 원인을 냉철히 분석한다.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소통의 부재와 이른 바 ‘문고리 권력’의 영향이다.
대통령의 주변에서 권력을 쥐고 대중과의 소통을 차단하는 이들. 그들은 대통령이 민심을 똑바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이다. 아울러 듣기 싫은 소리,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경청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하고 짜증내는 지도자 역시 불행이다. 비단 이명박, 박근혜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말을 좀처럼 듣기 힘들어했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결국 주위에는 아첨과 복종만이 남게 되고, 대통령은 민심과 벽을 쌓게 된다.
이른바 진보진영이라 불리는 이들 중,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에 어쩔 수 없이 휩쓸려 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유 교수의 진단은 전혀 다르다. 1997년 외환위기의 파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IMF의 압력도 있었지만, 문고리 권력이나 모피아 등에 휩싸여 불필요한 조치까지 포함해 더 세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한다. 당시 사태는 외환보유고가 부족해 발생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외환위기’가 아니었나. 그런데 외환보유고가 부족한 것과 대량정리해고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토록 수많은 이들을 생계의 벼랑 끝으로 내몰 정도로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었나? 아니면 IMF가 하라는 대로, 그들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한 것이었나.
이런 대량정리해고 조치는 결국 환율이 뛰고, 자산 가치가 폭락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을 헐값에 먹겠다는 미국의 의도에 장단을 맞춰주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실재 그런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룬 것이다.
또한 유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역시 취임하자마자 삼성의 프레임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경제개혁을 추진할 수 없었다고 비판한다. 그 후 정권들의 행태를 보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너무도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날려 버린 것이다.
물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성과도 분명 적지 않다. 당연하다. 두 대통령은 분명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느꼈을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나 복지 분야에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남북정상회담의 두 차례 성사는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분명 매우 의미 있는 성과였다. 이후 대통령들과의 비교 자체가 어려울 정도이다. 경제 역시 이후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 알겠지만, 그다지 나쁜 성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사명엔 제대로 부합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유 교수는 경제민주화가 어느 한 순간 뚝딱 특별입법 하나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최소 2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장기적인 과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형식적 민주화를 쟁취한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물론 그보다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에서부터 경제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모아진다면, 분명 경제민주화는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
이제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2012년 12월의 패배 이후, 많은 이들이 또 다시 무력감과 패배감 그리고 분출되지 못한 분노에 싸여있다. 정당한 분노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단지 분노에서 멈출 수는 없다. 이것을 긍정의 동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당장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모든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분석, 거부가 필요하다. 이는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작은 실천으로 가능할 것이다.
내년 총선부터, 아니 당장 다가오는 4월 보궐 선거부터 경제민주화 그리고 복지문제는 다시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또 다시 많은 정치인, 모사꾼들이 경제민주화와 복지 사회를 떠들어낼 것이다.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제대로 된 사람,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경제민주화와 복지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본이 될 것이다.
역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항상 가난한 이들은 가난했고, 힘없는 이들은 천대받았다. 돈이 주인이 되는 세상에서 인권과 평등과 공정과 정의는 파렴치한들의 장난질로 추락한다. 우린 매일 매일 그런 무시무시한 장난질을 보고 있다. 피눈물이 나는 장난질이다. 다시는 이 땅에서 그런 장난질을 치는 인간들이 득세하지 않도록, 힘겹지만 정신을 차릴 때이다. 마음을 모을 때이다.
경제민주화는 결국 이 땅의 민주주의가 성숙되고 발전하는 딱 그만큼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제발 억울하게 죽어가는 이들이 더는 없도록, 억울하게 천대받고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이들이 더는 없도록 우리 모두 주위를 둘러보고, 살뜰히 챙겨야 하겠다. 그리고 정부는 가난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에게 더 이상 “이 제도만 알았어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개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국민이 갑이고 주인이다. 당신들이 아니고. 건방진 소리는 더 이상 하지 말라. 당신들이 찾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