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죠의 기묘한 모험 1~12 세트 - 전12권 죠죠의 기묘한 모험
아라키 히로히코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결국 나이가 든다는 것은 추억을 그만큼 더 많이 되새김질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내가 왕년에로 시작하는 네버엔딩 자랑질은 물론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옛 것들을 조우할 때마다 짐짓 벅차오르기까지 한다. 어르신들이 들으시면 어린 녀석이 까분다고 하시겠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남자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야전(!)보다는 주로 혼자 놀기에 더 편안함을 느꼈거나, 심지어 즐겼던 이들은 대번에 기억할 것이다. 바로 오백 원짜리 해적판 일본 만화 말이다. <드래곤 볼> <공작왕> <란마1/2> <북두신권> <닥터 슬럼프>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주옥같은 작품들이 떠오른다.

 

정작 보고 싶은 만화는 맨 끝에 10여 장 정도 담고, 책의 대부분을 다른 만화로 채우는 심히 상도에 어긋나는 행태를 저질러도, 우리는 거의(!) 군말 없이 오백 원을 지불하곤 했다. 궁금하니까! 그렇게 소년은 자라났던 것이었다!

 

이쯤에서 디펜스 들어가야겠다. 물론! 우리 만화도 재미있는 게 많다! 전설 같은 작가들,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저 하늘의 별만큼 많았다. 일본에 비해 꽤 많은 격차를 두고 싹튼 국내 만화계였음에도, 뛰어난 작가들이, 작품들이 참 많았다. , 여기까지!

 

왜색문화, 그들의 잘못된 세계관, 역사관, 폭력성 심지어 변태적인 여성관(!)에 오염될 수 있다는 어른들의, 진실성이 아주 조금 담긴 우려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그런데 어른들은 그걸 어떻게 먼저 알았을까). 어려서 일본 만화를 즐겨본 녀석들이 커서는 야동에 빠지게 된다는, 어디 근본도 없는 헛소리도 공허하게 들린 바 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물론 ‘So What!’이다. 어쩌라고요. 취존합시다, 우리 좀.

 

변함없이 또 이야기가 이탈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이 어마무시한 작품을 온전히 다 읽지도 않고서, 하긴 아직도 완결된 것은 아니니 할 말은 있다만, 전체 작품 중 기껏 1~2부에 해당하는 1~12권까지 읽은 주제에 감히 작품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개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맘이다. 그 전에 도주하겠지만, 배 째시라.

 

이 작품은 그야말로 전설 속에 회자되던 걸작이다. 해적판으로만 떠돌았고, 일본 만화계는 물론, 국내 만화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1986년부터 지금까지 연재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전설이 아닌가! 단행본으로만 이미 100권이 넘었고, 지금까지 누적 판매 수만 7,000만 부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와 맞먹는다.

 

일본 만화를 보며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소재의 다양함과 끈기였다. 삶의 모든 부분을 아우르는 듯 무수한 소재가 넘치고, 또한 10년을 훌쩍 넘기며 연재되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 작가의 내공도 내공이지만,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터운 팬 층이 형성되어 있으면, 어느 작가가 신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온갖 오명과 억압 속에 공개 화형식이란 웃지 못 할 촌극까지 벌이며 만화를 무슨 바이러스 취급하던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를 생각해보면, 우리 만화계를 지켜온 작가들에게 실로 존경심이 들게 마련이다. 그들은 실로 선구자가 아니었던가.

 

이 작품이 단순한 힘겨루기 격투만화에서 심리전, 트릭 등 두뇌 싸움을 도입해 소년 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나, 스탠드(초능력으로 형상화한 캐릭터) 대결, 능력배틀물(서로 다른 등장인물들이 자신만의 초능력으로 대결) 등 현재 무수히 많은 작품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더불어, 말도 안 되는 근육질을 자랑하는 등장인물들(!). 유치찬란하지만 그만큼 의미심장하고(!) 비장하고 열라 멋쥔(!) 대사들. ‘쿠오오오~!!!!’ ‘두둥~~!!’ ‘쏴아아~~~!’ 등 악기소리를 의성어로 시각화한다거나, 인물의 심리를 나타내는 효과음을 의성어로 도입해 장면의 긴장감을 더 높이는 등, 작가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이른 바 새로운 붐을 일으켰다. 지금은 많은 작가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이 작가가 이른 바 원조였다는 사실. 이래저래 대단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예전 <북두신권>(원제는 북두의 권이다)을 보며, 그야말로 진한 감동에 허우적대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전히 내 생애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는 이유다. ‘죠죠역시 북두신권 등장인물들에 버금가는 근육질을 자랑한다. 그렇다면 감동 역시 같을까? 글쎄, 그건 끝까지 봐야 할 것 같다. 12권 정도로는 평가가 역시 쉽지 않다. 물론 작품의 재미는 만만치 않다. 도저히 1986년부터 시작된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 전설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다.

 

예전 학창시절에는 이른 바 만화방을 참 자주 다녔다. 질풍노도의 시절, 없는 돈에 그나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 중 하나였다. 아울러 만화방 누나 혹은 아줌마에 반해 열심히 출근 도장을 찍었던 기억도 아련하다.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이다.

 

지난 해 아내와의 기나긴 협상 끝에 <원피스> 구입에 대한 재가(!)를 받아냈다. 만화를 구입한다는 것은, 유부남으로서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과감히 지른(!) 이후는 아마도, 여전히 내 마음 어디엔가 살아있는 추억을 간직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아껴가며 보고 있는데, 솔직히 시간도 생각보다 부족하다. 젠장.

 

누구나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두말할 필요 없다. 위대하고 눈물겨운 일이다. 자식들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니들이 술 맛을 알아?’라고 주절거리며, 주접을 떤다. 아주 가끔, 아주 가끔은, 괜찮으니까 아버지들이여, 어머니들이여, 만화책을 붙잡고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키득거려보자. 범죄 아니다.

 

이미 <원피스>를 질렀기에, <죠죠>는 구입이 아닌 여타 방법으로 볼 수밖에 없겠다. 20대에 시작해 50대가 넘는 지금까지 한 작품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도 뭐 하나 그렇게 생애에 걸쳐 이뤄내고 있는 것이 과연 있는지, 생각해본다. 힘들겠지만, 그래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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