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내일 - 1차세계대전에서 이라크 전쟁까지 아이들의 전쟁 일기
즐라타 필리포빅 지음, 멜라니 첼린저 엮음, 정미영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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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덮고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있는 사이, 이스라엘이 유엔의 구호 트럭을 공격해 구호가 중단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2008년 말부터 다시 불붙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낸 채 끝날 줄 모른다. 새해에도 전쟁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다. 1차 세계대전부터 이라크 전쟁까지 참혹한 전쟁의 한 복판에서 인간의 광기로 인한 최악의 시간들을 견뎌낸 아이들의 일기가 담겨있다. 때론 가해자의 입장에서, 때론 피해자의 입장에서 아이들은 전쟁을 바라보고 어른들의 오만한 살의를 느낀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지만, 정작 유심히 읽어야 할 이들은 어른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가해자의 입장이라는 것은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미군 병사 에드 블랑코를 말한다. 그는 베트남에서 20살을 맞이한다. 전쟁에 대한 낭만, 막연한 동경으로 베트남을 선택한 그는 그러나 그 곳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모습에 곧 전쟁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된다. 살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민간인들에게까지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고, 결국 어린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죽어가는 전장의 모습. 에드 블랑코는 전우의 죽음과 베트남 양민들의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 책에서 특히 가슴 아팠던 것은 이스라엘 소녀 시란 젤리코비치와 팔레스타인 소녀 메리 해즈보운의 일기다. 오랜 세월동안 증오하고 경멸해 온 두 집단의 아이들이 느끼는 전쟁은 다르지 않았다. 그녀들은 오직 평화로운 삶을 원했다. 마음대로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 수 있는 자유,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자유까지.

하지만 그녀들은 자살 폭탄테러와 끊임없는 폭격에 시달리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폭탄으로 눈알이 날아가 버린 어린 아기의 시신을 목격한 후 밤새 눈물로 지새야만 했던 시란과 자신의 집에서 마음대로 나갈 수 없고, 단지 위협을 위한 이스라엘 군의 총격과 탱크의 발포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을 봐야만 했던 메리. 이 두 소녀들은 모두가 피해자 였다.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전쟁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전쟁을 하지 않았던 시기는 평화의 시기가 아닌 전쟁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한반도를 제외하고는 냉전이 사라진 세계, 하지만 전쟁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아이, 여성, 그리고 노인들이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했고, 가장 많이 죽임을 당했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전쟁을 원한 적도, 누구를 증오한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죽어가야 하냐고. 그 절규에 대답해야 하는 어른들은 그러나 침묵뿐이다. 인간은 언제나 누군가를 지배하고, 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그렇다’는 결론을 끌어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아니라고 믿고 싶다. 인간은 충분히 공존하며, 평화를 지키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이스라엘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미워하는 측면이 더 많다. 팔레스타인의 테러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심정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이스라엘의 아이들과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미국의 아이들과 그들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생명은 귀하고,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며,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일본은 자위대를 해외에 파병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북한을 점령해야 할 미수복지로 상정하고 언젠가 백두산에 태극기를 꽃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포기해야 할 복지와 인간다운 삶에 대해 떠드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온라인상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도 구속되는 시대이다. 인간다움이 사라지고, 인간이 오직 소비의 대상, 통제와 굴종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시대다.

책 속의 아이들은 과연 내일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아이들에게서 내일을 빼앗을 수 없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 구성원들에게서 자유와 희망, 그리고 반드시 와야만 할 내일을 빼앗을 순 없다. 모든 억압과 구속은 죄악임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땅의 지배자라 자처하는 이들은 말이다.

모든 전쟁에서 숨져간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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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아름다움
심상정 지음 / 레디앙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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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슬쩍 정부가 경인운하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촛불집회 당시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대운하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대통령은 그러나 경제 위기를 핑계로 결국 우리의 산천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역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규모로 말이다. 결국 믿을만한 사람을 믿었어야 했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지난 2008년 4.9 총선에서 심상정 의원은 낙선했다. 민주노동당의 갈등과 그 결과 탄생한 진보신당을 이끌기까지, 사실 그가 지역구를 챙기며 선거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심 의원은 근소한 차이로 선전했다. 물론 승패에서 그것은 별 중요성이 없을지 모른다. 심상정 의원은 그렇게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총선에서 패배한 직후 이른 바 거물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리라 믿고는 싶지만, 지금과 같은 시국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 많던 인물들은 어디에 갔을까.

하지만 심상정은 오히려 낙선 이후 더욱 자주 그리고 활발히 뛰고 있다. 서민들과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모든 국민들의 아픔을 함께 하며 살아가고 있다. 국회에 다시 입성하지 못했을 뿐이지, 여전히 그는 전사이고 또한 정치인이다.

책은 심상정이라는 인물이 지금까지 성장해 온 과정을 솔직 담백하게 담고 있다. 물론 약간의 자기 자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정말 약과라는 생각이다. 그 예로 지난 해 이명박 정부는 국정 TV를 통해 자신의 1년 외교성과 중 중요한 것들로 “주한미군 계속 주둔”, “미국의 무기 구매 국가 최고 대우 받기로” 등을 들었다. 수치가 아닌 자랑으로 말이다. 그리고 걸작 중 걸작이 있었으니,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서로 친구라 부를 정도로 친하다는 점을 성과이자 자랑으로 내세웠다. 유치의 수준을 넘어 정신적 분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제 정신이 아니다.

이에 비하면 심상정 의원의 고백 혹은 자랑(?)은 사실에 입각한 그리고 몸으로 직접 뛰어 이루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전혀 낯간지럽지 않다. 오히려 불가능한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그의 투지와 열정에 탄복할 따름이다. 그는 입만 살아 나불거리는 것들이 아닌 진정한 실천적 정치인이자 운동가인 것이다.

그런 그를 우리는 버렸다.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다시금 국회는 쓰레기장이 되었고,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인간들이 여의도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음을 한탄하고 있다. 어이없는 일이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 사람들을 국회로 보냈는가. 또 속았다는 말만 반복할 것인가. 국민의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는 지금의 국회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우리는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서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과도 가까운 지금의 경제 상황, 그 상황을 더욱 더 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이들 앞에서 우리는 마냥 하늘만 바라보며 절망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금 뒤로 돌아간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고, 2%를 위한 정부가 아닌 98%를 위한 정부가 되도록, 그러한 정치판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심상정이 필요하다. 정치인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 두 가지. 즉 미국과 삼성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정직하고 바른 정치인”, “삼성 저격수”로 불렸던 심상정과 같은 정치인들이 살아남아야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쓰레기가 만발한 곳에서 장미 꽃을 기대할 순 없다. 먼저 토양을 만들어 놓은 다음 우리는 아름다운 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당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심상정 의원의 앞으로가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친박연대는 예전 선거 당시 심 의원을 무수리, 박근혜를 공주로 묘사한 바 있다. 유신공주는 정말 필요 없다. 바닥을 기고 있는 정부와 여당의 지지도 앞에서 자신의 정치적 계산만 하고 있는 박근혜 보다는 국회에 있든 없든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실천하는 정치인 ‘무수리’ 심상정이 백 배 소중하다.

때문에 우리는 아직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심상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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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트 니어링의 희망
스코트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보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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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해다. 누구나 소망 하나를 다시금 품어보는 시기. 그러나 현실은 무참하다. 비관과 절망,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이 사람들을 힘들고 외롭게 만든다.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독립하여 자연 속에서의 주위를 사랑하며 살다 간 스코트 니어링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은 “오늘 행동하면 내일은 희망의 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 스코트 니어링은 근본주의자, 자연주의자,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철저히 혼자만의 세계를 꿈꾸며 살아간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조화로운 삶, 즉 자연과 인간의 조화, 사회와 또 다른 사회의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조화를 꿈꾸었다.

 

생존을 위해 타자를 억누르지 않는 사회, 오직 자신만을 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지 않는 사회,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회를 그는 꿈꾸었다. 이 책이 처음 발간된 것은 1965년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는 ‘양심’에 대해 수차례 강조한다. 자신만 생각하고, 가족만 생각하는 이들이 느껴야 하는 양심의 불편함. 세상을 보다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는 이들이 느껴야 하는 양심의 불편함을 제기한다.

 

“왜 다른 사람, 다른 집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없을까? 왜 ‘나와 내 아내, 내 아들과 며느리, 우리 넷만 잘살면 그만’일까? 왜 인류 모두의 행복,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을까”

그는 인류 구성원의 하나로서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온갖 죄악에 대해 양심의 불편함을 느끼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러한 불편함을 치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평생을 고민하고, 또한 실천의 삶을 이어갔다. 진화하는 인류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비록 광활한 우주에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한 인간일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상에서의 삶을 개선하는데 무언가 이바지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일생을 살아갔다.

문규현 신부님과 함께 오체투지를 해오고 있는 수경 스님은 인간들이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지만, 인간은 ‘만물의 폭군’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생명의 질서를 거스르는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인류를 비롯한 지구 생물체 모두를 전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들어 꾸준히 그 수를 늘려왔으며, 편리를 위한 무절제한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갔다. 여타 생물체 역시 인간의 욕망으로 그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며, 다시는 지구상에서 만날 수 없는 동식물 종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환경의 재앙으로 재해나 끊이지 않고, 그 와중에서 전체 지구 인구의 3분의 2정도가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소모적인 갈등이 끝난 뒤에도 희망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종, 종교 그리고 자본주의의 기형적인 세계화로 인해 전쟁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멈추지 않고 있고, 힘없는 이들은 매일 매일 죽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희망은 존재할 수 있을까. 스코트 니어링은 결국 인간만이 이러한 파국을 끝장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자연을 책임지고, 생명을 존중하며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간들이 바로 희망이라는 것이다.

 

분명 절망이란 단어가 더욱 익숙한 지금이다. 부정과 탐욕이 트렌드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 희망은 존재할 것이다. 그 희망을 발견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수반될 때 세상은 다시 살 만해지리라. 스코트 니어링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 아닐까.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이라면, 거기에 맞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 책임 앞에 당신의 양심은 불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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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서경식.타카하시 테츠야 지음, 김경윤 옮김 / 삼인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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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잘 알려진 재일조선인 지식인 서경식과 「일본의 전후 책임을 묻는다」로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타카하시 테츠야 동경대 교수의 대담집. 1998년부터 99년까지 1년 동안 진행된 대담을 담았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10년 전, 재일조선인 지식인과 일본 지식인의 대담을 다시 살펴보려는 것일까. 매일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사이에서 왜 이 오래되고 작은 책을 다시 끄집어 낸 것일까. 그것은 당시 두 지식인의 고민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대화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서경식 선생과 타카하시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광기어린 폭력의 시대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가해자가 진정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시간이라는 것에 기대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잊혀 지길, 그들의 기억이 사라지길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폭력”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전후 책임론이 시간이 갈수록 퇴색되고, 이제는 전쟁을 정당화하고, 당시 전범을 비롯한 전쟁 가해자들을 다시금 영웅으로 미화하려는 현재 일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사실 과거사 청산, 정신대, 독도 및 식민 지배 정당화 발언 등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잊혀 질 만하면 터지는 일본 정치인, 관료들의 망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를 향한 끊임없는 도발 등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고 책임지려 하기 보다는 이를 정당화하고 무마하려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 보수 단체들이 앞장서 역사 비틀기를 시도해 “기억의 소멸”에서 “새로운 기억의 주입”을 시도하고 있다. 

서경식 선생과 타카하시 교수는 “페이지 넘기듯이 역사를 청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역사가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이 갱신해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역사의 청산 역시 순서대로 하나하나 결말을 지어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국가 권력도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역사 왜곡을 시도해왔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 같다. 과거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일본 정부는 만족할지 모른다.

이 책을 다시 꺼낸 이유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 했다. 이는 일본의 변함없는 역사적 망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절박한 것은 바로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 정부와 집권 여당, 그리고 이른바 건전한 보수라 자처하는 뉴라이트 등이 벌이고 있는 작태들엔 분노를 넘어 허탈함이 밀려온다. 자신들의 권력이 마치 영원한 것처럼 갖은 추태를 보여 가며, 역사를 마음대로 세탁한다.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었다고 알아서 단정 지으며, 이를 다시 우향우 하겠다고 벼르고, 반강제적으로 역사교과서를 수정하고 퇴출 작업을 진행한다. 교육과학기술부라는 곳이 과거 민주화 운동을‘데모’수준으로 모욕하고, 오히려 군사독재 정권들을 미화하는 내용을 일선 학교에 내려 보내 홍보하라고 압력을 가한다. 서울시교육청이란 곳은 고교생을 대상으로 뉴라이트 진영의 보수인사들의 현대사 특강을 진행한다. 그들이 다른 가공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이미 각종 과거사위원회의 통폐합 법안을 제출한 한나라당은 제주 4.3 사건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위원회를 없애고, 여타 과거사 위원회도 대부분 없애버리려 한다. 그동안 일본이 해왔던 역사 뒤틀기를 정확히 벤치마킹한 모습이다.  

다시 돌아보자.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공언하며 정권을 획득한 정부가 오히려 과거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잘못된 기억을 다시금 꺼내려 하고 있는 모습. 잃어버린 10년 이후 다시 거꾸로 가는 20년이 되어 가는 것일까.

책을 통해 두 명의 지식인이 말하려 했던 것은,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잘못된 과거를 대충 덮어버리고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논리로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불편하고 때론 고통스럽더라도 과거의 철저한 인식과 책임 규명, 그리고 사죄와 때론 처벌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일시되거나(죽음이라는 기준으로), 피해자의 증언이 오히려 역사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되는 오류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책임 규명 없이 미래를 온전히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기대라는 것.

불편했던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책임 규명대신 오히려 잘못된 것을 옳은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지금의 우리 모습. 희망은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증언과 소통의 시대를 단절과 망각의 시대로 되돌리려는 이들에 대한 정당하고 당당한 저항이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적어도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범죄는 막아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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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 - 그는 너무 많은 걸 보았다
알렉스 커쇼 지음, 윤미경 옮김 / 강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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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을 이끈 비운의 사상가 레온 트로츠키. 그의 마지막 공식 연설 자리. 그 곳에는 이제 막 카메라를 잡은 신출내기 사진가 앙드레 프리드만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이 신참 사진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기자이자 종군기자가 된다. 로버트 카파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1944년 6월 5일 프랑스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 독일군이 철통같은 방어벽을 쌓아둔 바로 그 곳으로 연합군은 상륙했다. 빗발치는 포화 속에 무수히 많은 젊은이들이 쓰러져가고, 그 와중에 로버트 카파는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며 그날의 역사를 담았다. 그는 “병사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정중하게 그들의 시체를 밀치며 지나가야 했다”고 말한다.

그는 용감한, 때로는 무모할 만큼 용감한 사진기자였다. 죽음의 한 복판에 뛰어들어 인간의 광기가 만들어놓은 비극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았다. 그의 사진을 통해 전 세계인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비인간성, 그리고 무모한 이기주의를 뼈 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단 한 장의 사진이 그 어떤 수많은 글과 말보다 더욱 절실한 진실을 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온갖 명성과 화려한 조명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담은 무수히 많은 죽음과 증오, 광기가 온전히 그에게 남아 평생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는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며 사랑에 탐닉하기도 했지만, 정작 그 누구도, 단 한 명의 여인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는 비인간성의 시대에서 인간을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스페인 내전부터 그가 마지막으로 셔터를 눌렀던 인도차이나 반도 전쟁까지, 그는 언제나 죽음을 따라다녔다. 어쩌면 그는 스스로 죽음을 찾아 방황했던 사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가까스로 비껴갔던 죽음이 언젠가는 결국 자신을 찾아올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그렇게 셔터를 누르며 그 죽음을 기꺼이 맞았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사진 에이전시인 ‘매그넘’의 창설자이기도 한 그는 많은 사진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지금도 그를 추종하는 많은 이들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의 모든 명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가 지금까지 기억되는 것은 그가 남긴 수많은 사진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모든 전쟁이 궁극적으로는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한 ‘악’이라는 것임을 말이다. 독일인이던, 미국인이던, 중국인이던 국적과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인간의 광기가 만들어놓은 전쟁의 피해자는 결국 우리 모두임을 그가 남긴 사진은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증오하고 학살해야만 생존할 수 있고 번영할 수 있는 시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학살과 죽음을 목격하고 있다. 수많은 종군기자들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죽음을 전한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죽음마저 무덤덤하게 다가오는 소름끼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동포 간의 학살을 직접 겪었던 우리들이기에,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는 인간 광기의 현장들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아픔이다.

로버트 카파는 결국 불행한 사람이었다. 죽은 자들에게 둘러싸여 평생을 고독과 슬픔, 연민과 공포 속에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고통이 남겨진 자들에겐 말없는 메시지가 되고 있다. 그가 전해준 수많은 메시지가 담고 있는 명료한 단 하나의 사실. 인간의 생명과 가치에 대한 존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필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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