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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트 니어링의 희망
스코트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보리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다시 새해다. 누구나 소망 하나를 다시금 품어보는 시기. 그러나 현실은 무참하다. 비관과 절망,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이 사람들을 힘들고 외롭게 만든다.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자본주의 경제로부터 독립하여 자연 속에서의 주위를 사랑하며 살다 간 스코트 니어링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은 “오늘 행동하면 내일은 희망의 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 스코트 니어링은 근본주의자, 자연주의자,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철저히 혼자만의 세계를 꿈꾸며 살아간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조화로운 삶, 즉 자연과 인간의 조화, 사회와 또 다른 사회의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조화를 꿈꾸었다.
생존을 위해 타자를 억누르지 않는 사회, 오직 자신만을 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지 않는 사회,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회를 그는 꿈꾸었다. 이 책이 처음 발간된 것은 1965년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는 ‘양심’에 대해 수차례 강조한다. 자신만 생각하고, 가족만 생각하는 이들이 느껴야 하는 양심의 불편함. 세상을 보다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는 이들이 느껴야 하는 양심의 불편함을 제기한다.
“왜 다른 사람, 다른 집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없을까? 왜 ‘나와 내 아내, 내 아들과 며느리, 우리 넷만 잘살면 그만’일까? 왜 인류 모두의 행복,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을까”
그는 인류 구성원의 하나로서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온갖 죄악에 대해 양심의 불편함을 느끼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러한 불편함을 치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평생을 고민하고, 또한 실천의 삶을 이어갔다. 진화하는 인류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비록 광활한 우주에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한 인간일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상에서의 삶을 개선하는데 무언가 이바지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일생을 살아갔다.
문규현 신부님과 함께 오체투지를 해오고 있는 수경 스님은 인간들이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지만, 인간은 ‘만물의 폭군’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생명의 질서를 거스르는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인류를 비롯한 지구 생물체 모두를 전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들어 꾸준히 그 수를 늘려왔으며, 편리를 위한 무절제한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갔다. 여타 생물체 역시 인간의 욕망으로 그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며, 다시는 지구상에서 만날 수 없는 동식물 종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환경의 재앙으로 재해나 끊이지 않고, 그 와중에서 전체 지구 인구의 3분의 2정도가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소모적인 갈등이 끝난 뒤에도 희망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종, 종교 그리고 자본주의의 기형적인 세계화로 인해 전쟁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멈추지 않고 있고, 힘없는 이들은 매일 매일 죽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희망은 존재할 수 있을까. 스코트 니어링은 결국 인간만이 이러한 파국을 끝장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자연을 책임지고, 생명을 존중하며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간들이 바로 희망이라는 것이다.
분명 절망이란 단어가 더욱 익숙한 지금이다. 부정과 탐욕이 트렌드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 희망은 존재할 것이다. 그 희망을 발견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수반될 때 세상은 다시 살 만해지리라. 스코트 니어링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 아닐까.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이라면, 거기에 맞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 책임 앞에 당신의 양심은 불편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