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과학 - 집파리에서 인공지능까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쓰레기의 모든 것
곽재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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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일이 되면 산처럼 쌓인 재활용 쓰레기에 놀란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날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지금처럼 추석을 앞두고 있으면 이 재활용은 더욱 늘어난다.

현실적으로 이 재활용 쓰레기가 완전히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매일 수거하는 종량제 봉투의 쓰레기나 음식물 쓰레기는 어떨까?

가끔 버리는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가면 저녁이면 꽉 차 있다.

음식물 쓰레기에 누군가 귀찮아서 비닐 봉투와 함께 넣어둔 것을 매번 발견한다.

이 순간들을 보면서 고맙다는 마음과 나쁘다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 지,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얕은 지식으로 쓰레기 매립지나 재활용 업체 등만 떠오를 뿐이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땅에 묻기와 재활용하기이다.

이 중에서 가장 익숙한 것은 난지도와 매립가스 이야기다.

난지도가 하늘공원으로 바뀐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난지도의 가스를 이용해 발전소를 운영한다는 것도 이전 직장 때문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지식은 쓰레기 매립의 겉핥기 식 지식일 뿐이다.

위생매립이란 것을 들은 것도 같지만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단지 쓰레기 산과 그곳을 오가는 중장비들을 뉴스 영상으로 봤을 뿐이다.

단순해 보이는 이 영상 속에 과학이 이렇게 정밀하게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쓰레기 지옥의 악마 군단으로 집파리를 말한다.

사실 집에서만 놓고 보면 집파리보다 초파리가 더 문제다.

끈끈이로 잡아도 잡아도 이 초파리는 계속해서 나타난다.

식사 중에 날아다니는 이 초파리를 보면서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집밖으로 나가면 다른 파리들이 날아다닌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나 다른 쓰레기에 이 집파리들이 붙어 있다.

가장 먼저 살충제 등으로 죽이는 것을 생각하지만 한계가 있다.

이런 쓰레기들이 집주변에 며칠만 방치되어도 벌레와 악취는 심해진다.

쓰레기 수거인이나 청소부가 없다면 우리는 베이루트와 같은 쓰레기 대란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이 쓰레기를 둘러싼 지역 간의 갈등이 떠오른다.


분리수거를 가장 잘 하는 나라 중 한 곳이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이 분리수거한 것이 예상한 것보다 재활용되는 비율이 낮다.

2부에서 각 재료별 재활용하기가 나오지만 과연 현실에서 그대로인지는 의문이다.

재활용하기 위해 들어가는 인력이나 자원 등이 생각보다 높은 경우도 적지 않다.

황금 도시 울산에서 재활용 과정에 금이 생산된다는 이야기는 검색하니 정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극히 일부의 경우에 해당되고, 재료 가격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종이에서 조선시대 종이를 재활용한 것은 나의 지식보다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플라스틱 문제에서 핵심은 썩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버린 플라스틱’에 공감한다.

재료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고 함부로 버리는 인간들에 더 집중해야 한다.


굴껍데기의 재활용에 대해 재활용 기술이 만들어낸 흐뭇한 풍경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이 굴껍데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이것을 재활용할 방법을 찾았지만 쉽지 않다.

내가 아는 이 부분만 놓고 전체적인 내용에 모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확대해석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홍보 기사나 사업 초기 단계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은 있다.

최후의 재활용으로 소각을 말하는데 이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쓰레기 소각장이란 이름 대신 자원회수시설이라고 한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름 때문에 생기는 거부감을 지우고, 잘 활용하면 전력 등을 생산할 수도 있다.

현대 과학이 우리 주변의 환경과 직접 관련된 쓰레기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배웠다.

이런 과학적인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활 쓰레기 등을 덜 배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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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워진 세계
아사쿠라 히로카게 지음, 이구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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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작가의 소설이 한국에 처음 번역된 것 같다.

약간의 걱정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결벽증이 있는 남자 아사히와 쓰레기를 모으는 여자 도모에의 만남.

이 둘은 옆집에 살고, 아사히가 우연이 그 집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그 사실을 안다.

양 극단에 서 있는 두 남녀의 만남과 그들이 빚어낼 관계에 대한 기대.

나의 기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깨진다.

두 남녀가 어린 시절 가진 트라우마가 현재의 삶을 만들었다.

작가는 이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쓰레기 문제와 엮어 풀어내었다.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풀어내는 감정과 그 불안감은 읽은 내내 그들을 응원하게 한다.


아사히는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후 계약직 청소부가 된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도시의 쓰레기를 차에 실어 도시를 깨끗하게 한다.

쓰레기 수거하는 과정에 생기는 수많은 문제들이 그의 일상에서 드러난다.

제대로 분류되지 않은 쓰레기, 넣지 말아야 하는 쓰레기, 쓰레기 주인의 거짓말.

쓰레기 차에 넣어 압착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오물, 폭발할 수도 있는 화학물질.

그의 직업을 따라가다 보면 같이 읽고 있던 책의 쓰레기 문제도 같이 엮인다.

이것과 별개로 그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살아간다.

이 생활은 그의 가족을 둘러싼 삶과 연결되어 있다.

집의 먼지 한 톨도 허락하지 않던 아버지와 늘 바쁘고 힘들게 청소하던 어머니.

이 경험은 그가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오지 못하고, 제대로 사귀지도 못하게 한다.


그의 완전 반대쪽에서 살아가는 도모에.

그녀는 밖에 놓여 있는 쓰레기들을 집으로 옮겨와 자신의 공간을 채운다.

쓸 수 없거나 필요 없는 물건들로 가득한 방과 마당.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이것을 멈출 수 없다.

그녀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녀가 아이일 때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불륜과 남자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집안 가득 쓰레기를 채우게 했다.

이 쓰레기들 사이에서 그녀는 이웃들 모르게 자랐다.

그녀를 인지한 이웃의 도움으로 쓰레기 집에서 벗어났지만 그 상처까지는 아니었다.

이때의 트라우마가 그녀의 삶을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양극단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이어지는 역할은 하는 인물이 있다.

쓰레기 회사의 아들이자 뮤직 비디오를 만드는 민토다.

민토는 도모에의 집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주선으로 세 명의 청년들이 아사히의 방에 모인다.

아사히는 누군가 자신의 방에서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그들을 방안으로 들이고, 같이 음식을 먹는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지만 그는 밝은 조명 대신 촛불로 시선을 가린다.

최소한 그들이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동안은 청결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렇게 아시히는 자신의 공간을 다른 사람에게 조금씩 내어준다.


자신의 강박을 살짝 내려 놓으면서 느끼는 따뜻함.’

이 따뜻함은 자신과 도모에의 생활을 다른 시각에서 돌아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충돌과 오해는 이해가 아닌 인정으로 풀린다.

도모에의 불안을 옆에 있으면서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그 자신도 성장한다.

자신의 일을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다가 아버지의 부상 때문에 말한다.

이때 드러난 아버지의 말과 반응은 현실의 우리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여기에 작가는 도모에가 쓰레기로 만든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새로운 길을 연다.

이 과정에 일어나는 악의적인 비난과 도모에의 불안감은 다른 사실과 엮여 있다.

그리고 둘은 서로에게 기대어 자신들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 조금 놀랐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마무리일지 모르지만 살짝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도시가 깨끗한 것은 그 자체의 힘이 아니라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의 노력 때문이다.

이 노력은 정책과 쓰레기 과학과 청소부들의 힘이 합쳐진 결과다.

아사히나 도모에가 자신들의 문제를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것도 연대의 힘이다.

그들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나아가려는 노력에서 비롯했다.

아픔과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는 모습은 감동을 주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일본적 감성으로 가득한 소설이지만 현실적 문제와 아픔이 진하게 공감하게 한다.

또 한 명 눈여겨봐야 할 작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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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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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관심을 둔 작가다.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 이번에 완독했다.

데뷔작이 워낙 유명해서 빌려 읽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늘 밀렸다.

이 책일 받고도 오랫동안 묵혀 두었는데 왜 일까?

가끔 읽고 싶은 열망이 식으면 나도 모르게 점점 뒤로 밀어둔다.

그러다 펼친 순간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책소개를 보지 않고 선택한 책이 전달하는 묵직하고 답답한 이야기들.

단숨에 읽을 수도 있는 분량인데 조금씩 호흡을 멈추면서 읽었다.

인수의 가출 생활이, 그 환경이, 그 친구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인수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옥탑방에 살고 있다.

그러다 한 소년이 자해 공갈하는 모습을 보고 그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가출청소년이 자기 몸을 상하면서까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돈이 필요해서다.

얼마나 절박한지에 대해 구구절절 나열하지 않고 그 사실만 말한다.

냄새하고 상처 입은 아이 이호를 집에 데리고 와서 씻기고 재워준다.

그런데 이호가 집에 온 이후 한 여름에도 추위를 느끼게 하던 귀신들의 냉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야기는 인수의 가출 생활을 중심에 두고, 이호의 이야기가 간결하게 나열된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수가 왜 이호를 집으로 데리고 왔는지 알 수 있다.

그가 경험했던 가출팸의 모습은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많은 소설에서 가출팸을 다루지만 이 책처럼 일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자신이 살던 집에 가출 아이들에게 내어주고 노숙을 하는 집주인 주영.

이 반 지하 집에 와서 머물다 떠나는 수많은 아이들.

작가는 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풀어내는 대신 그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센 척하지만 배가 고프고, 하룻밤 잘 곳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인수가 이곳까지 흘러가게 된 데는 피시방에서 만난 성연의 역할이 컸다.

약간 둔한 듯하고 대범하지 못하고 의존적인 인수에게 성연은 좋은 방패였다.

하지만 그 방패가 사라지면 여전히 그는 다른 아이들에게 비하의 대상이다.

그래도 성연과 함께 하는 시간들은 그가 대접받는 느낌을 주었다.


경우를 만난 것은 무료배급소였다.

다른 사람들 먹는 것을 돕고 마지막에 남은 음식을 먹는 경우.

주변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경우.

그가 바라는 것은 돈을 벌어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그를 낳고 버린 엄마지만 최소한 그는 그 얼굴은 알고 있다.

작은 희망은 그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으는 데 큰 연료가 된다.

이런 경우에게 도움도 받지만 그의 마지막 선택은 불편한 외면이었다.

이 소설은 그것을 따라가는 과정이자 가출팸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필요하다면 각목을 들고 어린 여학생을 사려는 남자를 후려치기도 한다.


불법이지만 이것보다 더 나쁜 어른의 불법 행위와 노동 착취도 보여준다.

가출 소년들의 인건비를 제대로 주지 않거나 떼 먹으려는 어른들.

자신이 성공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가스라이팅과 비열한 거짓말들.

사실을 알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던 인수.

인수가 꿈꾸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가출하게 된 이유도 그의 엄마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과거 경험이 이호의 수상한 일에 대한 조언으로 이어지지만 아이가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아마 그 나이 때의 나도 그렇게 반응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과 장면, 그때 인수가 느낀 감정들이 호흡을 고르게 했다.


섬세한 묘사와 거리를 둔 시선은 최대한 감상을 배제한다.

사실적인 장면들과 현실적인 선택은 잠시 동안 그들에게 공감하게 한다.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과 편안한 집과 안정적인 직업을 꿈꾸는 아이들.

재밌는 점은 어떤 일로 벌어온 돈으로 그들이 함께 음식을 사서 나누어 먹는 일이다.

그 공동체가 최소한으로 유지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공동체 유지가 목적일 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읽는 동안 무겁고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은 그 아이들이 처한 현실 때문이다.

왜 사회는 이 아이들이 추위를 피할 공간을 제공하지 못할까?

왜 부모를 떠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경우 없는 세계에서 인수가 온기를 느낀 것은 작은 선의가 통했을 때다.

한 번 더 기회를 바라는 인수의 모습에 왠지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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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볼버
하라다 마하 지음, 강영혜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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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작가의 목록을 보니 낯익은 제목들이 많이 보인다.

한동안 나의 위시리스트에 있었던 책도 있다.

이 무엇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출판사와 표지의 그림이다.

<밤의 카페 테라스>인데 검색하기 전 제목을 잘못 알고 있었다.

리볼버. 추리와 미스터리에 자주 나오는 총 이름이다.

이것이 고흐 이야기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내용을 따라가면 고흐가 자살할 때 사용한 총이 리볼버라고 한다.

내 머릿속 총은 단발식 권총인데 예상 외였다.


출판사의 새로운 시리즈인 아트 미스터리 시리즈의 첫 권이다.

다음 이야기가 어떤 것일지 궁금한데 첫 주인공이 고흐다.

인상파의 거장,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화가.

강렬한 색상과 자신의 귀를 자른 기행, 자살에 대한 의혹.

또다른 거장 고갱과의 짧은 동거, 죽은 후 가치 재평가.

이런 몇 가지 이미지들보다 나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은 동생에게 쓴 편지들이다.

우연히 그 편지들을 읽고 그 문장과 그의 생활에 얼마나 깜짝 놀랐던가!

아마 그 이후 고흐에 대한 나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너무나도 고액의 그림 값을 생각하면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다.


한 소녀가 벽에 걸린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에 반해 늘 쳐다봤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그림이 사라지고 고갱의 그림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어린 소녀가 고흐와 고갱에 대해 알게 되는 첫 날이다.

그리고 이 소녀 사에는 자라서 프랑스 유학을 와서 고흐와 고갱을 연구하는 학자가 된다.

프랑스에서 계속 연구를 하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작은 경매 회사 CDC다.

유명한 그림이나 비싼 물품이 거래되지 않고, 직원도 사장을 제외하면 두 명이다.

이런 곳에 한 여성이 찾아와 녹슨 총 한 자루를 내밀며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고흐가 자살에 사용한 리볼버라는 것이다.

실제 2019년 파리 경매장에 낙찰된 적이 있고, 작가는 이 사실에 영감을 받아 소설을 완성했다.


고흐의 자살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존재한다.

타살설도 있는데 범인에 대한 이야기는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낙찰된 리볼버는 이전에 한 고흐 전시회에 전시된 적이 있다.

이것은 사에가 이 총의 이력을 조사하는 과정에 드러난다.

그곳에서 의뢰인 사라가 들고 온 총과 다르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조사하면 금방 알 수 있는 거짓말을 그녀는 왜 하는 것일까?

정말 이 총이 고흐 자살에 사용된 그 총일까?

한때 그 총이 카페에 걸려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그녀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간다.

그리고 그 유명한 방을 방문하고, 사라에 대한 이야기도 듣는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 있었다.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두 자루의 리볼버.

사라가 주장하는 놀라운 이야기의 사실 여부 확인 필요.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은 바로 고흐와 고갱의 동거에서 시작한다.

의도적으로 연출한 이 둘의 관계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다.

고흐의 성장과 그 모습을 본 고갱의 질투, 혹은 자신의 이상향에 대한 갈증.

고갱의 타히티 결혼 생활을 보면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든다.

아마 그의 아내들이 모두 13세 정도였던 것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라의 회상에서 시작해 고갱의 독백으로 이어지면서 드러나는 놀라운 사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이 가능성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상상력이 두 거장과 그들의 그림을 계속 생각하게 한다.

고흐나 고갱을 좋아한다면 이 상상력을 따라가면서 색다른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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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의 짧은 체류
스티븐 L. 펙 지음, 김항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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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생각보다 얇은 책이다.

덕분에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에 ‘짧은’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 사실은 아니다.

오히려 ‘영원히’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그럼 이 지옥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그 지옥일까?

아니다. 작가가 창조한 지옥은 완전히 다르다.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잔혹한 형벌로 영원히 고통받는 그것과 다르다.

처음 지옥의 모습을 봤을 때 역자가 상상한 것과 같은 것을 떠올렸다.

끝없는 서가를 채운 책들, 원하는 음식을 바로 내주는 키오스크.

그런데 이 책들은 알 수 없는 기호로 되어 있어 읽을 수 없다.


읽을 수 없는 책들 사이에서 자신의 삶을 기록한 책을 찾아야 한다.

한 층의 길이는 몇 개월을 달려도 끝에 도달할 수 없다.

난간 밖으로 보이는 곳은 얼마나 떨어져야 바닥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중에 이곳으로 떨어지는데 떨어지다 굶어 죽는다.

무한의 공간, 무한의 시간 속에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이 지옥은 백인을 제외하면 다른 비백인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몰랐고, 금방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책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곳이 왜 지옥인지 분명하게 알려준다.

문장 하나가 완성된 책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소런 조핸슨은 모르몬교의 신자였고, 마흔다섯에 뇌암으로 사망했다.

책을 꽤 사랑했던 것 같다고 말하면서 바로 지옥으로 보낸다.

악마가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냉소적이고 기존의 종교관을 비튼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나 착실한 모르몬교 신도라도 그들은 지옥에 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로아스터교의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종교의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기독교 신자에게 악마는 한 마디 한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고 중국인 등을 지옥으로 보내지 않았느냐고?

이 문장을 보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구호가 떠올랐다.

그리고 도착한 지옥의 모습은 앞에 설명한 그대로다.


사람들과의 대화, 관계, 현실 파악 등이 이어진다.

젊은 몸으로 다시 돌아와 건강해졌고, 각각 다른 시간대에 죽었다.

평범한 일상의 연속, 지옥의 모습은 그대로고, 사람들이 바뀐다.

이 장면은 종교가 공포와 두려움 속에 탄생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의미 없는 좌절뿐이었다.” 이 문장이 지옥의 풍경을 대변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획일성과, 어떤 유형에서도 절대 벗어나지 않는 단조로움”을 지옥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영원한 단조로움,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 끝없는 시간.

새로움이 탄생하지 못하는 공간, 아니 노력이 없는 것일까?

다시 프롤로그로 돌아가서 그가 책을 발견한 시간을 본다.

23의 439승의 시간. 내가 가진 계산기로 계산이 불가능하다.


이 책이 주는 공포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다.

심리적이고 수학적인 계산이 곁들여진 상상에서 비롯한다.

반복과 단조로움이 일시적이라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

지옥을 계산한 수를 보고 사람들이 우는 장면은 이것을 잘 대변한다.

길지 않은 분량은 금방 읽을 수 있게 하지만 머릿속은 그 무한에 갇힌다.

내가 단숨에 한 번에 끝까지 달리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그 무한의 시간 끝에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글로 쓰면 쉽지만 숫자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고 무시무시하다.

다행이라면 나의 상상력이 부족해 그 무한에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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