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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의 짧은 체류
스티븐 L. 펙 지음, 김항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26년 9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생각보다 얇은 책이다.
덕분에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에 ‘짧은’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 사실은 아니다.
오히려 ‘영원히’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그럼 이 지옥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그 지옥일까?
아니다. 작가가 창조한 지옥은 완전히 다르다.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잔혹한 형벌로 영원히 고통받는 그것과 다르다.
처음 지옥의 모습을 봤을 때 역자가 상상한 것과 같은 것을 떠올렸다.
끝없는 서가를 채운 책들, 원하는 음식을 바로 내주는 키오스크.
그런데 이 책들은 알 수 없는 기호로 되어 있어 읽을 수 없다.
읽을 수 없는 책들 사이에서 자신의 삶을 기록한 책을 찾아야 한다.
한 층의 길이는 몇 개월을 달려도 끝에 도달할 수 없다.
난간 밖으로 보이는 곳은 얼마나 떨어져야 바닥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중에 이곳으로 떨어지는데 떨어지다 굶어 죽는다.
무한의 공간, 무한의 시간 속에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이 지옥은 백인을 제외하면 다른 비백인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몰랐고, 금방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책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곳이 왜 지옥인지 분명하게 알려준다.
문장 하나가 완성된 책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소런 조핸슨은 모르몬교의 신자였고, 마흔다섯에 뇌암으로 사망했다.
책을 꽤 사랑했던 것 같다고 말하면서 바로 지옥으로 보낸다.
악마가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냉소적이고 기존의 종교관을 비튼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나 착실한 모르몬교 신도라도 그들은 지옥에 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로아스터교의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종교의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기독교 신자에게 악마는 한 마디 한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고 중국인 등을 지옥으로 보내지 않았느냐고?
이 문장을 보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구호가 떠올랐다.
그리고 도착한 지옥의 모습은 앞에 설명한 그대로다.
사람들과의 대화, 관계, 현실 파악 등이 이어진다.
젊은 몸으로 다시 돌아와 건강해졌고, 각각 다른 시간대에 죽었다.
평범한 일상의 연속, 지옥의 모습은 그대로고, 사람들이 바뀐다.
이 장면은 종교가 공포와 두려움 속에 탄생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의미 없는 좌절뿐이었다.” 이 문장이 지옥의 풍경을 대변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획일성과, 어떤 유형에서도 절대 벗어나지 않는 단조로움”을 지옥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영원한 단조로움,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 끝없는 시간.
새로움이 탄생하지 못하는 공간, 아니 노력이 없는 것일까?
다시 프롤로그로 돌아가서 그가 책을 발견한 시간을 본다.
23의 439승의 시간. 내가 가진 계산기로 계산이 불가능하다.
이 책이 주는 공포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다.
심리적이고 수학적인 계산이 곁들여진 상상에서 비롯한다.
반복과 단조로움이 일시적이라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
지옥을 계산한 수를 보고 사람들이 우는 장면은 이것을 잘 대변한다.
길지 않은 분량은 금방 읽을 수 있게 하지만 머릿속은 그 무한에 갇힌다.
내가 단숨에 한 번에 끝까지 달리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그 무한의 시간 끝에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글로 쓰면 쉽지만 숫자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고 무시무시하다.
다행이라면 나의 상상력이 부족해 그 무한에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