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유리 - 그래픽노블로 만나는 AI와 미래 탐 그래픽노블 3
피브르티그르.아르놀드 제피르 지음, 엘로이즈 소슈아 그림, 김희진 옮김, 이정원 감수 / 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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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대한 기초 지식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그래픽노블이다.

현 기술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인공지능이 학습을 하는 방법,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 인공지능을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 그리고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실제 인공지능 유리의 개발자가 말한다.

수학과 코딩에 대한 지식이 약해 많은 부분을 놓쳤지만 과도하게 포장된 부분을 일부 지울 수 있었다.

만화로 보여주어서 비교적 가독성이 좋지만 전문분야로 넘어가면 역시 쉽지 않다.

자세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방송 무대에 유리가 데뷔한다. 처음엔 단순히 실루엣 정도만 보여준다.

심사위원들이 유리의 랩을 듣고, 합격 판정을 내린다. 그런데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놀란다.

이 책에 나오는 유리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컴퓨터에 스피커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아이폰의 쉬리의 데스크탑 버전처럼 보인다. 물론 성능은 월등하게 좋다.

이 놀라운 등장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유리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가 하는 것이다.

재밌는 부분은 유리의 기초 데이터를 저작권이 사라진 문학 등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젠더 감수성이 옛날식이다.

현대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지적 능력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가면 바뀔 부분이다.


학습은 입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처럼 학습하지 않고 수학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반복하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단순히 데이터만 넣는다고 인공지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 제작자가 프로그램을 정밀하게 작업해야 한다.

순서는 텍스트 연구, 그 텍스트 바탕으로 다른 텍스트 생성, 자신이 만들어낸 텍스트의 일관성을 원본과 비교, 스스로 점수를 매기고, 최고의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하면서 이것을 반복한다.

이 과정이 엄청나게 빠르게 많이 일어난다. 쉬지도 않는다. 하지만 단순한 논리의 반복이다.


우리는 요즘 TV 광고로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장면을 본다.

대화 상대로.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을 시키기 위해서 등 다양하다.

이 책 속에서는 트위터 챗봇이 먼저 되고, 사람들이 인격을 느끼고, 위로를 바란다.

우리의 TV 광고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현실적이다, 여기서 저자들은 한 발 더 나간다.

아들을 잃은 엄마가 아들의 데이터를 가지고 와서 아들의 인공지능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만약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아들을 만들어낸다면 과연 그 인공지능은 그 엄마의 아들일까?

윤리적인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해결할 부분이 많다.

그리고 이런 시장을 노리고 진입하려는 업체들도 생길 것이다.


인공지능의 장점과 허점을 저자들은 그대로 보여준다. 현실적 한계다.

테러리스트가 동선 등을 보고 그 인물을 예측하지만 완전히 맞지는 않다.

확률의 문제는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100% 완전한 방법도 나오지만 전혀 현실성 없다.

이 인공지능이 현장에 투입되면 일자리를 잃게 될 사람들의 모습도 나온다.

실제 현실에서 이미 많은 부분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지난 세기 산업 로봇이 단순 노동을 대체한 것처럼, 이제 지적 노동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거대하다. 미래의 우리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 책은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투려움이나 환상을 자제하고, 현실 기반으로 직시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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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매 소녀 안전가옥 쇼-트 14
박에스더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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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쇼-트 14권이다. 대충 세어 보니 이 책까지 7권 읽었다. 생각보다 적다.

시간 나면 중간에 놓친 소설들을 읽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시간 내서 읽어야 하는데 말이다.

영매란 단어를 보고 무당과 차이를 찾아봤지만 개념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한 글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영매를 무당의 일부로 인식한다는 글이 보이는데 좀더 공부해야겠다.

주인공 은파의 경우 무당의 딸인데 특정 귀신의 신내림이 보이지 않는다.

무당의 신내림을 생각하면 귀신을 보고, 그것을 정화하는 영매술사에 가까운 것 같다.

너무 자의적인 해석인가?


Y여고는 기숙 여학교다. 은파는 귀신 등을 볼 수 있다.

어릴 때 이 능력을 말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소문도 좋지 않다.

Y여고는 산중턱에 있는데 이 학교는 이상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온갖 잡귀들이 학교와 학생 주변에 머물면서 기이한 일들을 벌인다.

대부분 큰 문제가 아니라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넘어간다.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은파는 동급생 모니카의 축원문이 지워지는 문제를 해결해준다.

이때 학교의 마스코트인 검은 고양이 이채를 만난다. 그 만남은 은파가 제령한 잡귀를 먹으면서부터다.

이후 은파가 타로 점을 잘 본다고 알려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실체를 가지고 있지만 본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검은 고양이 이채와 함께 타로 점을 보고 제령한다.

제령 후 잡귀들은 이채의 먹이가 된다. 덕분에 이채는 더욱 커진다.

빛나고 이쁜 선배 김기율에게 다가가기 위해 모니카의 문제를 해결했는데 다른 일이 더 많다.

그러다 모니카의 비싼 옷이 갑자기 사라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캐비닛 속에 시간이 중첩된 이상한 공간이 있다. 판타지의 인벤토리와 닮아 있다.

이 공간에서 이상한 사진 하나와 모니카의 옷을 찾아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이상한 사진 한 장이다. 사진 속 소녀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여학교의 소소한 귀신들 제령 이야기였다.

하지만 수능 100일 앞두고 학교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소문과 전설이 엮인다.


고3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수능이다. 이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의 미래를 결정한다.

실패했다고 다시 시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선택의 순간이 열린다.

그 동안 들인 노력과 열정을 생각하면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큰 행사다.

당연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 그런데 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으면 전교생의 수능 성적이 엄청나게 좋아진다.

은파와 김기율이 이상한 경험을 한 이후 고3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 감정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한탕주의가 결합한 것이다. 씁쓸하지만 아주 현실적이다.


후반부로 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괴이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교실에 걸리는 괴이한 모양의 인형들, 구간제라는 이상한 의식, 숨겨진 욕망의 뒤틀린 표현.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마주하는 사건의 진실.

가려져 있고, 숨겨져 있던 사실들이 드러나고,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 가운데 있는 것은 은파의 엄마, 한경이. 가슴 아린 사실과 감정들.

어느 정도 예상한 결말이지만 왠지 모르게 더 많은 뒷이야기를 듣고 싶은 이야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미지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가 공존한다.

기존의 오컬트 소설과 조금 궤도를 달리한 듯하고, 더 많은 은파의 제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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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김병종 지음 / 너와숲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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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화가 김병종의 에세이를 읽었다.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기회가 닿으면 그의 에세이를 읽었다. 그렇다고 모두 읽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이 아마도 <자스민, 어디로 가니?>였던 것 같다. 그때 쓴 글과 표지를 보니 생각난다.

작년과 올해 <시화기행>이 두 권 나왔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계속 나올 것 같다.

옛 기억이 희미해진 지금 예상하지 못한 에세이가 나왔다. 반가웠다.


전체적으로 그가 여행한 곳에 대한 풍경, 기억, 감상 등을 적은 글이다.

특유의 화풍을 보여주는 그림도 같이 실려 있다. 그림만 대충 보면 아이가 그린 것 같다.

대충 휘적휘적 그린 듯한 그림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눈길을 잡아 끈다.

동양화가란 것을 이전에도 인식하고 봤는지 모르겠지만 색감,  질감 등을 보면서 서양화가 먼저 떠올랐다.

동양화 붓질 특유의 느낌이 있지만 서양화가들도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을 봤다.

색감이나 인물의 질감 등을 보면서 나의 얕은 지식이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이다. 다음까지 기억하려나?

푸른 바다의 색감은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런 느낌 오랜만이다.


화가는 많은 곳을 여행했고, 그곳의 풍경을 그렸고, 감상을 적었다.

내가 잠시 스쳐간 곳도 있지만 대부분 가보지 못한 곳이다. 낯설고, 신기하고, 가고 싶다.

화려한 수사보다 자신의 감상을 그대로 적은 글은 담담하게 읽힌다.

내가 간 곳에서 내가 놓친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지금 당장 달려갈 수 있는 곳은 자꾸 오라고 손짓한다.

얼마 전 읽었던 라오서의 <찻집>에 대한 이야기는 반가웠지만 ‘카더라 통신’은 조금 아쉽다.

읽으면서 <라틴화첩기행>의 흔적을 더듬어 본 것도 있다. 아주 희미하지만.


장소 중 호텔 이야기는 사실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아마 경험치가 달라 그럴 것이다.

네팔 공항 이야기는 두 번 나오는데 편집 과정에서 놓친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세 단계의 여행 이야기를 할 때 자신 있게 나는 2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화가는 1단계와 2단계 사이라고 말한다. 순간 나의 오만함을 반성했다.

얼마나 많은 것은 내가 놓치고 있기에 이런 오만한 말을 했을까 하고.

폐허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문화에 대한 천박한 감성을 엿볼 수 있었다.

치앙마이의 타패가 얼마나 많은 여행객을 끌어당기고, 긴 여운을 나에게 남겼는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나일강변의 잠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서늘함보다 모기 걱정이 먼저였다. 감성 파괴자인가?

바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루하고 어려웠던가.

한국, 중국, 일본의 정원 이야기를 읽으면서 실제 셋 모두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대한 정원은 솔직히 감흥이 없었다. 그냥 넓고, 넓었다.

몽마르트르의 기억도 그렇게 좋지 않다. 수많은 흑인 삐끼들 때문일까? 아니면 제대로 보지 못해서일까?

파리 도시 속 수많은 갤러리와 수많은 미술품 등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싶다.

동네의 작은 다리 퐁네프도 다시 걸으면 기분이 달라질까? 기억을 환기시키는 곳들이 보인다.



작가처럼 거기서 죽어도 좋아하는 곳은 당장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짧은 여행 경험 속에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늘 있다.

아마 다시 간다면 그때의 감성은 사라졌겠지만 또 다른 감상이 그 빈 곳을 채워줄 것이다.

한국 속에서도 늘 가야지 생각만 한 곳 중 하나가 섬진강이다. 스쳐 지나만 갔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으로 둘러본 곳을 다시 갔을 때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아이와 다시 가면 어떨까?

남미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이 교차하는데 언제 이것을 풀어낼까? 다시 살짝 아바나에 가고 싶다.

장소, 기억, 사람 등이 시간과 엮여 빗어내는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 한 곳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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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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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다섯 편으로 구성된 비교적 얇은 단편소설집이다.

오랜만에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

검색하다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작가의 장편을 읽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몇 권 읽지 않은 것도 단편집이었고, 장편들은 그냥 모셔만 두고 있다.

읽은 단편들도 너무 오래되어 기록을 뒤져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놈의 저질 기억력!

오랜만이지만 단편들을 재밌게 읽었다. 적당한 무게와 재밌는 이야기들 때문이다.


표제작 <스마일>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흔한 아버지들의 말로 시작해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흥미로운 인용과 개성 강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다 한 승객에게 문제가 생기고, 이 승객이 죽으면서 흐름이 바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기내식에 대한 고찰은 읽으면서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잠시 나의 경우와 비교했다. 달랐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열린 결말인데 왠지 그 미소가 여운을 남긴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도 읽다가 중간에 예상하지 못한 설정에 놀랐다.

태평양 어딘가에 있다는 플라스틱 섬에 대한 이야기와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등이 모여 섬처럼 된 그곳. 그 섬에서 생존해야 하는 사람.

먹은 것을 다시 토한다는 앨버트로스. 그리고 이야기들을 모아 소설로 쓴다는 작가.

이런 연결 고리들이 교차하고 뒤섞이는데 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AI이다.

단순히 사람과 대화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선 인공지능이다.

화자로 등장한 AI가 들려주고, 뉴스를 선택해서 알려주는 마지막은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왼>은 왼손잡이에 대한 판타지처럼 다가온다.

신은 왼손잡이란 주장을 내세운 학자와 칼리와 부족을 관찰하러 간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부족 사람들은 모두 왼손잡이다. 춤을 출 때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재밌는 점은 부족 두 사람이 결투할 때다. 한 명은 오른손에, 다른 한 명은 왼손에 칼을 쥐고 있다.

부족 사람이 죽으면서 도시로 돌아온 이후 들려주는 현대화와 자본의 탐욕이 빚은 비극은 또 어떤가!

허구와 거짓과 그 뒤에 숨은 사실은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차오>는 자동차에 내장된 인공지능이다.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다. 차오와 운전자로 진행되다 해킹으로 다른 사람이 잠시 끼어든다.

운전자는 건축물평가업자다. 그의 보고서에 건축물의 운명이 결정된다.

당연히 로비도 많을 수밖에 없다. 원한을 품은 사람도 적지 않다. 해킹은 이런 사람 중 한 명이 했다.

해킹과 회복, 사실과 거짓말, 개발과 보존 등이 뒤섞인다.

읽다 보면 자율주행차가 가져올 비극 중 하나가 보인다. 스마트폰 해킹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휴가 중인 시체>를 읽다가 오래전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사실과 가공을 뒤섞어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모두 읽은 지금은 씁쓸하다.

인생에서 언제나 큰 문제는 한 번의 실수에서 비롯한다. 보통은 그냥 지나갔을 수도 있는 그 실수 말이다.

45인승 버스를 개조해 전국을 달리는 운전수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화자의 관찰은 흥미롭다.

차에 적은 문구 ‘나는 곧 죽는다’는 차를 관이라고 부르는 그의 삶을 대변한다.

그의 차에 적힌 문구에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의 행동에 대응하는 운전수의 모습은 숨겨진 사연이 나오면서 조금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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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 창비시선 476
이정록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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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76권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처음 읽는 시인이다. 30여년의 시력을 가진 시인인데도 그렇다.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이다. 긴 세월을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시집 출간은 아니다.

비교적 천천히 읽은 시집이지만 분량이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려운 시집이 아니지만 시어들을 곱씹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똥 싸는 일을 / 뒤를 본다고 쓰는 / 얼간이도 있다마는 // 뒤를 본다는 것은 / 알을 낳는다는 말이다 / 희망을 돌아본다는 약속이다” (<뒤편의 힘> 일부)

이 시를 읽을 때 잘못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희망을 돌아본다는 약속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집은 다른 시집보다 작게 소리 내어 읽은 시들이 많다.

시가 잘 읽히지 않을 때, 이해가 전혀 되지 않을 때 소리를 내어 시를 읽는다.

그럼 조금 더 잘 이해하고, 한발 더 다가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무릎 수술을 한 노인과 버스 기사의 농담을 다룬 시가 재밌다면 <꼬마 선생님>의 시는 눈시울을 붉힌다.

<구명조끼>를 읽으면서 “저수지에 들어간 뒤 쉰 넘어까지 나오질 않았다.”고 한 부분에서 순간 울컥했다.

아주 오래 전 강에서 나오지 못한 친구나 아는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꽃길만 걸어요>에서 꽃길만 걸어라는 편지에 “당신도 꽃길만 걸어요 / 당신도 비단길만 걸어요”라고 했을 때 그 지극한 마음이 가슴에 콕 와닿았다.


“거실까지 따라 들어온 / 구두 한짝이 바짝 엎드려 있다. // 너도 밤새 배가 많이 아팠구나.” (<과음> 전문)

이 간결한 시를 읽고 전날 과음한 시인이 집에 들어오면서 어떤 행동을 했을 지 바로 떠올랐다.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것이다. 만약 없다면 누군가 그 신발을 정리한 것이다.

<게걸음>도 이 연장선에 있는 시다. 아마 거실에 오기 전 취객의 모습이 아닐까!

<고욤>의 시를 읽으면서 그 아버지의 마음이 쉽게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놓쳤을까?


<일곱 마디>란 시에서 “’뚝’과 ‘딱’은 신의 말씀이고 / ‘뚝딱’은 인간의 소리다 // 비는 딱 그치고 / 꽃은 뚝 떨어진다”고 했을 때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성악설>의 전문 “연통 속이 검어질수록 세상은 따뜻해진다. // 속이 탄다는 말, 젖은 목장갑도 희고 둥글게 마른다.”을 읽고 어디에 눈길을 주어야 할 지 의문이다. 검은 연통과 세상의 따스함을 연결한 감성이 좋다.

구멍 난 파스를 두고 벌어진 대화를 시로 풀어낸 <구멍>이란 시는 또 어떤가. 작은 해학이 묻어있다.

그리고 시 곳곳에 충청도 사투리를 녹여 정감 있게 쓴 시들은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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