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인방관자의 심리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이성현 옮김 / 노마드북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른 추리소설이 사건이나 트릭 등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면 그는 사람이 느끼는 불안, 공포, 주변의 시선 등을 다루면서 긴장감과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 어떤 순간은 훈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 상황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때마다 작가가 그려내는 사람들의 삶에서 다양한 감정을 맛보게 된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도 그만의 향기로 가득하다.
<진상>은 일본판의 표제작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10년 전에 죽은 아들의 진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왜, 누가 죽인 줄 모르고 가슴에 묻어둔 지 10년 만에 범인이 잡힌다. 범인은 사실을 먼저 부인한다. 결국 범행을 고백하면서 아들이 도둑질하는 것을 보고 협박해서 돈을 뺏으려고 했다고 말한다. 착하고 공부 잘하던 아들이 갑자기 도둑질을 했다니 부모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작가는 과거의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보다 아버지의 마음에 파고들어 잊고 있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한다.
<마음의 지옥>은 12년 전 교통사고를 일으킨 남자가 면장선거에 출마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뺑소니에 시체까지 묻어버린 과거가 있는 그가 상사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려고 면장선거에 참가한다. 그 면은 개발을 원하고 있다. 그런데 개발지 중 한 곳에 자신이 묻은 그녀의 시신이 있다. 이런 불안감이 처음 예상과 달리 힘겨운 선거전으로 이어지면서 지옥 같은 나날이 이어진다. 불안은 의심으로 이어지고, 의심은 다시 불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속에서 마음은 점점 황폐해진다. 빠르고 간결하면서 힘찬 전개로 작가는 그 불안감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살생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정리해고의 위협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다. 정리해고 된 후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지만 고용보험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불면증 관련 아르바이트는 자신을 점점 황폐하게 몰고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한 대의 차가 지나가는 것을 본다. 사이렌 소리도 들었다. 여기까지 실직자의 단순한 어려움을 다룰 뿐이다. 하지만 형사들이 나타나 살인사건에 대한 탐문수사를 하면서 이야기는 꼬이게 된다. 자신이 방황한 새벽에 발생한 살인사건 때문이다. 형사들의 조사로 아르바이트 한 것이 드러나 실업급여를 토해내야 할 지 모른다고 생각한 그 순간 그 날 밤 본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도 역시 자신처럼 정리해고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새롭게 떠오르는 사실은 힘없이 무료하게 시간만을 보내던 그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물론 숨겨진 비극도 있다.
<살인방관자의 심리>는 말 그대로 살인방관자들을 다룬다. 한 면접장에서 가장 기뻤던 때를 묻는 순간 테루는 친구가 죽었을 때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대학 1학년 가라데 부의 합숙 훈련으로 돌아간다. 폭력과 구타로 점철된 대학 가라데 부의 추악하고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현장으로 독자를 데리고 가서 왜 그가 그때를 떠올리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 순간 그 현장에 있었던 동기들과 선배들의 반응을 보여주고, 그 솔직한 감정에 기뻐하고 놀랐던 순간도 보여준다. 하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가시는 결코 제거되지 않았다. 제목 그대로 방관자들의 과거와 현재를 간결하게 연결하면서 나약하고 비겁한 현대의 우리를 보여준다.
<그 집의 미스터리>는 결말이 쉽게 예상되었다. 하지만 관심을 끈 것은 결말이 아니다. 한 순간의 잘못된 실수로 평생 낙인을 찍고 살아가야 하는 한 전과자의 삶이 시선을 끌었다. 과거가 드러나서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나야 하고, 이름만 치면 간단하게 관련자의 이름이 드러나는 부조리한 현실을 동시에 그려낸다. 우리가 전과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냉혹하고 의심으로 가득한지 보여주는데 나 자신에게 과연 나는 어떤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 편의 소설엔 경찰도 뛰어난 탐정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주변에서 늘 보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그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숨겨진 비밀과 불안을 극대화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 순간의 실수에서 비롯된 과거에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는 그들을 보면 삶은 늘 불안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미스터리 위에 사람의 따스한 온기와 숨결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