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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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 미스터리 상 7개를 수상한 작품이다. 몇 개는 잘 아는 상이고, 몇 개는 낯설다. 잘 아는 상 하나만 받아도 엄청난 광고를 하면서 책을 내는데 무려 7개나 받았다. 이런 수상 경력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해외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 수상작은 하나의 기준점이 된다. 화려한 수상 작품일수록 더 많은 기대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느낀 것은 과연 이 작품이 미스터리인가 하는 의문과 상을 7개나 받을 만 했는가, 였다. 단순히 미스터리만 놓고 본다면 예상한 결과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렇게 강렬한 전개가 아니었다. 그러나 소설 전체를 보면 한 소년의 성장이 가슴 속으로 조용히 파고들면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소설은 1961년 미네소타 주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여름의 기억을 다룬다. 주인공은 열세 살 소년 프랭크 드럼이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다. 2차 대전 당시 장교로 복무했고, 그때 경험한 것 때문에 변호사를 포기하고 목사가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작가는 그 당시 있었던 일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쟁 당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 보았다. 추측은 가능하다. 1녀 2남 중 둘째인 그는 동생 제이크와 함께 돌아다닌다. 이 여름의 모험도 제이크와 함께였다. 이 모험은 다섯 명의 죽음과 관계있다.

 

첫 번째 죽음은 친구다. 두 번째 죽음은 떠돌이 부랑자다. 세 번째 죽음은 친 누나다. 네 번째 죽음은 누나의 남자 친구다. 다섯 번째 죽음은 마을 건달이다. 이 죽음은 순차적으로 일어나지만 연쇄살인이 아니다. 만약에 화려한 수상 이력이 연쇄살인에 의한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포기해라. 누나와 그녀의 남자 친구의 죽음을 제외하면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한참 자라고 있는 소년에게는 다르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의 죽음을 볼 수 있지만 그 사이에 자신의 누나가 끼어져 있다면 다르다. 그것이 사고가 아닌 타살일 경우라면 더욱 더.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적인 부분은 바로 이 죽음에서 비롯한다. 비록 이야기의 흐름 상 금방 혹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만.

 

호기심이 왕성한 소년은 부모가 가지 말라고 한 곳을 그냥 돌아다닌다. 첫 번째 죽음이 있었던 철로에 가고, 다시 부랑자의 죽음을 본다. 이 철로는 나중에 그가 누나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다른 죽음들은 이곳과 관계가 없다. 관계가 없다고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아픈 기억이 존재하는 곳이지만 추억 또한 가득하다. 이 기억과 추억은 모자 사이에서 공유되기도 한다. 이때 진한 감정이 가슴 한 곳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이렇게 이 소설은 슬쩍슬쩍 감정을 건드린다. 어떤 때는 즐겁지만 어느 순간은 가슴이 시리다. 부모가 가지는 한계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소년은 이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한다. 이 성장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이다. 아주 직설적이다.

 

제이크. 이 아이는 말을 더듬는다. 이 때문에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형 프랭크는 제이크의 가장 좋은 친구다. 둘이 돌아다니면서 죽음을 발견한다. 프랭크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온갖 일에 끼어든다면 제이크는 조용한 관찰자다. 처음에는 이 부분이 부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제이크의 관찰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남들에게 놀림의 대상이었던 소년이 그 존재를 드러낼 때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래도 제이크가 어린 아이인 것은 변함없다. 늘 형의 뒤를 따라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부터 존재감을 드러내었다면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원제는 종교적 색채 가득한 ‘Ordinary Grace'다. ’철로 된 강물처럼‘은 소설 앞부분에 한 부랑자, 사실은 아메리칸 원주민의 말을 통해서 나온다. 처음에 이 한국 제목을 읽고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대목을 읽고 바뀌었다. 그리고 종교적인 색채가 소설 곳곳에 녹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강요된 믿음을 다루지 않고, 고민하고 고뇌하는 목사와 그 가족과 친구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드럼 목사가 보여준 행동과 말 때문이다. 오해와 소문을 배척하고 진실을 마주하려는 그의 노력은 감정을 폭발하려는 아내에게 오히려 독이 된다. 여기도 오해가 끼어있다. 이것을 풀어주는 존재가 바로 두 아들이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잘 읽힌다. 어느 부분에서는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어 눈시울을 붉히고, 어떤 대목에서는 저 놈이 범인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런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고 한 소년의 경험과 성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 성장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동생 제이크도 함께 한다.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제이크가 있다. 그리고 목사인 아버지가 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이 성장은 완전히 다르게 펼쳐졌을 것이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에도 신에 대한 믿음과 이성을 잃지 않는 그는 진정한 신앙인이다. 하지만 그 슬픔마저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다. 그가 흘린 눈물은 또 다른 여운으로 가슴 한 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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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로또부터 진화까지, 우연한 일들의 법칙
데이비드 핸드 지음, 전대호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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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내가 기억하기로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책 속에도 나오는데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는 의미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우연의 법칙’이다. 그런데 번역하면서 아인슈타인의 말로 바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변경이 더 많은 시선을 끌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우연의 법칙이란 제목으로 나왔다면 그냥 휙하고 한 번 보고 지나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펼쳐 읽으면서 예상한 어려움들이 다가왔다. 아주 기초적인 통계학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철학과 통계학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부제에 왜 우연들, 기적, 드문 일들이 항상 일어날까 하고 묻는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통계적인 단어를 끊임없이 사용한다. 불가능, 힘든 일, 있을 수 없는 일, 희박한 가능성, 행운, 우연, 기적 등이 대표적인 단어다. 사실 이 책은 바로 이런 일에 대한 통계학자의 대답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법칙을 말한다. 필연성의 법칙, 아주 큰 수의 법칙, 선택의 법칙, 확률 지렛대의 법칙, 충분함의 법칙 등이다. 이 중에서 핵심이 되는 법칙은 바로 필연성의 법칙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의미다.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단지 이것을 통계학적으로 보면 아주 아주 낮은 확률이다. 아니라고? 신의 의지라고? 그럼 이 책은 덮어야 한다.

 

아주 큰 수의 법칙은 말 그대로 확률의 표기할 때 분모에 대한 수를 의미한다. 만약 가능성이 0이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0.00000001%라면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 있다. 실제 저자는 이 숫자보다 훨씬 희박한 숫자를 내민다. 선택의 법칙은 우리가 가장 많이 속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화살 표적을 그린 것을 예로 들었는데 현실에서는 맞는 것만 추려서 예언한 사람들의 예가 더 맞을 것이다. 실제 통계 자료를 왜곡할 때 자료의 선택은 아주 중요한데 이 부분은 한 번 더 생각하기 전에는 알기 쉽지 않다. 확률 지렛대의 법칙은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의미다. 지구가 둥글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미세한 변화를 생각하면 된다. 충분함의 법칙은 충분히 유사한 사건들은 동일하다고 간주해도 된다고 말한다.

 

우연이니 기적이니 하는 말은 통계학의 의미에서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에 일어날 일이다. 단지 우리의 인식 한도 아래에서 보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될 뿐이다. 그리고 요즘은 기적이란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한다. 툭하면 기적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확률이 그렇게 낮은 것도 아닌데도. 이것은 우리가 우연이란 단어에서도 적용된다.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일 뿐임을 보여줄 때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주가 폭락이나 2008년 금융위기에 앞서 표기한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이란 것도 단지 통계적 조작에 가까운 것임을 보여준다.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보는 것들 중 하나이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통계학 지식도 필요하고, 철학과 과학 지식도 조금 필요하다. 그 깊이가 얕거나 무지하다면 이 책이 주는 재미를 제대로 누릴 수 없다. 나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한 번씩 읽어봤으면 하는 장이 있다. 미신, 종교, 예언에 대한 것이다. 특히 자주 말하는 예언의 경우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후에 끼워 맞추기식이 너무 많다. 맞는 것만 추려서 부풀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나의 패턴을 발견하고 이것을 예언이나 징조로 해석한 것에 대한 부분은 인간의 나약하고 허약한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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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었던 소녀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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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한 옛날 글들을 찾아보니 <용의자>에 대한 간단한 서평이 보인다. 이 작가에 대한 평이 좋아 출간된 소설들을 확인할 때는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읽은 듯하지만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애매한 상태라고 할까. 매력적인 캐릭터란 평가와 본 듯한 느낌이란 부분이 눈길을 끈다. 2006년에 읽은 책이니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솔직히 말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소설을 읽었다. 읽으면서 전작에 대한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새로운 캐릭터와 작가라면 너무 심한 평일까? 그렇게 시작해서 모두 읽은 지금, 예전 서평과 함께 이 작품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파킨슨병에 걸린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이 주인공이다. 병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근육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심리학자 특유의 관찰력과 분석력이 있다. 육체적 능력은 떨어지지만 사람들의 표정과 조그만 행동으로 차이를 발견한다. 이 차이가 보통의 형사들이 결코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한다. 그렇다고 그가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곁에는 전직 경찰인 빈센트 루이츠와 현재 경찰인 로니 크레이 경감이 있다. 루이츠가 그와 함께 조사하고 움직인다면 로니는 경찰의 테두리 안에서 그를 지원한다. 이야기 중간에 서로의 이익과 오해로 인해 충돌을 불러온다. 루이츠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부분을 읽을 때 약간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장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조와 그 가족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딸 찰리와 딸의 친구 시에나를 데리러 간다. 연극 연습을 하고 있다. 상담교사 애니 로빈슨이 살짝 그의 입술에 키스한다. 딸이 이것을 본다. 찰리와 시에나를 태우고 집으로 간다. 시에나에게 전화가 온다. 남자 친구다. 차 뒤에서 옷을 갈아 입는다. 남자 친구에게 달려간다. 이때만 해도 평범한 여학생의 모습이다. 하지만 늦은 밤 아내에게서 시에나가 왔다가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으러 가면서 끔찍한 이야기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시에나의 언니는 소년 리암의 폭력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이유는 머리에 팝콘을 쏟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도입부에 리암을 풀어주기 위한 위원회 장면이 나온다. 담당 심리학자는 순간적 광기라고 하면서 그의 석방을 말한다. 하지만 조는 그 아이의 눈빛과 미묘한 행동으로부터 아직 문제가 있음을 본다. 리암을 살짝 도발하자 분노가 폭발한다. 이 작은 에피소드는 조가 가진 심리학자의 능력과 뛰어난 관찰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사회에 관심 없고, 걱정하는 것이 개인이라고 말한다. 개인에 대한 걱정과 누명을 벗기려는 노력이 곁들여지면서 이야기는 복잡하게 엮인다.

 

시에나의 집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아빠 레이다. 전직 경찰 출신이다. 하지만 그는 아주 가부장적이고 어린 딸을 성폭행한다. 첫 대상은 조였고, 다음은 시에나였다. 살인 현장과 시에나의 옷에서 증거를 수집한 로니는 시에나를 살인범으로 규정한다. 로니가 이 살인 사건 속으로 조를 끌고 들어갔는데 시에나가 진범인가를 두고 서로 대립한다. 증거가 시에나를 가리키지만 심리학자는 시에나라 아니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레이의 성폭행이 드러난다. 시에나가 임신까지 했다. 아빠는 누굴까? 불행하게도 DNA를 얻지 못한다. 그 남자 친구일까? 조가 찾아간다. 늦은 밤 레이의 집 근처에 숨어 있던 그다. 하지만 그는 게이다.

 

경찰이 수사한 것과 자신의 직관과 분석이 동원되면서 새로운 인물이 떠오른다. 교사인 고든 앨리스다. 레이가 그와 시에나의 키스 장면을 보고 학교에 진정을 넣은 것이다. 시에나는 고든 집에서 베이비 시스터를 하기도 했다. 고든은 잘 생긴 교사다. 그런데 그가 조에게 학생과의 관계를 아주 묘하게 설명한다. 이때만 해도 직선적인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아내 줄리언이 통역을 하는 사건의 용의자 노벅 브레넌과 인연이 있다는 것이 알려질 때까지만. 노벅은 한 가정집에 소이탄을 집어던져 일가족의 대부분을 죽게 만들었다. 생존자가 그를 지목하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인종 차별주의자인 그인데 국회의원에 당선될 뻔했다. 이 둘의 관계를 알려준 것은 상담교사 애니다.

 

아내와 별거 중인 조, 그를 유혹해 하룻밤을 보낸 애니. 고든에 대한 과거 이야기들. 루이츠가 등장하면서 고든의 과거사 중 하나가 밝혀진다. 그의 전 아내가 실종했던 사건과 현재 아내가 나이를 속인 채 결혼했다는 사실까지. 그는 어리고 특별한 학생을 유혹하고 자신의 통제 아래 둔다. 여자 아이들은 그를 사랑한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 그의 과거 속에 또 다른 인물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레이 살인사건이 다른 사건과 연결된다. 이 과정에 조는 이성을 잃고 폭력을 휘두른다. 단순히 살인자를 잡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정을 파고 상대의 다음 수를 기다리는 심리 대결로 바뀐다. 누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야기 속으로 정신없이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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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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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처음으로 읽는 파키스탄 출신 작가의 작품이다. 파키스탄 출신이라고 하지만 그는 영어로 소설을 쓴다. 모국어로도 소설을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기계발서를 유쾌하게 비판하는 글로 각 장을 시작한다. 소설의 제목에서 ‘더럽게’를 빼면 그냥 자기계발서의 제목이 된다. 하지만 단어 하나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두껍지 않은 분량과 도입부의 전개는 약간 지루하지만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생각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서 바뀌었다. 각장의 제목이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기계발서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삶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재미있고, 재능이 가득하다. 한 인물의 생애를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그려낸다.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로 와서 교육 받고, 알바 등을 하다가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린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조금 더 나아가서 일어날 수 있는 일 하나를 더 넣어 자수성가 기업가가 그 부를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준다. 책 후반부로 가면 그가 힘들게 일군 부를 관료 등이 얼마나 쉽게 갈취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이 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집과 주변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준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지만 늘 외부의 폭도(?) 등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 무산계급 출신 인물의 성공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을 첫사랑이다. 이름이 생략된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당신’이고, 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예쁜 여자’다. 그 외 사람들도 누나, 형님, 친척, 아내, 아내의 동생, 아들 등으로 불린다.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을 다루는 책에서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부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 작가들이 부자가 아닌 것처럼. 하지만 각장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이다. 부자가 되려면 도시로 나와야 하고, 교육을 받고, 좋은 연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인지 작가가 들려주는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은 낯설지 않다. 내가 자라면서 보고 듣고 한 것들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예쁜 여자가 살아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육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순수한 사랑이 조금 남아 있다. 바로 ‘당신’이다. ‘당신’도 평생 동안 예쁜 여자를 잊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더럽게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잃어가고 있는 순수함을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찾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성공을 질시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의 목숨을 위협까지 할 때 그 순수했던 사랑은 더욱 강렬해진다. 그리고 이들은 자주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을 걸쳐 아주 가끔 만난다. 그때 보여주는 반응은 너무 담담하고, 강렬하다. 이것만 보면 한 편의 로맨스 소설과도 같다.

 

자기계발서 형식을 빌린 성장소설이자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담고 있다. 경제적 성공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그의 성장을 보여준다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패와 비리 등은 그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노골적인 모습이 왠지 정겹다. 아마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많이 사라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당신과 예쁜 여자가 나올 때면 그들의 깊은 신뢰와 사랑이 나의 가슴을 살짝 흔든다. 마지막 문장은 이 사랑과 작가가 하고픈 말을 아주 잘 표현했다. 작가가 계속해서 말한 주인공 ‘당신’이 진짜 당신일 수 있음을 안다. 읽는 동안 한 남자의 성공을 엿보았다면 다 읽은 지금은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음을 느끼고, 그 사랑을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이 작가 계속 관심을 두어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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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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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문학상 수상집을 거의 읽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신인 작가들에 낯설다.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다 혹은 인터넷 카페에서 그 이름이 자주 언급되지 않으면 아예 처음 듣는 이름도 많다. 그렇다고 문예지를 읽지도 않으니 더욱 모른다. 이런 나에게 최정화란 작가는 솔직히 말해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러니 이 작가에 대해 그 어떤 선입견이 생길 수 없다. 늘 그렇듯이 책을 받아 펼치면 목차를 읽는데 열 편의 단편이 있다. 그런데 책 제목과 똑같은 단편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란 제목이 있다. 순간 왜 제목을 편집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소설처럼 보이는 것이 싫었던 것일까? 아니면 제목이 너무 긴 것일까?

 

첫 단편 <구두>를 읽으면서 나의 머리는 작가가 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읽지 않고 반전을 예상했다. 고용주가 실재 고용인이 아닐까 하고. 화자의 불안한 심리와 행동이 장르소설의 구성과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 이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비틀린 시선이 오독으로 이어진 것일까? 이런 생각은 등단작인 <팜비치>를 읽으면서 더 심해졌다. 납득할 수 없는 남편의 행동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넋 나가고 불안한 가장의 행동과 심리가 갑자기 일반적인 남편들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발바닥의 상처가 견고한 가정의 벽에 균열을 가져오는 상징처럼 다가왔다.

 

<오가닉 코튼 베이브> 속 여자는 주체성이 없어 보인다. 건강보조식품에 빠졌다가 생협 활동가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 유행과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단히 취약해 보인다. 열성적인 활동가인 것처럼 움직이지만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철학의 부재와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는 마음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가 실제 그녀의 본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 <틀니>를 처음 읽었을 때는 아내의 첫 마음과 같았다. 틀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그런데 틀니를 뺀 남편을 본 후 변한 아내의 심리 변화에 더 눈길을 주면서 현실과 상상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있는 그대로 읽기에 너무 강렬하다.

 

<홍로>의 도입부를 읽을 때만 해도 나이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백화점 판매원이란 선입견 때문이다. 계약부부인 이들이 동창 여행에 가서 보여주는 행동과 심리 변화는 불안과 자신감의 뒤섞임이자 권력의 역전이다. 늘 움츠려 있던 그녀가 거짓말을 한 후로 곧게 등을 펴고 빠르게 걸을 때 통쾌했지만 그 이면을 한 번 더 생각하면 더 깊은 추락이 보인다.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는 1인칭 소설로 화자의 심리 변화와 행동에 진실성을 부여하기 어렵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화자의 사소한 장난이 관계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이것이 왠지 마지막 장면과 어긋나 보인다. 스티븐 킹의 <미저리>가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타투>의 아버지를 보면서 대부분의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중학생 딸의 임신을 바로 묻지 못하는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딸의 친구들을 보면서 누가 아빠일까 추측한다. 실제 알려주지도 않는다. 또 딸이 담배까지 핀다. 사진기자인 아빠가 자고 있던 딸의 등에서 타투를 발견하고 카메라를 갖다대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다양한 해석으로 이어진다. 직업의식과 에로틱함이 교차한다. 선입견으로 시작한 또 다른 작품이 <대머리>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해 줄 여자의 사촌이 여자 대머리다. 추락한 삶을 일으켜 세워 줄 것이란 기대는 자신의 취향이나 감정과 상관없다. 잘 의도되고 계산된 행동과 말이 술로 인해 무너질 때 묘하게 감정이입되면서 불안감을 느낀다.

 

<파란책>의 아내는 <오가닉 코튼 베이브> 속 여자와 닮아 있다. 단순히 인테리어 목적으로 산 책을 두고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문화 허영에 찌든 중년여성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또 남편은 왜 친구들에게 장식용이란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괜히 아내가 하이데거를 이해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글은 왜 그렇게 어려운지. <집이 넓어지고 있어>는 실제 공간이 늘어나는 곳에 사는 화자의 불안감이 먼저 다가왔다. 자신의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대차 계약서를 들여다보며 불안해하는 그와 집이 넓어져 좋아진 그가 교차한다. 그러다 다른 집도 자신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느끼는 편안함과 행복은 괜히 짠하다. 중산층이라 불리며 조금씩 집을 불려갔던 시절의 우리가 조용히 스쳐지나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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