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 모중석 스릴러 클럽 43
제프리 디버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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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디버의 소설이다. 책을 받고 바로 읽었어야 하는데 일이 꼬이면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처음 캐트린 댄스 소개글을 읽고 그녀가 초능력을 지닌 줄 알았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잠시 딴 생각을 한 것이다. 실제는 동작학 전문가로 나와 조금 실망했던 기억도 살짝 난다. 댄스가 등장하는 작품 중 읽지 않은 것은 조연으로 출연한 작품 <콜드 문> 뿐이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이 등장해 반가웠지만 개인적으로 이렇게 많이 엮이는 것을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다. 너무 많이 엮이면 두 캐릭터의 영향이 조금씩 반감되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서 캐트린은 휴가를 갔다가 친구이자 컨트리 가수인 케일리 타운의 스토커 사건에 엮인다. 스토커의 이름은 에드윈 샤프다. 그는 케일리가 보낸 팬 메일을 착각하고 그녀에게 집착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숭배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에드윈 샤프는 심하다. 아주 심하다. 그녀를 스토킹하기 위해 살까지 뺐고 그녀의 기록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파고든다. 그리고 아주 영리하다. 절대 법적 문제가 될 지점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법적 절차를 밟지 않은 경찰이 문제가 된다.

 

디버의 장기는 반전과 반전의 연속이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반전이 이어진다. 하나의 사건이 끝났지만 분량이 너무 많이 남아 다음 반전을 기다린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벌어지고, 또 하나의 반전이 펼쳐진다. 이전 작품들처럼 반전이 압축되어 연속적으로 벌어지지 않아 다음에 어떤 반전이 펼쳐질까 기대하게 된다. 댄스와 에드윈의 심리 대결은 속고 속이는 것의 연속이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하나에 집중하는 에드윈에 비해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 댄스가 불리해보이지만 그녀에게는 좋은 동료들이 있다. 이들 덕분에 그녀의 추리는 정확하게 맞아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이번 반전 중 첫 번째는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음 반전을 위한 단계로 설정한 것 같은데 갑자기 툭 튀어 나온 느낌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던 것도 조금 불만이다. 뭐 이 때문에 반가운 사람들을 보게 되었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반전들은 마지막 반전을 위한 설정이 된다. 의심이 의문으로, 의문이 다시 의심으로, 확신으로 변하는 과정은 순간이나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늦은 밤 잠을 잊고 끝까지 달려갔다. 어떻게 결말이 날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확인하고, 다음에 일어날 혼란을 보면서 잠자리로 갔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크게 감탄한 것은 두 가지다. 당연한 반전은 제외하고. 하나는 케일리 타운이란 캐릭터의 현실성이다. 컨트리 가수인 그녀가 쓴 가사(실제는 디버가 썼지만)와 그 분야에 대한 애정으로 빚은 이야기들은 얼마 전에 들은 내슈빌의 컨트리와 엮이면서 이 지역과 음악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최고로 꽃피우는 케일리의 모습은 음악이란 소재로 인해 그 매력이 더욱 발휘된다. 읽는 동안 잠깐 잠깐 혹시 실존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을 정도였다.

 

다른 하나는 음악 산업 이야기다. 컴퓨터가 일반화되고, mp3 파일이 대중화되면서 전통적인 음악 산업은 무너졌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으로 19세기처럼 공연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2000년대 이후 내가 산 CD의 숫자는 손발로 꼽을 정도다. 물론 이전처럼 많이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점도 있지만 이 CD를 들고 다니면서 듣기보다는 대부분 스마트폰 속에 넣어 듣는다. 아니면 USB에 담아 차에서 들었다. 저렴한 가격에 수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몇 곡만 들을 CD는 불필요하다. 물론 그 음악가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면 다르겠지만.

 

반전의 연속 속에 댄스의 연애전선에도 반전이 이어진다. 예전에 읽어 희미해진 기억들을 감안하면 아주 흥미로운 반전이다. 두 인물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선택을 고민하는 모습은 양손에 떡을 든 모습과 비슷하다.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는 다음 작품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 하나는 케일리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온 이유다. 책을 덮기 전, 덮은 후에도 이 이유를 잘 모르겠다. 설명 대신 장면으로 보여준 것 때문에 혼란스럽다. 아시는 분 있다면 설명 좀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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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도 모르면서 -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내 감정들의 이야기
설레다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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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타는 책이다. 어릴 때 만났다면 이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감정들의 기록에 빠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고, 이와 비슷한 책들을 읽은 탓인지 이 말랑말랑한 감정과 기록들이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지 않는다. 기대했던 감정의 기복이나 폭발은 정제된 단어의 사용으로 너무 매끄러워졌다.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평온하게 적은 것을 보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어느 정도 순화된 모양이다. 그가 폭음을 한 것을 보면 보통 사람들과 결코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고, 그 감정의 기복도 마찬가지인 듯한데 말이다.

 

자신의 감정에 좀더 충실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이때의 충실은 좀더 싱싱한 감정 표현을 말한다. 명사를 동사화해서 풀어낸 부분은 원래의 의미에 자신의 감정과 이해를 엮었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그의 감정이 그랬구나 하는 것으로 어느 순간 바뀌었다. 이 단어 하나하나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하지 않아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도 적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감정의 조각들이 본문과 이어질 때 이 글을 쓸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짐작도 하게 된다. 설토의 모습은 본문의 이해를 아주 쉽고 간결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제목과 첫 몇 장의 글을 읽으면서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고, 그 사랑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기록들로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다. 섣부른 짐작이었다. 물론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온 사랑을 어렴풋이, 때로는 분명하게 표현한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어느 새 삶의 순간들로 넘어갔다. 그 사이사이에 그와의 일이 심어져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부분에서 둔한 나는 바로 찾아내지 못했다. 아니면 그 반대인데 잘못 이해한 것이거나.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일어나는 이야기가 이 글들 속에 설토의 그림과 완화된 어투의 글로 표현되었다. 설토의 그림은 정제된 문장 뒤에 가려진 감정을 잘 표현해준다.

 

살면서 자신의 마음을 모두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다고 착각한 순간이 적지 않다. 아니면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시간은 이 마음을 아는 순간을 제멋대로 뒤섞는다. 어느 운 좋은 날은 바로 알 때도 있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는다.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을 때, 다른 감정에 휘둘릴 때 나의 마음은 조용히 숨어서 자취를 감춘다. 이때는 시간만이 답이다. 아니 찾으려는 노력이 없으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문득 그 마음이 나타나고, 그리움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마음이 자란다는 저자의 표현은 그 자란 공간만큼 생각하지 못한 것들로 채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느리게 읽고, 섬세한 감정과 예의 바른 글을 좋아한다면 취향 저격의 책일 수도 있다. 나는 너무 때를 탄 모양이다. 아니면 내 마음도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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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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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미니어처리스트>를 재밌게 읽었다. 그렇다고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강하게 기다릴 정도는 아니었다. 취향의 문제였는데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시대를 달리한 두 여인을 등장시켜 풀어내는 이야기는 읽는 내내 숨겨진 비밀이 무엇일까? 궁금했고, 각자의 시대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연들에 완전히 몰입했다. 오델과 올리브, 이 두 여인은 시대의 한계 속에서 살았고, 자신들의 꿈과 능력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발휘했다. 안타깝지만 그것은 현실이다. 이런 한계는 단지 그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1967년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 오델과 1939년 에스파냐 올리브, 이 두 여인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풀린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 둘 모두 과거지만 1967년은 1939년의 비밀을 파헤치는 시간이다. 이 비밀은 한 요절 화가 이삭 로블레스의 그림을 둘러싼 진실이다. 하지만 이 비밀은 그 당시 관계자가 살아 있음으로 인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호기심을 부채질한다. 여기에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받고 있는 오델을 등장시켜 여성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고, 어떤 대우를 받는지 잘 보여준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비밀은 바로 이 성차별에서 시작했다.

 

오델은 신발가게에서 일하다 미술관 타이피스트로 전직한다. 하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다. 이전에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은 그녀의 인종 문제로 언제나 실패한다. 1960년대 후반 영국은 아직도 피부색에 민감했다. 그녀의 친한 친구이자 동거녀인 신스의 결혼을 기념하여 그녀가 쓴 시는 로리의 시선을 끌고, 로리는 그녀에게 매혹된다. 이 인연이 과거의 망령을 깨우고, 새로운 이야기의 문을 연다. 그것은 로리가 엄마에게 받은 유일한 유산인 한 편의 그림이다. 이 그림이 등장하면서 오델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과거 속으로 빠져든다.

 

올리브는 미술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아버지도 미술상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림보다 성이 먼저다. 아버지를 강하게 매혹시킨 그림을 그녀가 그렸다고 했다면 바로 그림을 들고 판매하려고 먼 길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을 알 정도다. 이런 그녀 앞에 나타난 이삭은 아주 좋은 기회다. 이삭에게 매혹된 그녀였기에 그의 이름으로 알려진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 그 그림이 높은 가격에 팔려도 그녀는 돈이 궁하지 않다. 이삭의 자존심이 상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돈은 이것을 살짝 덮어놓기 충분하다. 몇몇 대사와 장면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비록 테레사가 이 상황에 아주 불만이 많지만 말이다.

 

테레사는 이삭의 그림을 올리브의 것으로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그녀는 올리브의 그림이 좋았고, 그녀가 인정받기를 바랐다. 현실적인 올리브는 테레사의 계획을 깨트린다. 이 작은 연출과 상황이 비극과 비밀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테레사가 올리브에 대해 가진 감정을 과연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동경, 아니면 사랑. 무엇이든 테레사는 한 시대 속에서 예술가의 열정을 깨우고, 그 예술품의 가치가 올바르게 평가받게 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록 자신의 나이를 속이고, 주인집 물건을 훔치고, 자신의 의도를 완전히 관철시키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과거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현재는 그 과거의 유산을 해석하는 문제에 매달린다. 이 소설 속에서 이삭의 그림에 의문을 품고, 그 이면을 파헤치는 역할을 오델이 한다. 그녀의 시선과 인연들이 거의 30년 동안 파묻혀 있던 과거의 사실을 일깨운다. 하지만 이 과정들이 아주 정밀하지 않아 약간 돌발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대목들도 있다. 그리고 작가는 교묘하게 이름 몇 개를 숨긴 채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독자들의 추측을 부채질한다. 가능성과 사실의 차이는 하나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과거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점점 좁혀진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몇 개의 의문과 다음 작품의 기다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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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 컬리넌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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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매혹당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사람이 아주 매력적이라면 다르다. 이 소설 속 존 맥버니 북군 병사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젊고 잘 생겼다. 이것만으로도 외딴 곳에 살고 있는 소녀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 수 있는데 여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제3자가 보기에는 왜 이런 인물에게 넘어갈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그 시대와 환경과 조건들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할만하다. 그 조건 중 하나가 숲 속 외로이 떨어져 있는 판즈워스 여학교와 그곳에 머물고 있는 여선생들과 여학생들이다.

 

이 소설은 재밌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가면서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것도 흥미롭지만 낯설지 않은 설정이다. 여기에 대부분의 내용이 대화로 이루어져 있어 각자의 의견을 풀어놓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방식 때문에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 변화나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작가가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신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이 이야기를 살짝 비틀고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눈과 감정은 하나의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뱉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처음에는 이 방식과 인물들의 이미지가 연결되지 않아 조금 힘들었지만 뒤로 가면서 완전히 적응했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존 맥버니는 단 한 번도 화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여자들만 화자로 등장하여 존에게 호감을 드러내고, 사랑을 표현하고, 그의 간질거리고 유혹적인 말을 전달한다. 그에게 매혹당한 사람들의 시선은 그가 들려주는 거짓말을 그대로 전달할 때조차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그에게 스스럼없이 말한다. 이것이 또 하나의 자료가 되어 다른 여자를 매혹시킨다. 이 매혹적인 순환 구조는 불안불안하지만 존의 마법이 깨어지기 전까지는 유효하다. 그의 과감한 행동과 고립된 지역에서 살던 여학생들의 억눌려 있는 이성에 대한 갈망은 순간적으로 폭발한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다른 시대로 옮긴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다. 고립된 지역과 여자들만 있는 공간이란 설정만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다른 내용으로 채울 수 있다. 화자들이 번갈아 등장하고, 대화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극으로 만들어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뭐 이럴 경우 불가피하게 꽤 많은 분량의 대사가 지워져야하겠지만. 또 이것을 반대로 만들 수도 있다. 고립과 남자들만 있는 곳에 매력적인 여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그 여자들의 눈빛과 손짓에 넘어갈지는 너무 뻔하다.

 

이 소설 속에 화자로 등장하는 여자들은 모두 여덟 명이다. 마사와 해리엇 판즈워스 자매, 하녀인 매티, 숲에서 부상당한 존을 데리고 온 어밀리아 대브니, 가장 나이 많고 이쁘지만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에드위나 모로, 가장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얼리샤 심스, 남부군 장군을 아버지고 두고 있는 에밀리 스티븐슨, 가장 어리고 활발한 악동 같은 마리 데브르 등이다. 각자의 출생과 환경에 따라 가지고 있는 포부가 다르다. 당연히 비밀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이 적지 않은데 이것이 존을 통해서 하나씩 밝혀진다. 누군가에게 매혹되고,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안달인 사람들은 자신의 숨겨져 있던 욕망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것을 한정된 공간 속에서 멋지게 풀어내었다.

 

매혹의 마법은 한정적이다. 이해와 욕망이 충돌하면 그 마법은 깨어진다. 이 소설에서 분위기 반전이 일어나는 것도 이때다.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과 순수한 사랑의 열정이 마주하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생긴다. 이 사고는 가면을 쓴 존의 본성을 밖으로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의 비밀이 폭발적으로 폭로되는 시발점이 된다. 그 이전에 살짝 흘러나왔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진실로 굳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런 순간에도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파국은 정해져 있고, 언제 어떻게 터질지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몇 가지 이야기는 의문을 남기고, 그 마음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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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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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이란 단어 때문에 이사카 코타로가 SF를 쓴 줄 알았다. 워낙 다양한 장르의 문학을 다루는 작가이다보니 엉뚱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용 일부를 놓고 보면 SF적인 상상력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평화경찰이란 설정이 특히 그렇다. 물론 소설 속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마녀 사냥에 더 가깝지만 말이다. 최근의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점점 강해지는 감시사회의 모습을 감안하고 얼마 전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것이 아주 비현실적이지만은 않다. 오락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가 이 부분까지 깊이 파고들지는 않지만 읽는 동안은 많은 것을 생각했다.

 

상황과 사건, 사고를 먼저 보여준 후 화자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화자도 한 명이 아니다. 이런 시점의 변화는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각에서 이 사건들을 돌아보게 하고, 각 화자의 삶에 쉽게 다가가게 한다. 형사나 정의의 편이 이렇게 등장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갑작스러운 화자 변경이 낯설었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현실을 좀더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화자의 설명이나 화자의 시각을 통해 사건들을 보면서 앞에 나온 많은 사건들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툭 던져놓은 듯한 사건 보고가 하나로 묶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설정은 바로 평화경찰이다. 이름만 놓고 보면 아주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 이들이 하는 일은 일제 강점기의 그 유명한 특고들과 별 차이가 없다. 테러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사람들을 연행한다. 단순히 연행하고 조사만 한다면 문제가 적을 테지만 이들은 고문을 통해 없는 죄도 만든다. 당연히 이들에게 연행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테러범이라고 자백하고 단두대에 목을 올린다. 중세 유럽의 단두대가 현대에 나타나 공개처형 방식으로 시민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이때의 분위기는 화자의 시선을 통해 잘 드러난다. 상당히 끔찍한 처형인데도 일부 시민들에게는 흥분하고 즐길 유흥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비현실적인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현대의 대학살이 너무 많다.

 

감시사회의 공포는 독재사회의 공포처럼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느낄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소설 속 시민들은 평화경찰이 잡은 테러범을 그대로 믿는다. 경찰이 나쁜 짓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각의 변화는 주변의 평범한 시민들이 잡혀가고, 처형되면서 시작한다. 작은 의심이 자라지만 이것을 입증할 자료가 없다. 한 개인이 이 거대한 공조직을 상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의의 편이라고 불리는 히어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특히 히어로가 화자로 등장한 편에서 정의와 위선에 대한 갈등과 고민은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점점 관계가 복잡해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더.

 

평화경찰은 점점 흉악해지고 지능화되는 사회를 지킨다는 명목에서 만들어졌다.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실제 이것을 기획한 인물과 그가 선택한 인물들의 특징은 가학성을 지닌 경찰일 뿐이다. 물론 정의감에 불타는 경찰이 없지 않겠지만 이 조직 안에서 이런 인물이 버텨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고? 고문하는 경찰을 보고 참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고문과 평화경찰을 보면서 한국 현대사가 떠오른 것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같은 유명한 말이 있는 나라니까. 아마 이때도 우린 소설 속 히어로 같은 인물을 바랐는지 모르겠다.

 

말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설정과 전개이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고문하는 장면을 외부에 알리겠다고 했을 때 그들이 보여준 반응은 조작된 정보라는 대응이다. 왠지 낯익은 장면과 설정들이다. 일본의 과거 속에서 찾아야 한다면 우리는 현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장면들이다. 그래서인지 이 비현실적인 설정에 금방 빠졌다. 그리고 미스터리 같은 몇 가지 설정을 넣어 마지막에 한꺼번에 확 풀어버린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앞에 깔아놓은 복선과 설정들을 잘 엮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읽은 이사카 코타로였지만 역시라는 반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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