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으로 만나요
샤를로테 루카스 지음, 서유리 옮김 / 북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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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작가의 전작 <당신의 완벽한 1년>을 읽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후 조금 더 로맨스 소설에 관대해졌다. 그렇다고 열심히 찾아서 읽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보고 얼마나 기대했던가. 전작처럼 두툼한 분량으로 나를 압도하지만 실제 읽다보면 그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생각보다 빨리 진도가 쑥쑥 나갔고, 두 남녀의 결합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하는 기대를 계속 품게 되었다. 이 기대는 약간의 아쉬움을 동반한 만족감으로 이어졌다.

 

전작이 ‘다이어리’를 통해 한 여자의 목소리를 내었다면 이번에는 ‘블로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엘라는 블로그에 자신이 원하는 해피엔딩 결말을 써서 올린다. 현실의 무거움보다 해피엔딩이라는 아름다운 결말을 추구한다. 그녀의 이 행동은 많은 독자를 불러온다. 실제 영화나 소설 등을 보고 그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 바뀐 결말에 엘라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원작의 문체나 흐름을 깨트리는 않는 수준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이란 매체 덕분에 반응은 금방 올라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명의 댓글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녀의 이 결말에 열광한다.

 

그녀의 남자 친구 필립이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결혼 생각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녀에게 발견된 한 장의 쪽지는 이 행복을 깨트리기 충분하다. 하룻밤의 불륜이 있었다.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한다. 이보다 더 문제는 이 일이 있은 후 청혼을 했다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남자 친구에게 의존했던 그녀의 삶이 산산조각난다. 남자 친구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한 남자와 충돌한다. 자전거는 부서지고 그녀는 잠시 정신을 잃는다. 부딪힌 남자를 찾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신발과 지갑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남자를 찾다가 지갑 속 주소로 간다. 여기서 또 한 번 남자가 충돌하고, 남자는 병원에 실려간다. 이렇게 엘라는 오스카를 만난다.

 

기억을 잃은 남자와 거짓말을 하는 여자의 동거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일어난다. 팔까지 다쳐 불편하고 과거 기억도 못하는 남자에게 가정관리사인 엘라는 딱 맞는 선택이다. 남자 친구와 살면서 자신의 삶을 잃은 엘라에게 오스카의 큰집과 그를 돕는 일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한다. 다만 문제라면 그녀가 가끔 딴 생각에 빠져 사고 비슷한 것을 친다는 정도랄까. 특히 운전할 때 그녀가 보여준 위험한 행동은 팔이 불편한 오스카가 직접 운전해야 할 정도다. 잃은 기억을 그렇게 갈망하지 않는 남자와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길 바라는 이 둘은 생각보다 훨씬 멋진 콤비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제목에서부터 해피엔딩의 기운이 풀풀 날리는 이 소설은 각 단계마다 하나의 미스터리를 집어넣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오스카의 기억상실과 그의 아내와 아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 그리고 왜 그가 그렇게 변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들. 필립이 다시 엘라에게 관심이 보일 때 알게 모르게 가까워진 오스카의 등장은 은연중에 분위기를 살짝 바꾼다. 오스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엘라의 행동은 탐정을 닮았지만 어설프다. 이 어설픔은 오스카의 기억상실이 상쇄시켜준다. 여기에 작가의 재치 있는 문장과 인용은 읽는 재미까지 덧붙여준다.

 

전체적으로 잘 읽히고 재밌다. 반가운 인물들도 등장한다. 전작의 주인공들인 요나단 그리프와 한나가 카메오로 나온다. 이들의 등장을 보면서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어떤 인물이 카메오로 등장할까 살짝 추측해본다. 혹시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엘라 블로그의 현실주의자가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이미 두 편의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들이 현실보다 자신들의 바람을 더 강하게 나타내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독히 냉소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 나와 새로운 로맨스를 보여줘도 재밌을 것 같다. 이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잘 쓴 로맨스는 나의 취향과도 맞아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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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정규웅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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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후기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60년대와 70년대 문인들을 다룬 책이 나왔었다. 관심을 가지고 검색하니 비슷한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보인다. 이렇게 문인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이들이 나의 삶 한 곳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문학 소년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소설과 시 등을 읽으면서 자랐다. 학창 시절 의무감 비슷하게 읽었던 수많은 한국 문학은 이제 기억이 희미하지만 은연중에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물론 그 자부심이란 것이 특별히 자랑할 것은 아니다. 단지 읽었다는 그 자체를 의미할 뿐이니까.

 

80년대라고 하지만 이 책 속에 나오는 문인들의 활동이 그 시대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전부터 시작하여 90년대를 넘나든 작가나 시인도 적지 않다. 그리고 재밌는 사실 중 하나는 이 책에서 다룬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저자가 그들을 이야기하는데 조금 더 편한 부분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한 문인의 삶을 몇 쪽의 짧은 이야기로 간략하게 추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고, 오해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의 나열만으로 부족한 것을 자신의 기억과 추억 등으로 채웠는데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한 장으로 끝나는데 두 명만 분량이 조금 더 된다. 소설가 한수산과 시인 기형도다. 기형도의 경우 학창 시절 좋아했던 시인이다. 아마 나의 암울하고 우울했던 20대와 그 시가 아주 잘 맞아떨어져서 그런지 모르겠다. 저자가 기형도의 직장 상사였다는 부분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한수산 필화사건은 이름만 들었지 내용은 잘 모르는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해 그 이면을 아주 잘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 사건과 저자가 직접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 <군함도>로 화려하게 문단에 복귀했는데 반가운 일이다.

 

대부분 한두 권 정도 읽은 작가나 시인들이다. 하지만 조금 낯선 이름도 보인다. 한때 한국 문학 전집에 나오지 않은 몇몇의 경우나 사지 않은 작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방송작가로 더 이름이 높거나 역사 소설가의 경우는 특히 읽지 않은 경우가 눈에 들어온다. 평론가의 글은 당연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역시 저자들의 작품들이다.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은 책이 나올 때면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물론 대부분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리고 저자의 문학 기자 경험 등에서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글동네의 재미난 에피소드들이다. 아직 저자의 나이에 도달하려면 아득한 나이지만 그립다는 표현에 동의하는 것은 내 독서의 뿌리가 바로 이들에게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문단에도 불어온 me too 열풍은 문단의 썩은 부분을 아주 보여준다. 존경했던 노 시인과 작가들의 말년 몰락은 한때 그들을 올려보았던 나를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90년대 한국 문학을 읽으면서 사변적으로 흘러가던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한 이후 한동안 뜸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 간략한 기억 속 이야기들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숨겨져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회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다툼이 짧게 표현되었지만 실제 이 과정은 아주 보기 흉했을 것이다. 그때는 관행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글 속에서 행간을 다 읽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이 책 속에서 다룬 작가들 중 몇 사람은 한때 거의 전작까지 나아간 적이 있다. 아니 그 당시는 전작이었는데 이후 다른 작가에 빠지면서 몇 권씩 놓쳤다. 이런 작가들과 함께 늘 관심이 있었지만 그냥 지나간 작가, 대표작을 읽지 못한 작가 등을 떠올리면서 순간순간 즐거운 추억여행을 했다. 어떤 이름은 낯설었지만 작품 이름을 보고 아! 감탄한 적도 있다. 이럴 때 나의 모자란 기억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립고 반가운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서 집에 있는 책더미 속에 파묻힌 책들을 한 번 휙 둘러보고 싶어졌다. 이런 후일담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을 보면 나이를 점점 먹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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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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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재밌게 읽었다.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소설은 아닌데 조용히 가슴 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담백한 문체와 차분한 구성은 어느 순간 나를 사로잡아버렸다. 그리고 긴 여운을 남겼다. 늘 그렇듯이 작가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책 제목은 책상 위에 놓아둔 책 때문에 자주 봤다. 그 소설의 작가란 것을 알고 얼마나 기대했던가. 그런데 분량이 지난번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분량이 많지 않아서인지, 책이 준 매력 덕분인지 늦은 밤을 달려 한 번에 모두 읽었다.

 

전작에서 건축사무소 직원을 다루면서 건축에 대해 널어놓았는데 이번에는 문학 편집자를 내세웠다. 편집자가 주인공이라면 문학에 대한 장광설이라도 한 번 나와야 하는데 소설 등보다 집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그래서인지 앞부분을 읽을 때 주인공 다다시의 직업을 살짝 잊은 적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집을 꾸미려는 노력과 열정은 읽는 내내 이어지는데 나에게는 조금 낯선 느낌이다. 나 자신도 책을 좋아하고, 많은 책을 수없이 사 모았지만 어떤 구체적인 집의 모양을 제대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누군가의 서재 등을 볼 때 부러워할 뿐이다. 당연히 북유럽풍 가구도 관심이 없다.

 

간결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혼을 했다.” 이 문장을 보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 이혼했는지, 이혼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혼 이후의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등. 이 한 문장을 던진 후 십오 년의 결혼 생활과 아내의 직업 등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나온다. 딱 거기까지다. 어떤 감정의 기복이나 강한 다툼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잔잔하고 고요하다. 집을 두고 나왔는데도 그의 삶은 오히려 더 고요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집을 열심히 찾았고, 그 결실을 맺었다. 오래된 고택이고, 집주인의 소노다라고 불리는 노부인이다. 아들이 있는 따뜻한 미국으로 떠나기 위해 싼 가격에 집을 세준 것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우연히 들른 국수집에서 예전 불륜의 대상이었던 가나를 본다. 기혼자였던 연인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둘은 헤어졌다. 우연한 만남은 한 통의 메일로 인해 횟수가 늘어난다. 이 만남 속에 다다시의 감정은 요동친다. 가기중심주의적인 심리 상태는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가능성을 탐구하고, 기대를 품는다. 결코 활동적이지 않은 그의 삶을 생각하면 마음의 변화는 심한 편이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한때 내 삶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누군가를 짝사랑했을 때, 소개팅을 하고 집으로 간 후 다시 전화를 하려고 했을 당시의 나. 하지만 작가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강렬하고 자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조금 밋밋한 듯하지만 정제된 문장들과 구성들이 이것을 잊게 만든다.

 

다다시와 사나의 만남은 어느 정도 사이를 두고 있다. 이 사이를 어떻게 봐야할까? 예의와 감정의 충돌이 눈에 들어온다. 다다시가 성큼 한 발 내딛지 않는 것이 불만이지만 이 소심함이, 주저함이, 때로는 신중함이 된다. 헤어진 후 꺼진 듯한 불씨가 조금씩 살아난다고 해야 하나. 이 둘의 만남은 사나의 아버지로 인한 변수도 있다. 이 관계들을 보면서 중년 이후의 연애는 생각할 것이 많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상과 열정만 좇기에는 너무 많은 경험을 한 것이다. 그래도 감정이 이어져 있고, 의지가 있다면 청춘의 열정보다 훨씬 오래간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볼 때 더욱 느낄 수 있다.

 

다다시가 선택한 목조주택은 현실적으로 살아가는데 아주 불편하다. 지하실에서 곱등이가 떨어지는 장면이나 웃풍이 심해 겨울이면 춥다는 말 등은 현대의 편리함에 젖어 있는 우리에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집을 조금씩 개조하는 그의 모습과 열정은 밖에서 보는 것 이상이다. 그의 독신 생활을 우아하다고 한 직장 동료의 말을 비틀어 만든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다시 자신은 결코 우아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를 보는 친구들이나 독자는 삶의 여유를 집과 책에 쏟는 그가 우아해보인다. 아니 우아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현실의 늪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이 늪을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는 온전히 그의 선택이다. 마지막 장면은 그 선택 중 하나인데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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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7번째 기능
로랑 비네 지음, 이선화 옮김 / 영림카디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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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로 ‘누가 롤랑 바르트를 죽였나?’가 달렸다. 롤랑 바르트란 이름을 참 많이 들었지만 정확하게는 잘 모른다. 철학자, 기호학자 등으로 단순히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실존했던 인물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이 선택은 결국 아주 힘든 독서로 이어졌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어려운 용어와 상황들로 인해서 앞부분은 꽤 오랫동안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유명 인사들과 기호학과 철학과 정치 관련 이야기는 그냥 읽고 지나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1980년의 풍경들은 너무 낯설게 다가왔다.

 

언어의 기능에 대해 잘 모른다. 러시아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이 정리한 여섯 가지 기능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지시적 기능, 감정 표현적 기능, 능동적 기능, 친교적 기능, 메타언어적 기능, 시적인 기능 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7번째 기능으로 마법적 혹은 주술적 기능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언어의 기능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롤랑 바르트가 가지고 있었다고 설정한 텍스트 속에 이 기능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이 소설은 이 텍스트를 찾기 위한 모험과 활극을 다룬다.

 

롤랑 바르트가 교통사고로 즉사했다고 착각했다. 실제는 병원에서 죽었다. 소설 속에서는 누군가에 의해 질식사한 것으로 나온다. 유명한 학자의 부상은 그 당시 지식인들의 관심과 걱정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를 병문안하거나 그와 관련된 지식인들의 이름이 나올 때 놀라고 반가웠던 것은 나의 지적 허영이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바야르와 대학 교수 시몽의 만남과 활약은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된 이후에야 겨우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앞부분에 나오는 그 시절 학자들의 놀라운 삶의 풍경이 너무나도 낯설고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이 등장하는 것이야 별로 이상할 것이 없지만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묘사는 그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들었다.

 

시몽과 바야르의 수사극이란 큰 줄기에 붙은 곁가지가 엄청나다. 수사학과 기호학을 곳곳에 녹여내고, 세계적인 석학들을 등장시켜 전설처럼 남은 이미지를 산산조각낸다. 고고한 학자는 어디에도 없다. 욕망에 휘둘리고, 거침없이 나아간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작가는 어디까지 사실을 기록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만큼 충격적이다. 특히 푸코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마약과 성교가 난무하는 장면들은 세계적인 석학들과 그 시대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시간과 유명세 덕분에 미화되고 윤색된 그 시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설정 중 하나가 있다. 로고스 클럽이다. 말로 대결을 펼치는 클럽인데 등급이 나누어져 있다. 등급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상위 등급자를 논쟁으로 이겨야 한다. 만약 지게 되면 손가락을 잘린다. 이 대결 장면은 지적 향연의 연속이다. 인용과 비유와 변증법적 논리전개는 아는만큼 이해할 수 있다. 당연히 지식이 부족한 나는 충분한 재미를 누리지는 못했다. 중반에 움베르토 에코가 등장하는데 이때는 아직 <장미의 이름>을 출간하기 전이다. 인터넷 검색하니 1980년도에 이 소설이 출간되었는데 다른 언어로 번역되기 전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작가가 이 부분을 인용하지 않았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에코도 로고스 클럽의 회원이었다고 설정하면서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기호학를 둘러싼 음모를 다루면서 풀어내는 방대한 지식은 독자를 압도한다. 앞부분에 미로 속을 헤맨 것도 이 때문이다. 시몽과 바야르의 수사는 대통령의 지원으로 프랑스를 벗어난다. 이탈리아와 미국을 오가면서 지적 향연과 에로틱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그 사이사이에 롤랑 바르트가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되는 텍스트에 대한 단서와 이를 쫓는 무리들과 수상한 일본인 등이 등장한다. 마법적 혹은 주술적 기능을 가진 이 텍스트가 무엇인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수사는 지적 추격으로 이어진다. 지명도와 욕망이 충돌하고,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달하면 예상 외의 장면과 설명으로 잠시 혼란 속으로 밀어넣는다. 하지만 그 중간 중간 깔아놓은 몇 가지 설정 탓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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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스맨
루크 라인하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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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세기 최고의 컬트소설이란 광고 문구는 아주 자극적이다. 컬트영화에 한때 관심을 둔 적이 있기에 이런저런 영화를 찾아본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촬영과 이야기 전개는 아주 대중적인 나의 취향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런 취향은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소설은 어떨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상상을 초월한 한 인간의 탄생을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몇몇 장면과 상황 등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할 수 있지만 잔혹한 스릴러물들을 많이 보아온 나에게 루크 라인하트의 행동은 약간 기괴한 정도에 머물렀다.

 

성공한 정신과의사 루크 라인하트가 어느 날 주사위로 선택을 결정한다.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그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안정적인 직장과 명성을 가지고 있고, 덩치도 크다.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런 아들과 딸이 있다. 이런 평범한 일상에 권태와 무력함 등이 조금씩 파고든다. 자신의 정신과 치료에 대한 확신도 없다. 그러다 던진 하나의 주사위가 신의 계시처럼 다가온다. 주사위의 선택에 따라 동료 의사의 아내를 강간하러 간다. 이 행동이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고, 형법적으로 위험한 일이지만 그녀의 숨겨진 욕망을 들춘다. 이제 그의 새로운 실험이 이어진다.

 

주사위의 선택이란 설정이지만 기본적으로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할 일들을 적는다.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따라 숫자와 선택사항을 적어놓고, 주사위를 던진다. 그리고 숫자에 적었던 선택을 그대로 행동한다. 이렇게 건조하게 적어놓으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강간, 살인, 동성애 등과 같은 일도 해야 한다면 어떨까? 루크의 주사위교가 발전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나쁜 선택도 같이 넣는다. 예를 들면 누군가를 죽여야 할 때 자기 자식도 숫자에 넣은 것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자백을 할 때 주사위의 선택에 맡긴다. 자신의 의지가 없는 것처럼.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인간의 갈등과 고민이 이 숫자들과 연결된 선택사항에 모두 들어있다. 다만 최종 결정만 주사위의 우연에 맡기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성적 묘사가 상당히 수위가 있는 것이었다. 19금 딱지가 붙지 않은 것을 보면 조금 놀랍다. 루크의 이런 모험과 시도보다 훨씬 자극적인 작품도 있지만 말이다. 작가가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탓에 심리학적 서술이 줄줄 나와 조금 어렵게 느껴졌지만 기본적으로 정신과 치료의 허점을 많이 파고든다. 한때 할리우드 영화에서 얼마나 많은 정신과의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스릴러를 만들었던가. 그리고 다중인격이란 단어를 본문에서 발견하고 조금 놀랐다. 우리가 스릴러 등에서 보는 다중인격과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이때도 이런 정신과 용어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크 라이하트의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하는 주사위교를 보면서 나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결론은 불가능이다. 내 삶의 궤적이 그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완전히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떨까? 루크의 행동을 비판하던 동료가 주사위교의 신도가 된 것처럼 바뀔지도 모른다. 매번 결정을 내리면서 후회하고 안타까워하기보다 결정을 맡기면서 자신의 의지를 밖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의지가 선택사항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소설 곳곳에 패러디의 흔적이 보이는데 나의 지식이 부족해 완전히 재미를 누리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강하게 주사위를 사서 던지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귀차니즘이 이겼는데 이렇게 보면 주사위를 던진다는 것도 상당히 능동적인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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