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7번째 기능
로랑 비네 지음, 이선화 옮김 / 영림카디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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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로 ‘누가 롤랑 바르트를 죽였나?’가 달렸다. 롤랑 바르트란 이름을 참 많이 들었지만 정확하게는 잘 모른다. 철학자, 기호학자 등으로 단순히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실존했던 인물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이 선택은 결국 아주 힘든 독서로 이어졌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어려운 용어와 상황들로 인해서 앞부분은 꽤 오랫동안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유명 인사들과 기호학과 철학과 정치 관련 이야기는 그냥 읽고 지나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1980년의 풍경들은 너무 낯설게 다가왔다.

 

언어의 기능에 대해 잘 모른다. 러시아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이 정리한 여섯 가지 기능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지시적 기능, 감정 표현적 기능, 능동적 기능, 친교적 기능, 메타언어적 기능, 시적인 기능 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7번째 기능으로 마법적 혹은 주술적 기능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언어의 기능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롤랑 바르트가 가지고 있었다고 설정한 텍스트 속에 이 기능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이 소설은 이 텍스트를 찾기 위한 모험과 활극을 다룬다.

 

롤랑 바르트가 교통사고로 즉사했다고 착각했다. 실제는 병원에서 죽었다. 소설 속에서는 누군가에 의해 질식사한 것으로 나온다. 유명한 학자의 부상은 그 당시 지식인들의 관심과 걱정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를 병문안하거나 그와 관련된 지식인들의 이름이 나올 때 놀라고 반가웠던 것은 나의 지적 허영이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바야르와 대학 교수 시몽의 만남과 활약은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된 이후에야 겨우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앞부분에 나오는 그 시절 학자들의 놀라운 삶의 풍경이 너무나도 낯설고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이 등장하는 것이야 별로 이상할 것이 없지만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묘사는 그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들었다.

 

시몽과 바야르의 수사극이란 큰 줄기에 붙은 곁가지가 엄청나다. 수사학과 기호학을 곳곳에 녹여내고, 세계적인 석학들을 등장시켜 전설처럼 남은 이미지를 산산조각낸다. 고고한 학자는 어디에도 없다. 욕망에 휘둘리고, 거침없이 나아간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작가는 어디까지 사실을 기록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만큼 충격적이다. 특히 푸코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마약과 성교가 난무하는 장면들은 세계적인 석학들과 그 시대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시간과 유명세 덕분에 미화되고 윤색된 그 시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설정 중 하나가 있다. 로고스 클럽이다. 말로 대결을 펼치는 클럽인데 등급이 나누어져 있다. 등급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상위 등급자를 논쟁으로 이겨야 한다. 만약 지게 되면 손가락을 잘린다. 이 대결 장면은 지적 향연의 연속이다. 인용과 비유와 변증법적 논리전개는 아는만큼 이해할 수 있다. 당연히 지식이 부족한 나는 충분한 재미를 누리지는 못했다. 중반에 움베르토 에코가 등장하는데 이때는 아직 <장미의 이름>을 출간하기 전이다. 인터넷 검색하니 1980년도에 이 소설이 출간되었는데 다른 언어로 번역되기 전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작가가 이 부분을 인용하지 않았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에코도 로고스 클럽의 회원이었다고 설정하면서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기호학를 둘러싼 음모를 다루면서 풀어내는 방대한 지식은 독자를 압도한다. 앞부분에 미로 속을 헤맨 것도 이 때문이다. 시몽과 바야르의 수사는 대통령의 지원으로 프랑스를 벗어난다. 이탈리아와 미국을 오가면서 지적 향연과 에로틱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그 사이사이에 롤랑 바르트가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되는 텍스트에 대한 단서와 이를 쫓는 무리들과 수상한 일본인 등이 등장한다. 마법적 혹은 주술적 기능을 가진 이 텍스트가 무엇인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수사는 지적 추격으로 이어진다. 지명도와 욕망이 충돌하고,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달하면 예상 외의 장면과 설명으로 잠시 혼란 속으로 밀어넣는다. 하지만 그 중간 중간 깔아놓은 몇 가지 설정 탓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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