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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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분류를 보니 자기계발서로 되어 있다. 몰랐다. 인문학으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다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소개글을 보니 자기계발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가 자기계발서다. 그런데 재밌게 읽었다. 이전에 아주 재밌게 읽었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때문에 박지원을 다시 보게 되었고, 고미숙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가끔 고미숙이란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착각한 순간도 있지만 최소한 책에서는 이름을 헷갈리지 않았다. 저서 목록 덕분이다. 그런데 이번 책이 자기계발서다. 그것도 청년을 위한 것이다. 이 착각은 잠시 동안 추억에 빠지게 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회사를 다니다 그만 둔 후 의도치 않게 오랜 시간 백수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헌책방을 돌아다니고, 책을 사고, 읽고, 미드와 일드를 열심히 봤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시사회에 당첨되면 영화도 열심히 봤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쉬운 부분 중 하나는 언제 연락 올지 모르는 면접 전화 때문에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한 행동이었다.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서 하루 일과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나태함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는데 집중했다. 그 시간들이 현재의 나를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다. 이런 기억이 가지고 있는 나이기에 백수란 단어에 전혀 반감이 없다.

 

개인의 경험은 한계가 분명한 경우가 많지만 특정 사안에서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저자가 주장하는 백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량과 같은 백수가 아니다. 놀기도 하지만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보고 읽고 쓰고 말하는 백수다.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소비를 하지만 그 소비를 위한 돈벌이도 한다. 기본소득이나 청년수당 같은 이야기를 중간에 넣었는데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적당한 금액이 주어진다면 청년 백수들의 삶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자본 숭배 사상이 많이 사라져야 한다. 이것은 같이 갈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4차 산업혁명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과대 포장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이 부분은 개인들이 자신의 현재 위치 등을 관찰하면서 나아가야 할 부분이다.

 

저자는 백수였던 연암과 현대의 비자발적 청년 백수를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속된 말로 금수저 출신인 연암이 왜 백수를 선택했고, 어떤 생활을 했는지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현대의 청년 백수로 넘어와 새로운 백수의 정의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밥벌이와 자존감, 우정, 길의 시대, 끝없는 공부 등이다. 1장에서 청년 연암의 백수 생활을 보여주면서 풀어내는 화폐와 노동에 대한 해석은 새로운 부분이 있다. 특히 노동 해방은 기존의 인식과 완전히 달리 한다. 인공지능 등을 너무 과도하게 해석했거나 당장 일어날 것처럼 풀어낸 부분은 백수를 옹호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해도 과한 부분이 많다.

 

오랜 백수 생활에 친구는 필수적이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지만 가끔 다가오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잊게 만드는 것은 바로 친구다. 그렇게 긴 만남이 아니어도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들고, 나를 위로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들과의 대화는 자기감정에 매몰되는 것을 막아주고, 다른 세계를 엿보게 만든다. 책 속에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고시 등에 올인하는 학생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바로 집에서 탈출하라는 것이다. 갇힌 공간 속에서 개인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돈이 없다면 길을 걸으면서 건강을 도모하고, 도서관에 가서 지식을 함양할 수 있다. 적은 돈으로 여행도 물론 가능하다. 가진 것이 없으니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가.

 

사실 공부처럼 지겨운 것이 없다. 하지만 돌아보면 공부처럼 재밌게 시간을 보낸 것도 없다. 게임이나 운동의 경우도 먼저 공부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 재미가 반감된다. 몰입도도 달라진다. 저자의 말처럼 화폐를 좇는 삶은 힘들고 피곤하다. 꿈과 목적은 삶에 채찍질을 한다. 노력하고 노력하라고. 개인적으로 어떤 거대한 목표나 꿈을 세운 적도 없다. 그냥 하루를 산다.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생각하고, 앞에 놓여 있는 일들에 집중한다. 목표의식이 없다고 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 때문에 현실에 더 충실할 수 있다. 이것은 그냥 마냥 퍼져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저자가 끝없이 이야기 하는 것도 움직이란 것이다. 철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솔직히 이런 백수 생활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먼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백수가 인류의 미래라는 말에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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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 사쿠라 마나 소설
사쿠라 마나 지음, 이정민 옮김 / 냉수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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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마나는 일본 AV 여배우다. 이쪽 문화에 밝은 사람에게는 낯익은 이름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한 명의 작가일 뿐이다. 내 경우로 한정하면 반반이다. 이름만 놓고 보면 잘 모르지만 얼굴은 아는 정도랄까. 아마 책 소개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런 종류의 작가가 소설 등을 내었을 때 그 내용보다 출신이 더 많은 관심을 불러오고, 책이 팔리는 경우도 많다. 그녀의 첫 장편인 <요철>이 하루키의 신작을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 했다는 소식도 괜히 한 번 비틀어보게 된다.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읽은 지금 그 선입견은 사라졌다.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모두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가 화자인 것은 아니다. <모모코>의 화자는 <아야노>의 AV기획사 대표 이시무라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각 이야기마다 AV 배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야노, 모모코, 미호는 AV 배우고, 아야코는 AV배우였던 엄마가 낳은 아이다. 앞의 세 여자의 이야기에는 모두 이시무라가 등장한다. <모모코>에서 이시무라가 왜 AV 기획사를 세우게 되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보여주는데 이것이 바로 앞 작품 <아야노>와 <미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야노> 속 화자 아야노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부분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쿠라 마나의 삶을 잘 모르기에 단편적인 몇 가지만 가지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전문학교 출신이란 것과 자발적으로 이 세계에 몸을 담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꽤 많은 부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것이다. 아야노는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진 언니나 엄마와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녀들과 다른 삶을 선택하고 우연히 AV에 입문한다. 이것이 고향에 알려지고, 일반 직장인을 만나 연애하는 감정을 느끼고,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의 작은 바람을 엿본 느낌을 받았다. AV계의 소소한 이야기는 작은 재미다.

 

<모모코>는 아주 예쁜 여자가 아니다. 덧니도 심하다. 그런데 AV 세계로 옮기기 전 이미 에이스였다. 이시무라가 세운 기획사의 첫 여배우다.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여자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보다 <아야노> 속 인물들의 과거를 엿보고, 이시무라가 어떤 인물인지 더 잘 보여준다. 동업자가 회사 돈을 횡령했을 때 좋은 고기를 산 후 이시무라를 위로하는 모모코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다. 모모코의 일을 두고 질투하는 이시무라와 그를 포근하게 감싸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떠나는 마지막 장면과 함께 여운을 남긴다.

 

섹스리스 부부가 일본에 많다는 소식을 책이나 방송에서 보았다. 미호 부부도 마찬가지다. 아직 젊은 그 부부 사이에 성욕이 없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아내 미호가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있다가 선택한 것 중 하나가 AV계로의 진출이다. 재밌는 것은 남편이 보는 비디오와 잡지를 보고 이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실제 AV 세계에서 이런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무라카미 류의 작품이 떠오른다. 일과 아내의 역할을 동반하는 그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살짝 궁금해진다.

 

<아야코>는 갑자기 할머니가 된 지에의 시점에서, 아야코의 시점으로 변한다. 엄마 다카코는 한때 AV 배우를 했고, 딸을 낳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할머니 지에의 몫이다. 자라면서 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그림이 입상하면서 관심을 불러온다. 신상 노출이 되면서 더 외톨이가 된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자극적이지 않게 그려낸다. 소녀는 자라고, 연애도 한다. 그리고 생부를 만난다. 인생에 불안이 없을 수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어쩌면 자신의 다짐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나오는 작가 후기는 그녀가 어떻게 데뷔하고 작가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다른 작품도 관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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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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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인상적인 도입부로 시작한다. 토막난 시체와 누군가가 잘린 머리를 들고 사라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1986년, 열두 살 소년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것과 교차하는 현재 시간은 2016년이다. 이 30년의 시간을 더듬어 올라오면서 풀리는 이야기 방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이 현재의 삶을 뒤흔드는 구성이다. 앤더베리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1986년에 있었던 사건과 사고들이 시간 순으로 흘러나오고,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소년 에디가 성인이 되어 그 시간을 되돌아본다. 이 사건들 옆에는 분필로 그린 그림이 있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아이들 장난 같다. 핏자국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작가는 분필로 그려진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초크맨이란 이름과 교차하는 두 시대는 자연스럽게 잔혹한 살인마를 떠올리게 만든다. 오랫동안 스릴러를 읽다 보면 이런 부작용이 가끔 생긴다. 실제 소설 속에서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해서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키지 않는다. 30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주민들을 공포에 짓눌리게 만드는 살인마도 없다. 단지 과거의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숨겨진 비밀들이 놓여 있을 뿐이다. 이 비밀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순간순간 섬뜩함을 느낀다.

 

십대의 나를 돌아보면 공부에 짓눌려 살았을 것 같지만 딴짓을 더 많이 했다. 혼자 잘난 척도 많이 했는데 돌아보면 멍청하고 유치했다. 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고, 욕을 입에 달고 살고, 허세로 가득했다. 나의 세상은 정말 좁아서 조금만 멀리 가면 다른 도시인 줄 알았다. 이런 십대 중 초반은 조금 더 순진했다. 열두 살 에디와 그 친구들의 행동을 보면서 내가 공감을 한 부분들은 바로 나의 경험과 조금은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시대와 나라라는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지만 미숙한 소년들의 행동이 지닌 기본은 역시 변함이 없다. 가끔은 소심한 복수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예상 외의 사실들은 바로 여기서 비롯한 것들이다.

 

소설 속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사건은 당연히 프롤로그에 나오는 한 소녀의 죽음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가 놀이기구가 고장나면서 외모도 신체도 손상을 입은 일라이저가 바로 그녀다. 많이 다루는 방식 중 하나가 일라이저의 과거를 파헤치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것인데 이 소설에서 일라이저의 삶은 지엽적인 사실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분필로 그린 그림들이 더 강한 인상을 준다. 과거에 이 분필 그림은 친구들끼리의 장난이거나 암호문 같은 것이었는데 현재에는 하나의 암시처럼 다가온다. 이 분필 그림이 잊고 있던 30년 전 과거의 비밀문을 연다. 그 문 안에는 추악하고 섬뜩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다.

 

살인 사건과 죽음 몇 개를 빼면 한 소년의 성장 소설과도 같다. 킹의 소설 중 <스탠 바이 미>와 분위기가 비슷한 대목도 있다. 물론 다른 장면은 <샤이닝>을 떠올려주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1986년의 에디가 겪는 일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가 살아온 동안 그 마을에서 일어난 가장 자극적인 사건들이 그 한 해에 일어났다. 놀이 기구가 고장 나 한 소녀가 크게 다치고, 다시 그 소녀가 토막 살해당한다. 낙태를 반대하는 목사가 죽기 직전까지 폭행을 당한다. 한 소년은 자전거를 건지려고 하다가 물에 빠져 죽는다. 이 모든 사건들이 에디와 연결되어 있고, 이 죽음 이면의 진실이 30년의 시간이 흐른 후 하나씩 밝혀진다,

 

가독성이 좋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밀을 소재를 하나씩 엮어가면서 이야기를 잘 만들었다. 현재의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에디는 실수를 몇 번 저지르지만 ‘예단’을 경고하면서 진실에 다가간다. 하나의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겉에 드러난 모습보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보통은 그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한다. 선입견과 편견이 사실을 파고들고 직시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은 토막 살인 사건을 다루는 형사들도 마찬가지다. 그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걸린 시간이 30년이다. 이것도 과거를 파헤쳐 돈을 벌려는 시도가 없었다면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가끔 나쁜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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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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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작품이다. 타임루프를 다룬 소설 중 최고의 작품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타임루프를 다룬 영화 <시간의 블랙홀>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은 훨씬 광대하고 복잡하고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있다. 반복되는 삶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런 상상력으로 풀어내었다는 점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이 문장을 처음 볼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 빠져서 이 반복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된다.

 

해리 오거스트. 1919년 1월 1일 기차역 화장실에서 태어난다. 귀족인 힐러 가문의 아버지가 하녀를 강간한 결과로 탄생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죽고 그 가문의 관리인 부부의 아들로 자란다. 첫 생애는 평범한 사람의 삶을 그대로 살았다. 우리가 평생 한 번은 겪는 그 삶이다. 하지만 다시 삶을 시작할 때 이전 생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었다. 혼돈에 빠진다. 미래를 기억하다보니 제 정신이 아니다. 일곱 살에 정신병원에 보내지고 그곳에서 자살한다. 그리고 다시 삶이 반복된다. 이 반복되는 삶을 이해하기 위해 종교를, 의학을, 물리학을 공부한다. 왜 이런 삶을 사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크로노스 클럽이다.

 

이런 반복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칼라차크라라고 한다. 이들 중 극히 일부는 완벽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우로보란이라고 부른다. 해리는 우로보란이다. 그의 삶 중 하나는 제니라는 여성을 사랑하고 그녀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탁월한 외과의사인 그녀지만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떠나는데 그녀를 찾아간 것 때문에 정신병원에 갇힌다. 그의 기억력 때문에 정부요원에게 정신병원에서 나오게 되지만 이것이 독이 된다. 미래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엄청난 힘을 가진 것과 같다. 탈출을 시도하다 다시 잡힌 후 고문을 당하면서 미래를 술술 분다. 잠시 탈출한 후 지인의 도움으로 광고를 낸 것을 보고 칼라차크라가 찾아온다. 크로노스 클럽과 처음 만난다.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린 무엇을 할까? 소설 속 해리는 다양한 공부를 하고, 엄청난 부를 쌓는다. 하지만 이 크로노스 크럽에는 한 가지 금지사항이 있다. 인류의 역사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개입으로 인해 과거에도 인류의 멸망이 한 번 있었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과거로 메시지가 전달된다. 그 방법은 바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구두로 전달하는 것이다. 세계가 끝나고 있다는 메시지가 해리에게 전달될 때는 그가 병원에 입원해서 죽음을 기다리던 시기다. 이제 해리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칼라차크라, 이들은 영생자다. 천년을 직선적인 삶으로 살지 않고, 한 시기를 반복적으로 산다. 왜 이런 아이들이 태어나는지 모르지만 이 출생을 막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태어나기 전에 죽이는 것이다. 임신한 태아를 죽이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칼라차크라들은 자신들의 출생 비밀을 꼭 지킨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죽음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생애에서 죽음을 경험했다고 해도 다음 생이 있기에 어떤 순간에는 자살이 하나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이것과 다른 것으로 <망각>이 있다. 전생의 기억을 잃는 것이다. 이 시술을 받게 되면 처음 태어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 다음 삶에서는 다시 반복적인 일이 생길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삶을 반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경험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을 거쳐야만 한다. 물론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삶을 끊고 싶고, 내 존재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자신의 죽음만을 원한다면 출생하기 전에 죽이면 된다. 그러나 존재의 의미는 어떨까? 이것을 알고자 하는 인물이 미래 세계를 끝내는 역할을 한다. 바로 해리의 제자이자 친구이자 숙적인 빈센트 랜키스다. 중반 이후는 빈센트의 정체를 밝히고, 그를 쫓는 과정과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진다. 이 시간들은 결코 짧지 않다. 100년이 훌쩍 넘는다.

 

단순히 소재만으로 이야기를 재밌게 끌고 나갈 수는 없다. 풍부한 이야기를 잘 짠 구성 속에 녹여내야 한다. 단순히 직선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칼라차크라처럼 선형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현재의 삶에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적재적소에 집어넣고, 과거의 사례를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미래의 정보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오지 않으면 과거는 오래 보존되는 메시지를 통해 자신들의 시대 정보를 남긴다. 다른 출생 연도에서 비롯한 나이 차이가 견고한 시간 고리를 만든다. 놀라운 상상력이다. 모두 읽은 지금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지만 한국 출간작이 보이지 않는다. 시간과 역사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고자 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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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내는 엄마에게 - 아이와 나 사이 자존감 찾기 부모되는 철학 시리즈 10
박현순 지음 / 씽크스마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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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다. 아빠고, 남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나오는 내용 중 많은 부분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육아에 지친 아내가 이 책 저자처럼 울고, 화내고, 자책하고, 웃고 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결혼 후 아이를 낳기 전 자신이 생각한 엄마의 모습과 현실의 괴리를 몸과 마음으로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날을 찾아보지만 이것 또한 쉽지 않다. 아이의 행동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수시로 뒤지지만 명확한 답이 없다. 물론 이 책이 그 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 하는 육아의 어려움을 알려주고,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실수와 실패가 있는지 보여준다.

 

“제발 엄마 좀 살려주라.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니.” 이 문장을 읽고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말이 나올 수 있을까 하고 신기했다.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많은 초보 엄마들이 울면서 이 말을 쏟아내고 있을까 생각했다. 이 말을 들을 때 가슴 한 곳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혹시 무슨 일 생기는 것 아니야 하는 걱정도 같이 왔다. 하지만 엄마는 강했고, 그 시간이 지나자 아이를 안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 문장은 그 뒤로도 아주 힘들 때면 한두 번 반복된다. 엄마도 사람이다 보니 늘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때 아이가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이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온다.

 

저자는 상담을 공부했고, 두 아이를 키운 엄마다. 그녀의 경험담을 읽다 보면 보통의 엄마 모습이 보인다. 자기 아이가 잘 되길 바라면서 책을 사고, 읽어주고,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육아를 위해 많은 육아 서적을 읽고 현실에 그것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다. 다름보다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모가 보여주는 행동들도 꽤 많이 했다. 자식을 위하는 마음에서 저지르는 누구나 겪는 실수다. 이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는 노력이 필요한데 저자의 글에서는 이것이 많이 보인다. 모임을 만들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자신의 내면을 탐구한다. 그 노력의 결실 중 일부가 이 책이다.

 

많은 이야기에 공감한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에서 배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기분을 알아주고, 생각을 들어주는 한 사람이 굳건히 있으면 아이가 스스로 건강한 성벽을 만들어간다.” 이 문장은 아이들을 쉽게 야단치고 망신 주는 일이 많다고 해도 이 한 사람으로 아이가 살아난다는 의미다. 얼마나 놀라운 치유와 재생인가. 옆집 엄마의 말에 휘둘리는 엄마들에게 비교는 자신과 아이를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행복은 나 스스로 감사함에 달린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은 더 분명해진다. 성공한 육아의 케이스만 따라 하다가는 엄마도 아이도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는데 동의한다. 모든 아이는 제각각 다름을 우리가 인정해야만 한다.

 

저자가 심리상담사이다 보니 몇몇 저서의 인용이 들어 있다. 자신의 상담에 인용하기 위한 것보다 자신의 육아에 도움을 받았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엄마 자기치유 프로젝트에서 지지, 희망, 중용, 위로, 치유, 감사, 도움, 용기, 수용, 확신, 엄마로 이어지는 과정은 이 부분을 잘 보여준다. 각 장마다 들어있는 쉼표 그리는 시간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 엄마는 가끔 악마로 변한다.”고 쓴 학교 숙제는 충격적이지만 많은 부분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 자신도 어릴 때 겪은 일이고, 곁에서 가끔 보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엄마도 성장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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