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분류를 보니 자기계발서로 되어 있다. 몰랐다. 인문학으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다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소개글을 보니 자기계발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가 자기계발서다. 그런데 재밌게 읽었다. 이전에 아주 재밌게 읽었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때문에 박지원을 다시 보게 되었고, 고미숙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가끔 고미숙이란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착각한 순간도 있지만 최소한 책에서는 이름을 헷갈리지 않았다. 저서 목록 덕분이다. 그런데 이번 책이 자기계발서다. 그것도 청년을 위한 것이다. 이 착각은 잠시 동안 추억에 빠지게 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회사를 다니다 그만 둔 후 의도치 않게 오랜 시간 백수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헌책방을 돌아다니고, 책을 사고, 읽고, 미드와 일드를 열심히 봤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시사회에 당첨되면 영화도 열심히 봤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쉬운 부분 중 하나는 언제 연락 올지 모르는 면접 전화 때문에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한 행동이었다.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서 하루 일과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나태함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는데 집중했다. 그 시간들이 현재의 나를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다. 이런 기억이 가지고 있는 나이기에 백수란 단어에 전혀 반감이 없다.

 

개인의 경험은 한계가 분명한 경우가 많지만 특정 사안에서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저자가 주장하는 백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량과 같은 백수가 아니다. 놀기도 하지만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보고 읽고 쓰고 말하는 백수다.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소비를 하지만 그 소비를 위한 돈벌이도 한다. 기본소득이나 청년수당 같은 이야기를 중간에 넣었는데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적당한 금액이 주어진다면 청년 백수들의 삶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자본 숭배 사상이 많이 사라져야 한다. 이것은 같이 갈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4차 산업혁명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과대 포장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이 부분은 개인들이 자신의 현재 위치 등을 관찰하면서 나아가야 할 부분이다.

 

저자는 백수였던 연암과 현대의 비자발적 청년 백수를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속된 말로 금수저 출신인 연암이 왜 백수를 선택했고, 어떤 생활을 했는지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현대의 청년 백수로 넘어와 새로운 백수의 정의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밥벌이와 자존감, 우정, 길의 시대, 끝없는 공부 등이다. 1장에서 청년 연암의 백수 생활을 보여주면서 풀어내는 화폐와 노동에 대한 해석은 새로운 부분이 있다. 특히 노동 해방은 기존의 인식과 완전히 달리 한다. 인공지능 등을 너무 과도하게 해석했거나 당장 일어날 것처럼 풀어낸 부분은 백수를 옹호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해도 과한 부분이 많다.

 

오랜 백수 생활에 친구는 필수적이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지만 가끔 다가오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잊게 만드는 것은 바로 친구다. 그렇게 긴 만남이 아니어도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들고, 나를 위로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들과의 대화는 자기감정에 매몰되는 것을 막아주고, 다른 세계를 엿보게 만든다. 책 속에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고시 등에 올인하는 학생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바로 집에서 탈출하라는 것이다. 갇힌 공간 속에서 개인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돈이 없다면 길을 걸으면서 건강을 도모하고, 도서관에 가서 지식을 함양할 수 있다. 적은 돈으로 여행도 물론 가능하다. 가진 것이 없으니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가.

 

사실 공부처럼 지겨운 것이 없다. 하지만 돌아보면 공부처럼 재밌게 시간을 보낸 것도 없다. 게임이나 운동의 경우도 먼저 공부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 재미가 반감된다. 몰입도도 달라진다. 저자의 말처럼 화폐를 좇는 삶은 힘들고 피곤하다. 꿈과 목적은 삶에 채찍질을 한다. 노력하고 노력하라고. 개인적으로 어떤 거대한 목표나 꿈을 세운 적도 없다. 그냥 하루를 산다.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생각하고, 앞에 놓여 있는 일들에 집중한다. 목표의식이 없다고 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 때문에 현실에 더 충실할 수 있다. 이것은 그냥 마냥 퍼져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저자가 끝없이 이야기 하는 것도 움직이란 것이다. 철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솔직히 이런 백수 생활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먼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백수가 인류의 미래라는 말에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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