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들려준 이야기 - 호손의 인생 수업
너새니얼 호손 지음, 윤경미 옮김 / 책읽는귀족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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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한참 헌책방을 돌 때 한두 권 정도 샀지만 읽지는 않았다. 그 유명한 <주홍 글자>도 영화로 봤지 책은 읽은 적이 없다. 최소한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덕분에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이 나왔다고 했을 때 손이 나갔다. 이번에는 한 번 읽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대충 훑어본 책소개에 따르면 처음 번역된 작품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읽을 수 있지 모른다. 나의 독서 생활에 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원래 단편집에 실린 글 중 일부만 담았다고 한다. 아쉬운 대목이다. 그리고 편집도 너무 구식이다.

 

인생 수업이란 편집 방향을 잡고 1교시부터 7교시까지 각 하나의 주제로 엮었다. 행복, 운명, 사랑, 미래, 가치, 진실, 낭만 등이다.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부분과 다른 내용일 때마다 편집자가 분류한 단어를 다시 돌아본다. 과연 작가가 이것을 의도하고 쓴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말이다. 물론 작가에게 묻는다면 자신을 이런 의도로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할 가능성이 더 높다. 실제 그런 식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자기계발서 분위기를 풍기기 위한 하나의 구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나의 취향은 아니다.

 

일곱 편의 단편은 다양한 분위기를 풍긴다. <거대한 석류석>은 다양한 인간들의 욕망을 다룬다. 신기루와도 같은 그 거대한 석류석을 쫓는 모험의 이유도 모두 제각각이다. 각자의 이유를 말하는 부분과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은 자기만족이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삶이다. 결코 쉽지 않다. <히긴바텀씨의 비극>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한 사람의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소식을 전달하는데 아직 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과연 이 소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말로 그 사건이 일어날지 호기심을 계속 자극한다. 편집자가 해석한대로 운명이라면 과연 그 비극은 어떤 결말일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샘의 환영>은 샘 속에 비친 여성에 대한 사랑을 다룬다. 환영 같은 존재였던 그녀를 만나는 것도 우연이다. 하지만 운명 같은 사랑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의 노력과 열정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예언의 초상화>는 한 위대한 화가가 그린 그림 이야기다. 그는 초상화 속에 그 사람의 특징을 잘 잡아낸다. 한 커플의 초상화를 그려주는데 이들의 숨겨진 모습이 눈에 보인다. 마지막 반전은 갑작스럽지만 그녀의 말은 강한 울림을 준다. <마을 펌프가 들려준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다. 마음 펌프가 자신의 물을 마신 동물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의인화한 이야기는 한 마을의 성장사를 보여준다.

 

<피터 골드스웨이트의 보물>은 행운을 좇는 피터의 이야기다.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던 그가 선택한 것은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가 집안에 숨겨 놓은 보물을 찾는 것이다. 추운 겨울 가구를 부수고, 땅을 파헤치는데 과연 보물은 존재하는 것일까? 피터가 알지 못한 진실은 어쩌면 그가 외면한 진실인지도 모른다. <하이데거 박사의 실험>은 젊음과 연륜에 대한 이야기다. 노쇠한 등장인물들이 젊음의 샘물을 마시고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이것을 관찰하는 하이데거 박사의 시선은 대비된다. 재밌는 부분은 하이데거 박사의 교훈보다 그 순간의 황홀함에 취한 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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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조승원 지음 / 싱긋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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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 크게 끌리지 않았다. 많은 저자들이 하루키의 소설을 자신의 분석으로 해석하면서 어렵게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가끔 대담으로 하루키의 소설 한두 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담기도 한다. 이때도 이 한 편의 소설을 위해 과거 작품들이 인용된다. 어쩔 수 없다. 한 작가의 작품은 연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작업들이 가끔 원작을 읽었거나 읽으려는데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된다. 어쩌면 이해를 돕지만 그 방향으로 이미지가 왜곡되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책소개를 좀더 유심하게 보면서 저자가 음악과 술을 사랑하는 미주가에 하루키스트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키하면 술과 음악이 빠질 수 없지 않은가.

 

저자는 하루키의 소설을 자신의 이해로 풀어내기보다 술이 들어간 문장을 인용하는 구성으로 책을 썼다. 목차를 보면 잘 드러난다. 맥주, 와인, 위스키, 칵테일 등이다. 마지막에 음악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재밌는 것은 술과 연결된 키워드다. 맥주는 허무와 일상이, 와인은 격식과 품위를, 위스키는 고독, 진정과 치유를 담고 있다고 봤는데 칵테일에는 특별한 키워드가 없다. 워낙 오래 전부터 하루키의 소설들을 읽었기에 소설 등에 나오는 술들이 어떤 상황에 나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맥주는 늘 머릿속 한 곳에 남았지만 그때 마신 맥주가 무엇인지까지는 솔직히 기억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자는 현재까지 나온 전작을 다시 읽고 술의 종류를 분류한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하루키란 인물과 술을 엮었다. 하루키의 작품에 나온 술을 문장 그대로 인용한다. 하지만 하나의 술이 나오면 그 술이 어떤 작품들에 나왔는지까지 자세하게 기록한다. 최소한 이 책을 쓸 때까지 나온 책들은 모두 참고한 것 같다. 인터뷰 등도 참고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끈질긴 노력과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단순히 이런 나열만 있었다면 정보 분류 그 이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재밌고 놀라운 점은 이 작품 속 술들을 통해 술의 역사와 정보를 풀어낸 것이다. 최소한 이 책을 정독하고 좀더 세밀하게 읽었다면 네 종류의 술에 대한 기초 지식은 충분히 쌓을 수 있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금상첨화다.

 

저자를 소개하는 부분 중 음악과 술을 좋아한다는 대목이 있다. 특히 술을 좋아하는 미주가란 말은 책을 읽는 내내 공감한다. 이 작업이 술과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글 속에 나온 술에 집착(?)하는 모습은 이 부분을 특히 부각시킨다. 나 자신도 얼치기 하루키스트라고 말하지만 이 정도까지 가지는 않았다. 읽을 때 그 술을 마시고 싶지만 그렇다고 술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가거나 다음에 술 마실 기회가 있으면 그 술을 기억해낼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처음 하루키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을 때는 책 속에 나오는 소설들이 한국에 소개조차 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물론 이것은 술에 무지한 나 자신의 변명이 더 강한 부분이기는 하다.

 

솔직히 말해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전작을 현재까지 읽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 가지고 있지만 비교적 최신작인 <기사단장 죽이기>는 아직 사지 않았다. <1Q84>는 사놓고 묵혀두고 있다. 그런데 이 책 속에는 이 작품들에 나오는 장면들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대부분 나중에 읽을 때 나의 저질 기억력이 떠올리지 못하겠지만 술이 나올 때면 또 어떤 연쇄작용을 할지 모른다.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책이 주는 매력 중 하나는 과거에 읽었던 작품들에 대한 기억을 불러와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소설들을 술과 간단한 장면 소개로 기억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하루키 작품 전체가 꽂힌 서재를 상상했던가.

 

하루키의 작품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꼽으려만 당연히 맥주인데 이 책의 분량만 놓고 보면 칵테일이 가장 많다. 솔직히 칵테일에 무지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베이스가 무엇인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맥주, 와인, 위스키를 다룬 방송이나 책은 가끔 보지만 칵테일을 다룬 책을 거의 읽은 적이 없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최근에 알게 된 몇 가지 칵테일이 나와 반갑기도 했다. 또 한 가지 덧붙인다면 가능하다면 각 장을 읽을 때 그에 맞는 술을 한 잔 옆에 두고 있으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나에게는 불가능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의 재미는 훨씬 배가되었을 것이다. 다음 주에 담아둔 책을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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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새소설 1
배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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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 수상작이다. 만장일치로 상을 받았다. 출판사에서 ‘새소설’이란 이름을 달았지만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경장편’이다. 한자로 표기되었다면 쉽게 이해될 텐데 없다. 내가 이해하는 경장편은 가벼운 장편 정도다. 실제 이 소설을 읽는데 걸린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읽으면서 어떤 무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제목처럼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 같았다. 하나의 상황이 벌어지고, 그 상황에 또 다른 상황이 엮이면서 꼬이는 과정은 유쾌하고 황당하다. 처음과 마무리의 설정은 이 소설이 잘 구성되었음을 알려준다.

 

목차만 보면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첫 이야기가 펼쳐지는 상담실은 해프닝들이 벌어지는 장소이자 화해의 무대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고등학생 남녀 커플이 일탈을 위해 잠시 모이는 곳이지만 선생들이 들어오면서 상황이 바뀐다. 자연스럽게 이들은 숨을 수밖에 없다. 선생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나간다. 그들이 나간 후 다시 들어온 젊은 남녀 선생이 학생들처럼 몸의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숨을 곳은 한 곳밖에 없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학생 커플이 있다. 이들은 이상하게 엮인 자세를 한 채 상담실에 담임과 엄마가 들어와 이야기 하는 것을 듣게 된다. 흔히 보는 코믹한 장면들이다.

 

소설을 중심에서 끌고 가는 인물을 굳이 꼽자면 이연아다. 고등학교 2학년에 전교 1등이다. 엄마는 딸의 미래를 위해 철원의 기숙학교에 등록했다. 엄마는 서울대를 외치며 딸이 그곳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연아는 거부한다. 그동안 고분고분했던 딸의 작은 반항이다. 자식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엄마의 입에서 ‘나처럼 살래’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우리는 진실을 안다. 딸을 통한 대리만족임을. 딸의 거부가 심해지자 엄마는 자르던 김치를 던진다. 모범생 딸이 분노를 참지 못해 집밖으로 나간다. 택시를 탄다, 너무 서럽게 울어 기사조차도 그 냄새를 견뎌야 한다. 집에서 갑자기 나온 고등학생이 가진 것은 거의 없다. 하룻밤을 지세기 위해 찜질방을 간다. 돈이 부족하지만 데스크에 앉은 할머니가 그녀를 넣어준다.

 

무면허 운전의 에피소드 중 일부는 작가의 경험이 바탕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것은 술 취한 십대의 폭주와 대형사고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다른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이들을 등장시켰다. 십대들의 언어와 일상이 드러나고 이연아와의 접점을 만든다. 이때 벌어지는 해프닝도 낯익다. 하지만 상황이 낯익다고 전체 이야기의 흐름이 낯익은 것은 아니다. 작가는 하나의 장면이나 상황을 가져와 상황에 맞게 끼워넣는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들이 약간 거슬리지만 상당히 마음에 든다. 이연아의 깊은 잠은 다른 중년의 모습과 나중에 겹쳐진다.

 

연아의 이야기가 나온 후에는 또 다른 고등학생들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원조교제를 하는 여선배와 학생회장에 당선된 남학생의 이야기다. 이들이 보여주는 상황과 해프닝도 낯익다. 하지만 이때 만들어지는 장면과 상황들이 이야기 마지막에 넘어가는 또 다른 해프닝과 연결된다. 작가는 이렇게 중첩적으로 상황을 만들어 이어간다. 읽으면서 몰입하게 만드는 흡입력들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잘 계산된 상황들의 연속은 아주 잘 만든 코믹 시트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장면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어딘가에서 본 듯하지만 그 속에 하나의 이야기를 연결해서 재미를 누리고 공감할 부분을 만들었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연아의 엄마는 자식을 자신아 잘 안다고 말하고, 남들이 지독한 엄마라고 말하는 것에 굴하지 않는다. 이때 머릿속에 떠오른 한 아이의 자살이 있다. 엄마가 원하는대로 하고 몸을 던진 그 아이. 사람들은, 특히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착각이다. 더 나이가 들어서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고 해도 다시 그런 삶을 살아라고 한다면 대부분 하지 못할 것이다. 이해와 현실의 괴리는 엄청나다. 작가는 마지막에도 멋진 코믹 장면을 넣었다. 이 또한 낯익다. 그리고 깔끔하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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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대리인, 메슈바
권무언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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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을 때 PD수첩에 명성교회가 방영되었다. 대형교회와 세습과 800억 원이란 돈을 다루었다고 한다. PD수첩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키워드만 가지고 바로 이 소설 속 대성교회가 떠올랐다. 위치는 강동구와 송파구로 다르지만 장로 한 명의 자살과 다른 문제들이 우연치고는 너무 비슷했다. 명성교회를 좀더 파고든다면 그 차이가 어디에서 나는지 알 수 있겠지만 그 이상 파고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너무나도 자주 본 대형교회의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아무리 우연의 일치라고 말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성교회. 명수창 목사가 세운 교회다. 80년대 개척교회로 시작하여 대형교회로 발전했다. 그가 개척교회를 이끌 때 모습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신도들을 찾아가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악인에게조차 등을 돌리지 않는 모습은 왜 그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보여준다. 하지만 언제나 성공의 그늘 속에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 교회가 커지고, 신도의 상황이 좋아지면서 돈이 많아진다. 이 많아진 돈이 문제다. SO(Special Offering)이라 부르는 비자금이 생긴다. 이미지를 쌓는데 이 돈을 많이 사용한다. 독재자를 만나고, 유력 정치인들을 만난 것처럼 보이는데 조금의 주저함이 없다. 이런 표면적 이미지는 언론이나 신도들에게 잘 먹힌다. 그의 영적 몰락은 점점 가속화된다.

 

비자금의 손실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독실한 신자이자 수석장로였던 김일국이 투자 사기에 걸려 많은 돈을 잃었다. 목사와 김일국의 관계는 개척교회 초기로 올라갈 정도고, 장로는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교회를 키웠다. 목사는 재무를 모두 맡길 정도로 김일국을 신뢰했지만 돈의 손실을 용서할 수는 없다. 이 돈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자금이기도 하다. 목사의 질타와 투자 원금의 손실 등은 김일국의 영혼에 큰 상처를 준다. 횡령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가 동생의 아파트에서 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대형교회의 힘으로 이 사건을 조용히 덮는다. 우연히 이 사건을 알게 된 우종건 기자가 취재를 시작한다.

 

명수창 목사를 가운데 놓고 우종건 기자와 이건호 교수가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돈과 권력과 조직은 모두 명수창 목사가 가지고 있다. 장로와 신도들은 교회를 앞세워 목사의 잘못과 비리를 덮고, 목사를 우상처럼 숭배한다. 김일국 장로가 “돈! 우리는 돈을 믿었고, 돈이 불어나는 것을 소망했고, 돈을 무척 사랑했다.”고 외친 것은 기독교가 늘 말하는 ‘믿음, 소망, 사랑’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게 된 데는 수많은 원인이 있지만 목사와 장로와 신도들이 신앙보다 교회의 명예와 존속을 더 앞에 둔 탓이다. 덕분에 썩은 내가 진동할 때까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건호 교수가 외치는 작은 교회와 신도 한 명이 움직이는 성전이란 말은 허공에서 순식간에 흩어질 뿐이다.

 

사실 우종건 기자가 교회의 비리를 파헤치고, 이것이 교회의 추문과 목사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상을 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몰락의 과정은 보여주지만 그 과정에 그들이 지닌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면서 현재의 한국 교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기독교의 신사참배라고 말한다. 불교의 부처를 보고 우상숭배라면서 불까지 지르는 이들이 신사참배를 했다니 놀랍지 않은가. 시대적 상황으로 치부한다고 해도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적반하장의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뭐.”라는 반응은 해방 후 한국 기독교의 성장 속에 어쩔 수 없이 품고 있던 원죄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대형교회들의 세습과 부패들이다. 잘못에 대한 회개와 반성이 없다면, 처벌이 없다면 그 잘못은 반복된다. 당연하게 생각한다.

 

“한국 교회는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만 주장했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않은 탓에 사회윤리와 공적 책임이 등한시되면서 이기적 신앙관이 형성되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기독교 교인들의 모습이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아주 무서운 이야기도 있다. “한국 교회는 나치 시절 루터교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권위와 권력에 취하면 진실은 빛을 잃는다. 명수창이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보여준 행동들은 목사가 아니라 부패하고 노회한 정치인의 모습이다. 다윗의 타락이 왕이 된 후 있었다는 말처럼 대형교회로 성장하면서 목사들은 타락했다. 그 이전에 타락한 목사들도 있겠지만 이 소설 속 명수창 목사는 최소한 그랬다.

 

많은 교회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까지 일어난 소송들도 말하고 지나간다. 훌륭한 목사들이 선택한 후임 목사들의 변신은 인간이 지닌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준다. 세습의 이유 중 하나로 자신의 비리라고 말할 때 그들이 가진 기득권에 대한 집착을 볼 수 있다. 성직자로 생각했던 목사들이 얼마나 이중적인지 잘 보여준다. 죄를 용서받으려고 할 때는 인간을 외치고, 돈을 걷을 때는 신앙을 외친다. 천국에 집착한 교인들에게 목사는 또 다른 우상이 된다. 속된 말로 예수가 재림하면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이단으로 몰릴 것이란 말이 그냥 무심코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신앙은 교회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신앙은 세상으로 흘러가야 하고, 세상에서 증명되어야 한다.”는 의미심장하다. 또 다른 해석으로 변질된 가능성도 있지만. 묵직한 이야기를 다양한 시선과 현실을 바탕으로 잘 보여준다. 교인들이 읽고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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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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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희 작가는 장편 <비늘>로 처음 만났다. 등단과 작가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는데 최근의 문단 경향을 아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직접 번역한 <블라인드 라이터>는 역자 이름 때문에 한 번 더 눈길을 주었고 운 좋게 읽게 된 작품이었다. 이런 일련의 기억들이 이번 단편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한국 태생이지만 외국으로 이민 간 경험이 있는 작가란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작가의 말>에서 왜 한국 문단으로 등단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데 많은 부분 공감한다. 하진이 다른 언어로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이미 보여줬기에 더욱 그렇다.

 

아홉 편의 단편들 대부분은 이민자의 삶이 녹아 있다. 아마도 <동국>을 제외하면 전부라고 해도 될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한국인 작품도 있고, 미국인 작품도 있는데 이것은 거의 반반이다. 의도적인 것인지,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읽다 보면 첫 작품 <히어 앤 데어(Here and There)>의 연장선임을 자주 느낀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교포가 겪게 되는 일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질문들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다시 돌아온 교포들이 보여주는 어눌한 행동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일 때는 안타깝다.

 

<동국>은 남편의 감전 사고 이후 불행한 삶을 산 작은 어머니의 일생을 조카의 시점에서 보여준다. 힘들게 사는 와중에도 부조를 100만 원이나 했는데 그 이름이 낯설다. 동국. 제대로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다 보니 작은 어머니인지도 의문스럽다. 이 가족에게 닥친 비극은 정말 처참하다. 이름에 담긴 아픔과 그녀가 내뱉는 외침이 가슴에 강한 여운을 남긴다. <라스트 북스토어>는 분명하지 않은 사건을 바닥에 깔아둔 채 이야기를 진행한다. 추측만 할 수 있는 이 사건이 동생 부부의 삶을 파괴했다. 헌책방에서 발견한 몇 가지 책과 cd는 답답한 일상에 작은 위로가 된다. 하지만 그 뿐이다.

 

<천천히 초록>은 이민에서 돌아온 후 자신이 태어난 곳을 돌아보면서 과거를 추억한다. 그 추억 속 이야기보다 망가진 아버지가 더 눈길을 끈다. <로사의 연못>은 이민자의 삶과 욕망이 잘 드러난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집을 지었지만 그 원함이 왜곡되었음을 보여준다. <분홍에 대하여>는 조화를 만드는 그녀의 추억이 아주 인상적이다. 살 때 몰랐다는 그 감정이 평범하지만 가슴 깊게 파고든다. 색에 대한 번역을 나이와 연결하는 마지막 장면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압시드(Abcd)> 무심코 제목을 봤다. 입양된 노인의 독백으로 이어지는데 처음에는 아랍계로 착각했다. 한국전쟁 당시 아는 알파벳을 모두 적은 것이 이름이 되었고, 당시 미군 흑인과 결혼한 여성과의 인연과 관계는 또 다른 삶을 잠시 들여다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표제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는 오픈티켓으로 구매한 표의 좌석이 없으면서 겪게 되는 폴의 하루를 다루었다. 미국에 직장을 다니는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엄마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첫 단편의 그녀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화적 충돌이 곳곳에 드러나고, 처음 경험한 지옥이 그래도 나을 것이란 말에 삶이 잠시 우울해졌다. <로드>는 댈러스에 있는 엄마의 집으로 자동차 여행을 가는 세 남매 이야기다. 긴 여행은 서로가 느끼고 가지고 있던 가족을 말하게 한다. 엄마라는 존재가 지닌 무게와 의미는 여전히 존재한다. 나이가 들어 뒤돌아본 부모의 삶에 눈길이 간다.

 

이 아홉 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이민자의 삶을 돌아봤다. 이민자들이 그들의 자식을 어떻게 보는지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이 느끼는 감정의 일부도 봤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끊긴 듯한 느낌이 든다. 생략된 이야기에서 추론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쉽다. 단서를 보여줬거나 알려줬는데 내가 알지 못했다면 내가 잘못 읽은 탓일 것이다. 늦은 등단인데 다른 작가들처럼 꾸준히 작품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흔히 보는 삶이 아닌 조금은 다르고 낯설게 본 삶을 말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발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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