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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ㅣ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평점 :
보니것이란 성보다 보네거트가 더 익숙하다. 아마 지금까지 그렇게 읽어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인터넷 서점 두 곳의 작가 이름이 다르다. 같은 출판사, 같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의 책들은 상당히 많이 번역되었다. 물론 새롭게 번역 출간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절판되었지만. 한참 헌책방을 돌아다닐 때 생각보다 많은 보네거트의 책들이 있었다. 작가에 대한 무지가 이 책들을 놓쳤다. 아쉽고 아쉽고 아쉬운 일이다. 다행이라면 뭔지도 모르고 산 <타이탄의 미녀> 정도랄까? 그런데 이 책 어디 있는지 지금 모른다. 그럼 없는 것인가?
책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것은 이 작가의 매력을 몰랐을 때 있었던 작은 기억들 때문이다. 너무 유명한 <제5 도살장>의 경우도 사실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러다 한 작품을 읽고 그의 재미와 가치를 알게 되었다. 당연히 이때는 그의 헌책들이 사라진 후였다. 이런 작가들이 몇 명 있는데 보네거트는 그 중에서도 탑이다. 그래서 한동안 열심히 나오는 대로 사서 모셔두었다. 말 그대로 모셔만 두었다. 나의 장기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꾸준히 산다는 것이다. 모두 읽는 것은 언젠가 시간이 나면 할 예정이다.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의 약 앤티제라손이 나온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믿고 있다. 아니면 아까워서 어떻게 이 책들을 두고 떠나겠는가.
이 책을 읽고 다행으로 느낀 것도 이런 아까움을 예방했기 때문이다. 재밌었던 것은 너무 당연하다. 다른 sf장르에서 책을 머릿속에 입력해주는 기능이 있던데 그렇다면 이 책들을 모두 머릿속으로 다운로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을까? 이 단편집처럼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그 시대와 미래의 문제를 날카롭게 통찰하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할까? 지금 읽었던 작품도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새 사전>에서 단어 하나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작가가 제목이나 내용에서 중의적으로 사용한 단어들을 생각해본다.
SF소설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평등, 반전, 인구 억제, 진화, 장수 등의 문제를 다루는데 작가는 극단적 상황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해리슨 버저론>에서 평등은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고,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인구 과잉 문제를 섹스 없음으로 풀어낸다. 처녀작 <반하우스 효과에 관한 보고서>는 초능력과 그것을 이용하려는 무리와 평화적으로 사용하려는 사람 이야기를 간결하게 풀어내었다. <입을 준비가 되지 않은> 같은 작품은 인간의 모습을 쉽게 벗고 입는 능력을 다루며 인류의 진화를 보여준다. 불노불사의 약이 등장하면서 생기는 인구과잉과 자원소멸 문제를 다룬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은 또 어떤가. <유피오의 문제>에 나오는 기계가 있다면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체적으로 문제를 극단으로 설정하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아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모두 왕의 말들> 같은 작품은 어딘가에서 본 듯하다. 인간을 장기말로 사용한다는 설정 때문이다. <포스터의 포트폴리오>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을 다른 이의 시점으로 반전처럼 풀어내었다. <톰 에디슨의 털복숭이 개>는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폭로한다. 믿거나 말거나. 자신의 경험담을 다룬 <영원으로의 긴 산책>이나 <공장의 사슴>은 열정과 의지를 상황으로 보여준다. <한결 위풍당당한 저택>은 예상한 장면과 예상하지 못한 반전에 어리둥절했다. <유혹하는 아가씨>의 그녀가 바란 것을 들었을 때 내가 살면서 용기없이 하지 못한 일들을 조금 아쉬워했다.
<옆집>은 다시 정밀하게 읽으면서 마지막 장면을 해석해야 할 것 같다. <거짓말>의 장면들은 체면의 위선이 잘 드러난다. <아무도 다룰 수 없던 아이>는 과연 계속해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성장할까? <아담>의 출산을 둘러싼 상황과 두 아버지의 다른 감정은 이해가 필요한 부분들이다. 우주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의 편지는 반전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에피칵>의 개발도 전쟁이 목적이지만 주인공은 가장 중요한 사랑을 위해 이용한다. 현대의 인공 지능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는 이 컴퓨터를 보면서 시대의 한계도 동시에 느낀다. 그 외 작품들도 나의 이해가 닿는 한도 안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