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살다 - 이생진 구순 특별 서문집
이생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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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시인의 산문집과 더불어 이 서문집을 읽게 되었다. 순서가 바뀌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 서문집을 읽는 동안 생겼다. 그것은 이 서문집이 시인이 시집 등을 내면서 쓴 서문과 후기 등을 모두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자필 수제본 시집 <산토끼>에서 시작하여 서른여덟 번째 <무연고>까지. 시집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시화집도 있고, 산문집도 있고, 천재들에 대한 편저도 있다. 단순히 서문만 모았다면 조금 심심했을 텐데 후기도 같이 넣어 시집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발간순으로 서문 등을 나열했기에 삶의 여정도 잠시 느낄 수 있다. 산문집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산문집을 읽는 느낌이다.

 

이제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구십에 시집을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노년에 더 활발한 시작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시를 제대로 읽지 않은 내가 평가할 부분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그의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썼다고 하니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실제 산문집과 이 서문집에 실린 시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산문집에 등장했던 친구가 이 서문집에서 부고를 알려주기도 한다. 시간은 누구나 똑같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죽음 앞에서는 동등하지 않다. 시인이 할머니라고 부른 그들의 나이가 그 당시 시인의 나이임을 알게 되면서 그가 얼마나 젊게 다가왔는지 깨닫고 놀란다. 아님 내가 너무 무감각했거나.

 

1955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인 이생진의 행보를 망라하고 있기에 그에게 관심 있는 독자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없다고 해도 한 권의 산문집 읽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자서전 같은 느낌이란 평이 있는데 동의한다. 책 한 권을 내고 거기에 서문과 후기를 정성스럽게 썼기 때문이다. 시를 썼을 때의 감상과 그 당시 분위기와 그의 관심사까지 축약되어 있다. 이것은 시인이 서문과 후기에 그 책의 내용과 의도를 충실히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산문 같다고 느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후기의 내용들이 그랬다.

 

괜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그의 청년기에 쓴 <아름다운 천재들>에서 “요절은 불쾌하오. 오래오래 살아보시오.”란 문장을 썼다. 그 덕분은 아니겠지만 아흔에 이렇게 서문집과 시집을 내었다. 섬을 돌아다니면서 섬에서 많은 시를 썼지만 꼭 섬만 다룬 것은 아니다. 곤충도 산도 같이 시집으로 나왔다. 자연에 대한 그의 관찰은 간결한 시어로 표현되었다. 인사동에 머물 때는 인사동 시집을, 섬을 돌아다닐 때는 그 섬에 대한 시를 썼다. 이 왕성한 활동의 결과물이 바로 이 서문집이다. 자신의 삶을 기록한 기록지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났을 때 그가 다시 자신의 시집을 읽고 느낀 점들에서 내가 쓴 글들을 돌아보게 한다.

 

정년퇴직 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섬을 돌아다니고, 시를 짓고, 시집을 낸다는 점에서 부럽다. 섬에서 고독과 마주하면서 힘들게 시를 쓴 그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이 시집들이 나오기 위해 가족들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했을지도 궁금하다. 선생의 적은 월급을 꼬불쳐 방학마다 떠났다는 글에서 섬 사랑과 방랑벽을 느낀다. 섬을 가면서 낚시꾼들이 한 말을 그냥 넘기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왠지 멋지다. 그는 고기를 낚기보다 시어를 낚으려고 간 것이니 당연할 텐데. 20년 전 그때 노아가 이 서문집을 읽을지, 혹시 그의 부모가 나오는 시집을 읽었을지 어떨지. <맹골도>로 오면 세월호의 흔적을 다시 보게 된다. 빨리 집에 있는 그의 시집을 한 권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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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 - 이생진 산문집
이생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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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본 듯한 이름에 저자 이력을 확인했다.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보인다. 사 놓고 오랫동안 묵혀두고 있는 시집이다. 이 시집을 추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왜 추천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제목이 낯익고 정겨워서 계속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읽었던 시집의 제목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저질 기억력을 생각하면 흔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 시인의 산문집은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이다. 1997년에 출간한 것을 개정증보한 것이 이번 책이다. 산문 몇 편이 빠지고 다시 들어간 듯한데 구판과 비교해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성산포. 많이 들은 지명이지만 정확하게 잘 모른다. 인터넷 검색하니 제주도에 있다. 제주도 명예도민이 된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시집이 가장 유명하지만 문학상은 다른 시집으로 받았다. 지금 구순인데 아직도 현역에서 일하고 있다. 대단하다. 성산포로 유명해졌지만 그는 섬을 사랑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서 섬을 뺀다면 무엇이 남을까 궁금할 정도다. 그가 다닌 섬의 이름만 적어도 A4 한 장은 가득찰 것 같다. 이렇게 한 분야에 빠진 시인이나 전문가를 볼 때면 늘 부럽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처음 나온 것이 1978년이라고 하니 얼마나 긴 세월인가. 이 산문집에는 최근까지 섬을 다닌 기록을 담고 있다.

 

이 산문집에는 시인이 그린 그림도 한몫 차지한다. 만년필로 그린 듯한 그림은 간결하면서 핵심을 잘 담고 있다. 최근 그림보다 예전 그림이 더 많은데 노안이라 그런지 그림에 적은 글자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정보를 더 자세히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풍경을 담고 있다. 서귀포 어딘가를 그린 그림을 보면서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란 생각에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생겼다. 차로 제주도를 돌면서 놓쳤던 많은 풍경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예전에 그가 본 섬과 현재의 섬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읽으면서 계속 생각한 것이다.

 

섬과 고독을 같이 묶어서 풀어낸 글들이 많다. 지금처럼 통신이나 전기가 잘 전달되지 않던 시절, 시인의 말처럼 곤충들이 섬의 주인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면 시인이 그곳에서 느꼈을 고독의 일부를 상상할 수 있다. 섬, 파도, 바다, 바람 등이 고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엮이면서 시로 태어난다. 그의 시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 이 산문집은 잘 보여준다. 섬과 섬 사람들 이야기는 진한 정을 느끼게 만든다. 한 번만 가는 섬이 아니라 여러 번 방문하고 오랫동안 머물기도 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등대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래 전 보았던 등대의 풍경과 등대지기가 떠올랐다. 시인은 등대는 고독에 민감하다고 했는데 고개를 끄덕인다.

 

시인의 산문에는 시가 자주 등장한다. 시를 자주 읽지 않는 나에게 시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덕분에 알게 모르게 몇 편의 시를 읽게 되었다. 당연히 시를 읽고나면 시집에 관심이 간다. 이 때문에 시집 한 권을 읽게 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송상욱 시인과 함께 기타 치면서 시를 낭송한 에피소드는 낭만과 여유가 느껴져서 잠시 그 여운에 잠겼었다. 시인이 섬을 둘던 시기를 떠올리다보면 학창시절 친구가 다녀왔던 섬 몇 곳이 떠올랐다. 아련한 추억에 순간 잠긴다. 섬으로 섬으로 떠돌며 얻은 고독이 시로 태어나고, 그 탄생이 쌓여 시집이 되었다. 몽블랑 만년필을 이야기할 때는 잊고 있던 만년필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긴다. 현재나 미래보다 과거의 향수가 더 가득한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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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지나간다 - 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자 이야기
구효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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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소리 홑글자가 화자로 등장한다. 국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아서인지 된소리 홑글자가 뭔지 몰랐다. 목차를 한 번 쓱 훑어보니 아! 하고 알 수 있었다. 이 에세이를 선택한 것도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다. 보통의 에세이는 대부분 사람을 화자로 등장시키지 않았는가. 이 된소리 홑글자가 화자라니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소설가 구효서가 쓴 에세이는 또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겹쳐지면서 펼친 책은 생각보다 분량이 많지 않았다.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은 읽기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간결하고 일상적인 최근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강화도 하점면 창후리 창말. 공간적 배경이다. 1965년부터 70년 사이는 시간적 배경이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읽다 보면 연작 단편 소설의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일관되게 흐르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창말 사람들과 상황들이 기억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덧붙여진 것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57년생 작가가 어떤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현실에서 그가 풀어내는 창말 이야기는 너무 세밀하고 사실적이다. 이제 중늙은이가 된 나도 그 시절의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데 더 늙은 그는 어쩌면 이렇게 또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기억은 더 좋아지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의 기억력이 좋은 것일까?

 

강화도. 여행으로 가 본 것이 전부다. 역사책에 나오는 정보 그 이상은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에 다른 지역들처럼 비극이 똬리를 틀고 있다. 83명이 묻힌 구덩이도 있고, 뻘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죽은 사람들이 누워 있다. 이 마을 앞에 있는 ‘뻘’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영화의 서막과도 같다. 효서가 이야기에 자주 등장할 것 같지만 그는 평범한 조연일 뿐이다. 그것과 가끔 등장한다. 된소리 홑글자들이 창말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들려주는데 이 작은 마을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결코 적지 않게 일어난다. 낚시꾼들의 등장처럼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들도 있다.

 

작가의 상상력과 어릴 때 기억이 만나 만들어낸 이야기는 좀 더 세밀하게 읽을 때 재밌다. 강화도 사투리가 난무하면서 무슨 뜻인지 추리해야 하고, 서슬퍼런 시대의 모습도 보여준다. 명사로 된 된소리 홑글자가 화자인 것은 쉽게 이해가 가는데 쓰, 쓱, 뚝, 빡, 뽁 같은 홑글자는 조금 낯설다. 사전적 의미까지 끌고 와서 작가가 설명하는데 이에 맞게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소설가의 서술과 묘사는 의도된 연출로 이어진다. 첫 이야기에 뻘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소설가란 이력과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작은 이야기 속에 작은 반전을 넣어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 문학을 읽으면서 사투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사실 나 자신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다른 동네 사루리를 잘 모를 때가 많다. 같은 도시라고 해도 옆동네에서 사용하는 사투리가 다른 경우가 있다. 이 에세이에서도 작은 고개 너머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지금처럼 언어가 하나의 공통된 소리를 가지기 전에는 그랬다. 효서란 이름이 어떻게 불리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는 문자와 소리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아마 누구나 한 번 이상 경험한 일일 것이다. 시대 속에서 흥미롭게 봐야 하는 것은 이름 없이 여자로 불리는 한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다. 그녀와 딸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한 많은 것을 풀어서 설명해주었지만 그 사이에는 많은 이야기가 생략된 것도 사실이다. 풍자와 해학이 곳곳에 보이지만 나의 시선은 비극에 더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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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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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것이란 성보다 보네거트가 더 익숙하다. 아마 지금까지 그렇게 읽어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인터넷 서점 두 곳의 작가 이름이 다르다. 같은 출판사, 같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의 책들은 상당히 많이 번역되었다. 물론 새롭게 번역 출간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절판되었지만. 한참 헌책방을 돌아다닐 때 생각보다 많은 보네거트의 책들이 있었다. 작가에 대한 무지가 이 책들을 놓쳤다. 아쉽고 아쉽고 아쉬운 일이다. 다행이라면 뭔지도 모르고 산 <타이탄의 미녀> 정도랄까? 그런데 이 책 어디 있는지 지금 모른다. 그럼 없는 것인가?

 

책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것은 이 작가의 매력을 몰랐을 때 있었던 작은 기억들 때문이다. 너무 유명한 <제5 도살장>의 경우도 사실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러다 한 작품을 읽고 그의 재미와 가치를 알게 되었다. 당연히 이때는 그의 헌책들이 사라진 후였다. 이런 작가들이 몇 명 있는데 보네거트는 그 중에서도 탑이다. 그래서 한동안 열심히 나오는 대로 사서 모셔두었다. 말 그대로 모셔만 두었다. 나의 장기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꾸준히 산다는 것이다. 모두 읽는 것은 언젠가 시간이 나면 할 예정이다.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의 약 앤티제라손이 나온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믿고 있다. 아니면 아까워서 어떻게 이 책들을 두고 떠나겠는가.

 

이 책을 읽고 다행으로 느낀 것도 이런 아까움을 예방했기 때문이다. 재밌었던 것은 너무 당연하다. 다른 sf장르에서 책을 머릿속에 입력해주는 기능이 있던데 그렇다면 이 책들을 모두 머릿속으로 다운로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을까? 이 단편집처럼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그 시대와 미래의 문제를 날카롭게 통찰하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할까? 지금 읽었던 작품도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새 사전>에서 단어 하나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작가가 제목이나 내용에서 중의적으로 사용한 단어들을 생각해본다.

 

SF소설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평등, 반전, 인구 억제, 진화, 장수 등의 문제를 다루는데 작가는 극단적 상황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해리슨 버저론>에서 평등은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고,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인구 과잉 문제를 섹스 없음으로 풀어낸다. 처녀작 <반하우스 효과에 관한 보고서>는 초능력과 그것을 이용하려는 무리와 평화적으로 사용하려는 사람 이야기를 간결하게 풀어내었다. <입을 준비가 되지 않은> 같은 작품은 인간의 모습을 쉽게 벗고 입는 능력을 다루며 인류의 진화를 보여준다. 불노불사의 약이 등장하면서 생기는 인구과잉과 자원소멸 문제를 다룬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은 또 어떤가. <유피오의 문제>에 나오는 기계가 있다면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체적으로 문제를 극단으로 설정하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아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모두 왕의 말들> 같은 작품은 어딘가에서 본 듯하다. 인간을 장기말로 사용한다는 설정 때문이다. <포스터의 포트폴리오>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을 다른 이의 시점으로 반전처럼 풀어내었다. <톰 에디슨의 털복숭이 개>는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폭로한다. 믿거나 말거나. 자신의 경험담을 다룬 <영원으로의 긴 산책>이나 <공장의 사슴>은 열정과 의지를 상황으로 보여준다. <한결 위풍당당한 저택>은 예상한 장면과 예상하지 못한 반전에 어리둥절했다. <유혹하는 아가씨>의 그녀가 바란 것을 들었을 때 내가 살면서 용기없이 하지 못한 일들을 조금 아쉬워했다.

 

<옆집>은 다시 정밀하게 읽으면서 마지막 장면을 해석해야 할 것 같다. <거짓말>의 장면들은 체면의 위선이 잘 드러난다. <아무도 다룰 수 없던 아이>는 과연 계속해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성장할까? <아담>의 출산을 둘러싼 상황과 두 아버지의 다른 감정은 이해가 필요한 부분들이다. 우주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의 편지는 반전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에피칵>의 개발도 전쟁이 목적이지만 주인공은 가장 중요한 사랑을 위해 이용한다. 현대의 인공 지능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는 이 컴퓨터를 보면서 시대의 한계도 동시에 느낀다. 그 외 작품들도 나의 이해가 닿는 한도 안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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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느끼는 오감재즈 - 재즈라이프 전진용의 맛있는 재즈 이야기
전진용 지음 / 다연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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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때 재즈를 알고 싶어서 책도 사고, 음반도 몇 장 사서 열심히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좀처럼 이 재즈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대단하다는 말에 그의 <Kind of Blue>를 늘 틀어놓고 산 적도 있다. 듀크 엘링턴이 대단하다고 해서 그의 음반을 열심히 들었다. 유명하다는 작품을 모은 음반을 듣기도 했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그러다 존 콜트레인의 <A Love Supreme>을 추천한다는 말에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다운 받아 열심히 들었다. 다른 유명인의 앨범도 같이 들었지만 어렵기만 했다. 대신 대중적으로 인기 있던 유명 재즈 보컬은 취향과 잘 맞았다. 이것이 현재 나의 수준이다.

 

언제나 관심을 두고 있는 음악 장르 중 하나가 재즈다. 팟캐스터에 나오는 재즈 관련 방송도 몇 개 들었고, 좋다고 하면 음반도 다운 받아서 듣는다. 계속 시도는 하는데 귀에 익은 몇 개의 곡들을 제외하면 좀처럼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곡은 유튜브를 통해 들으면서 아주 귀에 익은 선율이 나와 반가웠다. 너무 유명한 곡들이라 자주 노출되었거나 그냥 열심히 들은 결과다. 잠시 아는 곳이 나왔다는 반가움이 있지만 제목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아쉬움은 그대로다. 아마도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앞으로 한 동안도 이런 수준 이상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낮다. 뭐 당연한 일이다. 책 한 권 읽었다고 그 방대한 재즈의 세계를 어떻게 알겠는가.

 

이 책의 저자는 재즈를 세분화하고, 그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음악가를 나열해서 보여준다. 루이 암스트롱에서 시작해서 현재의 퓨전재즈까지 다루는데 몇몇 낯선 이름들이 보인다. 특히 디지 길레스피가 그렇다. 그와 함께 한 찰리 파커를 생각하면 나에게 의외의 인물이다. 아마 읽었던 책이나 카페 등에서 이 인물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던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무위키를 검색해도 이 이름이 하나의 목록으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는 그렇게 비중 있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비밥을 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재즈 입문서라고 하는데 재즈 거장 27인을 우리 한식에 비유한 것에는 솔직히 거부감을 느낀다. 저자도 말했듯이 이것은 저자만의 느낌이다. 그가 생각하는 한식과 내가 생각하는 한식의 맛이 다른 부분도 많다. 직관적 이해를 돕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단지 참고할 사항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점은 역시 재즈 거장들의 삶 이야기다. 그리고 한 인물의 이야기가 끝난 후 관계도를 보여주는데 그가 재즈에 미친 영향과 어떤 인물과의 연계 속에서 살았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특정 시기에 재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시대가 겹쳐지는 부분이 많아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공부가 더 진행된다면 이 관게도가 좀 더 의미있게 다가올 것 같다.

 

재즈가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졌었다는 이야기는 새롭다. 한때 랩이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졌지 않은가. 환경이 음악에 미치는 영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라 흥미롭다. 보사노바와 함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란 이름을 여기서 만날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공부가 부족한 탓이다. 책을 읽고, 저자가 앨범과 음 음악을 추천하는데 대부분 낯설다. 시간나면, 아니 시간 내어 들어야할 음반이 확 늘어났다. 이번에 음악을 유튜브를 통해 들으면서 데이터 용량을 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시간 운전할 때 유명 음반 하나를 틀어놓고 달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자신과 맞는 재즈를 찾아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재즈에 올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즐기는 입장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어쩌면 내가 한동안 재즈에서 멀어진 것도 난해하지만 유명한 음반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의 취향과 맞고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반만 들어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여기서 옆으로 범위를 넓힌다면 더 다양한 재즈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옛기억을 더듬고, 새롭게 듣고 싶은 음악이 늘어났다. 단순히 수집욕에 모아둔 음반도 다시 꺼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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