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너 클럽
사스키아 노르트 지음, 이원열 옮김 / 박하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정말 매혹적인 광고 문구를 가졌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위기의 주부들>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상상해봐라. 그것이 바로 《디너 클럽》이다!” 이런 표현은 하이스미스가 보여준 심리 묘사를 좋아하고, <위기의 주부들>에서 나타나는 막장 드라마를 즐겼던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매혹적이다. 그리고 흔치 않는 네덜란드 스릴러란 점도 관심을 끌었다. 자극적인 표지도 아주 인상적이다. 이런 멋진 포장은 과도한 기대를 품게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대는 조금 과했다. 취향 탓도 있지만 마무리로 이어지는 과정이 조금 느슨하고 긴박감이 조금 떨어졌다.

 

긴박감이 떨어지는 부분을 멋지게 채우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인간들의 관계와 멋진 심리 묘사다. 카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하나의 모임 속에 감추어진 욕망과 속내를 아주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엮이고 꼬이고 뒤틀린 관계는 하나의 파국을 통해 확대된다. 순진하면 자신의 속내를 알게 모르게 드러내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것은 질타의 대상이 된다. 순수한 우정이 계속 될 것 같았던 모임 속에 욕망이 꿈틀거리고, 거짓과 비밀이 난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이 부분을 놓고 보면 광고 문구와 딱 맞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환상 중 하나가 한적한 전원생활이다. 카렌 부부가 교외로 나간 것도 이런 환상이 작용했다. 하지만 현실은 지루하고 지겹다. 이때 만난 한네커가 다른 여자들을 소개해주고, 이들이 하나의 모임을 만든다. 디너 클럽이다. 여자들만의 모임이었으면 문제가 덜 생겼을 텐데 남편들도 함께 한다. 동등한 관계가 유지된다면 멋진 모임으로 지속될 수 있었겠지만 성인들의 모임은 감추어진 욕망들이 알게 모르게 표출될 수밖에 없다. 카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강하게 시몬에게 성적으로 끌린다. 그가 보여준 과감한 행동을 제지할 생각조차 않는다. 오히려 즐긴다. 이런 모임이 오래간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이런 목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친구 중 한 명의 집에 불이 난다. 남편 에베르트는 죽고, 아내 바베터와 아이들은 살아난다. 다행스런 일이지만 얼마 후 이 모임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한네커가 죽는다. 자살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평소 행동을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 가지 비밀이 드러난다. 에베르트와 한네커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이 둘의 관계가 깨어졌지만 이 불륜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 여형사가 끼어들면서 평온한 듯 보였던 관계의 실제 모습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진실과 믿음보다 여형사가 흘린 한 마디가 더 큰 작용을 한 것이다. 2년 동안 그들이 쌓아올린 우정이란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이지 알려준다.

 

기본적으로 에베르트와 한네커의 죽음을 추적하는 설정이지만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카렌의 욕망과 인간관계와 그 관계에 대한 심리 묘사다. 특히 시몬을 둘러싼 욕망은 아주 노골적이고 자극적이다. “미첼은 나 때문이 아니라 돈, 그리고 시몬이 그에게 펼쳐 보여준 장밋빛 미래에 흥분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시몬, 바로 그에 대한 생각 때문에 흥분했다.” 돈과 육체적 욕망은 언제나 사람들을 타락으로 이끈다. 이성의 고삐가 잠시라도 풀리면 그 틈새로 쉴 새 없이 들어온다. 한 번은 두 번으로,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한네커의 죽음과 잘못된 정보는 이 디너 클럽의 모래성을 가차없이 무너트린다. 카렌이 생각했던 친목 모임의 성격이 한 번에 드러난 것이다. “나는 이 집단 안에서 자 자신을 잃고 있었다. 따스함, 서로에 대한 사랑, 이 모든 것은 내 머릿속에서만 있었다.” 그리고 다시 느낀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캐릭터, 외모, 결혼 생활과 가족을 샅샅이 분석하고,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는 일은 흔했다. 그런 대화를 나눌 때면 늘 내가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제 내가 쫓겨나고 보니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게임을 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이 늦은 깨달음은 늦었지만 삶의 방향을 바꾸는데 충분하다.

 

누군가가 죽는 스릴러에서 범인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빼놓을 수 없다. 한 남자를 계속해서 가리키지만 왠지 어설프다. 이 남자를 뒤지는 형사의 행동도 그렇게 치밀하거나 강한 의지가 엿보이지 않는다. 카렌의 수사가 너무 쉽게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형사나 다른 가족들의 노력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게 된다. 가족은 정신이 없었다고 핑계를 댈 수 있지만 경찰은 어떨까? 자살이란 선입견에 빠져 더 파헤칠 마음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은 추리소설을 봐서 현실을 왜곡하는 것일까? 이런 것과 달리 욕망과 관계를 아주 멋지게 묘사한 부분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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