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린터 - 언더월드
정이안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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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르 소설에서 멋진 작품이 나왔다. 처음에는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읽으면서 완전히 빠졌다. 1권짜리 소설로 알았는데 3부작이다. 제목처럼 읽는데 가속도가 붙는다. 어떻게 보면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지만 다음에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따라 1부의 작품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매년 한 권씩 나온다고 하니 나의 멍청한 기억력이 그때와 제목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거대한 설정이 가끔 한국 장르 소설의 고질병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한다. 바로 용두사미의 마무리다.

 

단이가 화자로 나와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지하철에 갇힌 단이가 사건을 직접 마주한다면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되는 대통령과 국정원 요원 현국이 또 다른 하나의 시점을 제공한다. 분량에서 단이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현국은 왜 이런 문제가 생겼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한 그의 노력과 한 개인과 집단의 거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3부작의 첫 권이다 보니 많은 것이 가려져 있다. 특히 이번 소설의 마무리 장면에서는 의문을 더 강화시킨다.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등장하면서 관계를 꼬기 때문이다.

 

강단이, 지태, 연아는 한 형제처럼 자랐다. 서로 친한 부모님들이 함께 놀러갔다가 교통사고로 모두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지태의 친엄마가 이들을 같이 키웠다. 이들은 모두 그녀를 엄마라고 부른다. 아주 특별한 존재다. 어릴 때 부모를 잃은 고통으로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아주 단편적인 정보 밖에 나오지 않지만 이들의 유대는 아주 특별하다. 이 특별한 유대는 이들이 갑자기 발생한 지하철 테러를 헤쳐 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엄마를 구하기 위해 아주 위험한 행동을 한다. 물론 이것이 새로운 사건과 진실을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강단이는 스프린터였다. 그것도 세계 최정상 선수였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도핑테스트에 걸려 트랙에서 끌려나온다. 열아홉 살 고등학생에게 이 사건은 꿈을 완전히 접게 만드는 사건이다. 꿈을 접기 위한 달리기를 한 번 시도한다. 그것은 지하철 첫 칸에서 마지막 칸까지 달리는 것이다. 문이 열리면 달리고, 닫히기 전에 들어오는 시도다. 당연히 성공한다. 2호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전철이 멈추고, 전기가 나간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지하철은 알 수 없는 생명체에게 공격을 받고, 사람들은 죽는다. 달아날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구한다는 것은 사치다. 하지만 이런 현장에서도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노력들이 있다.

 

완전히 희생적이지는 않지만 개인의 양심을 덜 수 있을 만큼 돕는다. 지하철 출입구가 무너져 다친 사람들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그들 모두를 도울 수는 없다. 한 임산부를 도운 것도 그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터지고, 인간의 이기적 욕심들이 폭발하면서 선의는 그대로 묻혀버린다. 자신의 생존이 최우선이다. 괴물들은 어딘가에서 나타나 사람을 죽이고, 먹는다. 이성은 공포에 질식된다. 단이 혼자였다면 아마도 금방 괴물에게 먹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태와 연아가 있다. 혼자만의 생존이 아니라 함께 도와가면서 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형제가 있다. 여기에 지하철에서 살아가는 아홉 살 소녀 화니가 함께 한다.

 

작가는 무서운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넣었다. 괴물이 사람을 먹는 장면을 보여주고, 사지가 찢긴 채로 등장한다. 군인들과의 대결은 이성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공포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명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 때 그 공포는 더욱 증폭된다. 그리고 권력자들에게 민중은 한 명 한 명 개인의 생명체가 아닌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진실을 숨긴 채 허위정보만 돌아다니게 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 비극이 더 커진다. 하지만 이 비극은 자신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를 중간에 언급한 것도 이 사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하는 말도 알아서 살라는 것이다. 정보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채.

 

액션, 모험, 공포, sf적 장치, 음모론, 덕후 문화 등 많은 요소가 녹아 있다. 그 요소 하나하나가 이야기 속에서 엮이고 풀린다. 철덕이 단이 일행으로 엄마에게 인도하는 것이나, 밀덕이 동시 테러의 불가능성을 역설하는 등 덕후들은 현실의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 위에서 모험하고 액션을 펼치고 공포를 느끼는 인물들은 단이 일행이다. 그리고 그들을 현실세계와 연결해주는 것은 연이의 SNS다.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유언비어가 현실로 증명되는 것이다. 이 현실이 단순한 서술인지 아니면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장치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시리즈가 이어지면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멋지게 시작한 시리즈 1부인데 과연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이것을 이어갈지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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