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크로즈 - 배들의 무덤, 치타공의 철까마귀
김예신 글.그림, 박봉남 원작 / 서해문집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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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국 최초로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중편부문 대상 수상작인 <Iron Crows(철까마귀)>를 그래픽노블로 각색한 작품이다. 최근 이렇게 다큐나 애니 등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그래픽노블로 다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반가운 일이다. 영상은 흘러가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지만 책은 보고 싶은 장면이나 문장을 오랫동안 들여다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독자의 참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그래픽노블을 읽으면서 그림보다 사진 한 장에 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보다 더한 것은 책 속에 담긴 이야기와 가슴 아픈 사연들이다.

 

치타공. 처음에는 이 단어가 지명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방글라데시의 바닷가란 것도 전혀 몰랐다. 직업의 한 종류로 착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1965년 강력한 사이클론이 한 선박을 해안에 좌초시키면서 전 세계 선박해체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한다. 하루 일당 1 달러의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는 재활용 산업이다. 여기에 철광석이 전혀 매장되어 있지 않은 방글라데시의 철강 산업이 의존하고 있고, 거대한 선박에서 나온 수많은 폐기물들은 입찰을 거친 후 재활용업자들에게 팔려나간다. 가난이 만들어낸 완벽한 재활용이란 표현이 딱 맞다.

 

선박 해체 작업은 아주 위험하다. 제대로 갖추어진 장비도 없고, 안전장치도 허술하다. 절단공의 작업은 조금만 방심을 해도 불의 위협에 빠질 수 있다. 절단 후 떨어지는 철근에 깔리거나, 자른 철을 올기는 과정에서 끊어진 철끈에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른다. 이 다큐멘터리 촬영 중에서 최소 두 번의 큰 사고 위험이 있었다. 한 번은 조종사의 순발력 덕을 본 것이고, 다른 한 번은 운이 좋았다 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 운이라는 것이 언제나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치타공의 해변은 언제나 괴담처럼 사고에 대한 소문들이 떠돌아다닌다. 화재로 인해 일곱 명이 죽었다는 것 같은.

 

결코 좋은 소문이 나지 않는 이 치타공의 해체 공장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인맥과 인맥을 통해 그들은 공장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노동 현장을 찍고, 해체 과정을 들여다본다. 이들은 대부분 북부의 못사는 지역에서 왔다. 러픽이 치타공을 ‘외국’이라고 부른다. 외국에 돈 벌러 가는 것과 똑같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열한 살 소년이 이곳이 좋다고 할 때, 겨우 1달러 옷을 산 것에 너무 많은 돈을 쓴 것이 아니냐고 할 때 이들의 빈곤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가난과 굶주림보다는 이 힘든 노동이 오히려 낫다.

 

어린 노동자들 고용에 대한 여러 NGO 단체 등의 문제 제기는 원론적으로 옳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반드시 이 선박해체소에서 노동을 해야만 하는 게 현실인 방글라데시에서는 이 원론이 옳지 않다. 선박해체산업이 완벽한 재활용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린피스 등의 반대는 무력해진다. 가끔 나 자신도 이런 원론적 올바름에 매몰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삶도 죽음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란 표현에서 이 노동자들의 노동이 주는 의미가 갑자기 무게를 더한다. 무거운 와이어를 어깨에 지고 바다가 걸어오는 이들의 사진이 얼마나 강렬했던가.

 

가난은 슬프다. 그러나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도 버티고 살아가야 한다. 하나의 희망을 조용히 가슴에 품고 말이다. “하지만 내 자식은 달라. 내 자식의 운명은 다를 거야.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거야.” 같은 희망이다. 우리의 부모 세대가 늘 말하는 바이기도 하다. 감독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그들의 육체를 말한다. 노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근육, 어깨에 깊게 팬 상처들, 검게 이글거리는 피부, 경이로운 육체라고. 그리고 이 육체야 말로 한 시대를 만들어냈던 빛나는 노동이었고, 이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아쉽게도 그래픽노블에서 이 육체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읽으면서 몇 번이나 가슴을 뒤흔드는 사연을 만났고, 울컥했다. 이 다큐가 나온 지 거의 10년이 되었는데 치타공은 어떻게 변했을까? 많은 상념들이 머릿속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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