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코리아 - 파란 눈의 미식가, 진짜 한국을 맛보다 처음 맞춤 여행
그레이엄 홀리데이 지음, 이현숙 옮김 / 처음북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전작 <맛있는 베트남>을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베트남 음식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졌다. 거리에서 항상 만나는 베트남 음식점과 베트남 출장을 다녀온 직원들의 이야기와 조금 다른 혹은 많이 다른 이야기였다. 가끔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로 가면 호치민 맛집을 예찬하는 말을 듣곤 했다. 이 경험들과 결합해서 그 책은 아주 흥미로웠고, 저자가 주목한 길거리 음식과 음식들에 대한 평가는 이전에 고정되어 있던 선입견을 단번에 깨트려주었다. 그래서 이번 책에서 그가 보고 맛 본 한국 음식은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20년 전 저자는 전북 익산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때 맛보고 경험했던 강렬함을 기억하기에 한국으로 음식여행을 다시 온 것이다. <맛있는 베트남>과 다른 기획이다. 솔직히 내가 기대한 것은 전작과 같은 방식이었다. 그의 맛 여행은 서울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돌아 다시 서울에서 끝난다. 얼마나 긴 시간인지는 모르지만 버스와 기차로 이동하면서 현지 식당에 가서 그 음식을 맛보고 음식점 주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식당의 모습을 설명한다. 그는 이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실제는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겠지만 자신의 의도한 바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것은 한국 음식이다.

 

한국 음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김치와 된장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런 간단한 대답보다 정의다. “한국 음식을 한국 음식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는 음식의 재료예요. 오로지 한국에서만 나는 재료나 또는 한국에서 생산했을 때 최고의 맛을 내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 한국 음식이죠.”이라는 황교익의 정의가 가장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치의 재료와 수입을 말한다. 이 간단한 정의와 문제 제기는 많은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김치의 정의와 한국 음식이라는 정의가 충돌한다. 된장도 마찬가지다. 수입 콩으로 메주와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현실을 생각하면 한국 음식은 한국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나물무침에 들어가는 참기름도 수입 깨다. 새롭게 정의를 내리거나 무너지고 있는 한국 음식의 현실을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그가 여행 다니면서 먹은 식당 중 가본 곳은 몇 곳 되지 않는다. 실제 그의 맛 여행은 아주 한정적이다. 너무 많은 지역을 다녔기에, 몇 사람의 이야기에 너무 집중했기에 피상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우리가 가지는 음식에 대한 선입견이나 잘못된 이해를 만날 수 있다. 외국인이란 필터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한국 음식에 대한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전라도를 여행하면서 여수와 순천을 뺐다는 부분에서 전라남도 음식을 제대로 맛보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담양에서 맛 본 것으로 충분했던 것일까? 경남에서 진주가 들어가고 통영이 빠진 것은 의외다. 전주에서 비빔밥의 만들어진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있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들었다. 반면에 새로운 전주 음식점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종로의 한 퓨전음식에서 시작하여 포장마차 산낙지로 끝나는 음식 여행은 즐겁고 신났다. 아는 식당이 나오면 ‘그곳에 갔군’ 하는 마음이 들고, 가끔은 왜 거기는 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생겼다. 그리고 그가 먹은 음식들을 보면서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는 것들이지만 호불호가 강한 한국인들에게도 어려운 음식들이 곳곳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가 잘못 주문해서 먹은 내장탕 에피소드는 누구나 여행에서 한번쯤은 경험하는 일이다. 홍어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주변에서 늘 보는 것이라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에피소드를 일반적인 것으로 말하는 것은 조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빠르게,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는 한국의 모습은 나에게도 낯설다. 그가 익산에서 경험한 급속한 변화는 결코 그곳만의 특정한 현상이 아니다. 이 변화를 그는 아주 날카롭게 지적한다. 음식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한 여행이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사회문제 인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한다. 그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다만 잠시 멈춰 뒤돌아보았을 때 그 급속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나에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 같은 노땅들이 모여 이야기하다 잠시 빠지는 옛이야기처럼.

 

사실 전라도 여행을 거의 해본 적 없어 아주 피상적이다. 아주 좋았던 곳도 있지만 서울의 음식보다 특별히 좋았다고 느끼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식재료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는 제외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내가 맛있는 서울 식당을 운 좋게 여러 곳을 다녀왔기 때문이거나 미각이 둔해서 일 것이다. 한때 열심히 다녔던 평양면옥에서 저자가 냉면을 먹는 방식을 보면서 의아함을 느꼈다. 식초와 겨자를 넣고 맛보았기 때문이다. 극찬이 나왔는데 몇 번을 읽어봐도 맛 포인트가 조금 이상하다. 그리고 그가 이 음식을 지금까지 맛보지 않았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다. 그가 살던 곳에서는 이 음식이 전혀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질문 속에 문화와 경험과 유행이 다 들어 있다.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한국 음식의 변화와 사라지는 음식점들 이야기가 한 이방인의 글로 나에게 다가왔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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