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스 버티고 시리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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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 소설을 설명하는데 이보다 잘 어울리는 문장은 없을 것이다. 실제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살인은 바로 이 해고에서 시작한다. 대량해고로 직장을 잃고 오랫동안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한 버크 데보레가 자신의 취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죽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기발한 발상이지만 현실에서는 그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내가 죽인 사람들이 나보다 낫다는 보장도 없고, 그들이 죽는다고 해도 내가 가장 우선순위가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특수한 업무 경력자란 설정과 죽일 사람을 선택하기 위한 작업을 같이 넣었다.

 

데보레는 취업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최선 중 하나가 다른 경쟁자들의 이력서는 받는 것이다. 자산의 경력 광고를 내어 채용을 기다리는 수준에서 다른 경쟁자를 보기로 한 것이다. 이 작업은 자신보다 나아보이는 몇 명을 추려내는 역할을 하고, 그 결과는 이 경쟁자들을 죽이는 것이다.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살인은 쉬운가? 하고. 당연히 쉽지 않다. 군대를 다녀왔지만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것도 아니다. 유럽에서 근무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버지가 2차 대전 당시 주운 루거가 한 자루 있다. 이 총을 사용해 죽이려고 한다. 제대로 총을 다룬 적이 없다 보니 책을 사서 공부하고, 사격도 해본다. 역시 몇 차례 실수를 경험한다.

 

준비가 다 되었다. 이제 경쟁자를 선택한 후 그를 죽이면 된다. 이렇게 적고 나면 단순하게 보이지만 실제 살인은 다르다. 얼굴도 모르니 그가 맞는지 확인해야 하고, 목격자도 없어야 한다.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감은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게 만든다. 그리고 첫 번째 살인을 한다. 성공이다. 다음 경쟁자를 죽이러 간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그 집 딸 때문에 생긴 오해에서 비롯했다. 경쟁자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까지 죽인 것이다. 이때 그가 느낀 감정은 복잡하다. 죽이지 말아야 하는 사람을 죽여야 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감정은 나중에는 조금 바뀐다. 어쩔 수 없다면, 이란 조건을 붙여서.

 

이제 그는 연쇄살인범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정체를 모른다. 행운도 따른다. 두 번째 살인의 용의자가 잡혔기 때문이다. 이런 행운은 다음 살인에서도 이어진다. 나중에는 형사까지 찾아온다. 그가 비슷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일에서 행운이 따른다면 가정사는 그렇지 않다. 먼저 아내와의 불화가 일어난다. 둘이 상담사를 만나 이 문제를 풀자고 한다. 그가 은밀하게 처리하는 일들 때문에 아내가 힘겨워한 것이다. 여기에 아들이 절도죄로 잡힌다. 소프트웨어를 훔치다가 잡힌 것이다. 이제 경쟁자를 죽여야 하면서 가정 문제도 같이 풀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닌데 예상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그리고 다음 살인은 어떻게 될지, 이 살인의 결과는 해피엔딩일지 기대한다.

 

사실 이 소설이 처음 번역되었을 때는 나의 시선을 그렇게 많이 끌지 못했다. 박찬욱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조금 더 관심이 생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소설이 실업자가 살인을 한다는 단순한 소설로만 여겼다. 다른 작품에서 경쟁자를 죽여야만 살아남는 사람들 이야기를 몇 번 읽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취직과 생존을 위해 정말 열심히 움직였다. 그 이미지를 가지고 차분하게 읽으면서 이런 설정도 가능하다는 데에 놀랐다. 그리고 대량해고를 불러온 책임자들에게 총구가 향해지지 않고 개인들에게 향했다는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어쩌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가장 큰 적보다 바로 앞에 옆에 보이는 동료를 적으로 여기는 그 마음 말이다. 박찬욱이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배우와 어떤 설정으로 풀어낼지 한 번 괜히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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