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바다 - 미술여행작가 최상운의 사진과 이야기
최상운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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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쪽 바다를 보면서 자랐다. 태어난 곳에서 바닷가까지는 100미터 조금 더 되는 정도였다. 이런 나에게 바다는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자라면서 본 바다와 탁 트인 백사장이 깔린 바다는 달랐다. 일단 시원하고 가슴에 신선한 바람이 와 닿았다. 이전까지 바다하면 어시장의 생선들과 비릿한 냄새와 어선들이 버린 스티로폼 등의 쓰레기가 먼저 연상되었다. 그래서인지 해외에서 이런 부둣가를 보면 반갑고 낯익다. 누구나 바다하면 먼저 떠오르는 일반적 이미지와 다른 것이다. 이 이미지를 조금씩 벗어던진 것은 다양한 바다를 보면서부터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일곱 장을 SEA라는 표기로 나누었다. 많은 곳이 아는 바다지만 낯선 지명도 상당히 나온다. 한국 바다만 따로 모아놓지 않고 해외의 바다가 같이 넣은 것도 조금은 특이하다.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아직 찾지 못했다. 한국의 바다 대부분은 제주도와 관계있다. 제주 비양도, 우도, 마라도, 가파도, 애월, 제주, 서귀포 등이 책 속에 나온다. 제주에 가서도 섬은 거의 간 적이 없어 대부분 이름과 방송으로만 본 곳이다. 언제 한 번은 가보고 싶지만 늘 마음만 먹고 있다. 군산의 선유도도 이제 다리가 거의 완성되었다고 하니 한 번쯤 갈 것 같다. 이렇게 이 책은 나의 기억을 되살리고 가보고 싶은 열망을 살짝 부채질한다. 그렇다고 수많은 외국의 바다에 비할 바는 아니다.

 

미술여행작가라고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른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사진들이었다. 구도와 배경 등이 전혀 내가 기대한 것과 닮지 않았다. 오히려 각 장 마지막에 실린 화가들의 그림이 더 인상적이었다. 터너, 고흐, 인상파들, 쇠라, 호퍼, 모네 등의 그림 말이다. 사진들보다 오히려 그림이 긴 시간을 넘어서 더 분명하게 그 바다의 이미지를 더 잘 전달해주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들이다. 사실 바닷가 풍경은 인터넷 검색하면 더 멋지고 전문적인 사진들이 쏟아진다. 뭐 그림도 그렇지만 이렇게 연결해서 감정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다.

 

분량에 비해 글자가 많지 않고 오랫동안 들여다봐야할 사진도 생각보다 많지 않아 금방 읽었다. 잠시 멈춘 곳은 대부분 기억과 추억이 머문 곳이다. 그리고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서 뽑아온 바다에 대한 문장들과 그가 경험한 몇 가지 이야기들이다. 낯선 만큼 신기해야 하는데 여행 서적이나 방송 등으로 너무 많이 본 탓인지 덤덤하게 다가온다. 이 덤덤함을 뛰어넘는 순간은 언제 작은 에피소드가 있을 때다. 가끔 기억과 추억이 연결되면 격렬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반가움과 알고 있다는 사실과 가고 싶다는 마음이 합쳐진 것이다. 또 읽었지만 무심코 지나간 문장에서 뽑아 올린 글들은 다시 음미한다.

 

솔직히 말해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른 편집이다. 어쩌면 내가 기대한 글들은 여행 작가들의 일상과 경험이 더 녹아 있는 여행기였는지 모른다. 파편적인 단상 대신에 말이다. 그리고 그 바다와 직접 관계있는 글을 바란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이런 예상을 뛰어넘은 재미와 감동을 받는 경우가 생기는데 왠지 이 책은 아니다. 아쉬운 부분이다. 어쩌면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이 책을 뒤적인다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시간과 공간은 언제나 다른 감상을 전달하기도 하니까. 이 글을 적다 보니 더럽고 냄새나는 어린 시절 바다가 그립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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