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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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만 놓고 보면 조금 긴 단편소설 정도다. 160쪽이라고 하지만 그림과 한쪽 면에 많지 않은 글을 생각하면 정말 단편소설 분량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큰 불만은 없지만 이런 분량으로 나오는 책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너무 비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읽고 서평을 쓸 때는 좋다. 얇아서. 책을 모두 읽은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용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그냥 무심코 지나간 삽화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유를 가지고 삽화들에 좀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스쳐지나간다.

 

작가는 이 소설을 ‘기억과 놓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과 그의 손자와 아들이 등장하여 잃어가는 기억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노인의 기억은 거대한 광장 크기에서 점점 작아져 작은 텐트로 축소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텐트지만 그 중간에는 노인의 기억만큼 큰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의 변화는 언제나 손자인 노아와 아내가 함께 한다. 노아를 부를 때면 언제나 노아노아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두 배의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개그 코너에서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부르면 정말 느끼하고 밥맛인데 말이다.

 

기억의 공간을 조금씩 잃어가는 노인과 그와 함께 하는 가족의 모습은 현실과 상상이 교차한다. 노인의 머릿속에서 대화가 오고 가고, 현실의 아이는 할아버지와 동행한다. 먼저 죽은 아내를 기억 속에 불러내어 그들의 사랑과 삶을 이야기하고, 기억의 공간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의 수학에 대한 열정은 아들을 지나 손자에게 이어지고, 둘은 원주율을 가지고 놀이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의 공간은 점점 더 줄어든다. 그래도 그의 곁에는 아내와 손자가 있다. 실제로는 아들과 손자가 있는 것이지만.

 

두려움은 그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생긴다. 기억을 놓는다면 두려움도 사라진다. 하지만 기억은 내가 원하는 것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억의 퇴행은 그래서 무섭고 힘들고 어렵다. 손자를 잊는 것에 대한 손자의 답변은 정말 멋지다. 다시 친해질 기회가 생긴다고, 자신은 꽤 괜찮은 아이라고. 기발하면서도 아주 따뜻한 대답이다.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부모의 바람을 벗어난 자식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자신의 바람과 열망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식을 키우다보면 얼마나 이런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가.

 

길지 않은 글이지만 곱씹어볼 대목이 많다. 자신의 바람과 사랑과 삶을 간결하지만 아주 인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아들의 기타를 지나가듯이 물을 때는 순간 뭉클했다. 노골적으로 다루지 않았기에 생긴 감정이다. 아마도 그의 삶에서 오랫동안 걸려있던 응어리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들이 아빠가 되어 다시 그 아들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돌보는 아들에게 하는 말은 우리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같이 걷고, 같이 있어주는 것 말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특별한 무엇인가를 억지로 과장해서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기억과 이별을 아름답게 묶어 그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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