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와 수잔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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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이런 책을 ‘<나를 찾아줘>나 <걸 온 더 트레인>을 잇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앞의 두 작품이 엄청난 성공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 등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토니와 수잔>에게 점수를 더 주고 싶다. 물론 이 작품이 예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거나 미묘하게 감정을 건드린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아주 섬세하고 잘 짠 구성과 더불어 나로 하여금 충분히 공감하게 만드는 상황과 전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인물은 당연히 토니다.

 

토니와 수잔이라는 두 인물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수잔의 독자고, 토니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다. 물론 나에게는 두 인물 모두 소설 속 등장인물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누군가 뒤에서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설정의 다룬 소설도 있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토니는 수잔의 전남편 에드워드가 쓴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 속 주인공이다. 에드워드가 소설을 완성한 후 수잔에게 보내 평가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수잔이 며칠에 걸쳐 이 소설을 읽는다. 이런 읽는 다는 행위를 통해 수잔의 삶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 소설의 형식적 구성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전남편이 보낸 소설을 수잔이 읽는 부분과 수잔의 과거를 다룬 장면들이 나란히 나온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액자 구성이다. 하지만 실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경계가 살며시 무너지는 순간이 생긴다. 수잔이 소설 속 토니에게 너무 많은 감정이입을 하거나 전남편 에드워드와의 과거가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연관성이 이 소설 속으로 강하게 몰입하게 한다. 물론 잠시 이 관계를 떨어져서 보게 되면 수잔의 삶과 생각들이 낯설고 평범해 보인다. 그래서 좀 더 집중해서 읽어야만 제대로 그 긴장감을,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토니의 이야기는 8~90년대 미국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단란한 가족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악당들을 만난다. 악당들에게 아내와 딸이 죽고, 주인공은 무력하게 저항하다 크게 상처 입는다는 설정 말이다. 액션으로 바뀌면 악당들을 찾아내어 복수하는 것이 되겠지만 현실에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토니의 행동은 변명이나 책임을 피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움츠리고 있는 불안과 공포에 짓눌린 것이다. 그리고 아내와 딸의 시체를 본 후 일상도 소시민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일상으로 복귀한 토니의 모습은 분노나 절규 같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다. 심한 우울증에 사로 잡혀 자해하는 모습도 아니다. 그냥 처자식 없는 일상을 산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숨긴 채 살아간다. 성욕에 대한 부분은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본능적인지 보여준다. 위선적인 행동과 평범한 일상은 한 대학교수의 삶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용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변함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실한 경찰의 노력으로 다시 과거와 대면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불편하다. 무심코 지나갈 수도 있지만 살인자에 집착하는 경찰의 등장으로 상황이 꼬인다. 이런 변화를 작가는 느리지만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실 수잔 이야기에서 긴장감을 그렇게 느끼지는 못했다. 자신의 과거를 에드워드의 소설을 통해 재생하지만 극적인 장면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심하게 요동친다. 남편의 불륜에 타협하고, 스스로 비겁한 변명을 만든다. 이 부분은 토니와 별 차이가 없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에드워드를 떠나 이웃이었던 아놀드와 불륜을 저지르고 재혼한 것이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운 것이다. 수잔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정의 불안과 두려움을 만난다. 여기서 에드워드가 소설 원고를 주면서 던진 질문이 힘을 발휘한다. 소설 속에서 빠진 것을 찾아보라는 단순한 질문 말이다. 이에 대한 그녀의 답은 또 다른 질문의 시작이다. 책을 다 읽고 다시 마지막을 읽어도 명확하게 손에 잡히는 답이 없다.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것은 과연 이 심리 스릴러를 영화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다. 장면, 상황, 일상, 불륜, 감정, 심리 등을 다시 한 번 더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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