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자는 누구인가 - 유배탐정 김만중과 열 개의 사건
임종욱 지음 / 어문학사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임종욱이란 이름을 처음 만난 것은 <소정묘 파일>이란 역사추리소설이었다. 이 당시 한창 팩션이 번역 출간되고 있었다. <다빈치 코드>의 광풍이 전 세계를 몰아치던 시기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솔직히 말해 한국 팩션에 많은 실망을 하고 있었고, 번역된 팩션도 그렇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도서관에서 이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백수였던 시절이라 가능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공자에 대한 역사추리소설이란 점이 눈길을 끌었다. 다행히 상당히 재밌게 읽었다. 언제나처럼 작가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책 제목은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후 몇 편의 한국 팩션을 읽을 때면 이 작품이 떠올랐다.

 

사실 임종욱의 소설이 계속 나왔다. 반값 할인의 시기에 몇 권을 사놓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그 정도가 출간된 책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이번에 검색하니 상당히 많은 책이 계속 나왔다. 새로운 작가와 작품에 점점 빠져들면서 이전에 재밌게 읽은 작가의 작품에 손이 쉽게 나가지 않고 있다. 이 작품도 한 카페에서 작가 자신의 소개글을 보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다행히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선택했다. 그리고 이전에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인상만 가지고 있던 나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좀더 강하게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좋은 의미의 이미지다.

 

서포 김만중을 탐정으로 내세운 역사추리소설이다. 부제에서 ‘유배탐정 김만중과 열 개의 사건’이라고 말해 연작단편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국어 시간에 배운 <구운몽>의 저자로 먼저 알았고, 좀더 자라면서 당쟁의 중심인물 중 한 명임을 알게 된 그 김만중이다. 최근에 조선시대 유배된 학자들을 탐정으로 내세운 소설이 몇 권 나왔다. 이 책도 그 작품들 중 한 권이다. 대부분 완성도가 높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이 책도 어떤 부분에서는 그런 부분이 있다.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가 낯익다거나 마무리가 나의 취향이 아니라는 등. 그럼에도 재미있는 단편이 많고, 빠르고 재밌게 읽었다. 나중에 김만중을 탐정으로 내세운 장편이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열 개의 이야기를 다룬다. 각각 독립적이지만 계속 연관성을 가진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읽기에 큰 부담은 없다. 이 부분은 작가의 역량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은 크게 김만중과 포교 박태수다. 박태수가 사건을 가지고 오면 김만중이 논리적인 추리와 조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 가끔은 어린 아이가 사건을 가져오기도 하고, 자신의 제자가 우연히 들은 살인 이야기가 소재가 되기도 한다. 밀실 살인, 암호 풀이, 다잉 메세지 등 기존의 추리소설에서 다루는 소재들을 각각의 단편들에 녹였다. 트릭 등에 약한 내가 그 완성도를 평가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

 

김만중의 유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설 속 설정은 상당히 자유로워 보인다. 남해 곳곳을 다닐 수 있고, 나쁘지 않은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왕의 인척인 그의 유배에는 두 명의 하인이 따라붙는다. 호위무사 역할을 하는 호우와 음식 등을 담당하는 아미다. 여기에 그에게 글을 배우는 남해 거부의 아들 나정언이 같은 집에 머문다. 가끔 올 손님을 위한 사랑방까지 있는 집이니 상당한 규모다. 이곳에 거주하면서 김만중은 남해 유생들에게 강론을 하고, 박태수 등이 가져온 사건들을 해결한다. 가장 큰 사건으로 시작하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현재로 내려오는 방식이다.

 

열 개의 사건이지만 이 단편 속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몇 가지가 있다. 박태수와 조강호의 과거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남해 최대 조폭인 조강호가 포교인 박태수에게 단순히 뇌물만 먹인 것이 아니라 같은 동료였던 시기가 있다는 사실을 계속 알려주지만 정확한 내역은 생략되어 있다. 혹시 김만중 탐정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면 이 부분이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의 마무리는 어정쩡하다. 깔끔하기보다는 뒤끝을 너무 많이 남겼다. 후속편이 없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매력적이고 정감 가는 캐릭터가 많은 소설이기에 더욱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