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중간의 집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정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평범한 제목 뒤에 가려져 있는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유아 살해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하나씩 파고들게 되면 육아에 지친 엄마들의 평범한 삶이 드러난다. 아이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조그만 말 하나에 흔들리고, 눈물 흘리고, 짜증내고, 화를 내고, 웃는 우리 주변의 엄마들 말이다. 아이의 발육이 조금만 늦어도 자신이 잘못한 것 같고, 모유 수유를 끝까지 하지 못했다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무수한 엄마들 말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유아를 살해한 엄마 미즈호의 재판에 보충재판원으로 선정된 세 살배기 딸을 둔 리사코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미즈호는 여덟 달 된 딸을 익사시켰다. 고의적으로 한 행동은 아니지만 자신이 들고 있던 아기를 떨어트리고 넋 놓고 있었다. 남편이 들어와서 이 상황을 보고 구급차를 불렀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영유아 살해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리사코는 이 재판에 재판원 중 한 명으로 선택되었다. 세 살배기 딸 아야카를 돌봐야하는 현실을 감안해서 빠지기를 원했지만 정식 재판원이 아닌 보충재판원으로 선택되었다. 재판이 있는 동안 법정에 앉아 재판 진행사항을 보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역할이다. 그냥 시간만 때우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자신의 경험이 겹쳐지면서 상당히 어려운 일로 변한다.

 

재판기간 동안 아이는 시댁에서 돌봐주기로 한다. 매일 아침 아이를 시댁에 데려다 준 후 재판이 끝난 후 다시 데리고 오는 일정이다. 바로 옆집도 아니고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상당히 먼 길이다. 재판에서 감정의 소모가 심한 상태인데 아이는 할머니 등의 선의에 의해 버릇이 조금씩 나빠진다. 가끔 보는 사람과 매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사람과의 차이다. 하루는 아이가 시댁에서 자겠다고 한다. 시어머니도 그러라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엄마를 찾으면서 계속 운다. 다시 돌아가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간다. 이런 상황들이 점점 더 그녀의 삶과 육아의 경험을 미즈호와 겹쳐보이게 만든다.

 

미즈호의 재판이 한 여성의 삶을 하나씩 해부하는 과정이라면 보충재판원인 리사코에게는 잊고 있던 생각하는 삶을 돌려준 기회다. “생각하는 행위로부터 도망쳤다.”란 표현이 나오는데 결혼 후 그녀의 삶에 대한 정확한 요약이기도 하다. 남편과 시댁과 친정엄마의 말에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고, 육아에 지친 삶을 살아갈 뿐이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아이를 민다거나 놓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들이 아주 특별한 상황이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다. 의도하지 않은 순간의 행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잠시 동안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나 주변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그리고 이때 그들이 던지는 한 마디 말의 힘은 어떻게 작용할까?

 

리사코가 미즈호의 사고를 자신의 경험과 비추어 감정이입하면서 풀어냈다. 그렇다면 이미 아이를 다 키운 아줌마나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거나 남자인 경우는 어떨까? 자극적인 언론은 또 어떨까? 검사들이 미즈호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과거를 뒤짚고 왜곡하는데 이것 또한 리사코의 감정을 뒤흔든다. 결혼하면서 잊고 있던 생각과 판단이 조용히 그녀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남편의 한마디에 그렇게 큰 상처를 받지도, 감정의 혼란을 겪지도 않았겠지만 이 재판이 미즈호 속의 리사코를 찾게 만든다. 그리고 조용히 깨닫는다. 자신을 대하는 남편의 말과 행동 속에 어떤 의미가, 폭력이 조용히 스며있는지. 물론 이것이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육아와 유아 살해라는 주제를 아주 멋지게 엮었다. 비슷하지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여자를 통해 너무 쉽게 판단하는 육아의 어려움을 꼼꼼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려내었다. 망각의 힘에 의해 자신들의 어려웠던 순간을 잊은 여자들의 지적은 단순히 시대가 다르다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아프다. 여론은 과거의 한 순간을 부각시켜 미즈호를 나쁜 여자로 몰아간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가치 판단을 유보하면서 현실을 최대한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가해자의 입장보다 피해자의 입장에 감정이입이 더 쉽고 더 많이 된 사람들은 그녀를 악녀로 규정한다. 작가가 최대한 현실을 그려내었다고 해도 실제 현실에 더 잔혹한 삶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육아를 둘러싼 현실과 감정이입 덕분에 이 작가의 책 중에서 비교적 힘들게 읽었다. 아이를 곧 낳거나 낳을 예정인 예비 아빠들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육아에 힘겨워하는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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