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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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를 지금도 기억한다. 너무나도 화려한 수상경력과 작가가 중국계라는 사실이 나를 자극했다. 화려한 수상 이력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중국계라는 사실이다. 당시 어렸던 나는 이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영미권 SF 작가를 제외하면 괜히 낮추어 보던 나쁜 습성이 있던 때였다. 좋은 SF 작가들이 여러 나라에서 나왔지만 정보 부족과 낮은 인식 수준으로 잘 받아들이지 못하던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SF 장르도 아니었다. 하지만 화려한 수상 이력은 늘 이 책에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언젠가 읽고 말겠다는 의지와 함께.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중편 분량도 몇 편 된다. 예상한 대로 이야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이 단편집에 대한 수많은 리뷰의 점수와 열광은 나로 하여금 놀라게 만든다. 아니 나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게 만든다. 내가 각 단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학력을 보면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이런 전공은 각각의 이야기 속에 녹아 있다. 아니 어떤 부분은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설명하기 위해 SF를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단편을 읽은 후 작가노트를 보았을 때 이런 의심은 더 강해졌다. 물리학 용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의 처녀작이자 역대 최연소 네뷸러상 수상자의 영예를 안긴 <바빌론의 탑>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벨탑 이야기다. 하지만 작가는 신학적으로 이 이야기를 접근하지 않고, 물리학적으로 접근한다. 탑의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몇 개월이 걸리고, 가는 곳곳에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야훼를 말하지만 그들은 하늘에 닿기를 원할 뿐이다. 벽돌을 수레에 실고 내부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그 모습은 나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현대의 마천루보다 훨씬 더 높은 곳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또 한 번 나의 상상력을 벗어난다. 현대 물리학의 한 단면을 SF로 풀어낸 듯하기 때문이다.

 

<이해>는 가장 쉽게 읽었다. 처음에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영화가 한 편 있다. <리미트리스>다. 이 영화는 같은 이름의 원작 소설이 있다. 이 두 편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약물에 의해 머리가 좋아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단편과 장편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다. 작가의 성향도 다르다. 영화 덕분인지 아니면 물리학 이야기가 적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빠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무협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은 왜 제목이 <이해>인지 잘 알려준다. 물론 이 결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영으로 나누면>은 어렵다. 단순히 암기하고 있는 수학을 생각하면 답은 쉽다. 그냥 영이니까. 하지만 작가는 수학의 증명을 끌고 들어와 배경으로 깐다. 그 배경 위에서 남녀의 이야기가 단편적으로 펼쳐진다. 이때 등장하는 두 주인공의 전공이 수학과 생물학이다. 물리학만큼 이 두 학문은 가깝지 않다. 증명 이야기에서는 수학의 명제를 둘러싼 몇 가지 에피소드가 떠올랐지만 ‘떼어놓는 종류의 감정이입’이란 단어처럼 나의 생각은 작가의 이야기와 다른 곳에 빠져들었다. 아직 수학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기에는 나의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얼마 전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소설을 읽고 영화는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단순히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만으로 표현했을지, 아니면 좀더 복잡하게 엮었을지. 이야기의 구성은 복잡하지 않다. 언어학 교수인 화자가 외계의 생명체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 한 축이고, 다른 한 축은 그녀의 딸에 대한 기억들이다. 현재가 시간 순으로 흘러간다면 기억은 시간이 뒤섞여 흐른다. 갑자기 딸의 죽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와 놀랐는데 또 다른 기억들이 계속 흘러나온다. 작가노트에서 읽은 변분 원리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고 하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흔두 글자>는 호문쿨루스와 골렘의 전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찰흙이나 주조물 등에 이름을 새겨 넣으면 움직인다는 설정이 컴퓨터 언어를 떠올려주었다. 인간의 정자에서 호문쿨루스가 탄생하고, 인류의 멸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설정은 기괴하다. 보통의 SF나 판타지 작가라면 더 거대한 모험으로 만들었겠지만 작가는 더 깊은 곳으로 이야기를 파고든다. 작가노트에 폰 노이만의 기계가 나오는 것을 보면 나의 해석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종의 멸종을 막기 위한 연구와 그 성과를 둘러싼 충돌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춘 것은 아쉽다. 대체역사물 장편으로 발전시켜도 가장 무리가 없는 작품이 아닐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인류 과학의 진화>는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던 단편이다. 아주 짧은 단편인데 함축적인 내용이 많아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 다시 뒤적이다 보니 <공각기동대>의 전뇌가 떠오르기도 한다. 가장 화려한 수상 이력을 가진 <지옥은 신의 부재>는 기독교의 천사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낸다. 신의 존재보다 신의 의지에 초점을 맞추고, 이것을 인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다양한 경우를 통해 보여준다. 천사의 출현으로 인한 은혜도 있지만 죽음도 같이 다루면서 상황을 더 미묘하게 만든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마지막 문장에 나온다. “그리고 신의 의식 너머에서 오랜 세월을 지옥에서 살아온 지금도 닐은 여진히 신을 사랑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는 과학에 의해 미적 판단 기준이 사라지는 기계를 둘러싼 이야기다. 제목처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같은 인물과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여 이 기계의 사용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주장을 들려준다. 단순히 미적 판단만을 다루지 않고 상업성과 인간관계를 같이 나열하면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든다. 본능과 문화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미적 판단이다. 이것을 강제로 조정하는 놀라운 기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작가의 놀라움은 이 도구가 아니라 이 도구를 둘러싼 다양한 입장과 음모 등을 아주 잘 표현했다는 점이다. 조금 어렵게 모두 읽었지만 언젠가 다시 차분히 읽어야 할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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