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 - 아버지 한국대표시인 49인의 테마시집
고두현 외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를 주제로 엮은 테마시집이다. 이보다 먼저 어머니를 주제로 한 테마시집 <흐느끼던 밤을 기억하네>가 출간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잠시 생각하니 아이에게 늘 우선순위는 어머니였다. 거의 대부분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단어도 엄마다. 괜히 이런 생각을 하니 한 아이의 아버지인 내가 뒤로 밀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20세기의 한국 경상도 아버지의 전형과도 같았던 당신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다가왔던 것도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반복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라면서 그 중요함과 고마움을 안다면, 아버지는 다 자란 후 알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 시집은 30대 이후에게 더 감성적으로 다가올지 않을까 생각한다.

 

49인의 시인 중 어머니를 주제한 시집에도 시를 올린 시인이 보인다. 하지만 많은 시인들의 이름이 바뀌었다. 아직도 시인을 잘 몰라 낯선 시인이 대부분이지만 생각보다 알고 있는 시인이 곳곳에 보인다. 3부로 나누어 편집했는데 1부의 경우는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직 살아계신 아버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의 그리움이 나의 현재와 미래를 떠올려주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자라는 동안 아버지와 말을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고, 다 자란 후에도 집안 이야기는 대부분 어머니와 했다. 아버지와 둘 만 있으면 할 말이 없어 그 어색함을 견딜 수 없었다. !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 나와 둘이서 돼지갈비에 소주 한 잔 한 날 기분 좋게 나와 술을 먹었다고 어머니에게 전화했던 것이 떠오른다. 실제로는 나와 술 한 잔이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명색이 장남인데 말이다.

 

이 시집에 나오는 아버지들은 모두 남자들의 아버지인 것 같다. 여자 시인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있다면 나의 착각이나 실수겠지만 남자의 시선에 본,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인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마음에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감정들은 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는 그리움이고, 누군가는 아쉬움이고, 어떤 이에게는 정산되지 않은 감정들의 복합체일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등장하는 박후기의 <작약과 아버지>에서는 한 명의 성인 남자임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늘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리었던 그들의 은밀한 삶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손택수의 <조화>에서 어버이날에도 한 번/ 달아드린 적이 없는 듯// 평생 받지 못한 꽃을/한꺼번에 다 품으셨습니다.’(전문) 라고 했을 때 나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몇 번 없는 것 같다. 아니 한 번도 없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정호승이 <아버지의 수염>에서 수염을 면도해드리기 싫었던 날을 말할 때 그 조그만 귀찮음이 나중에 후회로 남는다는 평범한 사실에 가슴이 울린다. 자신이 아버지가 된 느낌을 내 안에서 뜬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계시는’(오인태, <아버지>)이라고 말하고, ‘국수를 좋아하셨다/ 지금껏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었다’(이제훈, <국수>)라는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기에 이 시집에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 몇 가지는 아주 낯설다. 물론 문학적으로 본다면 낯익다. 김완하가 새벽은 숫돌에서 푸르게 빛이 섰다/ 어둠 속에서 낫을 미시는 아버지 어깨가/ 두꺼운 어둠 벽을 무너뜨렸다/ 새벽 들길에 이슬 한 점 지고 오셨다’(새벽의 꿈)라고 말할 때가 대표적인 이미지다. 세대간의 갈등을 노래한 듯한 이진우의 <애비는 잡초다>는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했다. ‘너희가 덜떨어졌다 늘 비웃는 우리가/ 네 애비고/ 내일의 너희다라고 했을 때는 뜨끔했다. 이창수의 <효자폰> 에피소드는 잠시 동안 웃게 만들었다. 이렇게 이 시집 속 아버지는 자신의 경험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나의 이해력이 더 높았다면 또 다른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기억의 한 자락을 끄집어내어 뒤돌아봤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