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라이프 - 마지막까지 후회 없는 삶,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위한 인생철학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결국 끝까지 다 읽었다. 쉽게 읽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예상보다 힘겹게 읽었다. 책을 편 첫 날은 좋았다. 몸 상태가 좋다보니 더딘 속도지만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았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이해는 되지 않고, 속도는 더욱 더디고, 졸음까지 밀려왔다. 처음에 기록했던 내용들이 이제는 귀찮아졌다. 멋진 문장을 발견하고 나의 이성을 깨워줄 것이라고 생각한 문장들을 그냥 지나갔다. 소설이라고 했는데 한 권의 철학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철학 소설과는 너무 다르다.

 

작가의 이전 작품인 <철학자와 늑대>의 평이 너무 좋아 선택했다. 하루에 백 쪽씩 읽는다면 3일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했다. 그렇게 두껍지 않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읽는 동안 제대로 이해는 못하지만 나의 이성을 깨워주는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오만은 다음날 산산조각 났다. 미래의 시간을 배경으로 아버지의 기록과 그 기록에 대한 엄마의 주석을 자신이 편집해 내놓은 책이란 설정이다. 화자인 미시킨의 탄생과 죽음까지 다루는데 이것을 스무 개의 주제를 통해 풀어놓았다. 존재, 탄생, 낙태, 윤리, 신 등에서 사랑, 마약, 죽음, 안락사, 구원 등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주제다. 한두 개만 가지고도 충분히 한 권의 책을 가득 채울 수 있는데 이것을 한 사람의 탄생과 성장과 죽음이란 일생으로 엮었다.

 

보통의 철학 소설이라면 기본 이야기가 있고, 그 사이를 철학적인 부분이 채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반대의 느낌이다. 주제를 던져 놓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낸다. 처음 기대한 미시킨의 이야기는 주제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물론 미시킨의 삶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어느 대학을 다녔고, 누구를 사랑했고, 자식을 키우고, 병에 걸려 죽기 전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 책 속 한 주제 분량도 채 되지 않는다. 뒤로 가면서 조금 적응하면서 미시킨의 삶이 더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이것도 각 단계의 주제를 다루기 위한 하나의 에피소드 같다. 아이들과의 경험을 적은 것을 제외하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20개의 주제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해답을 찾아간다. 미시킨이 종교를 믿지 않고 있지만 그의 삶에 종교가 강한 영향력을 드리우고 있다고 주석을 달았을 때 환경이 인간에 미치는 강력한 힘을 다시금 깨닫는다. 각 주제들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읽는 동안 머리는 오랜만에 풀가동했다. 잠시 집중력을 흩트리면 단어들이 사라진다. 뭔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은데 몇 번 읽어도 이해를 못하는 내용도 있다. 중요한 것 같지만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뒤로 갔는데 앞의 내용이 전부였던 것도 있다. 이렇게 이 책은 나에게 다양한 의미와 해석으로 다가왔다. 한 번에 다 읽기 보다는 천천히 사유하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많은 문장들이 머릿속에 와 닿았다. 그 중 처음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온 것은 이성과 증오에 대한 글이다. “증오를 합리화하는 이성의 교묘함을 결코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된다. 종족, 종교와 정치적 신조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후에 이성으로 합리화한 증오다. 증오는 동물적 본성일지 모르지만, 증오를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것은 이성의 작용이다. 이성은 증오에 초점과 방향을 제공한다. 이성은 증오에 효과를 더한다. 이성과 감정의 협력은 결코 우리 모두의 삶에 추악한 상처만을 남길 것이다.” 우리가 늘 외치는 이성적 판단, 이성적 행동 등의 이면에 이런 구조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현재의 한국 정치 현실과 너무나도 맞아 떨어지는 문장도 있었다. “광신도들은 감정선 자체가 매우 다르고 너무 독특해서 생물학적으로 변종이 된 것 같아 진정한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말은 없다. 그저 왜 그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안 되는지 눈앞에 흔들면서 보여줄 이유가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어차피 어떤 이유도 통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 논쟁도 할 수 없고 협상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냥 못 하게 막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내가 골통보수와 왜 대화가 되지 않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도 이 문장을 보고 나에게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자식에 대한 그의 논리 전개는 역시 이성보다 감성이 우선이다. 현실을 제대로 다룬다. 윤리와 정의 같은 문제도 많은 생각 거리를 제공한다. 안락사에 대한 부분은 더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야 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안락사를 인정한 나라도 있다. 물론 안락사를 무분별하게 적용하지는 말아야 한다. 몇 가지는 이미 다른 책들에서 본 것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 책은 처음이다. 어렵고 힘들게 읽은 책이지만 언젠가 나의 머릿속에서 사유의 꽃을 피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다시 이 저자의 책을 살지는 솔직히 주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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