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1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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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할 때 몇 가지 기준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번역자다. 김석희 선생의 경우 대학 때부터 그가 번역한 소설이 나의 취향과 맞았다. 물론 몇 명의 번역가들은 처음의 신선함과 믿음을 깨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석희란 이름은 아직까지 변함없다. 이렇게 번역자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역자가 쓴 글 일부를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는 것도 있었지만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 책 번역을 둘러싼 소소한 이야기다. 처음 번역하려고 했을 때 먼저 번역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과 이때 요크셔 사투리를 전라도 사투리로 옮긴 것과 달리 자신은 표준어로 옮겼다는 말까지, 이런 이야기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책을 다 읽은 후 역자 후기에서 다시 위의 이야기를 읽고 반가웠다. 당시 수의사 이야기라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때는 완전히 사라진 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미 번역된 적이 있는 다른 이야기들과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었다는 정보까지. 그리고 아마존을 검색하니 수백 개의 리뷰가 달린 그의 책들이 나온다. 솔직히 예상한 것보다 리뷰의 숫자가 적다. 그래서 다른 고전 작가를 찾아보니 더 적다. 최근 인기작들의 개수에 너무 현혹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이 리뷰 개수보다 이 작품은 훨씬 재미있다.

 

1930년대는 대공황의 시대다. 헤리엇도 수의학과를 5년 공부한 후 취직을 걱정한다. 다른 수의사 조수로 간 선배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현대판 노예와도 비슷할 정도다. 동물들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수의사 집의 다른 일도 같이 해야 한다. 늘 이런 불황기에는 남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 헤리엇도 파넌의 면접 소식을 들었을 때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도착한 마을은 평화롭고 아름다웠지만 면접을 해야 할 파넌이 없다. 면접에 대한 정보도 가정부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집안에서 기다린다. 이때 일어난 작은 이야기는 앞으로 펼쳐질 긴 이야기의 서막을 알리는 동시에 이 두 남자의 성격을 아주 잘 보여준다. 잘 잊는 파넌과 걱정이 많은 헤리엇으로.

 

이야기의 문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연다. 헤리엇이 거꾸로 선 송아지를 받기 위해 간 곳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곳에서 그가 경험한 것은 그가 학교에서 책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수의사의 삶을 쉽고 보람차게 그리고 묘사한 그 책들과 달리 지저분하고 힘들다. 그리고 옆에서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는 관람객까지 한 명 있다. 이제 졸업한지 겨우 7개월된 초보 수의사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일을 잘 처리한다. 이것은 파넌의 첫 인터뷰와 실습에서 벌어졌던 몇 가지 일과도 연결된다. 단순한 수의사의 일상을 다루었을 것이란 예상은 다양한 에피소드와 등장인물들로 인해 사라진다.

 

수의사를 주인공으로 다루다 보니 수많은 동물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다. 농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보니 농장에서 기르는 혹은 키우는 동물들에 한정된다. 실제 이 시절에 수의사의 일 대부분은 이런 종류였던 모양이다. 요즘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보는 동물병원과는 완전히 다르다. 다른 동물에 비해 개에 대한 에피소드가 적다. 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 부분만 다시 발췌해서 책 한 권으로 묶었다.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를 알려주는 대목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죽은 후 근무했던 병원은 현재 박물관이 되어 그의 독자들에게 관광명소가 되었다니 재미있다.

 

많은 동물들을 치료하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지만 그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도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함께 사는 파넌의 동생이자 수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던 트리스탄은 굉장히 특이하다. 무엇이든지 잘 잊는 파넌 씨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이들이 직접 엮여 만드는 에피소드는 많지 않지만 병원이 모든 일의 연결점이 되다 보니 당혹스럽고 재밌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파넌 형제가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솔직히 이성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읽으면서 웃음을 헛헛! 하고 터트리게 한다. 그리고 헤리엇을 한 눈에 사로잡은 여자 헬렌은 순진한 총각의 로맨스를 아주 잘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풋풋하고 아련한 그리움은 또 다른 재미다.

 

한 편 한 편이 독립된 에피소드다. 연결되는 부분이 있지만 각각의 한 편이 완결성이 가진다. 이 책에 실린 36편은 연작소설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다. 첫 이야기를 다른 에피소드에서 또 다룬 경우가 없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앞에 일어난 일을 계속해서 다음 이야기에서 다루는 경우도 있다. 만약 이런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아마도 책 편집 과정에 사라진 에피소드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 중 일부는 시대와 맞지 않다고 한다. 책 속에도 몇 번 나왔듯이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하면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의 시골 수의사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또는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이 책처럼 잘 보여주는 작품은 아직 보지 못했다. 편안하게 잘 읽혔고, 감동과 재미와 웃음 등의 다양한 감정을 맛보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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