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PLATE
손선영 지음 / 트로이목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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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침몰이라는 자극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시기는 2016년 11월 8일 늦은 오후다. 그리고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2월이나 2012년 12월까지 다양한 시간대로 옮겨간다. 이 시간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는 시간대다. 한국, 일본, 미국 등의 주요 인물들의 시간이다. 처음에는 등장하는 인물과 서로 다른 시간 때문에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그냥 읽다 보면 이 시간들이 하나로 모인다. 그리고 왜 다른 시간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솔직히 말해 재밌지만 허황된 이야기다. 인물들의 능력이 과하게 포장되었거나 상황이 너무 황당하다. 일본 침몰을 둘러싼 비밀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일본 만화 한 편이 떠올랐다. 작가도 분명 그 작품에서 힌트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확신이 들 정도다. 하지만 작가는 충실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묘사와 설명을 통해 이 거대한 거짓말에 논리의 힘을 붙인다. 다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이전에 박봉성 등의 만화를 볼 때 느낌을 받았다. 서울역 노숙자들과 함께 머무는 김기욱의 숨겨진 정체가 밝혀졌을 때는 너무 국수적인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2의 김진명이란 광고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소설의 완성도나 재미는 김진명을 훨씬 넘어섰다.

 

한국, 미국, 일본의 주인공들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국은 국정원4국이란 가상 조직이 등장해서 권력 중립적이라고 설정한다. 이 조직의 정체는 전세계 정보조직에게 비밀이다. 현재 국장은 채한준이다. 이 조직이 재미있는 점은 권력 관계가 부자관계로 불린다는 것이다. 국장을 아버지라 부르는데 채한준은 2대고, 새로운 인물을 발굴했다. 그가 바로 장민우다. 장민우는 아이돌 젠틀맨의 멤버가 될 수 있었지만 계약 때문에 합류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가 작사한 노래가 젠틀맨이 불러 대박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점점 은둔형외톨이로 변해간다. 그러다 장난처럼 적은 글 때문에 4국의 눈에 띈다. 그 글을 발견한 인물은 박기림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지대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후쿠야마다. 그는 소신사라는 정보조직 최고의 히트맨이다. 그의 곁에는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 그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 중국 첩보원 여통이 있다. 그리고 우연처럼 그에게 다가온 한 명의 전설적인 킬러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로즈마리다. 이들의 만남과 함께 총격과 폭탄이 날아다니는 액션이 시작한다. 이 짧지 않은 소설 속에서 이 세 명이 액션을 담당한다. 그 무대는 주로 일본이지만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의 묘한 관계는 빠르게 진행되는 액션으로 살짝 가려진다. 살인에 조금도 주저하지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실 조금 놀랐다. 이 간결하고 재빠른 액션이라니.

 

미국은 존 스미스라는 이름이 먼저 등장한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한 터너라는 인물에게 거대한 부를 안겨주었지만 그 이면에는 놀라운 음모가 숨어 있다. 그리고 재미난 것은 존 스미스란 이름이 각 분야의 전문 에이전트에게 똑같이 붙어 있다. 그래서 빅 존, 서 존, IT존, 하바드 존 등과 같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존 스미스라는 정보조직을 운영한다. 그러다 빅 존의 딸을 둘러싼 음모가 진행된다. 이 때문에 빅 존은 터너를 죽은 사람으로 바꾼 후 터너와 새로운 인물 조나단의 결합을 만든다. 한 명은 천재 프로그래머이고, 다른 한 명은 한때 돌아이 취급을 받았던 지질학자다. 이 지질학자를 통해 일본 침몰 같은 거대한 음모가 가능해진다.

 

많은 등장인물을 통해 빠른 장면 전환을 만들어내었다. 쉴 틈 없이 변하는 장면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각각 다른 분야의 전문가인데 마지막 순간까지 이들의 만남은 유보된다. 그러다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또 하나 무리한 설정이 들어간다. 장민우와 같은 10대의 정보국장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설정이 몰입도를 많이 떨어트린다. 너무 거대한 설정과 음모를 만들다 보니 많이 오버한 것 같다. 오히려 판을 키우기보다 조금 줄인 후 밀도 있는 관계와 상황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일관계에 대한 말들은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통쾌하겠지만 실제 자위대 출신이라면 금방 납득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조금 더 냉정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세운 가설과 논리 등은 비전문가 입장에서 놀라게 만든다. 너무 힘이 들어갔는데 조금 더 힘 뺀 후 이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는 소설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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