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 본질
올더스 헉슬리 지음, 유지훈 옮김 / 해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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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의 소설을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십 수 년 전 너무나도 유명한 <멋진 신세계> 이후 처음이다. 그 사이에 다른 책을 한두 권 정도 더 산 것 같은데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헉슬리의 소설은 그렇게 쉽지 않다. 이번에는 더 그렇다. 얇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책소개를 먼저 읽은 탓에 나도 모르게 몇 가지 이미지가 고정되었다. 여기에 소설도 탤리스와 각본으로 나누어져 있어 일반적인 소설 읽기 방식으로는 접근하기가 어렵다. 각본은 탤리스가 쓴 영화 각본을 의미한다.

 

간디가 암살당한 날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와 밥은 대본을 실은 차가 달리다가 흘린 대본 하나를 줍는다. 이 대본이 바로 탤리스가 쓴 각본이다. 둘은 이 각본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탤리스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는 죽었다. 그의 몇 가지 정보를 얻는다. 여기서 이야기가 더 진행될 것 같았는데 각본으로 넘어간다. 탤리스가 쓴 각본을 그대로 실는다는 말로 탤리스는 끝난다. 이 부분을 읽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더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각본은 제목 그대로 영화 각본이다. 은밀하게 따지면 영화 시나리오와는 다르다. 그래서 더 집중해야 한다.

 

원숭이와 아인슈타인이 나올 때만 해도 나의 머릿속에는 <혹성탈출>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원숭이와 3차 대전이란 단어가 결합하면서 가장 낯익은 영화가 생각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설정이 아니다. 이 원숭이들을 하나의 은유로 받아들이면 3차 대전을 유발한 인류의 본모습이 된다. 실제 이야기도 3차 대전 이후 방사능에 오염된 미래를 다룬다. 흔하게 보는 미래의 풍경이 아니다. 감마선에 노출된 사람들은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고, 문명은 퇴보했다. 이 시대의 권력을 쥔 대주교는 기존의 신앙을 부정하고 벨리알을 숭배한다. 미래의 지금을 벨리알이 의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류의 종말을 예언한다. 이런 세계에 한 식물학자가 잡혀온다.

 

풀 박사는 일행과 함께 조사하기 위해 왔다가 납치된다. 그가 사는 곳은 아직 신이 존재한다. 그런 그가 감마선에 의해, 벨리알에 의해 뒤바뀐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와 함께 온 일행 중에는 그의 엄마가 결혼하길 바라는 여자도 있다. 그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 잡혀 온 곳에서 룰라라는 소녀에게 빠진다. 이곳은 일 년에 며칠 동안만 성교가 허락되는 곳이다. 이런 식으로 바뀐 것은 인간의 생존 방식이 변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 아기에게 문제가 있으면 바로 죽인다. 엄마의 머리는 대머리로 만들어 사람들의 놀림이 된다. 여자는 죄악의 원인인 곳이다. 종말을 향해 인류가 나아간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다. 종교가 지닌 폐단의 극단적인 모습 중 하나를 제대로 보여준다.

 

풀 박사와 룰라의 관계는 이 뒤틀린 세계에 한 줄기 문명의 빛을 내비친다. 인간의 특성이 소멸한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돌연변이 기형의 사람들이 계속 태어나는 세상이지만 그들이 인간인 것은 변함이 없다. 이것을 풀 박사는 제대로 본다. 물론 난교의 밤에 욕망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한다. 악마의 율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신만 정신을 차린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는 용사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식물학자일 뿐이다. 인류에게 잠깐의 실수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그려내었는데 그렇게 낯설지 않다. 다른 영화나 소설에서 봤기 때문일 것이다. 각본 속 연출들이 시각적으로 다가오지 않지만 핵과 종말이 던지는 공포는 충분히 전달된다. 하지만 제대로 마무리가 된 느낌은 조금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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