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보쟁글스
올리비에 부르도 지음, 이승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미스터 보쟁글스’는 니나 시몬의 노래 제목이자 미국 탭댄스 빌 로빈슨의 애칭이다. 이 노래는 화자의 부모님이 함께 춤을 출 때면 언제나 흘러나오는 노래다. 이 가족에게 춤은 즐거움, 기쁨, 행복, 신남 등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기 전에는 이 독특하고 낯선 가족에게 좀처럼 몰입할 수 없었다. 평범하지 않기에 평범하게 살아온 내가 그 행동들이 이상하게만 다가왔다. 그러다 유치한 말장난이 기발한 단어 조합으로 다가왔고, 부모님의 사랑이 예전에 보았던 영화나 소설들을 떠올리며 비교하게 만들었다. 제목만 놓고 본다면 <광란의 사랑>이 가장 비슷한데 이들의 사랑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소설은 아버지의 일기와 화자의 회상이 교차하면서 진행한다. 한 소년이 자라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는 좀처럼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한다. 시계도 숫자가 나오는 전자시계만 볼 수 있고, 시침 등이 있는 시계는 보지 못한다. 그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이런 사실은 교사와 충돌하게 된다. 이것은 소년을 세계 최연소 조기 퇴직자로 만든다. 틀에 박힌 교육을 견디지 못하는 소년과 그 가족에게는 아주 신난 일이다. 덕분에 소년의 시간은 많이 남아돌고, 부모와 함께 스페인의 별장으로 휴가를 언제나 떠날 수 있게 된다.

 

엄마와 아빠의 첫 만남을 설명한 글을 보면서 아주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 순간만 놓고 본다면 서로 농담을 하면서 장난을 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엄마에게는 진심이었다. 그녀가 사는 세상에서는 사랑하는 남편이 자신의 곁에 없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슬픈 일이다. 그래서 남편이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자 일을 그만두었다. 이후 이들의 삶은 행복과 즐거운 놀이로 변해 있었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잠시나마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자신들의 세상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세금납부 고지서를 놓친다. 세금과 가산세가 엄청나게 불었다. 결국 집 하나를 팔아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엄마가 보여준 행동이다. 자신이 만든 세상과 환상 속에서 사는 그녀에게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의 기록들을 불태운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읽으면서 아빠가 분명히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의 삶은 이미 아내에게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녀의 행동에 장단을 맞춘다. 일시적인 행동이 아니다. 첫 만남 이후 최후의 순간까지 이것은 계속된다. 이런 사랑을 보고 놀라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이런 이상한 가족에게도 친구는 있다. 쓰레기라고 불리는 국회의원이다. 가족과 함께 긴 휴가도 가고, 술을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더부살이 아가씨로 불리는 커다란 두루미도 있다. 엄마가 책을 읽으면서 쓰다듬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두루미가 함께 산다 것 자체도 특이하다. 이 다섯이 이 길지 않은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경쾌하고 가볍다. 잘 읽힌다. 유쾌한 가족의 행동을 보면 즐겁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무거워진다. 엄마가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탈출한 후 은신한 스페인 성에서 보여준 이상증상이 이렇게 느끼게 만든다. 아빠가 보여준 정성과 사랑은 비현실적이다. 터무니없는 일 같다. 엄마의 현실 인식 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빠의 모습이 놀랍다. 그런데 부럽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주고 헌신하는 사랑이라니 얼마나 대단한가. 마지막 문장에서 아빠가 엄마에게 한 맹세는 한국에서는 흔한 거짓말 중 하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아니다. 진심이다. 무거워졌던 마음이 이 문장 하나로 다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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