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닌자
라르스 베르예 지음, 전은경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회사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꿈꾸었을 것이다. 사표도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 같은 것들 말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이런 바람이 여러 번 있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사표를 내고 여행이나 갈까 하는 생각이 부쩍 많아진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쉽게 그만둘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옌스 얀센은 부러운 남자다. 매년 사라지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기 위해 천천히 준비를 하고, 사무실 안에서 사라졌다. 이 실행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사라진 곳은 결단코 부러운 곳은 아니다. 왜냐고? 사무실 안에서 살아가니까.

 

얀센은 자전거 안전 헬멧을 만드는 회사의 브랜드 매니저다. 나이는 34살이고, 안정적인 직장과 여자 친구가 있다. 나쁘지 않은 조건인데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지 못한다. 지쳤다. 그러다 어느 날 사무실 천장 속으로 사라진다. 물론 이것은 다른 준비를 거친 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하지만 그 준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충분한 식량도 없었고, 장기간 실종 상태에 머물기 위한 위생품과 상비약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충동적인 행동이다. 이런 충동적인 행동은 이 소설 속에서 몇 번이나 일어난다. 그가 바란 것은 모험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인데 어느 순간 모험극처럼 변한다.

 

놀라운 설정 중 하나는 얀센이 사라졌는데도 사람들이 그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카드를 다른 사람이 들고 출퇴근한다고 하지만 장시간 자리를 비웠는데도 누구 한 명 신경쓰지 않는다. 그의 실종을 신고한 사람도 이전 여자 친구다. 그녀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몇 가지 재미난 해프닝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해와 편견과 선입견이 뒤섞여 벌어지는 이 해프닝은 흔하게 보는 장면이지만 가장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 얀센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도 재밌다. 형사와 몇 가지 도구와 동료의 첩보가 만들어낸 상황이다.

 

책을 읽으면서 회사 동료가 이렇게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한 눈에 거의 모든 직원들이 보이는 작은 사무실이다 보니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팀이라면 어떨까? 팀원들끼리 큰 관심이 없다면? 조금 극단적인 상황과 설정이지만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왜냐고? 직원 중 한 명이 일주일 이상 자리를 비워도 옆팀 직원은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 팀 직원들은 잘 알 것이다. 현실에서 업무는 혼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도 이런 극단적인 설정은 우리 회사의 모습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한다. 대기업이라면 또 다르겠지만.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라짐은 곧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가장 먼저는 씻는 것이다. 뻔뻔하게 화장실을 더럽히면서 샤워를 하면 될 텐데 조심한다. 덕분에 더러움이 묻어 있다. 두 번째는 음식이다. 그가 예상한 음식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늘 자판기에 의존할 수도 없다. 세 번째는 건강이다. 치료를 받을 수도 없고, 치료제도 없다면 영양이 부족한 몸은 더 힘들어진다. 네 번째는 시간의 잉여다. 남는 시간을 재밌게 즐겁게 보낼 수 없다. 물론 즐거운 시간만을 기대한 것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시간 부족과 치료제 부재는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잉여 시간을 이용한 관찰로 이어진다. 재미난 일들은 이때 일어난다.

 

그가 편지 배달부를 공격한 후 오피스 닌자라는 칭호를 받지만 정말 닌자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은 무관심이 판치는 곳이다. 쌓여가는 업무는 충분한 관찰 시간을 주지 않는다. 반면에 시간이 남는 얀센은 직원들을 관찰한다. 회사를 중국에 팔려는 경영진의 음모도 알게 된다. 보통 이런 경우 이것을 막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텐데 이 소설은 다르다. 그러다가 하나의 기계를 발견한다. 바로 전화 연결기다. 이것의 찾아낸 후 그는 더욱 동료들의 비밀을 많이 듣게 된다. 폰 섹스를 하는 직원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그도 이용한다. 외로움을 넘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정상적인 대화만 한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사회의 발전 단계를 살짝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사회는 관찰과 변화와 철학 등이 섞이고 엮여 발전하기 때문이다.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후반부에 검은 기사가 등장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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