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의 기도
오노 마사쓰구 지음, 양억관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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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목차를 보고 단편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작소설이다. 한 인물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연작이 아니라 공간과 사람이 이어지는 연작이다. 첫 작품이자 표제작인 <9년 전의 기도>를 읽고 <바다거북의 밤>을 읽을 때만 해도 연작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그런데 <문병>에서 이어지는 대목을 발견했고, 마지막 단편 <악의 꽃>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렇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찾아야 하는데 솔직히 말해 실패했다. 간단한 이야기는 머릿속에 들어왔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9년 전의 기도>는 혼혈아 캐빈을 데리고 고향에 돌아온 사나에 이야기다. 남편이 그녀와 아들을 버리고 떠났다. 이 분명한 사실에서 시작하여 과거로 돌아가서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하나씩 보여준다. 그리고 밋짱 언니라고 부르는 여자와의 이야기도 같이 풀어낸다. 가까운 과거와 9년 전 과거를 오가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겁다. 힘겹다. 아이의 특별한 성격 때문에 버거워한다. 여기에 밋짱 언니의 아들이 뇌종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고, 현재와 과거가 이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어떤 부분에서는 몽환적이다. 슬픔과 불안에 대한 마지막 묘사는 아주 인상적이다. 지금 당장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풀리지 않지만 어느날 밋짱 언니의 9년 전 기도와 더불어 한 올 한 올 풀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다거북의 밤>은 세 대학생의 여행기다. 잘못된 집을 찾아왔는데 그 과정을 건조하게 그려낸다.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세 남학생의 동행은 결코 친밀하지도 열정이 넘치지도 않는다. 운전을 할 줄 아는 두 명과 못하는 한 명이 같이 움직이면서 무심코 던진 말들이 상처가 된다. 길을 가다 어떤 장소는 기억의 한 자락을 떠올리고 회상에 잠기게 만든다. 이 글을 쓰다 무심코 넘긴 곳에서 잇페이다의 아버지 이름을 보고 또 다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청춘과 열정이 가득한 여행 이야기라기보다 어리고 미숙한 충동이 더 눈에 들어온다.

 

<문병>의 대상은 밋짱 언니의 아들 다이코다. 이 단편의 주인공은 다이코의 친구였던 도시야다. 어업으로 성공한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으로 유복한 삶을 살았지만 문화적이거나 세련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손재주는 좋지만 머리는 나쁜 도시야의 일상을 그려내면서 몰락하는 어촌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코토의 추락한 모습과 이를 옆에서 도와주는 도시야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미련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도시야의 진짜 모습이다. 물론 마코토 덕분에 뒤늦은 바람이 났지만. 후반부에 잇페이다 엄마의 병이 다이코의 병과 나란히 알려지고, 이 문병이 중첩적인 의미를 띈다.

 

마지막 단편은 <악의 꽃>이다. 잇페이다가 전편에서 만났던 치요코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그녀의 불행했던 과거와 욕망들이 나오고, 노년의 현재 삶이 그려진다. 젊은 시절 그녀의 삶이 간단하게 설명되는 사이사이에 다이코가 등장한다. 느리고 둔한 다이코지만 착하고 많은 도움을 주는 중년이다.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라고 집요하게 자신을 향해 말하며 살아남은 그녀다. 그리움이 눈물을 불러오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이코의 완치다. 그녀가 다이코에게 시킨 일 때문에 그가 뇌종양에 걸린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답답하지만 이 순수함이 좋다. 이렇게 각 단편에 대한 글을 적다보니 하나의 인물이 보인다. 밋짱 언니의 아들 다이코다. 이들을 모두 연결시켜주는 인물도 다이코다. 이들이 기도하는 인물도 다이코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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