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 작가 중 이상하게 읽기 힘든 작가 중 한 명이 줄리언 반스다. 늘 그의 작품을 읽을 때면 쉽게 몰입하지 못한다. 이전에 다른 책을 읽고 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변함이 없다. 평소보다 더 집중하고 긴 시간을 들였음에도 그렇다. 물론 나의 취향 등과 정반대 의견을 말하는 독자들도 자주 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힘든데 반스는 재밌고 즐겁다고. 작가의 이름  때문에 사놓은 몇 권의 반스 책들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될지 괜히 궁금해진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늘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있고, 읽어야지 생각을 하는데도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이 책들은 죽음의 영역 속에 있는 것일까?

 

반스의 책을 몇 권 읽었지만 체계적으로 읽지 않았고, 제대로 그 깊이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작가가 관심을 가진 분야가 죽음이란 것도 알지 못한다. 실제 원제에도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다. 출판사에서 편집하는 과정에 죽음을 넣었다. 여기에 ‘웃으면서’란 단어를 넣어 살짝 선입견을 가지게 만들었다. 물론 책을 읽다 보면 이 ‘웃으면서’란 단어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줄리언 반스가 말하는 죽음에 관한 유머가 그것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가족에서 시작하여 가족으로 끝난다. 그 사이를 채워주는 것은 역시 기억과 추억과 예술가들의 죽음이다.

 

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제대로 읽지 못하지만 관심이 있는 줄리언 반스라는 작가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가들의 죽음을 인용한 글들이다. ‘죽음에 대한 유쾌한 한판 수다’라고 적어놓았는데 어떤 대목에서는 크게 공감한다. 기억과 죽음에 관한 많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몇몇은 나의 기억과 경험과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의 에피소드를 두고 자신이 소설가가 된 이유를 설명한다, “똑같은 사건에 대한 세 가지 설명이 서로 어긋난다.” 우리가 소설을 읽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다. 다른 관점, 다른 해석 등이 주는 재미. 이 대목을 읽으면서 소설의 힘에 대한 옛글들이 떠올랐다.

 

죽음과 예술가에 대한 글을 쓰는 동안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 인물을 만난다. 그런데 다행이라면 그 책에 나온 예술가와 그가 인용한 예술가가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겹쳤다면 그는 새롭게 글을 썼어야 했을 것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작가는 쥘 르나르다. 르나르와 그의 부모의 죽음과 관련된 죽음의 기록은 반스의 부모 죽음과 비교되는 부분이 있다. 죽음의 기록은 서로 엇갈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반복되는 글도 바로 이 부분이다. 단순히 예술가들만의 죽음을 다루지 않고 가족을 다루면서 개인적 경험도 같이 나열한다. 이 부분이 공감대를 형성한다. 비록 내가 경험한 것과 다르다고 해도.

 

인생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다행이라면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죽음을 둘러싸고 종교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의 반응도 다르다. 그가 무신론자가 된 이유도 특별하지 않다. 다시 불가지론자가 되었지만 종교의 감정은 전혀 없다. 조금 특이한 부분이다. 조금 더 세밀하게 읽었다면 아마도 내가 가장 재미있어 했을 부분은 바로 다른 예술가들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에피소드들이다. 거장들의 말년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도 깨끗하지도 못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 그가 걱정하는 부분이 여기다. 그렇다고 이 걱정에 매달려 암울하게 지내지는 않는다. 유모와 위트 넘치는 글은 그것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든 다음에 차분하게 이 책을 읽는다면 분명히 다른 이해와 해석으로 다가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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